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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김봉래 BBS 전법후원국장

출연 :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보일스님

방송 : 2023년 8월 27일(일요일) 저녁 6시 20분(BBS 라디오)

 

 

김봉래 : 우리 사회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입니다. 우리 인류는 수만 년 역사를 통해서 문명을 일구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 속에서 많은 성과도 이뤘지만 이면에 많은 문제점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세계가 상호 갈등과 다툼이 끊이지 않고 인간 생명의 터전까지 위협하는 기후 문제까지 낳는 것은 우리 인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역시 돌파구는 밖이 아닌 내면의 마음혁명에서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많은데요, 결국은 수행의 문제와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원효의 열반관으로 본 포스트 휴머니즘의 탈신체성 연구’라는 논문으로 올 여름 학기 서울대 철학과 박사학위를 받은 분이시죠.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보일스님 모시고 말씀 나누겠습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김봉래 : 앞서 소개해드린 대로 BBS 뉴스와 사람들 이 시간에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으로 계신 보일스님을 모셨습니다. 보일스님 안녕하세요.

 

보일스님 : 네. 안녕하세요.

 

김봉래 : 네 스님. 얼마 전에도 스님 모시고 방송을 했었는데 오늘 또 모시게 됐습니다. 너무 반갑고요. 스님. 축하드릴 일이 있으시더라고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셨는데 BBS 청취자들께 먼저 인사 말씀 주시고 시작하겠습니다.

 

보일스님 : 네. 반갑습니다. 보일입니다. 이렇게 좋은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굉장히 감사하고요 또 개인적으로 작은 성취가 있었는데 잊지 않고 이렇게 인연 내서 이렇게 다시 초대해 주셔서 더욱더 감사드립니다.

 

김봉래 : 네. 그렇습니다. 박사학위 논문 다시한번 축하를 드리는데요,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고생도 좀 많으셨을 것 같아요. 소회는 어떠신지요.

 

보일스님 : 걱정도 많고 우려도 많았는데 많은 도움도 받았고요. 그 와중에 어떻게 무사히 잘 마무리가 돼서 부처님의 가피가 아닌가 싶고요. 또 주변에 여러 스님들 그리고 또 인연된 분들 응원 많이 해주셔서 좋은 마무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뭐 이 자리를 빌려서 어쨌든 모든 인연된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대신 전하고자 합니다.

 

김봉래 : 그렇습니다. 진짜 만사가 다 인연이다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박사 논문 제목이 참 인상적입니다. ‘원효의 열반관으로 본 포스트 휴머니즘의 탈신체성 연구 - 열반종요를 중심으로’ 이렇게 돼 있거든요. 전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먼저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보일스님 : 철학 논문이라서요 여러분들 예상하시다시피 제목만 들어도 좀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지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내용을 구구하게 설명 드리기는 시간이 좀 그런 것 같고요, 제가 익숙한 언어로 간단히 설명을 드리자면 요즘 여러분들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서 많이 듣고 경험하고 계신데, 인공지능이라든지 지금 디지털 대전환 시대라고 흔히 얘기들 하지 않습니까. 이런 속에서 한마디로 제 논문의 어떤 목표라 그럴까요 그것을 요약하자면 인공지능을 필두로 한 최근의 어떤 4차 산업혁명의 다양한 디지털 기술에 있어서 윤리적인 문제들이 지금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의 어떤 데이터 편향성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고요. 이러한 형태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우리 불교의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떤 알고리즘을 구축하는데 응용 내지는 적용할 수 있다라는 것을 논증한 그런 논문입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포스트 휴머니즘 얘기가 논문에도 언급이 되고 트랜스 휴머니즘 얘기도 나오고 하는데, 어쨌든 이런 것들이 현재 인간이 가진 어떤 한계성을 좀 넘어서보자 하는 그런 어떤 시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것이 일반인들에게도 충분히 관심이 갈 만한 대목 아닙니까.

 

보일스님 : 그렇죠. 지금 여러분들 다양한 뉴스들을 통해서 요즘에 접하고 있죠. 폭발적으로 인공지능이 개발이 되고 또 뒤이어서 다양한 형태의 생화학적인 그런 분야에 또 공학적인 분야에 비약적인 혁신들이 지금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그러다 보니까 우리 인간이 기존에 갖고 있던 어떤 물리적, 어떤 정신적 한계들 있지 않습니까. 생물학적 한계들. 예를 들어서 생명의 수명의 문제 그리고 지능의 문제 또 인간 신체 능력의 문제들, 과거에 한계로 지목되어 왔던 다양한 내용들, 인간의 수명을 원하는 대로 극한대로 연장을 시키려는 시도라든지 또 신체 능력을 생명공학 기술을 통해서 극대화시키려는 시도라든지 뭐 다양한 시도들이 있습니다. 최근에 어떤 그런 과학기술 덕분에 인간의 어떤 존재 부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큰 변화, 신체 능력의 변화, 다양한 형태의 변화들이 지금 시도되고 있는 와중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제 더욱더 이대로 좋은가, 이렇게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대로 그냥 내맡겨서 인간이 오래 살면 무조건 좋은 것이고 신체 능력이 강해지면 좋은 것이고 똑똑해지면 무조건 좋은 것인가. 그런데 이 지점 정도가 됐을 때는 철학적인 질문들 또 종교·윤리적인 질문들에 대해서 이러한 연구들을 하거나 이러한 시도들을 하는 다양한 비즈니스적인 시도가 됐든 학술적 시도가 됐든 다양한 윤리적 질문들에 대답을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질문을 안 던진다는 거죠. 그냥 이런 과학기술이나 첨단 기술, 이런 어떤 결과들 성취에만 지금 우리가 환호할 줄만 알지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이게 지금 우리 인간을 변화시키고 있고 또 인간의 어떤 그런 존재 이런 부분들을 근본적인 것들을 변화시키고 있는데 우리가 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윤리적 성찰의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지, 또 그런 부분들이 필요하다는 어떤 주장인 거죠.

 

김봉래 : 스님 논문에서도 보면 신체에 대한 트랜스 휴머니즘 또 포스트 휴머니즘의 관점도 얘기되지만 이러한 불교와 불교 트랜스 휴머니즘의 간극 이런 얘기도 하거든요. 결국은 스님 말씀하셨던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 또 인간의 어떤 궁극적인 목적, 열반을 어떻게 보느냐 이런 부분에서 결국은 종교 윤리 문제하고 이런 인공지능의 발전하고 이게 연관이 안 될 수가 없는데, 이 양자가 어떻게 이렇게 조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비판적인 고찰을 하신 것 아닌가, 논문에서,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보일스님 : 일단은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을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우리 인류가 그간에 갖고 있었던 형태의 다양한 자산들, 종교의 어떤 자산들 또 철학적 자산들 다양한 형태의 사유들에 대한 자산들을 가지고 매 단계마다 점검과 검토를 해야 된다고 하는 입장인데요, 지금처럼 거대 자본을 등에 업고 이렇게 국경을 넘는 다국적 기업들이 그냥 이렇게 글로벌 기업이 돼서 막대한 형태의 예산을 쏟아붓고 인간 변형 내지는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그런 목표 하에 이렇게 한 방향으로 폭주 기관차처럼 질주하는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종교적 성찰 내지는 윤리적 성찰들을 좀 해야된다. 그런 입장에서 한번 주장을 전개해 봤습니다.

 

김봉래 : 아 그런데 뭐 반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고 저희들이 볼 때 어떤 기술이든지 이것이 양날의 검이기 때문에 이것의 어떤 활용 문제, 잘 활용하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런 것을 전혀 염려 안 하는 건 또 아니지 않습니까.

 

보일스님 : 그렇죠. 예를 들면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이런 거겠죠. 단순히 인공지능 시대다 또는 인간의 어떤 신체 능력을 강화시키고 변형시키는 부분을 과학기술이 발전함에도 불구하고 반대하거나 아예 그것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입장이라기보다도 이런 거대한 변화의 대세는 거스를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변화에 우리가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개입해서 어떤 불교 윤리적으로 어쨌든 그런 목소리를 높여야 될 필요가 있지 않느냐. 예를 들어서 인공지능 같은 것이 엄청나게 개발이 되고 발전을 해서 소위 말해서 탈신체화된, 그러니까 몸은 없지만 사유, 인간과 비슷한 유사한 또는 인간보다 월등한 형태의 계산 능력과 사유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인공지능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단순히 안 쓰고 배격하고 반대하는 것에 머무는 게 아니고, 그 인공지능이 어쨌든 알고리즘이 구축된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 알고리즘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어떤 데이터 편향성을 갖지 않도록, 어떤 편견을 갖지 않도록 불교 윤리적인 어떤 사유, 붓다의 가르침 이런 내용들을 응용 가능하고 적용 가능한 내용들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한번 적용해 볼 수 있지 않느냐. 그러한 내용들이 무조건적 수용도 아니고 무조건적 반대도 아닌 어떤 중도적 관점에서의 어떤 이 시대 흐름에 순응하지도 거스르지도 않는 중도적 접근이 아닌가. 그렇게 이제 비판적 입장에서 수용한다. 이런 정도로 입장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김봉래 : 스님 말씀 중에 탈신체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말이죠. 이것이 어떻게 보면 종교적으로 볼 때는 불교적으로 볼 때는 해탈 또는 열반하고도 연관지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열반이라는 게 유여열반이 있고 무여열반이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본다면 궁극적으로는 좀 무여열반을 추구해야 될 것 같은데 그런 부분하고도 조금 이게 탈신체성이라는 것 하고가 좀 연결이 되지 않는가 그런 생각이 좀 드네요.

 

보일스님 : 그래서 아마 지금 놀랍게도 최근 서구에서 이런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능력을 변형시키고 향상시킨다, 인간 향상이라는 그런 화두를 갖고 다양한 연구를 전개해 나가는 철학이 이제 포스트 휴머니즘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렇습니다. 과학기술이 굉장히 발전하면서 과거에 인간 지능 프로젝트뿐만이 아니라 최근에 인간 단백질 구조를 분석해낸 알파폴드2가 등장했고요 또 최근에 GPT4가 나오고 해서 인간의 신체 능력도 또는 신체 구조에 대해서도 인공지능으로 분석 또는 역설계가 가능한 세상, 그리고 인간의 두뇌에서만 사유라든지 계산 능력이 지적 능력이 발현될 줄 알았는데 인간 두뇌 밖에서도 기계화된 형태로 그런 어떤 사유·추론을 할 수 있는, 가능해진 그런 세상 속에서 서구의 일군의 과학자 집단들이나 이런 데서는 인간의 신체가 없더라도 신체를 벗어나서 어떤 디지털화된 형태로 인간의 두뇌 정보라든지 신체 정보를 따로 저장도 하고 처리도 하고 뭐 이렇게 운용도 할 수 있다라는 구상을 그런 전망을 실현시키려는 그런 이제 좀 이렇게 전위적인 과학 활동, 연구 활동들을 벌이고 있는 집단도 있고요.

 

김봉래 : 그렇게 되면 사실은 종교의 최종 목적인 불사, 죽지 않음을 달성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디지털 데이터로 계속 살아남으니까요.

 

보일스님 : 그렇죠. 그래서 이 분들이 좀 흥미로운 것은 ‘불교 트랜스 휴머니즘’이라는 또 하나의 사조라 그럴까요 그런 운동도 있습니다. 이 분들이 왜 그러한 어울리지 않을 법한 두 용어가 합쳐졌냐. 그게 보면 이 분들이 생각할 때는 인간 향상, 그러니까 인간이 지금의 모습보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보다 개선되고 향상되고 발전된 모습을 꾀한다는 게 불교에서 평범한 인간이 수행을 통해서 지혜를 개발해가면서 열반에 이르러 가는 인간 향상의 극점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이러한 모습하고 유사하다고 생각을 해서 이 분들이 이제 불교를 자꾸 이렇게 차용하는 과정, 그래서 ‘불교 트랜스 휴머니즘’이라는 용어도 만들고 또 자신들의 어떤 그런 연구의 기반 철학을 불교에 바탕을 두고 이렇게 얘기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김봉래 : 그러니까 불교의 무아 사상하고 연결되어 너무 이렇게 반겨워할 것 같아요.

 

보일스님 : 그런데 이제 제가 생각하는 것은 서구 그러한 형태의 전위적인 과학자들이나 연구자들이 불교에 대해서 자신들의 연구를 어떤 기반하고 토대로 삼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일 수 있겠지만 문제는 개념에 대한 혼용 또는 오해들이 너무나 많다는 거죠. 예를 들면 아까 방금 언급하셨던 열반을 보더라도 불교에서 열반이라는 게 단순히 신체를 넘어서서 불멸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단순히 이 분들은 단지 신체 그러니까 신체적인 고통만 벗어나면, 탈신체가 되면 단순히 이게 궁극적인 형태의 자신들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서 어떤 불멸을 추구하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라는 마인드는 불교에서 얘기하는 형태의 고통의 종식 또는 궁극적인 깨달음 또 자비 이런 개념들하고는 거리가 있다라는 얘기를 이제 통해서 그런데 그런 기준들을 어디서 삼을 것이냐 그렇게 했을 때 저는 이제 원효스님의 열반종요에 나온 열반 사덕 그러니까 열반의 네 가지 속성이라 그럴까요.

 

김봉래 : 상락아정 아닙니까.

 

보일스님 : 상락아정이라는 그런 틀, 이론적 틀만 갖고도 충분히 이런 형태의 어찌 보면 일편향적인, 한 쪽에 치우친 형태의 연구 개발, 오직 탈신체만 되면 마치 이것이 불멸, 영생으로 가는, 어쨌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일 거라고 어떤 오도된 형태의 방향성에 대해서 불교에서 특히 열반사덕을 통해서도 충분히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좀 그 가르침을 줄 수 있고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지 않나 그런 주장을 하는 거죠.

 

김봉래 : 열반경에서 이야기하는 상락아정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기존의 무상, 고, 무아의 초기불교적인 입장과는 다른 어떤 종교적인 이상을 얘기하고 그것이 어떤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실천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에 불생불멸이라는 측면에서는 굉장히 그게 맞아들어가거든요. 그래서 인간의 어떤 불생불멸의 욕구 이것을 또 우리가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이런 어떤 현대 첨단의 노력들이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수행의 목표하고 묘하게 이렇게 좀 궤를 같이하는 부분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것을 스님께서는 반대로 비판적인 도구로 사용하셨거든요.

 

보일스님 : 그러니까 한편으로 우리가 지금 잘 알고 있는 불교에도 다양한 전통들이 존재해 왔고 소위 말해서 한국불교 대승불교의 어떤 가치를 표방하고 있는데, 우리가 원효스님도 마찬가지고요 대부분의 대승경전에서 표방하고 있는 가치는 여러분 다 아시다시피 단순히 불생불멸, 어떤 불멸, 불사 이런 형태의 그런 깨달음, 이런 식으로 초월적이고 신비화된 형태로 어떤 수행의 궁극적 경지를 상정하는 게 아니고요 여러분 다 아시겠지만 일반 불자님들도 대승불교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이상적 인간상은 보살입니다. 보살. 보살이라는 것은 다 아시겠지만 깨달음을 추구하면서도 그 와중에 하화중생 그러니까 중생 구제라는 그런 어떤 목표 전망을 구체화시켜가는 그것을 수행의 목표로 삼는 존재라는 거죠.

 

김봉래 : 아니 물론 그러면서도 무주처열반을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어떻게 보면 영생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보일스님 : 무주처열반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깨달은 보살이 중생 구제를 함에 있어서 어떤 깨달음의 궁극적인 어떤 상태에 머물러서 구제 활동을 벌이는 게 아니라 현실 세계 또는 중생 세계 그 어느 곳이 됐든 간에 그 경계와 차별을 두지 않고 이 신체를 갖고 이 몸, 육신을 가지고 언제 어디서든 출현을 해서 중생 구제를 할 수 있겠다는 한다는 그런 열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 얘기는 뭐냐 하면 그러한 대승보살의 전망, 서원에는 어떤 형태의 몸은 중요한 거죠. 왜냐하면 이 몸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중생들의 구체적인 십바라밀을 행할 수 있는 그 매개체가 되기 때문에, 단순히 육신을 벗어난다든가 탈신체를 한다든가 하는 이것은 하나의 또 다른 형태의 극단적인 견해라고도 볼 수 있는 겁니다.

 

김봉래 : 그렇다면 스님께서도 논문에서 다루셨지만 원효의 열반사덕에 입각한 탈신체화 비판에서 상락아정의 상하고요, 포스트 휴머니즘에서의 불멸 추구, 이것은 분명히 대비가 된다 이런 말씀이신 거죠.

 

보일스님 : 그렇죠. 그러니까 상락아정 자체를 전부 포스트 휴머니즘의, 더 좁혀서 얘기하자면 기술적 포스트 휴머니즘이죠. 그러니까 모든 기술적 포스트 휴머니즘은 포스트 휴머니즘 안에서도 좀 한마디로 극단적인 견해 속하는데요. 그 얘기는 뭐냐 하면 이 분들은 과학기술의 도움을 얻어서 궁극적으로 인간의 육신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정도, 그러니까 완전히 디지털화된 정보 단위로 전환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뭐냐 하면 이 분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야지 인간이 궁극적으로 육체의 고통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이 부분은 우리가 기본적으로도 알고 있다시피 어디 고통이 육신의 고통에서만 비롯되겠습니까. 정신적 고통이라든지 우리가 탐진치라는 게 사실상 모두 우리 정신적 고통에서 번뇌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은 어떻게 우리가 이해해야 될 것이냐가 또 문제가 될 수가 있는데, 이제 그런 일련의 극단적인 형태의 포스트 휴머니즘에 진영에 서 있는 분들이 주장하는 그런 바를 비판적으로 지금 서술한 내용입니다.

 

김봉래 : 네. 자.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보일스님과 말씀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님 요즘 뭐 인공지능 이야기까지 계속 연결이 되는데, 인공지능의 역할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논란이 많습니다. 긍정적인 역할 또 부정적인 역할, 스님께서는 어쨌든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계신 건가요.

 

보일스님 : 예. 그런데 아까 말씀해 주셨지만요 아까 양날의 칼이라는 표현도 쓰셨고 하지만 지금 막상 이제 우리 챗GPT라든지 GPT4가 나오고 다양한 형태의 인공지능이 앞다퉈서 지금 출시가 되고 우리 일상을 파고들고 있는데요, 전제가 있겠죠. 당연히 인공지능이라고 해서 무조건 우리가 반기고 우리 인간한테 도움이 되고 유용한 도구가 될 거라는 그런 주장에는 단지 전제가 필요할 것 같아요. 그 전제라는 게 말 그대로 어떤 윤리적인 그런 부분들이 일단은 충족이 돼야 된다. 그것을 더 구체적으로 얘기 말씀드리자면 아까 잠깐 언급했던 인공지능이 구동하는 데 기본적인 요건이 되는 데이터의 편향성 문제, 예를 들면 지금 우리가 인공지능이 아니어도 정치 권력이나 또 다른 형태의 다양한 형태의 사회 어떤 압력에 의해서 어떤 종교 편향 문제나 이런 것들이 대두될 경우가 많잖아요. 하물며 인공지능 알고리즘 데이터를 구축하는데 특정 종교의 어떤 편향된 알고리즘이 구축되거나 데이터가 구축이 되면 당연히 그 때는 종교 편향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거죠. 다른 윤리적인 부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래서 그러한 형태의 어떤 인공지능의 윤리의 문제, 인공지능 데이터 알고리즘을 편향성 없이 구축하는 데 종교계 철학계, 이건 공학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이것은 당연히 인문학의 영역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래서 입을 모으고 또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영역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의 현실은 그러한 사회적 담론 또 충분한 형태의 인문학적 성찰 없이 지금 공학적 영역이 훨씬 앞서버린 그런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이제 뒤따라서 지금 좀 급하게 움직이고 있는 상태고. 지금 최근에 특기할만한 일도 제프리 힌튼이나 딥러닝을 개발한 교수를 필두로 한 다양한 형태의 일군의 지금 인공지능 개발을 선도하고 있는 과학자 집단에서 지금 인공지능 개발을 전 세계적으로 6개월만이라도 유예하자 또는 같이 공개 서한을 지금 돌리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그만큼 이게 심각하다는 거죠. 핵무기처럼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하는 인공지능인데, 어떠한 형태의 국제협약이나 국제기구도 없고 최소한의 어떤 합의된 형태의 윤리적인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거죠. 그런데 지금 개발은 막 이루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공백 상태 이것은 굉장히 위험스럽다고 보고요. 빨리 이것은 충족돼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그런데 결국은 그런 부분에서는 인간의 문제로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일체유심조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좋은 쪽과 나쁜 쪽으로 얼마든지 갈 수가 있는데, 요즘 사실은 명상이 유행하고 부흥을 이룬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들의 어떤 그런 탐진치를 초월하자 그런 노력 아니겠습니까. 이런 것들이 뭐 인공지능이나 아니면 뇌과학이나 이런 어떤 주변 학문과 접점을 찾아서 정말 불교적인 수행 가치, 어떤 큰 지혜 이런 쪽하고 좀 그게 잘 연결이 됐으면 좋겠는데 스님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보일스님 : 그렇습니다. 어찌 보면 지금의 과학기술의 비약적 혁신이나 발전들이 우리 전통 종교인 불교나 기성 종교들의 위기가 아닌가라고 이해하는 분도 많고 또 그런 견해도 충분히 일견 이해는 됩니다. 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형태의 새로운 형태의 변화가 오히려 불교가 오히려 더 사람들한테 설득력 있는 또는 믿고 신뢰할 만한 하나의 삶의 지침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그런 또 좋은 기회라고도 생각하거든요. 그 이유는 제가 지금 포스트 휴머니즘을 비판적으로 얘기한다고 그래서 포스트 휴머니즘이 좀 부정적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는데, 사실은 그거는 일군의 극단적인 포스트 휴머니즘의 전략들, 그러니깐 기술적 포스트 휴머니즘 같은 것들을 제가 비판을 하는 입장인 거고요 포스트 휴머니즘을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지만 한 가지로 말씀드리자면 인간 중심주의의 극복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거기 말 그대로 포스트 휴머니즘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휴머니즘, 유럽 중심적인 휴머니즘에서 우리가 좀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런 이야기인데, 우리가 흔히 휴머니즘 하면 굉장히 좀 좋은 말로 이해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김봉래 :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 그러니까 그 얼마나 멋있어요.

 

보일스님 : 인간 본이다 이렇게 하고 있는데, 사실은 우리의 기대하고 달리 대부분의 지금 휴머니즘이라는 게 과거에 그 철학이 태동할 때의 그 휴먼에는 백인, 유럽인, 귀족 또 사용자, 그러니까 여기에는 유색인종, 여성, 노동자, 비인간 그러니까 동물들 이런 것은 다 빠지는 거죠. 그러니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인간 중심주의라니까 모든 보편적 인류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그렇다 보니 모든 것을 경계 짓고 구분 짓고 차별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그런 결과를 낳았기 때문에 앞으로 지금 현재와 미래에서 이렇게 인공지능이 거침없이 등장하고 인간의 모습을 하지 않은 사회 주체들, 동물도 당연히 포함되고요. 우리가 지금 기존에 알고 있었던 근대적 의미의 유색인종이나 이것은 뭐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앞으로 우리가 우리 사유 안에 담아야 될 존재들이라는 게 우리가 전혀 직면하고 마주해 보지 못했던 존재들까지도 우리가 같이 살아야 되는 공생해야 되는 연기적 존재로 받아들여야 된다라는 그 큰 틀의 철학이 포스트 휴머니즘의 철학으로 지금 드러나고 있는 거거든요. 이 얘기는 들어보면 우리가 이제 어떤 불교의 연기적 사유, 다양한 자비에 기반한 사유들,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들하고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김봉래 : 금강경에서도 사실은 태난습화, 4가지 생명 외에도 비인간 이런 것 쭉 나오거든요. 중생에 어떤 한 부류로서.

 

보일스님 : 오히려 이런 포스트 휴머니즘적인 사유들이나 논의들이 담론들이 과거에 이미 불교에서 논의하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인간 아닌 존재들에 대한 이해 또 포용, 자비의 마음들이 굉장히 구체화된 형태로 드러나는 시대를 우리가 맞이하게 되는 거죠. 기계화된 형태의 생명체들, 생명 형체가 아닌 형태의 생명 같은 것들, 우리가 상상력으로 모든 게 구현 가능한 세상에 지금 오고 있는데, 이러한 주체들을 이러한 형태의 존재들을 우리가 어떤 태도로 우리가 관계를 맺어갈 것인가, 이건 굉장히 중요한 화두란 말이죠. 그런데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아직 공학 영역, 인공지능 개발하거나 디지털 기술 개발하는 영역에서는 그 부분까지는 아직 사유가 미치지 못했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 불교나 종교나 철학에서 적극적으로 그런 논의들에 개입도 하고 참여해서 어떤 윤리적인 알고리즘을 구축하는데 그게 꼭 불교라는 이름을 달지 않더라도 인류가 올바른 방향으로 이런 첨단 과학기술이 순기능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기여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봉래 : 그래요. 인간 중심을 조금 더 벗어나서 정말 우주 중심으로 갈 수 있는.

 

보일스님 : 그렇죠. 모든 생명에 대한 이해, 또 생명 아닌 것들에 대해 보다 더 존중하는 태도.

 

김봉래 : 그런 면에서 어떻게 보면 불교의 가치, 큰 지혜와 큰 자비 이 두 가지 가치가 여전히 유효할 것 같아요. 불교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할 것 같습니다.

 

보일스님 : 불교가 지금 부처님이 성도하시고 우리가 역사가 벌써 2천5백년이 지나가잖아요.

 

김봉래 : 2천6백년 가까이 되죠.

 

보일스님 : 2천6백년이 가까이 됐는데 이게 단순히 이 기나긴 시간들이 그간에는 지금 과학혁명의 시대를 넘어서서 첨단 기술 인공지능 시대로 갔다고 하더라도 그간에라고 인간 인류가 큰 변화를 안 겪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모든 변화를 관통하면서 불교는 이어져 왔다는 거죠. 불교가 끊임없이 제가 말씀드렸던 그런 쇄신과 혁신의 노력을 했기 때문에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을 견지하면서도 다양한 형태의 불교가 만들어졌고 탄생했고요, 오늘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대승불교 뭐 이런 정도까지 다양한 형태의 버전의 불교들이 태동하지 않았나.

 

김봉래 : 그렇게 보니까 정말 불교에 대해 어떤 새로운 비전을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스님, 지금 승가대학에서 젊은 스님들과 같이 이렇게 부대끼면서 살아가고 계신데, 승가대학에만 거의 한 8년 9년 계시는 것 같은데, 뭐 이렇게 보시면서 좀 이렇게 희망 같은 것도 많이 발견하고 그러시는 것 같아요.

 

보일스님 : 그렇죠. 아무래도 어떤 인연이 됐든 간에 이렇게 젊고 힘이 넘치는 어린 학인들과 이렇게 같이 생활할 수 있고 또 부처님 가르침 속에서 같이 어떤 당면한 고민들을 같이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저는 특별한 가피를 입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 실제로 또 지금 저희들도 해인사 승가대학 안에서도 불교는 물론이고 불교 그 자체에서 머물러서 불교만을 위한 형태의 우리만을 위한 형태의 가르침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이 불교의 부처님의 귀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해서 세상을 향해서 세상의 변화 속에서 우리 불교 가르침이 어떻게 전달돼야 되고 어떤 언어로 어떤 방식으로 어떤 방향으로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토론하고 끊임없이 우리가 어떤 문제를 개진할 수 있어야 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희들 해인사 승가대학에서는 이 디지털 시대에 맞게 기본적인 전통 승가교육의 어떤 틀과 기본을 유지하면서도 끊임없이 다양한 특강이라든지 프로그램을 통해서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이러한 형태의 교육 내용들을 갖고 학인들을 지금 지도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그런 면에서 우리 불교계가 대비할 것도 많고 또 저희 불교방송도 미디어로 대비할 게 많은 그런 점에서 혹시 종단이나 저희 불교방송에 건의하고 싶은 내용도 있으실까요.

 

보일스님 : 다들 너무들 잘 알고 계셔서 제가 말할 수 있는 입장이 되나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뭐 이렇게 좀 바람이랄까요 제가 여기저기 강연도 다니고 강의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저도 이 분야를 연구하고 박사까지 논문을 쓰고 하는 과정에서 느낀 소회라 그럴까요 그것은 세상은 진짜 지금 또 다른 형태의 격변기를 맞고 있다. 그 변화의 핵심에는 인공지능이다 뭐 다양한 NFT다 블록체인이다 여러 가지 기술들이 등장하지만 그 모든 변화의 본질은 모든 물질세계 현상세계의 정보들이 디지털로 전환돼 가고 있는 지점에 우리가 지금 서 있다. 그 중간에 지금 서 있고, 구체적 각론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라고 생각했을 때 우리가 사찰문화재라든지 다양한 형태의 사찰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형태의 부처님 가르침을 다양한 매체로 우리가 전달하고 있는데, 이 내용들이 지금 불교방송처럼 디지털 형태로 보존되고 수집되고 다시 재가공되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디지털 전환이 시급하다. 그래서 우리 절에 불교 문헌이 있든 문화재가 있든 이 모든 것들이 어떠한 형태로든 간에 원본은 원본대로 소중하게 지금 방식보다 더 철저하게 보존도 돼야 되고 또 다른 하나의 방식은 디지털로 이 부분들이 어떻게든 전환돼서 보존될 수 있는 방안들, 이러한 시대에 걸맞게 문화재가 디지털로 변환이 돼서 언제든지 디지털상의 인터넷이 됐든 메타버스가 됐든 인공지능의 데이터가 됐든 언제든지 구현될 수 있도록 또 디지털로 변환이 되고 전환이 된 상태로 존재했을 때 비로소 일반 불자들이나 세상 사람들한테 불교의 뛰어난 가치와 우수성을 이렇게 보여줄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시간이 마무리될 시간인데요, 지난해 이 시간 나오셔서 불교가 미래 인류 구원을 위해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데 집중하고 싶다 이런 포부를 주셨는데, 오늘도 좀 간단히 구체적으로 좀 밝혀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보일스님 : 뭐 어쨌든 학인 시절에 인공지능 로봇에도 불성이 있을까라는 질문 하나로 시작된 인연으로 수십 년이 지나 지금까지 오게 됐는데요,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이 과거의 낡은 가르침이고 전통의 어떤 가르침으로 머무는 게 아니라 이런 디지털 시대 인공지능 시대에도 충분히 어떤 윤리적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살아있는 가르침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다양한 연구 또 다양한 강의들을 하면서 한번 힘을 쏟을 그런 생각입니다.

 

김봉래 : 보일스님. 오늘 시간 대단히 고맙습니다.

 

보일스님 : 네 감사합니다.

 

김봉래 : 지금까지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보일스님과 함께 했습니다.

 

김봉래 : 네 여러분 보일스님과 함께한 오늘 이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스님께서는 디지털 대전환의 시기다 이런 말씀을 주시면서 대비가 필요하다 강조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날로그와 디지털, 양자가 융합하는 그런 흐름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이러한 디지털 대전환의 시기를 맞아서 우리 불교가 더욱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나아가서 조화로운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사부대중이 더욱 노력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불교방송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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