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성 관련 사진 / 김선권 여행작가 제공
자금성 관련 사진 / 김선권 여행작가 제공

□ 출연 : 김선권 여행작가

□ 진행 : 연현철 기자 

□ 2024년 1월 25일 목요일 오전 8시 30분 '충북저널967' (청주FM 96.7MHz 충주FM 106.7MHz) 

□ 코너명 : 여행스케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방송 다시 듣기는 BBS청주불교방송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습니다) 

* 본 인터뷰 내용을 기사에 인용하거나 방송에 사용시 청주BBS '충북저널967' 프로그램명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연현철 : 국내외 곳곳의 여행지를 소개하는 코너죠. ‘여행 스케치’입니다. 오늘도 여행전문가 김선권 작가 전화 연결했습니다. 작가님 나와계시죠? 안녕하십니까.

▶김선권 : 안녕하세요. ‘여행 그려주는 남자, 김선권’입니다.

▷연현철 : 오늘은 어떤 이야기 해주실지요?

▶김선권 : 2주에 끝내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3주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연현철 : 오히려 좋습니다. 작가님.

▶김선권 : 이번 주에 자금성 이야기를 마치고 다음 주에는 고북수진과 만리장성으로 가보겠습니다. 오늘은 황후의 침전 교태전 뒤에 자리한 내정의 마지막 궁전 곤녕궁에서 시작하겠습니다. 곤녕궁에는 아주 특별한 장소가 있습니다. 무려 2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까마귀들에게 먹이를 주던 공간이 있습니다.

▷연현철 : 2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궁궐 안에서 까마귀에게 먹이를 주었다고요? 

▶김선권 : 네. 이는 청나라의 첫 번째 황제인 누르하치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만주족을 통일하고 나아가 중국을 지배했던 청태조 누르하치는 본래 명나라 장수였습니다. 그의 임무는 동족인 여진족을 토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명나라 군대에서 복무하던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명나라군의 실수로 죽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후, 홍타이지는 명나라 군사들이 진실을 덮기 위해 자신도 죽일 거라는 확신이 들어서 서둘러 그곳에서 도망쳤으나, 곧 많은 명나라 군사들이 추격했다고 합니다. 도망치다 지친 나머지 갈대 습지의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가 잠이 들었는데 명나라 군사들이 갈대 습지에 왔을 때, 그들은 나무에서, 많은 까마귀를 발견했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속설 까마귀가 있는 곳에 사람들이 가지 않았다는 말에 근거해서, 명나라 군사들은 나무 아래에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곳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까마귀들이 누르하치의 목숨을 구한 셈이 되었습니다. 

▷연현철 : 그래서요. 그런 기묘한 사연이 있었네요.

자금성 관련 사진 / 김선권 여행작가 제공
자금성 관련 사진 / 김선권 여행작가 제공

▶김선권 : 누르하치가 청나라의 황제가 된 다음에, 그의 목숨을 구해준 것에 감사하기 위해 까마귀를 신성한 새로 숭배하고, 까마귀가 그들에게 행운을 가져다주고 재앙으로부터 멀리하도록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까마귀들은 여전히 매일 저녁 자금성 위를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요즘은 까마귀들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들이 없지만, 그들은 여전히 습관적으로 자금성으로 날아와 저녁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연현철 : 작가님께서 여행하셨을 때도, 자금성에서 실제로 까마귀를 보셨나요?

▶김선권 : 그럼요. 사진도 찍어왔습니다.
 
▷연현철 : 알겠습니다. 사진 한 번 보고요. 까마귀는 보통 흉조로 여기지 않나요? 그런데 흉조와 길조는 상황과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듯합니다.

▶김선권 : 맞습니다. 보통 까마귀를 흉조로 생각하는데,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과연 까마귀가 정말 흉조였을까 하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까마귀가 흉조라는 인식이 생긴 것은 일제 강점기 이후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앵커님, 혹시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사자성어 들어보셨는지요?

▷연현철 : 그럼요. 까마귀의 효심과 관련된 사자성어로 알고 있습니다.

▶김선권 : 네 맞습니다.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효(孝)의 뜻으로, 자식이 자란 후에 어버이의 은혜를 갚는 효성을 이르는 말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까마귀가 흉조였을 리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게다가 고구려의 국조(國鳥)는 삼족오(三足烏)라는 다리가 세 개 달린 '까마귀'였습니다.

▷연현철 : 생각해 보니 그렇습니다. 흉조에게 효심이라는 멋진 수식어구를 입힐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금성 관련 사진 / 김선권 여행작가 제공
자금성 관련 사진 / 김선권 여행작가 제공

▶김선권 : 그렇죠. 일본에서는 분명히 흉조였던 것 같은데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흉조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황실의 가족의 휴식처인 어화원으로 가보겠습니다. 곤녕궁 바로 뒤에 있는데요. 이곳부터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암살자를 막기 위해서 외조와 내정을 거쳐 오면서 나무 한 그루 볼 수 없는 자금성이지만, 이곳에는 수백 그루의 나무와 중국 각지에서 가져온 기암괴석과 수석들이 있습니다. 어화원에 들어서면 정면에 멋들어진 자태를 뽐내는 연리지가 있고 그 뒤로 청동 향로가 있는데,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어서인지, 사람들의 손길에 닳고 닳아 반들반들합니다.

▷연현철 : 이 향로에 수많은 사람들의 소망이 담겨있겠지요.

자금성 관련 사진 / 김선권 여행작가 제공
자금성 관련 사진 / 김선권 여행작가 제공

▶김선권 : 여러 전각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데 가장 주목을 받는 곳은 퇴수산입니다. 퇴수산은 중국 전역에서 수집한 수석을 모아서 인공적으로 만든 산으로 도교에서 신선이 살고 있는 산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퇴수산 정상에 어경정이란 정자를 앉혔는데, 어경정에서는 높디높은 궁궐의 담장 넘어 궐 밖 세상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한 번 들어오면 죽어서야 나갈 수 있다는 황실의 여인들에게는 커다란 위로가 되었던 장소라고 합니다.

▷연현철 : 궁궐 여인들에게는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느끼는 곳이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겠습니다.

▶김선권 : 다 왔습니다. 어화원에서 나오면 자금성의 북문 신무문에 다다릅니다. 신무문은 명 왕조와 청 왕조의 마지막을 함께 한 문입니다. 1644년 명의 마지막 황제인 17대 숭정제는 이자성의 반란군이 베이징을 점령하자 신무문으로 탈출해서 경산 비탈길 아래 회나무에서 목을 매 생을 달리했습니다. 지금도 자금성의 북문 뒤 경산공원에는 숭정제와 관련된 그 나무에 2대째 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연현철 : 그런 비극적인 현장도 관광 자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는 합니다.

▶김선권 : 그리고 1924년 청의 마지막 황제였던 12대 선통제 푸이는 신무문을 통해 자금성에서 추방당했습니다. 푸이의 일대기는 아주 오래전에 ‘마지막 황제’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푸이는 3살에 황제의 올랐는데 그의 기구한 삶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 즉위식에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푸이가 울자 섭정왕인 순친왕은 “울지 마세요, 곧 끝납니다.”라고 달랬는데 이는 “청나라가 곧 끝난다.”라는 발음과 비슷해 대신들은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3년 후, 그 말이 현실이 되어 청나라는 쑨원의 신해혁명으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자금성 관련 사진 / 김선권 여행작가 제공
자금성 관련 사진 / 김선권 여행작가 제공

▷연현철 : 신무문이 비극적 역사의 증인이 되었네요.

▶김선권 : 네. 그런 셈입니다. 북문인 신무문을 통해 자금성 밖으로 나왔지만, 보통 발걸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신무문 뒤 경산공원까지 이어집니다. 경산공원은 배산임수 풍수지리를 맞추기 위해서 산을 일부러 만든 인공산입니다. 그런데 경산공원까지 이어지는 이유는 경산공원 자체를 즐기기 위함보다는 경산 정상에서 보이는 풍경 때문입니다. 경산은 50m가 채 안 되는 야트막한 언덕에 불과하지만, 산이 없는 평지 도시 북경이기에 이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꽤 좋습니다. 신무문에서 천안문까지 황금 기와의 물결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연현철 : 50m가 채 안 되는 야트막한 언덕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게 인공산이라면서요. 그러면 이것도 어마어마한 규모일 겁니다. 

▶김선권 : 네. 만들었으면 그렇죠.

▷연현철 : 알겠습니다. 작가님 저희가 3주 동안 이렇게 자금성에 대해서 살펴봤는데요. 다음 주에는 고북수진, 만리장성 여행 떠나보는 준비 시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작가님 오늘 말씀은 여기서 줄이고요. 저희 다음 주에 다시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선권 : 네 고맙습니다.

▷연현철 : 지금까지 여행 전문가 김선권 작가와 여러분 함께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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