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58명의 꽃다운 청춘들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속절없이 세상과 이별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끔찍한 참사에 모두가 할 말을 잃은지 벌써 8일째, 여전히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8년전 세월호 참사에 이어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우리들은 너무나 비현실적인 참사의 후폭풍으로 거대한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의 덫에 갇히게 됐다. 필자 역시 기성세대의 일원으로서 너무나 비통하고 참담하며 한 없이 부끄러운 마음에 휩싸여있다. 각박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버텨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불투명한 미래에 담보잡힌, 그야말로 숨막히는 현실에 내몰려야했던 2030세대들이 왜 이런식으로, 숨도 제대도 쉬지 못한채 생을 마감해야했는지, 생각만 해도 너무 가슴 아프고 분노와 원망의 마음을 좀처럼 진정시키기가 쉽지 않다. 

이태원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 공간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곳에는 수천송이의 국화가 놓였고 ‘너희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평화로운 곳에서 다시 태어나 활짝 웃기를 바란다’ 등의 메시지가 붙여졌다. 추모 공간을 찾은 군인과 학생,어르신들에게 꽃을 무료로 나눠주는 시민도 있었다. 정부가 지난달 30일 선포한 이태원 참사 국가 애도기간이 종료됨에 따라 6일부터 서울광장 등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도 철거됐다. 하지만 지난 엿새 동안 서울광장과 25개 자치구 분향소에는 12만여명의 시민들이 조문을 다녀갔다.

공식 애도 기간은 끝났지만 전국민적인 추모 열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추모의 마음과 함께 이제는 서울 한복판에서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이들이 왜 목숨을 잃어야했는지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는지 철저하게 밝히고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차근차근 짚어보고 실천해야할 시점이다. 정치권도 좀 더 자숙해야할 필요가 있다. 정쟁에 몰두해 서로 네탓이라고 우기고 싸우는 모습은 지양하고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대승적인 해법을 찾는데 머리를 맞대야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참사로 소중한 자녀와 이별한 유가족들의 깊은 슬픔은 그 어떤 위로의 말로도 대신할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과 딸이 없어도 해는 늘 뜨고 지는 것을 보면서 유가족들이 느낄 상실감, 무력감과 죄책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하지 않겠느냐는 체념 섞인 이야기들도 들려온다. 이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위로해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 뿐인건지 가슴 한켠이 또다시 저려오는 느낌이다. 가장 친했던 대학 친구가 회사 워크숍에 가서 불의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등졌던 일, 또다른 대학 친구가 갑작스런 위암 발병으로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까지 접하며 각자의 삶에 깃든 고통의 무게가 과연 어디까지인지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사실 우리의 삶은 끝없는 인과(因果)와 윤회(輪廻), 고락(苦樂)의 수레바퀴가 계속 반복하는 것이라고 한다. 즐거움과 행복, 절망과 괴로움이 반복해서 우리 곁을 찾아온다는 뜻이다. 밀물과 썰물처럼 절망과 행복의 때가 다르지만 항상 순서를 정해서 차례로 오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음에는 나에게 무엇이 찾아올지 예측하기 힘들다. 내 삶에 일어나는 그 어떤 사건들도 그때에 그만큼의 크기로 온다고도 한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예전에 법문을 통해 소개했던 <잡아함경> ‘제일의공경’편에 나오는 대목을 꼭 전해주고 싶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此生故彼生).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此無故彼無)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此滅故彼滅)”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다시한번 기원한다. 지금은 섣부른 말보다 침묵해야할 시간이기는 하지만 유가족들에게는 한량없는 슬픔을 딛고 다시 힘을 내달라는 말을 전하고 싶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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