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연구원(IBS) 중이온가속기연구소 전경.(사진=중이온가속기연구소 제공)
기초과학연구원(IBS) 중이온가속기연구소 전경.(사진=중이온가속기연구소 제공)

중이온가속기연구소에 대한 현장 취재 일정을 접한 이후 처음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에 나온 CERN이었다. 

CERN은 유럽 핵입자물리연구소를 말한다.

책에서 그 연구소는 핵무기보다 강력한 에너지원인 반물질을 개발했다. 그 뒤 이야기는 생략해도 좋다. 그 연구소의 지하 100미터에 길이 27킬로미터에 달하는 대형입자가속기에 대한 묘사가 떠올랐다. 

양성자를 긴 터널을 통해 충돌시켜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데 우리에겐 '신의 입자'라 불리는 '힉스입자'의 발견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중이온가속기에 대한 이해가 없던 차에 현장 취재를 통해 책에서 본 뒤 상상했던 거대한 규모의 가속기를 직접 눈으로 본다는 사실에 내심 기대가 컸던 것이다.

현장에 도착한 뒤 내 상상력이 깨지는데 걸린 시간은 길지 않았다.

◇ 중이온가속기

중이온가속기란 전기장을 이용해 중이온(헬륨~우라늄)을 빠른 속도로 가속한 후 표적 물질에 충돌시켜 다양한 희귀동위원소를 생성시키고 그 특성을 연구하는 대형연구시설을 말한다.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매개로 물질의 정적 구조 분석과 동적현상을 실시간으로 관측하고, 양성자가속기는 양성자를 이용해 물질의 변화와 중성자를 생산하며 중입자가속기는 중입자를 활용해 암 치료와 기술을 연구하는 것과 비교된다.

방사광가속기가 원자까지 측정이 가능한 데 비해 중이온 가속기는 양성자까지 범위가 넓혀지고, 쿼크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입자가속기가 필요하다.

자료=중이온가속기연구소 제공
자료=중이온가속기연구소 제공

중이온가속기는 희귀동위원소 생성을 위한 것이라고 앞서 말했다. 희귀동위원소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거나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지 않는 수명이 짧고 희한 동위원소를 의미한다.

중이온가속기연구소(소장 홍승우)에 따르면 대략 만 2천 개에 달하는 동위원소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까지 연구를 통해 발견한 것은 3-4천 개에 불과해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동위원소가 더 많다.

중이온가속기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동위원소를 발견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해 물질의 본질 이해부터 우주생성 원리 규명과 꿈의 신소재 개발, 미래 청정 에너지원 확보와 생명현상 규명과 암 치료 기술 연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의 독창적인 연구가 가능해진다.

◇ 라온((RAON, Rare isotope Accelerator complex for ON-line experiments)

대전시 유성구 국제과학로에 자리 잡은 기초과학연구원 중이온가속기연구소에 구축된 중이온가속기를 라온이라고 부른다.

중이온가속기에 대한 설명은 앞서 충분하진 않지만 대강을 말한 바 있다. 

홍승우 기초과학연구원 중이온가속기연구소장.
홍승우 기초과학연구원 중이온가속기연구소장.

라온은 세계 최초로  ISOL(Isotope Separation On-Line 온라인 동위원소 분리방식)과 IF(In-flight Fragmentation 비행파쇄방식)의 두 가지 희귀동위원소 생성방식을 결합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중이온가속기를 운영 중인 나라는 미국과 중국, 일본, 프랑스, 스위스, 독일, 캐나다 등 7개 나라에 불과하다.

이들 나라는 ISOL방식이나 IF방식 하나만을 운영하고 있어, ISOL과 IF방식을 모두 사용하게 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된다고 한다. 
 
이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희귀동위원소를 생성해 연구하는 데 최적의 시설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 중이온가속기연구소의 설명이다. 

이로 인해 전 세계 과학계로부터 크게 주목받고 있다고 연구소측은 강조했다. 

◇ 라온의 본격 운영

라온의 운영은 빔 가속 원리가 적용된다. 양전하를 띤 입자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전기장을 만나면 인력과 척력이 작용하면서 가속한다. 

이를 위해서는 입사기, 저에너지가속장치, 극저온시스템, 중앙제어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중이온가속기연구소의 입사기.
중이온가속기연구소의 입사기.

중이온을 가속하기 위해서는 우선 저에너지 가속장치를 초전도상태로 냉각하는 것이 필요한데 -268도까지 냉각시킨 뒤 고주파 전력 공급을 통해 입사기 아르곤에서 빔을 공급하고 가속을 하면 마지막으로 종합적인 성능을 확인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중이온가속기의 저에너지 가속장치.
중이온가속기의 저에너지 가속장치.

라온은 지난 2015년 12월 기본설계를 마친 후 2017년 6월에 실시설계, 2017년 9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건설공사를 마치고 같은 해 6월에 사용승인을 완료했다.

그리고 지난달 7일에 첫 번째 빔 인출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첫 번째 빔 인출 의미는 국내 최초 초전도기반의 중이온가속기가 구축돼 우리 기술로 설계하고 제작한 저에너지 가속장치가 구축단계를 지나 성능확인 단계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라온의 가동에 들어가게 됐다는 의미이며 10년 간의 대장정 끝에 국내외 과학자들이 희귀동위원소를 생성하고 연구할 수 있는 첫 걸음을 내디뎠다는 의미다.

◇ 중이온가속기의 미래는?

중이온가속기연구소는 앞으로 저에너지 구간의 안정적인 운영과 활용성 검증을 통한 이용자 빔 제공과 함께 고에너지 구간의 선행 연구개발과 본제품 구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료=중이온가속기연구소 제공
자료=중이온가속기연구소 제공

국내외 과학자들이 실제로 라온을 활용할 수 있는 시기는 오는 2024년 10월 이후가 될 전망이다.

그 이전에 고에너지 가속장치 구축이 필요한데, 예비타당성 조사 등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이번 현장 취재에서 본 장치들은 처음 본 것이지만 기대했던 거대한 규모도 아니었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희귀동위원소를 발견하기까지 아직까지 많은 난관을 뚫고 나가야 한다는 설명도 들었다.

CERN이 소설에 등장하고 영화까지 제작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존재를 알게 되었듯이 중이온가속기 라온이 더 대중적으로 알려져야 여론의 지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기자들조차 생소해서 찾기 힘든 중이온가속기 연구소가 미래 세대를 비롯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면 좋겠다는 고민을 하게 만든 현장 취재였다.

중이온가속기연구소는 설명 자료에서 중이온가속기를 '기초과학의 꽃'이라고 수식했다. 그 꽃이 활짝 피고 향기가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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