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인도 다람살라에서 1주일간 머물렀던 건 순전히 눈 덮인 히말라야 풍경 때문이었다. 이전 직장을 휴직하고 나선 한 달간의 인도 배낭여행, 델리에서 타들어 갈 듯 한 더위를 겪다 도착한 다람살라는 그야말로 극락이었다. 창 밖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고뇌가 눈 녹듯 없어지는 것 같았다. 지난 동안거 해제일 하루 전 ‘북 마하연 남 운문’으로 불리는 전남 장성 백양사 운문암에 오르니 인도 다람살라의 히말라야 설산이 떠올랐다. 히말라야가 저 멀리 아득한 극락이라면 운문암 아래 겹겹의 산들은 손에 닿을 듯해 천하명당이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조선시대 북쪽에는 금강산 마하연 선방을, 남쪽은 운문암 선방을 최고로 여겼다. 근대 이후 운문암에서는 교정과 종정이 7명이나 배출 되었다고 한다. 현재 한국불교의 문중은 경허스님의 덕숭문중과 용성스님의 범어문중으로 크게 나뉜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명 중 한명이었던 용성스님의 법맥은 동산스을 거쳐 성철스님과 광덕스님 등 근현대 고승들로 이어졌다. 그러한 용성스님은 일제강점기인 1923년 이곳 운문선원의 조실을 맡았다고 한다. 운문암은 위로는 고려시대 각진국사로 부터 시작해 조선시대 진묵스님 등을 거쳐 석전, 만암, 고암 스님과  남전, 인곡, 운봉, 법전스님 등도 이곳에서 수행을 했으니 천하명당이라는 말이 빈말은 아닐 듯하다. 백양사는 삼국시대 창건 돼 고려시대 각진 국사에 의해 사격을 높였다. 조선시대에도 청허 휴정 스님의 전법제자인 소요 태능 스님 등 수 많은 고승들이 주석하며 정진했다. 특히 백양사는 조계종 초대종정을 지낸 만암스님이 일제강점기 중창불사로 우리불교의 첫 총림을 일군 곳이다. 그리고 그 법맥을 이은 조계종 5대 종정 서옹스님이 참사람 운동과 무차선회로 선풍을 드높였다. 운문암은 백양사의 산내암자로 각진 국사 당시에 창건 됐다고 전해지며 한국전쟁을 거치며 소실 됐다가 다시 복원 돼 오늘에 이른다.

백양사에서 운문암까지는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데 길이 험해 백양사 재무국장 선묵 스님의 차를 얻어 타게 됐다. 스님과의 하산 길에 필자는 스님에게 백양사는 예전 서옹 스님이 입적 했을 때 다녀 간 후 오랜만에 다시 오니 너무 변해 못 알아보겠다고 하며 운문암이 천하명당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그러자 스님은 사람들이 다들 천하명당을 찾는데 자기가 있는 곳이 천하명당이 아니냐는 화두를 던졌다. 백양사 인근에서 1박을 하고 이튿날 숙소 창밖을 보니 거기서도 내장산 자락의 산이 보였다. 취재 때문에 히말라야가 가까운 네팔을 4번 정도 찾았고 중국과 인도, 동티베트, 파키스탄 등에 있는 높은 산도 많이 봐 왔지만 전날 스님의 화두 때문인지 그 때 그 산이 마음에 들어왔다. 고향이 경기도 이천이고 그곳에 집과 땅, 선산이 있기에 늘 펜을 놓으면 이천에 살며 겨울에는 따뜻한 나라에 머물겠다고 했는데, 내가 있는 곳 어디에서나 산은 보였고, 지금 이 곳이 천하명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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