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 카타르 월드컵의 4강 진출팀이 모두 가려졌다. 지난대회 우승팀 프랑스는 숙명의 라이벌 잉글랜드에 2대 1로 이겨 2회 연속 우승에 한걸음 더 다가갔다. 이번 대회 돌풍의 주역 모로코는 세계적인 축구스타 호날두가 버티고 있는 포르투갈을 잡고 아프리카 국가로는 처음으로 월드컵 4강에 올랐다. 축구황제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는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와 2대2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대 3으로 힘겹게 이겨 36년만의 우승을 향한 도전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영원한 우승후보, ‘삼바군단’ 브라질은 지난 대회 준우승팀 크로아티아에게 승부차기 끝에 2대 4로 져 20년만의 정상 탈환의 꿈이 무너져내렸다. 이번 월드컵은 이제 프랑스와 모로코, 아르헨티나와 크로아티아의 4강 대결로 우승컵의 향방을 결정짓게 됐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여지없이 승부차기에 의해 각 팀의 희비가 엇갈렸다. 승부차기에서 이긴 팀은 전국민들을 열광의 바다로 몰아넣고 엄청난 찬사를 받지만 진 팀은 패배의 충격과 아픔의 무게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더욱이 승부차기에서 골을 넣지 못한 선수는 엄청난 정신적 고통과 자책감에 시달린다. 특히 스타 플레이어일수록 승부차기나 페널티킥을 실축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주위의 시선을 더욱 의식하고 부담감을 더 많이 느끼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축구 영웅 로베르토 바조는 1994년 미국월드컵 브라질과의 결승전에서 승부차기를 실축해 지금도 두고두고 축구팬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바조는 그 이후 몇 년동안 악몽에 시달렸다며 그 때로 되돌아간다면 페널티킥을 다시 차고 싶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잉글랜드의 주장이자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 해리 케인이 프랑스와의 8강전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해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해리 케인은 토트넘에서 손흥민과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어 국내 팬들에게도 낯익은 선수이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페널티킥 전문 키커로 활약해 페널티킥 장인으로까지 불렸지만 이번에는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지난 6월에는 월드컵 본선 진출이 걸린 호주와의 경기에서 승부차기에 실패한 페루의 루이스 아드빈쿨라가 경기 직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이 선수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렇게 썼다. "저로 인해 상처받은 페루 국민과 우리 가족, 친구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아무리 사과해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이 충격을 이겨낼 수 없을 것 같다."

나이 지긋한 분들은 기억하겠지만 지난 1969년 서울 동대문 운동장에서 열린 멕시코 월드컵 예선 호주와의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임국찬 선수는 페널티킥을 넣지 못해 월드컵 본선 진출 좌절의 원흉으로 몰렸다. 임 선수는 주위의 온갖 비난과 압박감을 견디다 못해 결국 고국을 떠나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승부차기로 우승후보 브라질이 탈락한 것처럼 실력이 있어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승자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축구공이 둥글다고 하지만 단판 승부에서 승부차기로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고 패자에게는 너무나 큰 재앙을 안겨준다며 승패를 좌우하는 다른 수단으로 대체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축구선수들은 승부차기를 할 때 극도의 긴장과 부담감을 느끼지만 따지고 보면 누구나 일상 속에서 불안과 두려운 마음을 수시로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 평소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나 과제를 수행해야할 때, 낯선 환경속에서 어려운 일을 해결해야할 때 불안감과 두려움은 더욱 커지고 실패에 대한 걱정과 근심은 자신감을 떨어뜨리면서 할 수 있다는 의욕마저 꺾이게 만든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의 책 '심리학의 힘'에서 어렵고 생소하게 여겨지는 일을 자신에게 익숙한 일로 바꾸는 노력을 하라고 조언한다. 실제 상황을 가정한 사전 연습과 충분한 반복 훈련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마주하는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술과 역량을 키울지, 아니면 장벽과 마주하면서 살아갈지는 각자의 몫이 될 것이다. 페널티킥의 장인 해리 케인은 페널티킥 실축으로 조국의 월드컵 4강 진출이 실패한데 대해 모든 비난을 받아들이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내가 감수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는 서로를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 잉글랜드의 미래는 밝다."

전세계인들을 울리고 웃긴 카타르 월드컵도 이제 4경기만 하면 끝난다. 14일 아르헨티나와 크로아티아의 경기는 남미와 유럽의 자존심 대결로 메시가 마라도나의 뒤를 이어 조국에 우승컵을 안겨줄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일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15일 모로코와 프랑스의 대결은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은 모로코가 축구를 통해 통쾌한 복수극을 펼칠지, 아니면 '아트사커' 프랑스가 이탈리아와 브라질에 이어 사상 세번째 월드컵 2연속 우승의 시동을 걸지를 판가름하게 될 것이다.  누가 승자가 되고 패자가 되든 우리에게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준 선수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2022년 늦가을과 초겨울은 이태원 참사 등으로 우리에게 큰 아픔과 상처를 준 시련의 시간이었지만 월드컵으로 한가닥 마음의 위안을 줬던 시절로도 우리 마음속에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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