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방송서 신년휘호로 '龍'자 써 ... 대형 붓글씨의 효시
'예서' '전서' '초서' 등 서체 3백여 종류 완벽히 자유자재 구사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방한시 '龍’글자 증정
영 트라팔가 광장서 퍼포먼스 도중 비둘기떼 훼방으로 중단
"갑진년 '청룡'의 해는 준비하고 시작하는 해"
문희상 의장 요청에 국회 서도회 지도위원 수락
"서예는 운동"... 다리에 힘생기고 기를 상승시켜 건강에 좋아
고 이기택 총재 저녁 식사 뒤 꼭 붓글씨를 써
국회의원에게 '惟公則生明 惟廉則生威' 권유 ... 마음이 깨끗해져
어릴적 '황구털 붓'이나 '자호필'로 붓글씨 연습
고래불 해수욕장을 한지삼아 반야심경 외우며 글씨 써
이과수 폭포서 영감 ... 음양원리 바탕으로 '태극서법' 개발
중국, 천년만에 바꾸는 '용반사' 표지석을 초당선생께 맡겨
30개 서체로 쓴 반야심경으로 서예 교재 집필해 중국서 출판 목표
이건희, 박태준 회장 등 유명인들 만시비 제작을 문화로

초당 이무호 선생 백룡전이 1월19일부터23일까지 동아일보사 사옥1층에서 개최되었다. 사진 왼쪽부터 이무호 선생,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 (국회 서도회 회장)
초당 이무호 선생 백룡전이 1월19일부터23일까지 동아일보사 사옥1층에서 개최되었다. 사진 왼쪽부터 이무호 선생,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 (국회 서도회 회장)

● 프로그램명 : BBS 뉴스파노라마 설 특집
● 방송시간 : 2월9일 18:20 ~19:00 BBS 라디오 FM 101.9 MHz
● 출연자 :  초당 이무호 서예가 

김호준> 갑진년 섣달 그믐날 여러분들께 인사드립니다. 김호준입니다. 음력으로 내일부터 갑진년이 시작됩니다. AI 시대의 음력을 따지고 순 우리말을 사용하나 싶겠지만 AI 시대일수록 상식도 더 많이 쌓아야 하고 옛 것도 돌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온고지신이라는 말이 있죠. 옛것을 익혀 그것을 바탕으로 새 것을 안다는 말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새해 결의와 소망을 큰 종이에 붓글씨로 써서 걸어두고 한 해 동안 마음과 행동의 지표로 삼았는데요. 신년휘호라고 하죠. 희망을 품게 되는 새해 첫날에 자신의 소원과 각오를 직접 글로 쓰지 않더라도 마음에 새기는 시간이 있을 겁니다. 올해는 갑진년 청룡의 해입니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용처럼 국운도 개인의 운도 상승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한자로 용 ‘龍’자를 보면 용을 형상화한 것처럼 역동적으로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글자같이 보이는데요. 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오늘 뉴스파노라마는 설날 특집으로 우리나라에서 한자로 ‘龍’자를 가장 잘 쓰시는 서예가를 모시고 말씀을 나누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김호준>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서해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도 주목받는 서예가 초당 이무호 선생님께서 스튜디오에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무호> 안녕하십니까.

김호준> 선생님 오늘 나눌 얘기들이 무척 많이 있는데요. 먼저 우리나라에서 ‘龍’자를 가장 잘 쓰시는 서예가라고 소개해 드렸는데 초당 선생님을 표현하기에는 좀 부족하다고 생각이 됩니다만 어떠십니까?

이무호> 과찬의 말씀입니다마는 제가 ‘龍’자를 쓰기는 참 오래전부터 써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1988년도에 KBS에서 신년 휘호를 ‘龍’자를 쓰고요. 그 다음에 2000년도에는 중국 심양에서 '천희용년'이라는 2000년을 맞이하는 ‘龍해’의 큰 서예 행사를 했어요. 그때 가서 심양 인민 정부 광장에서 중국 서예계를 대표하는 그 심붕 주석 또 38개 성 부주석들하고 그 ‘龍’자를 크게 쓰고 현장 휘호를 했을 때에 참 아주 감회가 깊었습니다.

초당 이무호 선생의 '용' 작품
초당 이무호 선생의 '용' 작품

 

김호준> 다른 글자도 많을 텐데 용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십니까?

이무호> 그때는 이제 ‘龍’자 용해이기 때문에 용을 많이 쓰는데 저는 이제 글자는 한 300여 종류의 서체를 씁니다. 우리나라 한글을 비롯해서 갑골문 또 청동기 시대 때의 상형 문자 그 외에 그 5체 '해서', ‘예서’, ‘전서’, ‘초서’ 이렇게 해서 한 300가지 종류의 서체를 좀 연구하고 써왔습니다.

김호준> 요즘은 서예가 분들이 이렇게 신년 휘호 퍼포먼스를 많이들 하시더라고요. 근데 이 신년휘호 퍼포먼스를 한 게 선생님이 효시라고 들었습니다. 처음이라고?

이무호> 예. 그 옛날에는 이 ‘龍’자를 창해 김창환 선생께서 많이 썼어요. 그래 그때에 MBC에서는 김창환 선생이 '용'자를 쓰시고 저는 KBS에서 ‘龍’자를 쓰고 이렇게 같이 양쪽 1988년도죠.

김호준> 그때가 이제 처음 시작하게 된 그때부터

이무호> 퍼포먼스를 ‘龍’자하고 이 큰 대붓을 가지고 쓰기 시작했는데 

김호준>대형 한지에

이무호> 예. 그렇게 하다가 보니까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국 오셨을 때 그때가 1900 몇 년도였죠? 그때 오셨을 때에 그 ‘龍’자를 제가 하나 선물을 한 일이 있어요. 그래서 영국에  건너가서 제가 퍼포먼스를 준비를 해서 갔죠. 그래 갔는데 버킹검궁 앞에서 쓰려고 하니까 잔디밭이 좀 습기가 있고 이 잔디가 푹푹 내려가니까 그 위에 펴놓고 쓸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 트라팔가 광장에 가서 쓴다고 하니까 흰 종이를 딱 펼쳤더니만 그냥 비둘기 떼가 확 내려앉았어요. 

김호준> 거기도 비둘기가 많네요. 

이무호> 내려앉아가지고 그만 바람이 부니까 종이하고 같이 비둘기떼가 같이 확 날아서 아주 진풍경이 참 벌어졌죠. 그래서 거기서 못 쓰고 강당에서 한 글자를 25미터짜리 글자를 썼습니다. 그때 붓은 붓 호 털을 호라고 합니다. 털이 한 1미터 정도 되는 걸 제가 만들어갖고

■김호준> 직접 붓을 제작하시고?

이무호> 예 그래갖고 가져가서 쓴 일이 있습니다.

■김호준> 그 붓털도 길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 털은 어느?

이무호> 털은 이제 소재로 쓰는 건 보통 말총, 붓이 말총 붓이 그저 한 길이가 길어도 한 60~70센티미터 정도밖에 안 되거든요. 그리고 한 1미터 짜리 이거는 자연 소재는 없고 인공으로 만드는 그런 거에요. 거기에다 실이라든가 이런 걸 갖다가 섞어서 제가 직접 만들었죠.

스페인에서 열린 '2017 코리아 유레카 데이'에서 이무호 선생이 대형 붓으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스페인에서 열린 '2017 코리아 유레카 데이'에서 이무호 선생이 대형 붓으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김호준> 퍼포먼스를 많이 하셨는데 그러면 올해도 국회에서 ‘龍’자를 쓰셨나요?

이무호> 예 용 ‘용’자를 썼습니다.

■김호준> 신년휘호로는 또 어떤 글자를 쓰셨나요?

이무호> 금년에는 이제 제가 ‘청룡비등’하니 ‘기세충천’이라 하는 제목을 내걸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청룡이 날아오르니 기세가 충천한다 그런 의미를 담아가지고 정말 기운찬 글씨를 쓰려고 해서 이렇게 썼습니다. 썼는데 청룡이라는 것은 사실은 이게 동쪽 방향을 가지고 이렇게 청룡 이렇게 오늘날 검은 토끼 해다 이러잖아요. 그것이 방향을 가지고 얘기하는 건데 청룡은 금년에는요. 우리가 사업이나 이런 것을 활발하게 새로이 개발해야 될 해입니다. 금년이 왜 그러냐 하면. 옛날에 동대문이 푸른 색깔이라서 청룡에 해당되는 방향입니다. 동쪽이 청룡, 남쪽은 적룡, 불을 상징하는 태양을 상징하는 적룡, 금년은 동대문을 상징하는 용해기 때문에 옛날에 우리나라 임금님이 새해에는 입춘을 기점으로 해갖고 적전(積田), 임금님이 친히 갈 밭에 나가서 농사일을 시작함으로 해서 농경사회에서는 만 백성이 그때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랬는데 그때에 이제 농사일을 시작하는 걸 보고서 백성들이 임금님이 일을 시작을 하시는데 일을 하시는데 놀 수 없다 그날 기점으로 해서 농사일을 시작을 하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모든 일을 청룡의 해에는 결실은 다음에 거두더라도 시작하는 준비하고 시작하는 해라고 보면 좋습니다.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김호준> 현재 선생님께서 국회 서도회 지도위원으로 계시잖아요. 그러면 국회의원들이 서도회에 가입해서 붓글씨를 많이들 쓰고 계시는 거죠?

이무호> 예예 제가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님들의 글씨를 한 30년 전부터 외국에 알리는 그런 역할을 해왔어요. 그래 해 오다가 문희상 의장께서 저를 가르쳐 달라고 해서 국회에 들어가서 지도를 하는데 처음에는 제가 많이 생각을 했는데 이거 역시 중국이나 글씨 쓰는 나라에서는 그 나라의 장쩌민 주석이 글을 쓰면 국민들이 그거 따라 좋아하고 쓰고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도 서예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인들도 글씨를 잘 써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가서 흔쾌히 응했죠. 그래서 지도를 했는데 사실 참 보람이 있습니다. 그것이 국회의원들이 글씨 잘 써서 내놓고 좋아하고 이랬을 때에 보람이 있고 또 

지난 1월 동아일보사 사옥 1층에서 열린 초당 이무호 선생 백룡전에서 주호영 의원이 선생과 함께 관람하고 있다.
지난 1월 동아일보사 사옥 1층에서 열린 초당 이무호 선생 백룡전에서 주호영 의원이 선생과 함께 관람하고 있다.

 

■김호준> 가을마다 전시회를 열죠? 국회의원들 작품을 모아서

이무호> 해마다 '세계문화예술대전'이라는 걸 통해서 한 20여 개 국가에다가 우리나라 정치인들 작품을 이렇게 소개를 하고 또 국회 헌정회에는 전직 의원님들이 공부를 하시거든요. 그분들이 나와서 글을 쓰신 모습을 보면은요. 

■김호준> 대한민국 헌정회 서화위원회죠?

이무호> 예 거기도 지도를 합니다. 거기서도 보면 연세 많으신 분은 현재 97세입니다.

■김호준>누구신가요? 

이무호> 남재환 의원이 제일 연세가 많은데 97세고 작년에 돌아가신 장경순 국회 부의장은 100세에 돌아가셨죠. 그런데 그분들이 글씨 쓰는데 서서 글을 쓰시거든요. 그 옆에 운동하는 운동실이 있어서 잠깐 가서 누워서 쉬어갖고는 서서도 글씨를 씁니다. 글 쓰니까 기가 상승하고 이러다 보니까 다리에 힘이 생기고 그래서 아주 건강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바둑을 두면 하루 앉아서 이렇게 두지 않습니까? 그러면 다리에 힘이 빠지는데 서서 글씨를 쓰니까 다리에 힘은 생기고 또 기는 상승하고 그래서 건강에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90세 넘으신 분이 많습니다. 

■김호준> 서도회 얘기가 나와서 관련 질문을 드리는데 서도회 제자 중에 아끼시는 분이 있다면 누굴 뽑습니까?

이무호> 국회에서는 참 다 한 분 한 분 다 소중한 분이지만요. 전에 이기택 총재께서 한 10여 년간 글씨를 배우셨는데 말년에는 자기 마포 사무실에서 저녁에 꼭 글씨를 저녁 식사를 하자고 그래서 가면 식사를 하시고는 전에는 바로 집으로 들어가셨는데 사무실에 들러서 글씨를 쓰고 가십니다. 말년에 글씨를 잘 써보려고 하셨는데 너무 일찍 돌아가서 아쉽고요. 문희상 의장님이나 주호영 의원은 참 한문을 많이 아시기 때문에 

■김호준> 한학에 조예가 깊으시다고

이무호> 예 아주 한학에 조예가 깊습니다. 그래서 그 주호영 의원하고 이원욱 의원

■김호준> 이원욱 민주당 의원도

이무호> 민주당 의원 그분하고 또 전에 이주영 의원 계실 때는 이주영 부의장, 정갑윤 부의장 또 주승용 부의장 이런 분들이 참 좋아하셨어요. 지금은 국회에도 여러분이 공부를 하시고 계시지만은 헌정회에서는 잘 쓰시는 분이 조남조 의원하고 이경재 전에 방통위원장 하시던 이경재 의원 또 김창환 의원 이런 분들이 글씨를 아주 수준 이상의 그런 글씨 쓰시는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 소품으로 쓰였던 '100룡병풍'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 소품으로 쓰였던 '100룡병풍'

 

■김호준> 존함들을 들어보니까 신언서판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글씨가 그 사람을 대변한다는 옛말처럼 다들 점잖으시고 다 올바른신 분들인 것 같습니다

이무호> 신언서판이라는 말이 딱 맞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게 마음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그 얼굴 모습도 보면요. 율곡 선생이 ‘구사구용(九思九容)'에 대해서 얘기를 했는데 9가지 생각 9가지 얼굴 모습을 얘기한 게 있거든요. 마음이 선한 사람은 저절로 얼굴 모습에서 그것이 탁 나옵니다. 나타나기 때문에 글씨를 써놓은 걸 보면은 어떤 분은 글씨 지저분하게 쓰는 분이 계시고 어떤 분은 아주 깔끔하게 쓰는 분이 계시고 또 아주 기운차게 쓰는 분이 계시고 다 다릅니다. 글이 성격에 따라서 생각에 따라서 이게 글씨가 다르게 나오거든요. 그 신언서판이라는 말은 딱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글씨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국회의원이 서예를 공부하려고 오시면 우선 거기에 걸려 있는 것이 예를 들어서 채근담에 나오는 ‘유공칙생명 유렴칙생위(惟公則生明 惟廉則生威)' 이런 말을 하나 써붙여놓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오직 공정함으로 해서 명철을 낳고 청렴함으로 해서 위엄을 낳는다. 이런 글을 써놓죠. 그러면 그 작품 내용을 쓰고 읽어보신 분들은요. 마음이 얼마나 깨끗하겠습니까? 그 좋은 옛날에 성현의 말씀이나 이런 걸 보고 그런 것을 이제 본보고 닮는거죠. 그래서 어떤 위험한 상황이라든가 급한 때라든가 아주 순간순간마다 딱 그런 말이 딱 떠올랐을 때에 내가 행동을 어떻게 하느냐가 결정되는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 자살을 많이 하잖아요. 그거는요. 어릴 때에 그 동몽선습이나 이런 걸 가르쳐가지고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고 훼손하면 안 된다. 이 한마디만 배워놨으면 내가 자살하려고 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 이건 부모에게 죄를 짓는 것이구나 그 자살도 면하는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거는 교육이라는 서예 교육이라는 건 인격 수양입니다.

2023년 10월 11일 미국세계 한상대회 개막식에서 이무호 선생이 축하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다
2023년 10월 11일 미국세계 한상대회 개막식에서 이무호 선생이 축하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다

 

■김호준> 그렇겠네요. 선생님께서 서예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선생님께서 어떤 계기로 붓글씨를 쓰시게 됐는지

이무호> 저는 6.25 두 해 전에 태어났어요. 그래서 제가 아주 산간 벽지에서 태어났습니다.

■김호준> 48년도에 태어나신 건가요? 

이무호> 벽지에 태어났는데 거기 나옹왕사께서 영덕군 창수면 불미골(佛母谷)이라는 부처 佛자를 쓰는 불모곡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셨는데 우리 마을이 곧 이웃 마을이었는데 저는 칠보산 산 속에 태어났습니다. 그래 그때 이제 우리가 보는 건 하늘의 별밖에 안 보이고 말이죠. 자전거도 안 다니는 그런 동네에서 태어났으니까 할아버지께서 한학을 많이 하셨는데 평소에 경전 ‘반야심경’쓰시고 또 천자문 같은 거 쓰시고 그런 것 밖에 볼 수가 없었어요. 자연스럽게 이 한문을 접하고 그래 내가 참 옛날 이야기 한번 해야겠네요. 그 당시는 족제비로 만든 붓이 제일 좋았는데 그런 붓은 우리가 만져볼 수도 없고 이제 붓이 없으니까 궁여지책으로 제가 이웃집에 황구 털을 잘라갖고 대나무 대롱을 이렇게 칼로 파서 거기다 묶어 넣어서 쓰고 지금 생각하니까 그거 참 죄를 지은 것인데 산토끼를 잡아갖고 산토끼 털을 잘라서 만들어서 썼어요. 그런데 그것이 자호필이라고 합니다.

■김호준> 산토끼 털은 자호필

이무호> 그렇게 하고 칡덩굴을 쪼아가지고 이렇게 갈필도 요즘 제가 지금 다 쓰고 있어요. 갈필도 직접 만들어 썼어요. 그래서 만들어썼는데 그 당시에 종이가 없어서 비료 푸대 종이 같은 거는 아주 그냥 고급 종이고 그 글씨를 많이 쓰려는데 종이가 없으니까 나무 송판을 쪼아서 대패에 밀어 만들어서 그 위에다가 이제 먹은 말이죠. 가마솥에 그을음을 거둬서 막걸리가 있으면 막걸리에 타서 그냥 연습하고 황토 흙을 이렇게 물에 걸러서 그 물에다 타서 연습하고  연습하고는 물에 씻어버리고 닦아버리고 또 연습하고 이렇게 했어요. 그리고 저는 이제 소 먹이는 담당이 돼가지고 큰 집 소, 작은 집 소 해서 산에 올려놓고는

■김호준> 집안에서 막내셨나봐요?

이무호> 싸리 꼬챙이로 하는 짓이 뭐냐하면 만날 그저 땅바닥에 글씨 쓰는 거예요. 천자문 쓰고 반야심경 관자재보살 행심 외우면서 말이죠. 이거 쓰는 거예요. 써보면 그거 재미있어요. 그게 그래서 글씨를 접하면서 이 동해 우리바닷가에 고래불이라는 해수욕장이 있습니다. 고래불 해수욕장을 가면은 바닷물에 모래가 씻겨 나가면 실크로드가 아주 비단처럼 이렇게 펼쳐져 있죠. 전부 그런 것이 이제 종이처럼 보이는 거예요. 그게 그 뭐 해송 가지를 꺾어서 거기다 그냥 천자문을 그냥 막 써 모래밭에

■김호준>모래밭에 파도가 밀려와 지워지고 또 종이가 생기고

이무호> 그런 걸 많이 했습니다.

■김호준> 그야말로 형설지공 같은

해인사의 무아정사 현판도 초당 이무호 선생의 작품이다
해인사의 무아정사 현판도 초당 이무호 선생의 작품이다

 

이무호> 예 그렇게 했던 것이 내가 이제 글씨를 연구를 하다가 보니까 진짜 그 좋은 필법이에요. 왕희지가 이제 입목도라는 걸 들 ‘입’자 나무 ‘목’자 도 길 ‘도’자 입목도라는 게 무슨 말이냐면 나무에 글씨를 쓰는데 3치가 그 안에 스며들었다 이런 얘기거든요. 그게 뭐 땅바닥에 나무로 긁어쓰다 보까 이거 그냥 저절로 그런 법이 이렇게 생긴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개발한 글씨가 글씨 쓰다 보니까 욕심이 생겨서 브라질의 이과수 폭포에 가서요. 한 한 달간 브라질에 가 있으면서 아마존의 방대한 세계도 구경을 하고 이과수 폭포에 가서 이틀간 탁 앉아가지고 폭포수가 떨어지는 걸 관찰을 했습니다. 이 물이 막 워낙 세게 떨어지니까 그 물기둥이 확 떨어져가지고 다시 막 올라가요. 그게 힘이라는 거예요. 그거 대단한 힘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방울 필법이라는 걸 개발했는데 붓끝에 탄력을 가하면 붓끝이 딱 이렇게 오므려져 있던 붓끝이 벌어지면서 밑에 흘러있던 먹물이 다시 끌어올려요. 이게 이과수 폭포에서 내가 얻은 그 법을 개발해서 모든 것을 음양원리에 맞게 자연에 맡기겠다 이렇게 연구를 했죠. 그래 해보니까 나무도 밑에는 뿌리가 다 깊이 박혀 있는데 이제 가지는 가늘고 이 줄기는 굵지 않습니까?

■김호준>예

이무호> 그래 그런 원리에 딱 맞게 내가 이 글씨를 연구한 거야. 그렇게 해보니까 그것이 명필 글씨는요. 다 그런 조건이 다 갖춰있고 좋아서 그래. 이게 음양 원리에 맞춰서 개발한 태극 서법입니다. 중국에서도 이제 태극 서법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김호준> 우리나라에서는 김정희의 서체인 추사체를 뛰어넘을 수 있는 선생님만의 서체 ‘태극 서법’을 만드신거죠?

이무호> 과찬의 말씀입니다만 

■김호준> 중국에서는 안진경체, 구양수체, 왕희지체 등 다양한 서체가 있는데

이무호> 예. 추사 선생님이 조선시대 이후에 아직까지 추사의 아성을 가까이 가신 분이 현재는 안 나타나는 것 같아요. 그건 뭐냐 하면 글씨가 그만큼 어렵다는 겁니다. 제가 이제 외국 사람들은 볼 때에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씀이지만 ‘당신 글씨는 독특한 개성이 있다. 그래서 앞으로 한국에서 한 시대에 이제 훌륭한 서예가가 나오기가 쉽지 않으니까 열심히 하셔서 그 추사 선생 같은 그런 훌륭한 분이 되기를 바란다는 이런 조언의 말씀을 중국에 있는 분들이 많이 하십니다. 중국 서예계에 작년에 작고하신 붕 주석 이분이 한국에 와서 제가 쓴 비석 글씨를 보고 이건 정말 똑똑한 글이라고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중국의 각 성 주석들이라든가 이런 분들이 오시면요. 제 글씨에 대해서 한마디씩 이렇게 하는 걸 보면 기대를 많이 갖는 것 같은데 제가 아직까지 못 미치고 있죠. 열심히 하겠습니다.

중국 천년고찰 용반사의 표지석 탁본. 표지석을 천년 만에 교체하는데 글씨를 외국인에게 부탁하는 것은 중국의 자존심을 감안할 때 쉽지 않은 일이다.
중국 천년고찰 용반사의 표지석 탁본. 표지석을 천년 만에 교체하는데 글씨를 외국인에게 부탁하는 것은 중국의 자존심을 감안할 때 쉽지 않은 일이다.

 

■김호준> 중국에서도 주목할 만한 서예가로 꼽혀서 중국에서 큰 사찰이죠. 거기서도 현판을 천년마다 바꾸는데, 선생님한테 맡기셨다고요?

이무호> 장안에 천년 고찰 표지석 '용반사'가 있는데 거기에 현판이 아니고 들어가는 입구에 돌에 새긴 표지석 ’용반사‘라는 표지석을 천년 만에 제작한 것인데 

■김호준> 천년 만에 바꾸는 것인가요?

이무호> 예. 바꿨습니다. 바꾸면서 그 글씨를 써서 보냈더니 용반사 용자가 들어가잖아요. 

■김호준> 그러네요.

이무호> 보냈더니 거기 있는 비석 연구가가 백지언 선생이라는 분이 비석만 전문으로 연구하는 연구가예요. 소장가이기도 한데, 그 분이 용반사에 대한 그 글씨에 대한 시를 한 수 지었는데 아주 멋진 시를 너무 과찬을 해서 지었어요. 그래서 그런 제가 그걸 보고 또다시 더 열심히 공부를 하고 이렇게 합니다. 그래서 중국에는 제가 비석 글씨를 많이 썼습니다. 제가 합천 해인사에 가야산 선림원 글씨하고 주련하고 또 무아선원 글씨를 예서로 썼는데 중국 서안 백사성조문화원인 고궁에 위북풍정원 석조 일주문을 썼으며 그 외 낙양의 황제행궁비 등 비석을 많이 썼습니다. 중국분들이 알아주는 것 같아서 참 기뻤습니다. 

■김호준> 선생님께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걸 많이 이루셨는데요. 앞으로는 목표가 있으실까요?

이무호> 저는 이제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은요. 제가 세계문화예술 대전이라는 것을 금년에 28년째가 됐습니다. 28년 동안 세계 서예계에 있는 모든 문화를 같이 이렇게 행사를 해 왔어요. 제가 한 번도 안 쉬고 전에는 중국에 한번 전시하고 한국에 전시하고 이걸 해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은 그 교본을 자꾸 만들으라고 많이 얘기들 합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도 자기네들이 교본을 만들어 가지고 구양순 후손이 호남성에 있는 분이 교본을 만들어서 한국에 초당 이무호 선생이 교정했다 하고 저한테 보내고 이런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반야심경을 예를 들어서 한 30가지 각기 다른 서체를 써가지고 그다음에 천자문을 한 30가지 서체를 쓰고 이런 걸 가지고 이제 각 그 서체마다 돌에 아주 잘 새겨서 이걸 이제 탁본을 해가지고 앞으로 영원히 이 서예계에서 서예인들이 보고 쓸 수 있는 교재로 말이죠. 그거를 중국에서 출판을 지금 얘기를 하고 있다가 얘기가 됐어요. 중국에서 출판을 해서 자기네 나라에서 팔고 또 우리나라도 역수입하고. 그런 돌에 새기는 문화를 많이 만들어서 비립문화를 우리나라에 이제까지 없던 문화를 하나 만들어 놓고 싶은 것이 제 소망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얘기는 하면 될지 안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한동 총리라든가 남덕우 총리 이기택 총재 이런 그런 분들이 돌아가셨을 때 내가 만시를 쓴 게 있어요. 돌아가신 분을 이제 좋은 데 가시라는 축하 만시를 쓴 게 있는데 삼성의 이건희 회장님은 금강경 게송을 제가 만시로 썼거든요. 이렇게 했는데 박태준 총리도 제가 만시를 썼고 그리고 전부 다 이게 빈소에 갖다 걸었는데 제가 그런 비를 만들면 삼성에 가서 옛날에 썼던 그 만시 그걸 이제 몇천 년 남을 수 있게 큰 비석을 하나 세워달라고 그럴려고요. 그리고 또 박태준 총리의 만시는 포항제철에 가서 하나 세워달라고 얘기하려고 그래요. 그리고 박태준 총리 만시는 내가 한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그걸 써서 갔을 때 불교 만시를 써서 갔어요. 불교 만장을 써갔는데 가보니까 기독교식으로 이 장례를 집하더라고요. 그래서 당시 포스코 윤석만 대표이사에게 내가 이거 불교 만시를 써왔는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기독교식으로 장례식을 하니까 그랬더니 윤석만 씨가 사모님께 가서 말씀을 드렸어요. 그랬는데 그렇게 반가워하더라는 거예요. 우리가 불교 신자인데 우리 애들이 기독교식으로 장례한다 이런다는 거예요. 

■김호준> 자녀의 종교가 달라서 생긴 일이군요

이무호> 그래갖고 그걸 갖다 걸었어요. 그런 얘기를 하면서 내가 만약에 그런 거를 돌에다 새기면은 그런 이야기도 내가 쓰려고 해요. 이렇게 할 거고 예를 들어서 이한동 총리나 김용채 장관 이런 공적비를 지금 비석을 내가 많이 씁니다. 쓰니까 그런 분들의 만시를 채우고 여러 가지 말이죠. 그런 돌을 가지고 이렇게 내가 글씨를 다 쓰고 또 국회의원 제자분들이 한 100여 분의 작품을 거기다 또 세우고 또 여러 군데 이제 제자분들 작품도 세우고 중국의 유명한 분들 작품도 새겨서 세우고 이래서 우리나라 역사에 없는 문화를 만들고 싶은 것이 제 소망입니다.

■김호준> 선생님의 소망이 이뤄지기를 저도 바라겠습니다.
오늘 뉴스 파노라마는 초당 이무호 서예가와 함께 시간을 가졌습니다. 얘기를 듣다 보니 역시 설날에 만나봬야 할 뜻깊은 분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여기까지 말씀 듣겠습니다.

이무호> 예 감사합니다.

■김호준> 온고지신이라는 말도 다시 한 번 새기게 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설날 특집 뉴스 파노라마 마칩니다. 지금까지 김호준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방송사의 수 많은 사극 타이틀은 이무호 선생의 손을 거쳤다.
방송사의 수 많은 사극 타이틀은 이무호 선생의 손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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