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1980년대 중후반,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서울의 한 특수목적 고등학교를 다녔다. 각 교실에는 소위 금수저들이 넘쳐났다. 대한민국 최고 대기업의 자제, 한국을 대표하는 희극인의 딸, 국민 대부분이 썼다는 볼펜을 생산한 문구업체 사장 아들, 유명 제과업체 창업주의 자녀, 야구 중계로 명성을 날렸던 유명 방송사 아나운서의 장남, 외국계 글로벌 은행 간부 아들 등...이루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부유층 자제들이 주위에 차고 넘쳤다. 점심시간이 되면 고급 승용차가 운동장에 들어서고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유명 인사 부모가 도시락을 자녀에게 직접 전해주기도 했다. 그 도시락에는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런 소세지가 가득차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학창 시절을 보냈던 소위 있는 집 자제들은 대개 명문대로 진학하거나 미국 등으로 유학을 떠났고 돌아와서는 부모의 회사에서 경영 수업을 받거나 큰 회사에 들어가 고위 간부까지 올라갔다. 이따금 부모에 반항해 엉뚱한 진로를 선택하거나 온갖 혜택과 부모 찬스를 뿌리치고 자기만의 삶을 추구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그 비율은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친구들을 주위에서는 대개 부러워했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돈 많은 부모 때문에 고급 과외도 하고 외국 유학도 갈 수 있으니 결국 좋은 직장도 얻고 좋은 조건으로 결혼도 한다고 여겼다. 

전국의 수사 경찰 3만명을 지휘하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 파문을 보면서 우리 사회 엘리트들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대한민국 검사, 고위 공직자를 아버지로 둔 고교생 아들이 아버지의 신분과 특권을 자랑하고 동급생에게 언어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 능력이 많이 부족했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다. 외부 일로 늘 바빴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특권과 기득권을 대물림하려고 노력하는데만 집중하다보니 자식의 인성까지는 돌보지 못했던 셈이다.  아들은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자세 등을 제대로 배우고 익히지 못했고 그 결과 아버지의 앞 길까지 가로막는 일을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부모의 사회 경제적 배경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특권과 반칙으로 이른바 흙수저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고 사회 공동체의 균열을 부추기는 일들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와중에 고등학교때 학교 폭력 피해를 당한 송혜교가 18년을 기다린 끝에 가해자들에게 처절하게 복수를 하는 내용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가 오는 10일 공개된다고 한다. 송혜교의 통쾌한 복수극에 많은 이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박수를 보낼 것이다. 하지만 씁쓸한 기분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금수저와 흙수저, 학폭 가해자와 피해자의 불편한 동거가 계속되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증오의 감정이 자꾸 살아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위로할줄도 모르고 위로받을 줄도 모르는 이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큰 박탈감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는 것은 아닐까 ? 공정과 정의,상식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현실속에서 결국은 모두가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한다는 현실이 안타까울뿐이다.

자신의 처지를 불만섞인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청년 세대들에게 인터넷 마음공부공동체 '목탁소리'를 운영하는 법상스님의 법문을 전하고자 한다.  “전생의 업을 그대로 받을 것이니 이번 생은 내가 아무리 발버둥치더라도 절대 그 업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생일대의 가장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업이란 말과 행동, 생각으로 하는 행위이며 행위에 따라 미래가 바뀌니 우리 삶은 끊임없이 그 궤도를 수정해나가게 된다, 언제나 매 순간 현재가 중요하다. 현재에 어떤 말과 생각과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삶은 매 순간 변화에 변화를 거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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