국제대회 시상식에서 우뚝 휘날리는 태극기. 이런 장면을 자주 보고 싶다(KBS TV화면 촬영)
국제대회 시상식에서 우뚝 휘날리는 태극기. 이런 장면을 자주 보고 싶다(KBS TV화면 촬영)

 

21세기 들어서도 한일 양국 사이에는 애증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라는 말처럼 오랫동안 문화적 수혜자 입장이던 일본은 고비마다 침략 근성을 노골화했고 일제 강점기에서 최고조를 이뤘다. 일본은 독일에 비해 과거에 대한 진정한 사과나 반성이 없어 미래 전망도 요원하게 한다.

 

그래도 일부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희망의 끈을 부여잡게 한다. 현직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1995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한반도 식민지배를 사죄했던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는 삼일절 105주년인 지난 1100세 생일을 앞두고 성명을 통해 평화주의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일본이 언제까지나 평화로운 나라로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양국 국민들 가슴에 내재한 문화 DNA도 향후 기대감을 높인다. 우리 기성세대 중에 어릴 적 일본 만화나 영화를 보며 즐거워했던 추억이 없는 이가 있을까. 또 요즘 젊은 세대들은 기존의 사고에 얽매이지 않고 격의없이 소통한다니 든든하다.

 

일본 여자 프로바둑 기대주인 15살의 나카무라 스미레 3단이 올해 한국 프로바둑계에 공식 데뷔했다. 일본에서도 얼마든지 인기와 부를 누릴 수 있을 텐데, 어릴 적 잠시 한국 생활을 한데 이어 아예 한국에서 활동하기로 한 결단에 찬사와 응원을 보낸다.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활동한다니 한중일 3국에 고루 팬덤을 두는 셀럽으로 사랑받길 바란다.

 

반가운 통계가 있다. 지난 2023년 한국을 방문한 외국 관광객 232만 명 가운데 21%가 일본 관광객으로 11년 만에 1위를 기록했다. 중국 관광객은 2013433만 명을 기록하는 등 2020년까지 줄곧 1위를 차지하다가 코로나19 여파로 뒤로 밀렸다. 같은 해 일본을 가장 많이 찾은 외국 관광객도 한국 관광객이다. 전체 2,507만 명 가운데 한국은 696만 명(27.8%)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는 한국을 찾은 일본 관광객의 3배에 이르는 것이니, 우리가 더 일본을 찾는다는 이야기다.

 

임진왜란의 승병장 사명대사의 삶을 다룬 소설을 읽으며 호국불교란 무엇인지 사유해본다. 이상훈 작가의 칼을 품고 슬퍼하다는 불살생을 금과옥조로 하는 스님이 어떻게 칼을 들게 됐는지 사실과 허구를 오가며 그려내고 있다. 왜적의 침탈에 신음하는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대사의 자비심(慈悲心)은 탐욕스런 침략 만행에 맞서는 출정(出征) 명령이 된다. 평양성 전투 등 곳곳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대사는 종전 후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쿠카와 이에야스와 담판을 벌이고 조선인 포로들을 귀환시킨다.

 

소설은 대사에게 큰 감화를 받은 도쿠카와 이에야스의 유훈에 힘입어 막부 정권 260년간 양국이 전에 없던 평화를 맞이한다고 분석한다. 결국 조선은 전쟁의 참화와 상흔을 입는 대신 우수한 문화를 일본에 전파하며 전쟁의 최종 승자가 된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올해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공산국가인 쿠바와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어느 나라든지 허심탄회하게 만날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다. 이제는 상대의 변화만 요구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품을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을 만들어 내자. 진정한 호국불교란 자기네 울타리만 지키는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자신감을 바탕으로 상부상조할 수 있는 적극적인 태도 위에서 이뤄질 수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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