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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김봉래 BBS 전법후원국장

출연 : 안장헌 사진작가

방송 : 2023년 7월 9일(일요일) 저녁 6시 20분(BBS 라디오)

 

 

김봉래 : 우리 사회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입니다. 요즘 경주 남산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열암곡 부처님 바로 세우기가 조계종 종단 차원에서 본격 추진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경주 남산에는 노천에 수많은 불보살상들이 모습을 다퉈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신라인의 미의식과 종교의식이 예술로 승화되어 있다, 이런 평가도 받고 있는데요. 이렇게 불교를 중심으로 한 문화유산 사진전문가로 반백 년 이상 일해 오시면서 특히 경주 남산을 사랑하는 작가가 계십니다. 그래서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안장헌 사진작가님 모시고 말씀 듣겠습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김봉래 : 뉴스와 사람들 오늘 이 시간에는 문화유산사진연구소 소장을 맡고 계신 안장헌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안장헌 작가님 안녕하세요.

 

안장헌 : 반갑습니다.

 

김봉래 : 자. 우리 작가님께서는 대한사진예술가협회 회장도 역임하시고 한국사진작가협회 자문위원 하셨죠.

 

안장헌 : 네. 지금도 현재 자문위원입니다.

 

김봉래 : 한국불교사진협회 고문도 맡고 계시고요. 고려대학교에서 평생대학원 디지털 사진 교실에 교수도 맡으셨습니다. 그래요. 오늘은 우리 작가님 모시고 사진 이야기를 좀 해야 되는데 작가님은 어떻게 먼저 사진하고 인연이 되셨는지 그게 궁금해요.

 

안장헌 : 참 오래전 얘기인데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바늘구멍 사진기라는 걸 공부합니다. 그것을 공부할 때 그 바늘구멍 사진기를 만들어서 청사진을 만드는 것을 실습을 하거든요. 그게 참 재미있었어요.

 

김봉래 : 바늘구멍 사진기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조금 설명 좀 부탁드릴까요.

 

안장헌 : 우리가 이제 좀 두툼한 종이를 이렇게 말아서 그리고 이제 암실이 되는 거죠. 그 안이. 그리고 한 쪽을 막아서 거기다가 바늘로 구멍을 뚫어요. 그러면 그 바늘로 뚫린 구멍을 통해서 안으로 밖의 빛이 들어오는데 뒤쪽에다가 유산지 같은 걸 대면 거기에 영상이 비치게 됩니다. 거꾸로 비치죠. 그 자리에다가 청사진 용지를 갖다 붙여놓으면 그리고 빛을 한참 쬐어주고 나중에 물에 담그면 청사진이 나오는 거죠.

 

김봉래 : 인화가 돼서 나오는군요.

 

안장헌 : 그렇죠.

 

김봉래 : 초등학교 4학년. 그런데 그게 인연이 돼서 대학에서는 전공을 농경제학과를 하신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안장헌 : 네. 뭐 집에서 농사를 좀 큰 규모로 짓고 있었고 또 거기다 제가 장남이고 그래서 뭐 집안일을 계승해야 할 그런 책임이 있어서 그래서 이제 농업경제학과를 택한 것이었고, 사진을 하게 된 것은 중학교 들어가서, 들어간 입학 기념으로 카메라를 하나 받게 돼서 그것을 가지고 사진 찍는 것을 혼자 연구를 하다가 결국 2학년 올라갈 때 우열반으로 나누는 데 열반으로 되는 이런 어려운 시기를 겪었어요. 그래서 사진 배우는 것을 포기하고 그러다 대학에 들어와서 도서관에 가서 혹시나 해서 사진에 관계되는 책이 뭐가 있나 하고 미련이 남아서 좀 뒤져봤어요. 그런데 보니까 사진에 관계되는 카드가 한 묶음이에요. 수백 권이 있어요. 그래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 때는 1965년도 얘기인데요. 우리가 한일회담 반대 데모를 하느라고 꽤 시끄럽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그 해는 여름방학을 일찍 줬어요. 그 바람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보기 시작했는데, 아마 그 책들을 보면서 사진이 이렇게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 하는 걸 제가 처음 알게 됐어요. 그런데 저한테는 물론 카메라도 없고 사진을 할 만한 그런 여건은 되지 못했습니다.

 

김봉래 : 그러면서 대학 때 그런 사진부 활동도 하시고요.

 

안장헌 : 네. 그러다가 제가 합창부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김봉래 : 합창부 활동도 하셨군요.

 

안장헌 : 그 때 합창부에 우리 불교학생회 회원이 몇 분 계셨어요. 그 분들이 여름방학 때 여름 수련회를 오대산 월정사로 가는데 같이 갈 의향이 없느냐 그래서 한번 가보겠습니다라고만 얘기를 하고 나중에 장마가 끝날 무렵에 제가 그 쪽으로 들어가게 됐는데, 그 날 비가 몹시 많이 왔어요. 그런데 저는 냇물을 건너다가 그 때 다리가 없었기 때문에 못 건넜습니다. 돌이 굴러가서. 저는 시골서 컸기 때문에 개울을 여러 개 건너서 학교를 다녔어요. 그렇지만 못 건너서 다시 내려왔는데, 그 다음 날 보니까 그 날 급류에 사고가 났다고 그럽니다. 우리 불교학생회 선배님들이 열 분이나 희생을 당하는 아주 큰 슬픔을 겪게 됐죠. 저도 그래서 그 자리에 더 있기가 힘들어서 강릉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지금의 양양에 바위가 좋은 남애리라고 하는 마을로 갔습니다. 뭐 그냥 무작정 간 것이죠. 그래서 거기서 지내면서 낮에는 아이들 좀 가르치고 저녁에는 오징어배를 타고 나가고 뭐 이렇게 재미있는 여름방학을 보내긴 보냈는데, 저한테는 정신적인 쇼크가 너무 컸기 때문에 그런 스트레스를 푸는 데 파도가 저한테는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래서 그 후에 거기서 끝내고 나올 때 주인한테서 제가 봉투를 하나 받는데 꽤 큰 금액이 들어있어요. 이게 뭐냐고 그러니까 네가 잡은 오징어 값이라고 그러는데 제가 잡은 오징어는 거의 다 먹어치웠지 이렇게 돈이 될 만하지 않을 건데, 아마도 거기 제가 중학생들을 영어, 수학 가르쳐주고 그랬는데 이장님이 아마 그런 일로 넣어서 보낸 거 아닌가 싶어서. 어쨌든 그게 계기가 돼서 그걸로 다시 카메라를 마련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김봉래 : 아 그러셨군요. 그 중에서도 우리 작가님은 불교 관련 사진을 오래 찍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경주 남산에서만 50년 세월을 겪으셨다고요.

 

안장헌 : 그런데 경주 남산에서만이라고 하면 좀 어폐가 있고요. 경주 남산을 시작으로 거의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 불교 유적까지도 돌아보는 그런 계기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계기로 해서 경주 남산은 저한테는 인연이 아주 깊은 곳이지요.

 

김봉래 : 그런데 제가 듣기로 경주 남산의 부처님 상을 보시면서 굉장한 감동도 받으시면서 사진 연구하시고.

 

안장헌 : 예 그렇습니다. 제가 초창기에는 처음 갔을 때는 너무나도 아는 바가 없어서 그냥 사진으로만 찍으면 멋진 부처님 사진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이걸 어떻게 찍어야 될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 거예요.

 

김봉래 : 그러니까 이게 어떤 부처님인지 어떤 내용을, 불교에 관한 내용을 잘 모르시니까

 

안장헌 : 네. 내용도 모르고 왜 저런 모양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김봉래 : 수인이라든가.

 

안장헌 :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뒤로 서울에 와서 책도 찾아보고 스님들도 찾아뵙고 하면서 여러모로 모색을 해보게 되는데 쉽지는 않았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그런데 사진이 어떤 점이 매력이었나요,

 

안장헌 : 사진이라고 하는 건 언어거든요. 언어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사진이라고 하는 미디어를 통해서 무슨 얘기를 할 것이냐 하는 것은 본인 작가의 마음이고 그 사람의 생각이기 때문에 다만 우리는 그 도구를 이용을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요즘 뭐 카메라 없는 사람 없듯이 카메라를 가지고 내 생각과 느낌과 눈앞에 전개되는 모든 상황들을 기록도 할 수 있고 또 그것을 통해서 자기의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는 그런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사진은 뭐 절대적으로 우리를 표현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되는 소통의 수단이 된 것이죠.

 

김봉래 : 사진이 우리 삶과 이렇게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이 쪽에서 그것이 생업까지도 되셨는지 궁금해요.

 

안장헌 : 저는 뭐 생업으로는 전혀 생각지 않았고 다만 제가 우연히 만난 돌부처의 미소에 빠져서 이런 모습을 내가 기록을 하고 세상에 알려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해서 그런 자료를 모아서 첫 번째 간 곳이 경주 남산이었고요. 경주 남산의 부처님들을 제가 찾아뵈면서 내 무지함을 절실히 느끼고 또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든지 알고자 노력하고 그렇게 5년, 10년 하다 보니까 부처님의 상호와 수인과 또는 옷주름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그런 느낌들이 왜 저런 불상들을, 왜 저런 탑을 저 자리에 이렇게 만들었는지 조금씩 감이 오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니까 자주 가게 됩니다. 심지어 어떤 것은 몇백 번도 찾아가는, 거의 매일 찾아가다시피 하는 그럴 때도 있었고. 

 

김봉래 : 같은 부처님을.

 

안장헌 : 네.

 

김봉래 : 그렇군요. 그러면 지금 불교계에서 본격적으로 바로 세우기를 추진하고 있는 열암곡 마애 부처님도 자주 뵙겠습니다.

 

안장헌 : 열암곡 부처님은 제가 자주 가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 상태가 보여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제 나름의 고집이 있는데요. 새로운 자료를 찾아서 찾아갑니다. 찾아가서 보는데 너무 훼손이 심해요. 훼손이 심해서 도저히 이런 상태로는 보여줄 수가 없다. 한마디로 신심 떨어지는 그런 상황이 나올 수도 있거든요. 저로서는 그런 모습은 보여주고 쉽지 않아서 가급적이면 좀 복원된 모습이거나 이렇게 요즘은 성형까지도 합니다. 이런 모습을 저는 본래의 모습으로 우리가 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에 열암곡 부처님도 저는 기술적으로 가능만 하다면 본래의 모습으로 세워서 본래 그 원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어야 거기서 오는 감흥이 굉장히 크거든요.

 

김봉래 : 그렇군요. 그런데 혹자는 또 이렇게 얘기를 해요. 자연스러운 모습, 넘어져 있고 이렇게 하는 것이 또한 우리에게 하나의 법문을 선사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얘기하는 부분도 있기는 한데.

 

안장헌 : 저도 이번에 경주에서 전시를 하면서 그런 얘기도 들었습니다. 이것을 본래대로 세워 놓으면 많은 것 중에 하나밖에 안 되는데 그런 모습으로 있으면 지진으로 인해서 이런 변화가 나타났고, 이것은 이렇게 쓰러져 있는 불상, 세계에 하나밖에 없다. 그러니까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부처를 소개하는 것이 더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 그런 얘기도 합니다마는 저는 불상은 불교의 예배 존상입니다. 관광자료가 아닙니다. 예배 존상이기 때문에 예배 존상으로서 우리가 보고 참배하고 예불을 올릴 수 있는 그런 형태로. 우리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면 할 수 없어요. 그러나 가능한 한 우리 능력이 닿을 때 지금 당장 못 하더라도 능력이 닿을 때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할 수 있다면 지금 하는 것이 더 좋고요. 그렇게 해서 본래 자리에서 본래 부처님이 그 광채를 발하던 그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어야 그래야 우리 불자들한테는 큰 힘이 되고 또 경주 남산도 새로운 부흥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거든요.

 

김봉래 : 그래요. 최근에 경주에서 신라문화원 개원 30주년을 맞아서 초대전도 하셨고 그동안에도 엄청난 전시회도 하시고 책도 많이 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시면서 뭔가의 어려운 점도 있지만 보람 같은 것이 좀 크신 것 같아요.

 

안장헌 : 그렇죠. 어려움이야 말할 수 없죠. 그런데 왜냐하면 문화유산을 사진을 찍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디서 돈을 받고 와서 이런 사진을 찍는 것으로 착각하는 분들이 참 많아요. 누가 우리한테 그걸 하라고 돈을 대줍니까. 제 어려운 형편에 어떻게든지 심지어 옛날에는 그 전당포에 가서 맡기고 빚을 내서라도 내가 찍어야 할 때는 가서 그 타이밍을 놓치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하니까 그렇게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그렇게까지는 안 되지만 이렇게 하면서 하는 작업인데, 이것을 우리가 하나의 취미 생활로 이것을 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그런 시각으로 보는 분들이 계셔서 저는 그럴 때 가장 슬픕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그래도 보람이 있으실 때는 또 상도 많이 받으시고, 무슨 상이죠. 문화유산상, 대통령상이 생기고는 처음으로 사진작가로는 문화유산상을 받으셨다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안장헌 : 그렇습니다.

 

김봉래 : 그럴 때는 좀 보람을 느끼시겠어요.

 

안장헌 : 그것보다도 어쨌든 저희가 하는 작업이 보람을 느끼죠. 왜냐하면 우리가 그동안 책을 내놓으면서 그 책이 팔리기도 많이 팔렸습니다만 그것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 문화유산을 사랑하게 되고, 자주 찾아보게 되고 하는 이런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고 하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끼는 겁니다.

 

김봉래 : 지금까지 수천 점, 수만 점, 수십만 점을 찍으셨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 순간 생각나는 애착이 가는 그런 작품이 있을까요. 선생님.

 

안장헌 : 저는 제가 가장 자주 찾아가고 많이 찾아가는 부처님이 경주 남산에 계신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이죠. 바로 보리사라고 하는 절 바로 앞에 있는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은 노천에 계시고 언제든지 갈 수 있고 언제 찾아가도 뵐 수가 있고, 석굴암 부처님 같이 거룩한 부처님이 또 계시지만 거기는 언제나 가서 뵐 수는 없거든요. 그런데 이 남산의 미륵곡 부처님은 내가 가고 싶을 때면 언제라도 가서 심지어 여러 가지로 책을 낼 때 경제적으로나 굉장히 여러 가지 여건이 힘들어서 어려울 때 찾아가서 108배를 올리면서 하소연을 하면 그 지긋한 미소로 다 해결됐다.

 

김봉래 : 다 해결됐다. 

 

안장헌 : 다 해결됐다 하시는 그런 모습을 마음속으로 느끼면서 많은 위안을 받죠. 그렇게 해결해 왔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그런 종교적인 힘까지 얻으시고. 그런데 그게 예술적으로도 좀 특징이 있습니까.

 

안장헌 : 그렇죠. 그러니까 미적인 감흥이라고 저는 얘기를 하는데요.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보면서 그 대상으로부터 오는 느낌, 그 느낌 중에 미적인 감흥을 전달해 주는, 우리가 꽃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하고 미인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그 모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들이 형태라든가 색깔이라든가 여러 가지가 어우러져서 그 속에서 그런 힐링이 있는 거거든요. 그 느낌이 나한테 전달이 됐을 때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으면 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준비가 안 돼 있으면 그런 게 와도 나는 그 사인(sign)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부처님의 수인을 사인이라고 저는 얘기하는데요. 이 사인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내 자신도 그 사인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돼야 되거든요. 그럴 때 부처님의 사인이 가섭의 염화미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우리 생활 속에서 사인을 받을 수가 있어요. 그게 저는 우리가 부처님을 찾아가서 참배하는 첫 번째 이유가 아닌가 그런 생각도 가져봅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자.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50년간 사진을 찍어온 안장헌 사진작가님과 말씀 나누고 있습니다. 작가님, 감흥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말씀을 주셨는데요. 이게 어떤 뭘 좀 알아야 감흥을 받는 거 아닙니까 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런 말씀을 주셨는데. 또 아는 만큼 보인다 이런 얘기도 있고요.

 

안장헌 :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고요.

 

김봉래 : 그런데 그 아는 것도 또 초월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안장헌 : 그러니까 안다고 하는 것이 그냥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는 앎도 있고, 또 자기 생각을 통해서 자기 사유를 통해서 새로운 앎도 생기는 거고.

 

김봉래 : 안목이 또 새로 생기는 거죠.

 

안장헌 : 그렇죠. 그래서 안목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문화유산을 만날 때마다 가장 중요하게 작용을 하죠. 불상을 볼 때 불상을 볼 수 있는 안목과 또 탑을 바라볼 때 탑에서 또 보내오는 사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안목은 또 다르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에 대해 미리 공부가 필요한 것이죠.

 

김봉래 : 그런데 어떻게 보면 지금 불교를 전하자, 전법을 하자, 또 포교를 하자 이렇게 하지만 보통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쪽으로 언뜻 생각할 수 있지만 이렇게 문화적인 접근도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안장헌 : 그렇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요 불교미술이나 불교문화는 불교를 널리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쉽게 널리 펴기 위해서 만든 거거든요. 부처님의 말씀만으로 모든 것이 다 전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니까 그런 근기를 가진 정도라면 아무 문제가 없겠죠.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근기를 가진 사람이 그렇게 많지 못해요. 우리나라 부처의 수인 중에서 중품하생인이 제일 많습니다. 그러니까 상품에 속하는 분들이 아니고 중품 저 밑에, 중품에서도 아래 그리고 하품에서도 하생, 이 정도로 낮은 근기를 가진 사람들한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데는 불상과 불화와 또 많은 불교의 장엄물과 상징물들이 그래서 필요한 거 아닙니까.

 

김봉래 : 그렇군요. 아니 그런데 작가님 고려불화가 정말 세계적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거기에서도 뭔가 그런 안목이 필요한 겁니까. 고려불화를 보는 데 있어서도.

 

안장헌 : 고려불화를 저는 일본에 가서 처음 봤는데요. 그 때 고려불화전을 했어요.(*1978년 일본의 야마토문화관(大和文華館)이 개최한 '고려불화 - 일본에 청래(請來)된 이웃나라의 금빛 부처님들' 특별전을 말씀하시는 듯함) 1977년도일 겁니다. 야마토문화관에서 그것을 했는데, 그 때 제가 고려불화를 그렇게 큰 작품을, 우리 한국에 있는 것은 조그마한 작품만 있는데 그 때 가서 큰 작품을 보면서 고려시대 불교가 얼마나, 그 당시에는 국교였으니까 불교가 나라의 국력이 거기에 플러스가 돼서 저렇게 세계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는데, 그런 작품을 만드는 데는 조건이 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예술가들한테는 자유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얽매이지 않고 자기 생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줘야 됩니다.

 

김봉래 : 또 상상력.

 

안장헌 : 그렇죠. 제가 석굴암을 보면서도 이게 세계적인 명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신라 시대 그 시대의 삼국을 통일한 그 힘 또 그 시대의 불교에 대한 생각 또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이 거기에 응축이 돼서 그 불상을 조성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자유를 줬기 때문에 그렇게 아름다운 조각을 세계적인 조각을 남겨놓은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고려불화도 똑같아요. 만약 저것을 규범에 따라서만 딱딱 그리라고 하면 아마 재미없는 그림들만 나왔을 겁니다. 저는 그래서 고려불화를 보면서 각자 그림이 갖고 있는 특징, 개성 이런 것들을 앞으로 연구자들이 좀 더 그것을 찾아내서 세상에 알리고 해야되겠지만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쓴 채색이라든가 이런 것은 과거, 물론 우리가 신라시대의 불화를 볼 수가 없으니까 그렇습니다마는 고려불화 속에서 우리가 당시에는 당채라고 불렀죠. 요즘 절에 가보면 염료로 그림을 그린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건 몇 년만 지나면 다 탈색되거든요. 그런데 그 시절에는 석채 특히 안료라고 그러죠. 그러니까 자연으로부터 축출한 그런 재료들, 석채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마는 그런 안료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그렇게 고운 빛깔을 지금도 천 년이 지난 이후에도 아니면 더 오랜 세월이 지난 이후에도 거의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김봉래 : 사진을 오래 해오셨으니까요 예전에 하실 때는 어떻게 보면 아날로그 사진이었다면 요즘에 디지털 사진 아닙니까. 그런 시대를 두루 경험하신 입장에서 드는 소회도 많으실 것 같아요. 그런 변화.

 

안장헌 : 그렇습니다. 저는 물론 아날로그로 시작을 했죠. 필름으로 시작을 해서 2003년까지는 필름으로 쭉 작업을 했습니다. 디지털은 1996년부터 처음 시도를 했고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을 했는데, 2009년까지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겸해서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디지털이 퀄리티가 그렇게 높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필름도 같이 작업을 했고, 2009년 이후에는 1200만 화소 이상 거의 2천만 화소 정도의 카메라들이 나오게 되면서부터는 필름 카메라를 버리고 디지털로만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필름보다 디지털로 작업하는 것이 작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훨씬 내 생각과 느낌과 내가 원하는 색채를 가감할 수 있는 그런 것을 하기가 아주 좋아진 거죠. 필름으로 할 때는 그게 거의 불가능했어요.

 

김봉래 : 그렇군요. 거의 그냥 찍힌 대로 나오는 것밖에 안되는데.

 

안장헌 : 찍을 때 모든 것을, 모든 조건을 다 맞춰 찍어야 되니까 찍는 데 시간이 엄청 많이 걸렸습니다.

 

김봉래 : 한 작품 찍는 데도.

 

안장헌 : 그렇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에는 찍을 때도 물론 조건을 맞춰 찍지만 지금은 디지털에서 로파일이라고 하는 걸 사용하게 되는데, 로파일은 하나도 가감하지 않은 있는 그 상태 그대로로 찍혀진 것을 우리가 로파일이라고 그래요. 이것을 가지면 우리가 얼마든지 색감과 분위기와 이런 것들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김봉래 : 완전히 창작이네요.

 

안장헌 : 그래서 과거보다 훨씬 사진 표현 수단이 엄청 폭이 넓어졌고 깊이도 깊어졌고 훨씬 더 좋아졌죠.

 

김봉래 : 그런데 앞에서 작가님께서 ‘사진이라고 하는 것은 언어다’라고 말씀을 하셨고 평소에도 늘 작가들은 자기 사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말씀을 주로 많이 하셨더라고요.

 

안장헌 :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을 찍는 것은 찍는 사람이 찍는 것이고 발표를 할 때는 그 때는 내놓으면 내 것이 아닙니다. 그건 세상의 것입니다. 발표할 때는 최선을 다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고 같이 더군다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하는 거니까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방법을 다 동원해서 하는 것이죠.

 

김봉래 : 그렇군요. 그래서 우리도 정치인들도 다 세상을 위해서 정치를 한다고 하지만 사실 공감하는 사람도 있지만 안하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그런 것을 보면 어떤 내 생각을 최대한 잘 표현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상대방들이 어떤 면을 좋아하더라, 어떤 면을 더 이렇게 감동스러워 하더라 이것을 파악해서 그것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어요.

 

안장헌 : 그게 이제 공감이라고 하는 것이죠. 나 혼자 좋아해가지고는 의미가 없어요. 공감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되거든요.

 

김봉래 : 그러면 작가님도 늘 그런 부분을 화두에도 두고 어떤 것이 정말 우리가 공유해야만 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냐 하는 그런 것을 늘 이렇게 화두처럼 생각하십니까.

 

안장헌 :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래서 우리가 사진을 찍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죠. 주변 사람들에게. 그래서 의견을 듣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게 서로 공통분모가 좀 있어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내 생각이 있어서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은데 이 표현이 과연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거든요. 그래서 그것은 작가의 운명이기도 하고 사명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 생각과 내 느낌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같이 공감해 줬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늘 갖게 되지요.

 

김봉래 : 그래요. 사진을 통한 불교 포교, 문화 포교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 혹시 종단이나 혹은 정부에 건의하고 싶은 내용도 있으실까요.

 

안장헌 : 지금 종단 측에서도 여러 가지로 애를 많이 쓰고 계시는데요, 저 개인적으로는 제가 그동안 우리 불교 문화 유산 사진을 50년 동안 찍어왔어요. 2003년까지는 필름으로 이렇게 쭉 작업을 해왔는데, 이 필름들을 제가 조계종 전 문화부장 스님도 만나 뵙고 조계종 산하에다 내가 기증을 하겠다는 뜻을 전달했었고 또 최근에 와서는 기획실장 스님도 어느 스님의 소개로 만나서 그런 뜻을 전했는데, 사실 종단에서 이런 것을 활용하고 할 수 있을 만큼의 그런 준비가 아직 안 되신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쪽에도 관심을 가지고 우리 성보문화재 특히 성보문화재 자체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성보문화재를 기록한 사진들도 상당히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에 이걸 잘 관리하고 했으면 좋겠어요. 개인으로서 이것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데는 상당히 어려움이 많습니다.

 

김봉래 : 혹시 뭐 이 방송을 듣고 계신 청취자라든가 또 불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도 계실까요.

 

안장헌 : 아 우리 불자님들은 늘 절을 자주 찾으시고 특히 부처님께 예를 올리면서 거기 앉아 계신 부처님, 부처님이 왜 그 자리에 앉아 계신지에 대해서 조금 생각을 해보시면서 그래서 절을 올리게 되는데, 예를 들어 108배를 올리면서 이게 제가 하는 방법인데요, 절을 한 번 하고 일어서면서 부처님 한 번 뵙고 합장하고 또 절하고 이래서 부처님 뵙고 합장하는데 이렇게 하다 보면 나중에 부처님의 모습이 가장 거룩하게 내 앞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런 모습을 이렇게 우리가 시각적으로 내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 되는 그런 순간을 위해서 절에 가시거든 그냥 절만 하지 마시고 그런 감흥을 좀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김봉래 : 그래요. 끝으로 우리 안장헌 작가님의 향후 원력, 계획 듣는 것으로 오늘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안장헌 : 금년이 저한테는 우리 문화유산 사진을 찍은 지 50년이 되는 해여서 일단 경주에서 경주 남산 50년전을 한 번 열었고요. 그래서 계속해서 지금 나머지 제가 찍은 필름들과 디지털 이미지들을 정리를 하고 있는데, 정리가 되는 대로 또 여러 경로를 통해서 발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통해서 블로그라든가 기타 SNS를 통해서 발표를 많이 합니다. 어디에 있든지 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봐주시면 항상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표현한 우리 불교 문화 유산이 오래도록 이 땅에 남아서 우리 후손들한테도 계속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김봉래 : 지금까지 안장헌 작가님과 함께했습니다.

 

김봉래 : 여러분 안장헌 사진작가님과 함께한 오늘 이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작가님께서는 사진이라고 하는 것은 언어다, 말이다, 이렇게 지적해 주시면서 사진을 통한 공감의 중요성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제일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공감이고 화합인 것 같습니다. 메시지를 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불교방송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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