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찌는 무더위가 찾아오면 극장가도 대목이라며 반긴다. 고단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대형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흥미진진하고 환상적인 이야기에 빠져들다보면 폭염도 잊고 스트레스도 저 멀리 달아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여름에는 흥행성을 갖춘 대작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해 영화팬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극장가는 코로나19 거리두기 해제 이후 첫 여름 대목을 맞아 그 어느때보다도 흥행 대박 작품이 쏟아져나오기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이번 여름 극장가 흥행대전의 막이 오른 가운데 첫 번째 승자는 마동석 주연의 액션영화 '범죄도시3'가 차지했다. 범죄도시 3은 개봉한지 32일만에 천만 관객을 가뿐하게 달성했다. 범죄도시3이 흥행몰이를 하는 동안 이를 견제할만한 이렇다할 경쟁작이 없었다는 점도 천만 관객 돌파를 가능하게 했다. 최근 한두달 사이에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범죄도시3외에는 믿고 볼만한 작품을 찾지 못한 셈이다.

‘범죄도시3’의 줄거리는 지극히 단순하다. 등장인물들간 선악의 구분이 명확하고 주인공은 오로지 맨 주먹 하나로 악당들을 때려잡는다. 강인한 인상에 우람한 체격을 갖춘 배우 마동석은 물불 안가리는 핵 주먹을 휘둘러 악인들을 때려잡아 관객들의 가슴을 뻥뚫리게 해주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여기에 마동석이 툭툭 내뱉는 대사는 강력한 유머 코드를 장착해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요인이 됐다. 어느덧 마동석은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로 대표적인 흥행 배우로 우뚝 섰다. 강한 남성성에다 법보다도 앞서 주먹으로 악을 처단하는 마동석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고유한 캐릭터로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면 범죄도시처럼 맨 몸으로 악당을 무찌르는 단순명료한 영화에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고단하고 답답한 현실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요즘 범죄도시 같은 영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지나온 후유증 탓에 경제는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고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빚더미에 올라앉아 하루 하루를 연명하다시피 살아가고 있는게 냉정한 현실이다. 여기에다 민생을 외면한채 정쟁에만 몰두하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마저 극에 달하면서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워줄 수 있는 영웅을 애타게 갈구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이 영화의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사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크면 과거를 그리워하고 추억하게 되는게 인간의 속성이다. 현실이 녹록치 않을수록 새로운 시도나 모험에 뛰어들기보다는 익숙한 것에 의지하고 안전 운행을 선호하게 된다.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가 계속 만들어지는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팔순이 된 노배우 해리슨 포드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 5로 15년만에 다시 돌아왔고 60대에 접어든 톰 크루스가 미션임파서블 시리즈 7편을 들고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잘 나갔던 영화의 속편과 후속작이 끊임없이 만들어 진다는 것은 요즘같은 현실에서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방식이 대중들에게 먹혀든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영화에만 해당되는게 아니다. KBS 한국방송공사는 매주 금요일에 방송해온 탐사 보도프로그램 ‘시사직격’을 폐지하고 4년만에 ‘추적 60분’을 부활시켰다. ‘추석 60분’은 1983년부터 2019년까지 방송된 국내 최초이자 최장 탐사보도 프로그램이다. 우리 사회의 시급한 시사 현안들을 다루면서도 과거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시청자들을 끌어모으겠다는 의도가 읽혀진다. 

하지만 현실이 힘겨워도 미래로 나아가려면 늘 익숙한 것에 안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낯설지만 새로운 것들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이 이어져야만 우리는 비로소 진흙탕 속에 피어난 연꽃과 같은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올 여름에는 한 번도 안가본 맛 집, 잘 알려지지 않은 옛 골목길을 찾아나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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