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을 간 한국 관광객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외국에 나와보니 우리나라처럼 안전하고 치안이 잘돼있는 곳이 없다는 말이 그것이다. 낯선 외국에서는 야심한 시간에 다니면 겁부터 덜컥 나고 우리나라가 얼마나 안전한 곳인지 새삼 느낀게 된다고 입버릇처럼 되내이곤 한다.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도 한국은 총기 소지가 허용되지 않고 치안이 비교적 잘 돼있어 한밤중에도 불안에 떨지 않고 거리를 다닐 수 있는 곳이라고 인정해왔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제 밤늦은 시간에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안전지대로 부르기 어려울 것 같다. 지난달 21일 서울 신림역 인근에서 한 남성이 행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었고 지난 3일에는 경기도 분당 서현역 인근 백화점에서 한 남성이 차량으로 5명을 다치게 한 뒤 백화점 내부에서 흉기를 마구 휘둘러 1명이 숨졌고 13명이 크게 다쳤다. 지난 4일에는 대전 대덕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교로 찾아온 2O대 남자가 학창시절 자신의 은사였다는 40대 교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려고 한 혐의로 구속됐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흉악 범죄가 계속되자 비슷한 살인을 예고하는 글들이 온라인에서 잇따라 올라오면서 모방 범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부와 여당도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강력범죄에 물리력을 동원해 강력히 대응하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 제도’ 신설도 추진하기로 했다. 서울 강남역 등에는 경찰특공대원들이 배치됐고 장갑차까지 동원돼 순찰이 대폭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범죄가 아무 연고도 없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일상 생활 공간속에서 벌어지고 있는데다, 여성과 노인 등은 물론 젊은 남성들도 범행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불안감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이같은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이웃나라 일본과 비슷해져 가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은 장기 불황속에서 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졌고 일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사회 불만 세력으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외부와의 소통을 끊고 지내는 100만명 이상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사회적 문제로 여겨져왔다. 이처럼 경제적 곤란과 사회적 고립 상태에 놓인 이들이 자신의 분노와 좌절을 강력 범죄로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 연고도 없는 이들에게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들은 대체로 경찰 진술를 통해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이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이다, 남들은 행복해보이는데 왜 나만 불행한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분노 조절이 안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현상을 멈출 수는 없는 걸까 ? 우리 모두는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부터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외로움과 고독, 죽음 등에 대한 두려움을 늘 갖고 산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고 왜소한 존재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베트남 출신의 세계적인 명상 지도자 틱낫한 스님은 자신의 저서에서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감정의 씨앗을 바로 관찰하는 것에서부터 ‘화’와 분노 다스리기를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그 씨앗들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감정이 생기는 원인과 발현되는 상황을 통찰하면 자신의 감정에 쉽게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내 자신을 화나게 했던 존재들이 나와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고 어떤 영향력을 주고받는지를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연민의 마음이 생기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고 화가 점차 사라질 수 있다고 스님은 말한다.

도심수행도량 제따와나 선원장 일묵스님은 저서 ‘화, 이해하면 사라진다’에서 실체가 없는 화를 버리기 위한 핵심은 ‘마음’이라면서 우리는 각자의 행복을 위해 ‘대상’을 변화시키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도 없다며 마음을 바꿔 대상을 어떻게 분별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바뀔수 있다고 강조한다. 스스로 행복을 위한 마음의 조건을 만들고 지혜롭게 대처해 나간다면 화에 휘둘리지 않고 고요한 본래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밤늦은 시간에도 마음놓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일상속에서 누리는 자유의 소중함을 더 이상 잃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보다 공정하고 평등한 공동체로 자리잡아 우리가 안고 있는 ‘화’와 분노가 조금씩 줄어들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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