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에서 인도철학을 전공한 필자가 부처님이 최초로 법을 설한 ‘사르나트’를 처음 방문 한 것은 13년 전 35살 때였다. 많은 선후배 동기들이 이미 학부시절 한 번쯤 가보았던 곳을 뒤늦게 이전 직장을 휴직 하고 배낭여행으로 찾았다. 부처님은 이곳에서 다섯 비구에게 최초로 법을 설했고, 야사 등 55명이 출가하고 모두 아라한이 되자 60비구에게 아래와 같이 ‘전도선언’을 했다.

“비구들아! 길을 떠나거라 여러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세상을 동정하여, 인간과 천신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마라...(중략) 나도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의 세나니 마을로 가야겠다”

세나니 마을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부다가야 인근에 있다. 사르나트에서 320여 km나 떨어진 곳이다. 부처님은 성도 후 사르나트에서 60명의 제자를 얻고 야사의 부모 등 상인계급의 든든한 후원도 받을 수 있게 됐는데, 다시 고단한 길을 되돌아가겠다고 한 것이다. 사르나트는 갠지스강이 있는 힌두교 최고의 성지 ‘바라나시’에서 불과 6km 떨어져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인도의 모든 종교와 사상은 인간은 업(Karma)에 의해 윤회(Samsara)하고 수행을 통해 해탈(Nirvāṇa)할 수 있다고 믿었다. 부처님이 전도선언을 할 당시 부처님과 불교 또한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탈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여러 신생 교단 중 하나였다. 또한 인도에서 해탈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인도철학의 정수로 불리는 '우파니샤드'의 어원이 '가까이'라는 '우파'와 '아래로'라는 '니', '앉다'는 '샤드'의 합성어인 것처럼, 스승과 제자가 가까이 앉아 건네는 비밀스러운 것이었다. 이러한 인도의 전통 속에서 부처님이 교단을 형성하자마자 다시 홀로 전법에 나선 것은 윤회의 바다에서 고통 받고 있는 중생들을 향한 자비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장 번화한 곳까지 걸어 와 법을 설하고, 다시 홀로 길을 나선 것은 고통 받는 이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법을 전하겠다는 간절함과 시급함, 절박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금 우리불교는 다음달 23일까지 1167km의 인도순례를 펼치고 있다. 35살 첫 인도여행은 너무나 고됐고 아찔했던 순간들도 많았다. 귀국하니 몸무게가 4Kg이나 빠져 있었다. 차를 타고 다녀도 힘든 길을 걸어서 간다는 것은 인도를 다녀왔던 이들이라면 더더욱 상상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 지난 15일 자승스님이 인도에서 낭독한 新전도선언과 관련해 동국대 황순일 교수를 인터뷰했다. 바로 다음날 해인사 주지 임명장 수여식 취재를 위해 3.8km 출근길을 걸으며 부처님이 홀로 전도에 나선 도리를 화두처럼 되새겨 봤다.  '과거' 부처님이 그 길을 홀로 걸었기에, '현재' 우리는 함께 걸을수 있다. '미래' 우리불교는 그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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