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신의 아침저널 - 지방자치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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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영 서울역사박물관 큐레이터
최보영 서울역사박물관 큐레이터

■ 대담 : 최보영 서울역사박물관 큐레이터
■ 방송 : 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 (07:20~09:00)
■ 진행 : BBS 보도국 전영신 앵커

▷ 전영신 : 이어서 지방자치저널 순서입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서울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전시하는 종합 박물관이죠. 새해 전시 계획 등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최보영 서울역사박물관 큐레이터 연결합니다. 안녕하십니까? 

▶ 최보영 : 안녕하세요. 

▷ 전영신 : 일단 지금 서울역사박물관이 서울미래유산기록사업을 지난해에 해오셨잖아요. 이번에 서울의 인장포 조사 보고서 발견하셨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 겁니까? 

▶ 최보영 : 서울역사박물관은 서울의 기억 저장고로서 도시화를 거치며 사라지고 있는 문화유산을 조사·연구해 보존하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로 2020년부터 서울미래유산을 기록해 왔는데요. 이번에 발간한 서울미래유산기록 시리즈의 네 번째는 도장을 만드는 서울의 인장포를 주제로 살펴봤습니다. 

▷ 전영신 : 인장이라는 게 도장을 말씀하시는 건데 이 보고서에 관련한 어떤 변천사 이런 것들이 실려있는 건가요? 

▶ 최보영 : 조선 시대 한국의 인장은 크게 국새라고 불리는 국가의 왕실의 인장인 새보, 관청에서 쓰는 관인, 개인 용도의 사인으로 구분됐습니다. 특히 개인이 사용하던 인장은 서화의 낙관이나 서적의 소유를 표시하는 장서인 정도에 그쳤는데요. 일본이 우리나라의 국권을 침탈하면서 조선총독부가 1914년에 인감증명제도를 강제 도입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인장을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후 87년 동안 인장업을 규정하던 인장업법이 1999년에 폐지되면서 현재 인장과 관련된 법은 인감증명법이 유일합니다. 

▷ 전영신 : 인감증명이 이게 일제시대의 잔재군요? 

▶ 최보영 : 그렇습니다. 

▷ 전영신 : 그래도 어쨌든 인장 문화가 우리 전통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최근에는 예전에는 도장 새기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손으로 파서 새겨주셨었잖아요. 요즘은 컴퓨터 도장이라고 불리는 기계로 조각하는 인장이 등장하면서 수공예 인장은 찾아보기 드물어졌죠? 

▶ 최보영 : 네. 과거의 인장업은 글씨를 잘 쓰고 이것을 견고하게 새길 수 있는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분야였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에 컴퓨터 조각기가 등장하면서 우리가 흔히 막도장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되었습니다. 컴퓨터 인장은 단시간에 제작이 가능하고 보통 저희가 3글자짜리 도장을 컴퓨터로 조각하는데 6분이 채 걸리지 않거든요. 그리고 가격도 저렴해서 현재는 직접 손으로 새기는 인장을 찾기가 매우 어려워진 상황입니다. 

▷ 전영신 : 그렇지만 여전히 이 수조각 인장 지켜오시는 분들이 계시죠? 

▶ 최보영 : 네, 대한민국의 인장공예 명장이 총 일곱 분 계시는데요. 그중에 다섯 분의 인장 명장이 서울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종로구에 있는 박인당, 거인당, 인예랑. 중구에서 활동했던 옥새당, 강북구의 여원전인방이 그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전영신 : 그러시군요. 이번에 조사한 서울의 인장포 다섯 곳 모두 1950년대 이후에 상경한 지방에 계시던 분들이 운영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면서요? 

▶ 최보영 : 그렇습니다. 6.25전쟁이 끝나고 생계 수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모여들었습니다. 그 당시 상황을 말해 주는 대표적인 말이 있죠.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말이 유명한데요. 이런 상황에서 인장업은 손재주가 있는 상경민이 사장님이 될 수 있는 가장 쉬운 업종이었습니다. 제작 상황상 책상만 있으면 작업이 가능해서 창업의 진입장벽이 낮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희가 이번에 조사한 5명의 인장 명장들은 모두 어려서부터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서당을 운영하시는 등 한자를 공부했고 남다른 손재주를 지니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덕분에 서울에서 인장업으로 쉽게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 전영신 : 인장, 도장은 디지털화 시대에 점차 사라져가는 문화이긴 하지만 여전히 또 나의 이름을 새긴 도장을 찍는 일에는 상당한 신중을 기해야 되는 상황들이 있죠. 그리고 어떤 복을 바라는 의미에서 직접 수작업한 인장 찾으시는 분들도 많으시죠? 

▶ 최보영 : 그렇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혼인신고서나 부동산 계약서 같은 어떤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완성하는 최종 단계에서 인장을 찍습니다. 이러한 행위만 생각해 보더라도 인장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나를 또는 내가 속한 회사나 단체를 대신하는 징표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그래서 인장업계에서는 인장을 다른 말로 ‘몸 신’자를 써서 인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름으로 하나의 몸을 만들어 주는 일이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작업들을 하고 계시는 거죠. 

▷ 전영신 : 이 인장, 우리가 지켜가야 될 문화가 또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조사를 쭉 해오시면서 어떤 바람 같은 게 있으셨을 것 같아요. 

▶ 최보영 : 현재까지 컴퓨터 인장이 굉장히 편리하고 효율적이고 많은 분들이 쉽게 찾는데도 불구하고 그분들이 70년 전, 50년 전에 사용하던 인장업 명부라는 게 있습니다. 그동안 본인께서 제작한 인장에 도장 찍은 단면을 의뢰하신 분들의 주소와 성명, 인적사항과 함께 기록하게 되어 있는데요. 그게 법적으로 문제가 됐을 때 위·변조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기록들을 인장업자들은 법으로 규정해서 간직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근데 그게 1999년에 인장업법이 폐지되면서 사라졌지만 이분들은 아직도 그러한 자료들을 가지고 본인들의 책임감을 다하고 계시는데요. 이러한 인장업 종사자분들의 노력과 인장의 가치가 저희의 이번 작업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전영신 : 관련해서 어떤 전시를 하신다든지 보고서를 대중들에게 널리 배포를 한다든지 이런 계획이 있습니까? 

▶ 최보영 : 저희가 전시 계획은 현재로서는 잡혀있지 않지만 저희 박물관이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전시하는 곳이다 보니까 향후에 금번에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전시가 언젠가는 열릴 예정이고요. 이번에 제작한 서울의 인장포 보고서는 가까운 공공도서관이나 대학 도서관에 비치가 되어 있고 저희 서울 도서관이나 서울역사박물관 자료실에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혹시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싶으신 분들은 서울시청 지하에 있는 서울책방에서 구입하실 수 있고요. 저희 홈페이지,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에 들어가시면 웹상에서 e-북이나 PDF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전영신 : 청취자 분께서 도장 낙관 인장은 옛 의상 디자인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라는 말씀 주셨습니다. 오늘 이렇게 말씀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최보영 : 감사합니다. 

▷ 전영신 : 지금까지 최보영 서울역사박물관 큐레이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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