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김봉래 BBS 전법후원국장

출연 : 남동신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방송 : 2023년 9월 17일(일요일) 저녁 6시 20분(BBS 라디오)

 

 

김봉래 : 우리 사회의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입니다.

뜨거운 여름을 뒤로 하고 조금은 서늘한 가을로 접어들었습니다. 뭔가 청량한 분위기가 세상을 시원하게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게 합니다.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여전히 안심입명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불교적으로는 올바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덜 갖췄기 때문에 그렇다 이렇게 진단할 수 있겠는데요, 무엇보다 서로 의존된 존재라고 하는 연기적 사유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상생의 가치를 우리가 다시한번 돌아볼 때입니다. 그래서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일심 화쟁 사상으로 세상의 안락을 위해서 일관했던 분이시죠. 원효스님의 핵심 사상을 돌아보는 시간 갖고자 합니다. 그래서 오늘 서울대 국사학과 남동신 교수님 모시고 말씀 나누겠습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김봉래 : 네.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 이 시간에 서울대 국사학과 남동신 교수를 모셨습니다.  남동신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남동신 : 네. 안녕하십니까.

 

김봉래 : 네 반갑습니다. 오늘 교수님 모신 것은 원효 전공자로서 모시게 됐는데, 지난해 <원효의 발견>이라고 하는 책을 내셔가지고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되셨거든요. 먼저 축하를 드립니다.

 

남동신 : 감사합니다.

 

김봉래 : 자. 우리 BBS 뉴스와 사람들 청취자분들께 인사 말씀 주시고 시작을 할까요.

 

남동신 :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방금 소개받은 서울대 국사학과의 남동신입니다. 귀한 자리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봉래 : 제가 지금 <원효회의 발견> 이 책을 지금 스튜디오에도 갖고 나와 있는데 잠시 후에 집중적으로 여쭤보겠습니다. 우선 어떻게 원효 관련 전공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남동신 : 본격적으로는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 지도교수 선생님께서 한국불교사를 권유하시고 그 다음에 논문을 쓸 때 연구 주제로 원효를 한번 해보라고 권유하셔서 그게 인연이 되었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그렇게 해서 원효 관련으로 박사까지 하시고 지금은 역시 고대·중세 불교사를 주로 연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우리 역사에서, 특히 한국불교사에서 원효라고 하는 인물처럼 논란이 되는 인물도 드물 것 같아요. 원효 성사, 원효 대사 이런 이야기도 있고, 또 한편에서는 소성거사 이렇게 굉장히 대비가 되거든요. 파계를 했느니 마느니 뭐 그런 얘기부터 어떻게 보면 한국불교사에서 새벽 별과 같은 그런 지남의 역할을 하는 인물인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마는 여전히 다양한 평가가 있는 것 같아요. 아무튼 교수님께서 이렇게 학계에서 또 불교계에서 이렇게 원효에 대한 오해도 많다고 보시고 그런 것들을 좀 이렇게 교정하는 그런 노력을 해오신 것 같아요.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특히 원효가 환속한 이후 거사로서의 삶을 더욱 부각시킨 그런 부분인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남동신 : 네. 저는 역사학자이기 때문에 그 사상과 그 사상이 배태된 시대 혹은 사회를 배경으로 해서 연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원효 하면 화쟁 사상을 많이 얘기를 하는데, 화쟁 자체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많이 언급이 됐었습니다. 제가 궁금했던 것은 이 화쟁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게 다 좋은 말이거든요. 싸우지 말고 화해하라는 것이니까. 답이 뻔한 것인데 왜 원효가 화쟁을 그토록 강조했는가, 거기에 제가 의문이 들었고.

 

김봉래 : 그러니까 역사적 사회적 배경들이요.

 

남동신 : 네. 그것은 오히려 그의 시대가 갈등의 시대였다라고 하는 것을 역설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면 무엇이 갈등했는가를 찾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주목한 것이 삼장법사 현장이 인도에서 귀국하면서부터 시작된 신역불교와 구역불교 사이의 대립과 갈등, 이것을 원효는 화쟁시키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원효의 화쟁이 갖는 역사적 의의가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김봉래 : 그래요. 그런데 그렇게 되다 보면 신라라고 하는 그 환경 자체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어떤 나눔의 갈등의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이것이 조화로울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맞닿아 있다 이렇게 봐도 되겠네요.

 

남동신 : 그렇습니다. 결국은 삼국 간의 통일 전쟁이 가장 치열했던 시대에 사는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하면 이런 갈등을 극복하고 공존할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한 고민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지식인으로서는. 원효는 그것을 불교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이 <원효의 발견> 제1장에서 보면 교수님께서 이렇게 지적을 하고 계시거든요. “해방 이래 학자들의 원효 인식이 육당과 춘원이 그려놓은 틀 안에 머무르고 있다. 그래서 지난 100년간의 연구 성과를 개관할 때 거사로서의 원효상은 거의 조명받지 못했다” 이렇게 지적하고 계시거든요.

 

남동신 : 육당 최남선은 원효의 사상이 통불교라고 하는 것을 처음 주장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최남선의 주장이 지금까지도 불교 지식인들 상당수한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춘원 이광수는 다들 읽어보셨겠지만 <원효대사>라고 하는 소설을 통해서 원효의 삶, 특히 요석공주와의 에피소드를 아주 극적인 소설로 묘사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원효라는 말을 들었을 때 즉자적으로 떠오르는 어떤 이미지, 그것은 사실 육당과 최남선이 그려놓은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한국의 교양인들 대다수는 그 두 사람이 그려놓은 인식을 갖고 있는데, 공통점이 뭐냐 하면 앞서도 사회자께서 원효스님이라고 했듯이 원효를 승려로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효는 사실 40대 중반 늦어도 후반 무렵에는 환속했습니다. 속인으로 되돌아가서 이후 20여 년의 삶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저작이라든가 행적은 그 인생의 후반부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원효를 승려라고 전제하게 되면 원효의 사상과 행적을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거사라는 관점에서 놓고 책과 원효의 행적을 새롭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저의 문제의식이었습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그런 면에서 서당화상이죠. 그런 면이고, 원효 그러면 그건 사실은 스님으로서의 호칭은 사실은 아닌 게 되는가 보죠. 그러면.

 

남동신 : 그런데 원효는 출가했을 때 출가자로서 자기가 스스로 붙인 이름입니다. 그런데 나중에도 그냥 그렇게 부르는데, 원효가 환속했기 때문에 엄밀하게 얘기하면 교단에서 파문당한 겁니다. 원효는. 그런데 120여 년 정도 흐른 후에 그의 손자가 원효를 위한 추모 사업을 일으키면서 경주 고선사에 처음으로 비석을 세웠습니다. 그것이 유명한 고선사 서당화상비라고 하는 것인데 그 비를 읽어보면 원효는 스님이면서 환속한 거사라고 하는 두 가지 이미지를 다 현창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그 비문에서는 그렇군요. 서당화상이라고 부르면서도 스님이라고 부르면서도.

 

남동신 : 또 거사라고도 했습니다.

 

김봉래 : 그래요. 그런데 어쨌든 원효 사상의 핵심이 뭐냐 이렇게 얘기할 때 보통 일심(一心), 무애(無碍), 화쟁(和諍) 이렇게 셋으로 정의를 하거든요. 그런데 이게 교수님만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그런 것 같아요. 그것은 거의 정답입니까.

 

남동신 : 기존의 선배학자들은 이 셋을 주목하기는 했지만 그 중에서 어느 특정한 것 하나를 특히 강조를 하셨죠. 어떤 분은 일심사상 어떤 분은 화쟁사상 어떤 분은 중생제도행 이런 걸 특히 강조하셨는데, 저는 이 세 개를 묶어서 유기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봉래 : 네 그러면 그 세 가지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이 됩니까.

 

남동신 : 일심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말로 한마음인데 하나의 마음이라는 뜻도 있지만 ‘한’에는 ‘크다’는 뜻도 있습니다. 큰마음 혹은 같은 마음이라는 뜻인데, 이 단어는 원효 세계관을 반영하는 단어입니다. 이 우주 만물의 궁극적 근원이 일심이라는 거죠. 원효에 의하면. 비교하자면 유교나 도교에서는 도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주 만물의 궁극적 근원은 도인데, 도가 있다는 사람이 공자고 도는 없다라고 하는 게 노자 아닙니까. 그런데 불교에서 특히 원효는 거기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일심이라고 하는 단어를 정립한 겁니다. 그 다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심은 모든 사람들이 똑같다는 겁니다. 마음이. 그러니까 굉장히 평등한 인간관을 담고 있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자 평등한 인간관을 담고 있는 개념이 일심입니다. 이게 원효 철학의 출발점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그 위에서 화쟁이 가능한 겁니다.

 

김봉래 : 아. 일심 위에서 화쟁이 가능하다.

 

남동신 : 네. 모두가 평등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래서 대승불교에서 다양한 사상가들이 나와서 교리 논쟁을 벌였지만 그것을 근본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바라보면 결국은 부처님의 뜻은 같다. 중생을 제도하려고 하는 관점에서 서로 다른 방편을 제시한 것이지 그것이 근본적으로 다른 건 아니다.

 

김봉래 : 응병여약식으로 병에 따라서 약을 줬기 때문에.

 

남동신 : 왜 화쟁이, 그것이 성립할 수 있느냐. 모든 인간은 평등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쟁시키려고 한 것이고, 이 화쟁을 바탕으로 해서 원효는 행동으로 옮긴 겁니다. 실천한 것이죠. 왜냐하면 자기보다 약한 존재들, 종교적인 약자들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구원하려고 한 것이 바로 무애행이라고 하는 것, 그 무애라고 하는 단어도 차별이 없다는 뜻이거든요.

 

김봉래 : 네. 걸림이 없다. 차별이 없다. 그렇게 해서 사실은.

 

남동신 : 네 세 가지 개념이 서로 유기적으로 통일되는 개념들이다.

 

김봉래 : 그런데 교수님 책을 보면 이러한 위 세 가지 개념, 일심·화쟁·무애 개념을 중심으로 원효 사상을 고찰하되 그 불교사적 의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세 가지 관념에 유념하셨다 이렇게 돼 있거든요. 그거는 또 무슨 말씀입니까.

 

남동신 : 그것이 이제 훨씬 더 이게 깊어지는 이야기기고 애청자분들이 들으시면 좀 어려워지는 얘기일 수 있는데요, 일심이라고 하는 이 단어를 철학적으로 깊이 있게 분석한 겁니다. 원효가. 그런데 이게 왜 중요하냐면 원효 이후 그 다음 단계로 가면 불교가 실천불교로 넘어갑니다. 정토신앙이라든가 선종이라든가. 그러니까 일심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연구하는 단계가 교종이고, 그 교종을 완성시키는 데 기여한 사람이 원효의 일심 사상이고, 그 다음 단계가 되면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 남은 겁니다. 일심이 그런 것이고. 화쟁이라고 하는 것은 원효의 동시대 중국 고승들은 종파나 학파가 등장하면서 자기파가 다른 파보다 우월하고 정통에 있다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리 간의 논쟁이 발생하는 것인데, 원효는 그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오히려 화쟁을 주장한 것입니다. 이래서 원효가 대승철학의 어떤 교리적인 논쟁을 화해시킴으로써 원효의 사상이 인도나 중국이나 일본으로 전해지면서 동아시아 불교 교학이 완성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 것이고, 원효의 결정적인 기여는 역시 무애행을 실행에 옮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철학적으로 얘기하면 승속불이, 출가자와 재가자가 둘이 아닌 ‘거사불교’, 제가 이렇게 이름을 붙였는데, 그러한 거사불교를 실행에 옮긴 것이고, 이 원효의 거사불교가 고려시대까지도 지속됩니다.

 

김봉래 : 그래요. 어떻게 보면 비승비속이에요. 그렇군요.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서울대 국사학과 남동신 교수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교수님 보니까 말이죠, 원효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데, 원효스님이 특히 <대승기신론>을 중시한 것으로 되어 있거든요. 그게 어떤 의미를 지닙니까.

 

남동신 : 대승기신론은 많은 불자분들이 읽어보셨을 겁니다. 대승불교의 최고의 개론서이자 입문서입니다. 방대한 대승 철학을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정리한 책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승기신론은 굉장히 중요한데, 유감스럽게도 대승기신론이 6세기 중국에서 처음 출현했을 때 그 문헌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원래는 이 문헌은 인도에서 찬술해서 중국에서 번역했다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사실 인도에는 여기에 대응하는 문헌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용을 읽어보면 중국적인 색채가 아주 강합니다. 그래서 동시대 승려들이 대승불교[대승기신론]에 대해서 이게 위서가 아닌가 의심들을 많이 해서 사실 외면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원효가 처음으로 동아시아 불교사회에서는 본격적으로 대승불교[대승기신론]의 권위를 인정하고 철학적으로 깊이 연구한 최초의 인물입니다. 또 원효가 그 일을 해줬기 때문에 그 다음 세대들은 아무런 부담감 없이 후속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이 중국 화엄종의 법장이라고 하는 사람인데, 법장은 동아시아 불교 교학을 완성시킨 사람, 집대성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 법장의 대승기신론에 관한 주석서는 원효의 주석서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김보래 : 네. 크게 의지하고 있죠. 그런데 이 원효 사상의 형성 배경으로 신라 초기 불교사를 여래장 사상으로 정리해 두고자 한다 이런 말씀도 하고 계신데, 이런 것과 연관이 있는 건지요.

 

남동신 : 그렇습니다. 대승기신론의 사상을 굳이 분류한다면 여래장 사상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여래장 사상이 원효 앞선 세대부터 신라 불교에서 연구가 되고 원효가 출가해서 그러한 사상을 접했기 때문에 나중에 현장이 주장한 유식사상과의 화해, 화쟁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경전적 근거가 바로 대승기신론이었던 겁니다.

 

김봉래 : 저희는 읽어봐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어쨌든 그 때 당시에 동아시아의 중국의 현장스님 중심의 큰 흐름이 있었다면 그것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 원효스님이었다 이렇게 주장을 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뭐 <판비량론>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통해서 굉장히 독특하게 어떤 그런 걸 주창했다 이런 주장도 있더라고요.

 

남동신 : 원효가 억지 주장을 한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 굉장히 논리적인 글을 통해서 주장하는 것인데, 대표적인 경우가 현장이 새로 인도에서 도입한 논리가 있습니다. 인명론이라고 하는 것인데, 현장이 인도의 논리를 오해했다라고 하는 것을 처음 문제제기한 사람이 원효입니다. 그만큼 원효가 논리학에도 굉장히 깊은 식견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원효의 사상이나 주장이 매우 불교적인 논리 위에서 전개되는 것을 반영하는 겁니다.

 

김봉래 : 원효 사상의 역사적 평가의 문제를 두고 또 남한과 북한 학계에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앞으로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입장도 밝히신 것 같아요.

 

남동신 : 사실 역사적 평가는 체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북한은 사적유물론을 중시하고 유물론에서는 불교와 같은 유심론을 굉장히 비판적으로 평가합니다. 따라서 그런 이견을 해소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그렇기 때문에 그럴수록 남한과 북한 학계가 작은 지점에서부터 출발해서 서로 공감대를 확대해가면서 그런 이견을 해소하는 쪽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봉래 : 네. 교수님께서 불교는 유심론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렇게 얘기를 했지만 사실은 물과 심을 넘어선 어떤 그런 심 아니겠습니까. 마음이라는 것이. 자칫 오해하면 관념론처럼 돼버리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거든요. 그런 면에서 우리가 원효 사상의 핵심을 어떻게 오늘날 계승하면서 살아가야 할지 이것이 과제 아니겠습니까.

 

남동신 : 그렇습니다. 아주 어려운 질문인데요, 예컨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세 가지 개념이 있는데, 그 중에서 화쟁이라고 하는 것을 예로 든다면 화쟁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원효의 불교 행위에서 화쟁 자체가 최종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제 생각에 그것은 하나의 태도 혹은 방법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원효가 그것을 알기 쉽게 비유를 들었는데, 장님하고 코끼리의 관계입니다. 장님들이 길을 가다가 코끼리를 만났습니다. 어떤 장님은 코끼리의 귀를 만져봤죠. 만져보니까 이게 얇고 널찍해서 부채처럼 생긴 겁니다. 아 코끼리는 부채와 같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코를 만진 겁니다. 길쭉하고 그죠. 아 이것은 뱀과 같구나. 그렇게 얘기했더니 또 다른 사람은 내가 보니까 아니다. 이 사람은 다리를 만진 겁니다. 이것은 집안에 있는 나무 기둥과 같다. 세 사람이 다 코끼리에 대해서 얘기했지만 정답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세 사람이 틀린 얘기를 했냐고 하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코끼리의 한 부분을 이야기한 거죠.

 

김봉래 : 부분적인 인식이었죠.

 

남동신 : 원효의 태도가 화쟁이라고 하는 태도가 바로 우리가 주장하는 것들이 각자 다르지만그 다른 것은 다 진리의 일면을 담고 있다. 그러니까 오늘날에 있어서 한국 사회가 굉장히 복잡해지고 다원화되면서 갈등이 심해졌지 않습니까. 그럼 우리가 이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이냐 고민하게 되는데, 여기서 원효라면 상대방의 주장을 존중하라는 거죠. 나와 생각이 다를 뿐이지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을 전제로 하고 각자 주장들을 아우르는 최대공약수라고 할까요,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진리를 찾아가자는 거죠. 저는 이런 원효의 화쟁주의적인 태도, 방법론 이것이 오늘날 절실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봉래 : 원효 그러면 굉장히 거사적인 입장을 아까 강조하신다고 그랬는데, 종단적인 입장에서는 출가자의 상이 또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그런 것들이 어떻게 잘 조화가 되는가. 종단이라는 것이 출가와 재가의 화합된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도 이제 숙제가 될 텐데, 앞으로 원효 관련해서 어떤 부분들이 더 연구가 많이 돼야 될까요.

 

남동신 : 승려로서의 연구는 많이 됐는데 상대적으로 연구가 안 된 부분이 원효의 거사불교, 이것이 연구가 안 됐기 때문에 제가 그것을 좀 더 연구하자는 것입니다. 둘 중에 하나를 택하자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제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승속불이의 거사불교’라고 제가 이름을 한 것입니다.

 

김봉래 : 그래요. 요즘 세계적인 경향이 어떻게 보면 무조건적인 권위 이런 것은 인정하지 않는 그런 시대가 됐고 그런 면에서 어떻게 보면 불교의 연기 사상이든 아니면 무아 사상이든 이런 것들이 각광받는 시대가 됐거든요. 그래서 지금 서구에서도 특히 명상이 중심이 되는 그런 불교가 각광을 받고 있는데, 그런 것들도 굉장히 우리한테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한국불교에서는 젊은이들에게 전법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과제거든요. 교수님께서도 학교 현장에서 대학생 또 대학원생들과 함께 생활하고 계신데, 어떻게 소통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남동신 : 저는 교육자로서 제 가장 큰 사명은 학문 후속세대를 양성하는 데 있습니다. 사실은요. 저희로서는 왜냐하면 저희가 그 역할을 해주지 않으면 대가 끊기기 때문에 명상이라든가 사회적 활동 이런 것은 사실 저로서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아니고요, 공부하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목적인데, 공부 중에서도 저희는 학문의 기초를 튼튼하게 다지는 데 저는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수업은 대부분 한문으로 된 불전, 그 원전을 해독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을 기르는 것에 1차적인 목적이 있고요. 그 다음에 2000년대 들어와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서 지금은 비디오 시대지 않습니까.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에, 문자만이 아니고, 시각적인 자료들, 그림이라든가 뭐 조각이라든가 건축, 이런 시각적인 자료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겸하도록 제가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분은 제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인접 분야의 수업을 많이 듣도록 하고, 제가 하는 일은 현장 답사를 많이 갑니다. 그래서 새벽예불에도 많이 가고요. 직접 학생들로 하여금 현장을 경험하게 하는 것, 그 경험을 통해서 원전을 독창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원효 사상이 앞으로 우리 현대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까 기대가 많이 되는 건데요. 외국의 학계의 연구 동향이나 이런 것들도 보면 우리한테 시사하는 바도 좀 많지 않을까요. 어떻습니까.

 

남동신 : 그렇습니다. 많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방법론이 다르기 때문에 외국 학자들하고의 소통을 통해서 우리의 보안 미비한 점을 보완할 수가 있습니다.

 

김봉래 : 예를 들어서 어떤 것들이 좀 있을까요.

 

남동신 : 우리는 우리 것이니까 애정을 가지고 깊이 있게 연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민족주의적인 것을 탈피하기가 어렵고요. 그런데 외국 학자들 같은 경우, 예컨대 미국 학자들은 미국에서 활동해야 되고,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해야 되고, 미국에서 연구비를 받아야 되기 때문에 미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한국불교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랑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고 방법론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쪽 미국 같은 경우는 예컨대 개념 하나를 가지고 전체를 관통하는 그런 연구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불교사 전체를 종으로 횡으로 하나의 개념으로 이렇게 관통하면서 한국적인 특성이 어떤 거냐, 그래야만 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해서 미국이 정책을, 한반도 정책을 입안하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그런 연구를 하는 거죠. 그러니까 한국을 위한 연구는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차이점을 우리가 인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방법론 자체가 우리한테도 시사하는 바도 있고. 우리가 너무 미시적이고 좁은 안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거시적인 시야에서 접근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아니 지금 우리나라가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과제 중에 하나가 통일이라고 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 그런 면에서는 문화적인 통일 또 사상적·철학적인 공감대 형성이 굉장히 중요하고, 그런 면에서 어떻게 보면 굉장히 불교가 주목받는 그런 종교인데, 그런 역할을 학교, 종립학교 또 종단 또 이런 불교방송 같은 매체에서 같이 이렇게 좀 지혜를 모았으면 좋겠는데, 학교 현장에 계신 교수님으로서 어떤 제안을 하실 수 있을지요.

 

남동신 : 제가 지금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개성에 있는 영통사를 제가 못 가본 것입니다.

 

김봉래 : 예. 저는 가봤습니다.

 

남동신 : 아. 그러시군요. 부럽습니다. 저는 개성 관광 마지막에 한번 개성 시내만 가봤고 기회가 많을 줄 알고 영통사를 못 가봐서 늘 아쉬운데, 저는 영통사 복원 자체는 굉장히 서둘러서 좀 아쉬운 점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남북의 어떤 화해와 교류라고 하는 큰 현안에 있어서 불교가 기여한 것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불교는 비정치적인, 다소 정치적인 논쟁에서는 이렇게 한 걸음 물러나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오히려 불교가 그런 남북한의 긴장 관계를 좀 완화시키고 교류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서로를 이해하는 데 기여하는 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시급한 게 남한이나 북한이나 너무나 급변하기 때문에 지금 남아 있는 불교 유산들이 시시각각 지금 사라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불교계 쪽에서 늘 이 부분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보존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하고 저도 기회가 닿으면 그런 쪽에서 좀 기여를 하고 싶습니다.

 

김봉래 : 어쨌든 이제 우리가 K-컬처를 비롯해서 세계 속의 한국, 대한민국으로서 정말 세상을 이렇게 조화시키고 화해시키는 데 그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틀림이 없는데 그 속에서 좀 더 우리 한국불교가 역할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으로 듣겠습니다. 자. 이렇게 하다 보니까 시간이 마무리될 시간인데요, 우리 남동신 교수님의 원력 또 향후 계획 듣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쳐야 될 것 같습니다.

 

남동신 : 저는 사실 그동안 연구 성과를 개별 논문으로 발표하는 데 좀 집중하다 보니까 저술 간행이 좀 늦었습니다. 그래서 <원효의 발견>이 비교적 늦게 나온 편입니다. 저도 정년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남은 기간 동안에는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좀 정리해서 책으로 내는 데 집중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지금 집필하고 있는 책은 삼국유사에 관한 것이고요. 1~ 2년 내에 집필을 끝내면 그 다음 세 번째 책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불국사와 석굴암 관한 단행본을 집필할 예정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위대한 사상가, 그 다음에 불교 문헌, 불교 사원, 이 3부작을 완성시키는 것이 현재 가장 큰 계획이고요. 원력이라고 한다면, 공부하다 보면 아무래도 불교와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비판을 해야 되기 때문에. 그러다 보니까 불교의 핵심을 내가 모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최근 들어서는 가능하면 불교를 체험하는 데 좀 시간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새벽 예불을 간다든가 해서 불교를 직접, 신앙이라고 하는 것을 좀 체험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원력인데요. 저의 소박한 지금 소원은 제가 직접 목탁 치면서 독경하는 겁니다. 그거 정말 해보고 싶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당장 하실 수 있도록 기원하겠습니다.

 

남동신 :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김봉래 : 네. 오늘 바쁘신 와중에 시간 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남동신 : 네 고맙습니다. 성불하십시오.

 

김봉래 : 지금까지 서울대 국사학과 남동신 교수님과 함께 했습니다.

 

김봉래: : 네. 여러분 남동신 교수님과 함께한 오늘 이 시간은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교수님께서는 원효 이야기를 해 주시면서 승려로서의 측면뿐 아니라 거사로서의 측면 역시 더 연구되어야 한다는 말씀 주셨습니다. 결국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평등한 시각을 열어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곧 불교의 지혜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불교방송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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