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 연 : 정현채 서울대 명예교수

● 진 행 : 이병철 BBS제주불교방송 방송부장

● 2022년 09월 12일 오후5시35분~6시

(제주FM 94.9MHz 서귀포FM 100.5MHz)

● 코너명 : 100세 시대 죽음을 배우다

[이병철] 네, 첫 시간.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가> 저자시죠. 죽음학 연구가이신 정현채 선생님과 함께 사는 동안 죽음을 공부해야 되는 여러 가지 이유 이야기 좀 나눠봤습니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뭘까요. 결국 제대로 죽기 위해서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방송을 잘 들으시고요. 어쩌면 방법을 찾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 정현채 선생님 모시고 좋은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가 지난번 죽음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오늘 두 번째 주제는 좋은 죽음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우리가 이 세상 태어나는 순간 언젠가 맞이해야 될 그런 당연한 그런 것인데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그런데 왜 우리는 죽음을 그토록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는 뭘까요.

[정현채]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거죠. 본능에 해당되는. 그러니까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가 다 죽음을 두려워하니까 그건 당연한 거고 심지어는 각 고등 종교마다 사후 세계를 얘기를 하지만, 고등 종교를 갖고 신앙생활하는 종교인, 또 신앙인들조차 좋은 사후세계에 가기 위해서 빨리 죽겠다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어떻게든 살려고 하지.

그래서 죽음을 회피하고 이런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잘 사유를 해보면 꼭 그렇게 두려워할 만한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할 이해할 수가 있는 거죠. 그게 아마 이런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간이 아마 동물과 다른 점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병철] 아무튼 불교에는 윤회 사상이 있고 또 많은 이들이 죽음이 끝이 아니다. 이렇게 좀 얘기해 오지 않았습니까? 선생님께서는 줄곧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옮겨감, 이런 메시지를 많이 전해주셨는데 그런 의미는 어떤 의미인지요?

[정현채] 어떤 믿음 그런 게 아니고, 실제로 이제 관찰된 현상 때문에 그런 건데 과학적으로 죽음과 관련해서 일어난 중요한 영적 현상의 첫 번째가 이제 근사 체험이 되겠고 또 임사 체험이라고도 얘기를 하는데요.

두 번째는 이제 삶의 종말 체험에서, 삶의 종말 체험이라고 하는 것은 영어로는 데스 비전이라고 얘기를 하는데요. 근사 체험이라고 하는 건 뭐냐 하면 이제 요새는 심장이 멎거나 하면 전부 다 심폐소생술을 받게 되죠.

그러면서 이제 다시 살아난 사람의 일부, 물론 전부가 하는 건 아니겠지만 일부가 자기가 죽어 있던 동안에 뭔가를 보고 듣고 하는 체험. 또 거기에 대한 기억을 근사 체험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조사된 바에 의하면 다시 살아난 사람의 10% 내지 25% 정도가 그런 체험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삶의 종말 체험이라고 하는 건 뭐냐 하면 임종하는 사람이 눈을 감기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지인의 마중을 받는, 또는 그 임종하는 사람이 멀리 떨어진 공간에 있는 가족이나 지인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는 이런 현상을 삶의 종말 체험이라고 합니다.

[이병철] 영혼이 자기 몸을 떠나고 주변 식구들이 슬퍼하는 모습이라든지 이런 걸 임사 체험이라고 표현하는 것이군요.

[정현채] 그렇죠. 그중에 체외 이탈에 해당이 되는 거죠. 그런데 그거는 사실은 그런 근사 체험이라고 하는 것은 하고 싶어서 하는 체험이 아니고 어떤 사고를 당하거나, 우발적인 사고를 당하거나 해서 겪게 되는 그런 체험을 얘기를 하는데요.

그런데 몸을 벗어나고 이런 것은 사실은 근사 체험 때만 하는 게 아니고 깊은 수면이나 명상 중에도 일어나기도 합니다. 또 사실 우리 모두가 다 그런 체험을 갖고 있어요. 언제 하냐 하면 우리 잠재의식 속에는 오래전에 우리가 삶을 딱 몇 십 년 딱 한번 살고, 소멸해 버리는 연기처럼 홀연히 소멸해 버리는 일회성 존재가 아니고 우리가 수많은 삶을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그런 지난 삶에 대한 기억 속에는 다 그런 게 있는 거죠.

예를 들어서 한 100년이나 200년 전에 그 당시에 가족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에게 오래되고 낡은 육신에서 벗어나면서 가족의 슬픔을 뒤로 하고 떠올랐던 기억 이런 것들이 누구나 다 있어요. 있는데 보통 때는 그런 기억이 봉인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알 수가 없는 거지만 그런 기억들도 갖고 있는 거죠.

[이병철] 첫 주제에도 얘기했다시피 좋은 죽음 이런 부분들을 교수님이 항상 이렇게 알려오신 거 아니겠습니까? 좋은 죽음이란 어떤 죽음인가, 선생님이 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요?

[정현채] 좋은 죽음은 제가 645번째 죽음학 강의하면서 늘 빼놓지 않고 있는 게 좋은 죽음인데요. 사실은 좋은 죽음에 대해서는 뭔가 논문도 많이 있습니다. 가장 기억나는 게 2천년에 미국 뇌과학 케지에 좋은 죽음을 찾아서라는 논문이 하나 실례하는데 그 논문이 특이한 것은 의사 몇 사람이 연구한 게 아니고 말기암 환자 본인들, 그리고 가족들 또 의료진 3자가 모여서 여러 번 회의를 해가지고 좋은 죽음이 이거 아니겠는가 하고 결론을 낸 거죠.

말기암 환자가 들어간 회의에서. 그래서 첫 번째는 객관적인 근거를, 두 번째는 통증을 충분히 완화, 조절 그건 뭐냐 하면 아픈 걸 참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까 마약성 진통제도 충분히 잘 써야 된다,

그런 내용인데 요즘 보면 그 저도 이제 가끔 경험을 하지만 가족 중에 말기암 환자면 사실 살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그런 강력한 진통 효과를 내는 건 마약성 진통제거나 모르핀이라든가 이런 건데 그거 썼다가 마약 중독 될까 봐 걱정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그런 거 걱정할 때가 아닌데. 그래서 그런 걱정하지 말고 마약성 진통제도 아끼지 말고 잘 써야겠다.

[이병철] 살날이 얼마 안 됐는데 그것은 고통 속에서 살지 말고 편안하게 그 순간만이라도.

[정현채] 약물 중독 그런 거 생각할 겨를이 없죠. 그다음에 이제 명확한 의사결정을 하고 또 죽음에 대한 준비는 3자가 같이 해야 되는 거겠죠. 그다음에 이제 작별 인사 잘하기, 그런 게 있고 그다음에 다섯 번째, 여섯 번째가 특이했는데 다섯 번째는 타인에 대한 기여를 통해서, 여섯 번째가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죽음을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느끼는 거 이렇게 얘기를 한 거죠.

[이병철] 이제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우리들의, 일반인들의 죽음 준비 어떻게 하면 좀 될까요.

[정현채]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이 한 진정한 성공이 뭔가, 돼지를 키우든 밭을 갖고 뭘 하든 간에 자기가 태어난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떠나는 게 진정한 성공이다. 얘기를 했는데 거기에 맞는 삶을 살아가면 되는 거죠. 대단한 걸 안 하더라도.

[이병철] 그러니까 소소한 행복이죠.

[정현채] 조금이라도 해놓고, 그러니까 그런 게 있어요. 지하철이나 이런 사람들이 많이 쓰는 화장실 가면 얼마나 지저분해요. 그런 거라도 깨끗이 치워놓고 물 깨끗하게 내려놓고 오면 그게 진정한 성공적인 삶인 거죠. 먼 데서 큰 거, 대단한 거 안 찾아도.

[이병철] 결국 자기 마음에서 찾아야 된다 이런 말씀이신 것 같은데요.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많은 분들을 이렇게 만나오셨을 테고 그중에서도 아 이 부분은 좀 나쁜 죽음 같다. 이런 아까 좋은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요. 그런 나쁜 죽음의 사례에 대해서도 분명 이게 보셨을 텐데요.

[정현채] 어떤 나쁘다기보다는 좀 바람직하지 못한 기억나는 게 대학 후배이기도 한 서울대학병원의 종양내과 김범석 교수가 쓴 책에 어떤 사례가 나오는데 그게 뭐냐 하면 임종을 앞둔 어떤 환자가 병문안 온 자기 동생한테 죽기 전에 한 말이 뭔 줄 아세요. 내 돈 이억 갚아라, 그러고 세상을 떠났다는데 안타까운 일이죠. 마무리를 못하고 세상을 떠난 거니까.

[이병철] 돈의 노예로 살아오셨나요.

[정현채] 채무를 탕감해 줄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어떻게든 동생하고 대화를 통해서 그런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텐데 그런 걸 못 풀고 그냥 가면 그게 제일 아쉬운 거죠. 수명이 다시 육신을 벗어나면 내가 세 경로를 가게 될 거라고 생각을 해요.

하나는 바로 빛의 세계로 건너가는 거죠. 별다른 아쉬움 없이, 그런데 아마 대부분은 아마 상당 기간 자기가 살던 집이나 또 가족들 근처에서 좀 머물다가 그 마음의 준비가 되면 이제 빛의 세계로 건너가는 게 아마 대부분이 되지 않을까.

[이병철] 행복의 지름길로 바로 가지 못하고.

[정현채] 그 그렇죠 가족 얼굴도 한 번 더 보려고 하고. 그게 어떻게 보면 인지상정이라고도 보는데 세 번째는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정현채] 인생에 대한 집착, 재물에 대한 집착과 가족에 대한 집착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그게 바로 지박령, 우리가 얘기하는 귀신이 이렇게 되는 거죠. 어스바운드라고 얘기를 하는데 그래서 이제 TV의 사자의 서에서는 그래서 읽어줍니다. 그러니까 죽음이 임박한 환자나 막 죽어가는 환자한테 들을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사실 들을 수 있죠. 당신은 지금 죽었기 때문에 재물과 가족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걸 반복해서 들려주는 게 그런 거죠.

[이병철] 그렇군요. 선생님께서는 이제 40년 동안 의사로 사셨습니다. 과학적인 집단에서 과학적인 사고로 이렇게 살아오신 분이라는 것이 분명하실 텐데 죽음학 연구를 좀 하시면서 이런 부분에 혼돈, 아까도 어찌 보면 일반인들이 들었을 때 약간 형의상학적인 얘기가 아닌가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거든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 한 말씀 해 주신다면요?

[정현채] 현대 과학교육을 받아오기 때문에 아마 현대인들의 그런 안타까운 문제가 아닌가 생각을 하는데 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고, 또 자로 재고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은 다 최대한 비과학적이고 미신으로 다 보기 때문에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

사실은 자료 제출도 못하고 측정되지 않지만 사실인 것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그런 거죠. 제가 40년 동안 내과 중에서 소화기질환 환자들을 진료를 했기 때문에 보면 속이 아프다, 쓰이다. 속이 더부룩하다, 그 환자 보고 그걸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라 하면 어떻게 증명하겠어요. 주관적인 증상을 어떻게 증명합니까. 내가 속이 더부룩하다, 너 거짓말한 거 아냐, 가짜 아니냐, 증명할 수 없는 거죠. 그건 주관적인 증상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얘기도 하는데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 또 자료 측정되지 않는 거라고 그래서 다 비과학적이고 사이비 이런 건 아니다라는 걸 얘기를 하고 싶은 거죠.

[이병철] 우리가 너무 그런 과학적에 함몰되어 있지 않나, 그런 걸 너무 이렇게 증명해야 하는 그런 게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지 않나, 그런 데서 오는 그런 문제점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 같은 경우는 이제 죽음학 연구를 15년간 쭉 해오셨는데요. 그동안 뭐 변화와 성과들, 이제 처음에는 죽음에서 터부시 했다면 그 나름대로 이제 성과가 좀 있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는데요. 어떻습니까, 선생님?

[정현채] 성과가 있죠.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다루기 시작을 했고 제가 2007년도에 처음 죽음학 강의를 했고 한국죽음학회에서 그리고 아마 2년 뒤인가로 기억을 하는데 어느 의학 학술단체에서 이제 강의 요청이 왔어요. 그래서 한 시간 강의 요청이 와서 강의 제목을 적어내라고 그래서 제가 그때 죽음과 임종이라는 제목으로 하겠다고 그랬더니 같이 거기 학회에서 연락이 왔어요.

강의 제목에 죽음이 들어가 있어서 너무 칙칙하다, 좀 다른 걸로 바꿔줄 수 없겠는가, 그래서 알겠다고 그러고 제가 그걸 지워버리고 아름다운 마무리로 하고 내용은 똑같죠. 한 게 벌써 한 십여 년 전이죠.

그래서 최근 들어오면서부터는 그런 강의 제목에 죽음을 쓰는 거를 회피하는 경우는 별로 없어져서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을 했는데 꼭 그렇지 않더라고요. 바로 작년 12월에 어느 대기업 은퇴한 임원들 모임 자리에서 강의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걸 하기로 했죠. 그래서 죽으면 소멸로 옮겨감 강의를 하겠다고 했더니 거기 저한테 다리를 놔준 분이 그 위의 분들이 제목에 죽음이 있어서 별로 안 좋아한다, 그래서 바꿔줄 수 없겠는가,

그래서 제가 역시 또 뭔지 알아보고 지성인을 위한 아름다운 마무리로. 전반적으로 좋아진 것 같았는데도 아직도 죽음 문화가 척박하구나 하는 것을 좀 많이 느끼게 되죠. 많이 좋아진 것에 의해 틀림없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런 걸 느낍니다.

[이병철] 그래도 시합으로 이렇게 좀 좋아지는 그런 경향을 보이고 있으니까요. 그 노력이 헛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이제 선생님이 이제 학자로서 죽음 연구만 이렇게 해오시지는 않으신 걸로 좀 알고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알리는 일, 많은 일을 해야 되실 것 같고요. 앞으로 과정, 가장 어렵다는 죽음을 강의를 하시면서 아무래도 인식 개선을 해야 되는 그런 부분들에 초점을 맞추고 계시지만, 그래도 앞으로 좀 이렇게 개선해야 할 점, 이런 부분들이 좀 있으시다면 어떤 부분을 좀 둘 수가 있을까요.

[정현채] 그렇죠. 그게 제가 아마 몇 년 전에 어떤 노인들, 저도 노인이 되기는 했습니다마는 노인들 대상으로 죽음 강의를 했더니 끝나고 어떤 노인 한 분이 질문하는 게 우리더러 지금 죽으란 얘기냐, 이런 질문을 해서 제가 아주 당황했던 적이 있는데요. 미리 저 강의 제목도 나갔으니까 싫으면 안 들으면 되는데 기껏 실컷 다 듣고 나서는 이제 그런 질문을 하는 거 보고 아주 당황했던 적이 있는데 그게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죠. 이게 아마 잘못된 선입견 때문에 죽음을 얘기하면 너무 비관적으로 되고 염세적으로 되고 그렇지 않을까 걱정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아까 영국 얘기를 좀 하다 말았지만 영국에서 시작된 데스 카페 모임이 그거죠. 그러니까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임대를 해가지고 관심 있는 사람들이 회비를 내고 모여서 이제 음식, 맥주 한 잔 하면서 죽음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겁니다. 데스 카페 모임인데 거기 참석한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아주 중독성이 있다는 거예요. 이게 오히려 이런 죽음 얘기를 자꾸 함으로써 삶을 좀 더 충실하게 되고 아주 깊이가 있어진다. 얘기를 하는데 뭐 어렵게 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어느 분이, 제가 카페지기로 있는 죽음학 카페 회원 한 분이 보내줬는데, 죽음학 카페를 열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데스 카페를, 봤더니 회사 동료 둘하고 자기까지 셋이 모여서 빵집에서 빵 사다가 커피 놓고 2시간 동안 죽음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는 거죠. 그래서 그걸 나눴더니 정말 삶에 대한 고민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이 해결이 되고 다음에 또 이런 모임을 갖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훌륭한 모임이었다. 그런 자기가 데스 카페 모임을 열고 그 후기를 저한테 보내준 적이 있습니다.

[이병철] 그러니까요. 이거는 참 좀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 이 방송을 듣고 계신 시청자 여러분들도 죽음 공부에 동참하고 싶은 분들도 분명 많으실 거라 보는데요. 그러면 좋은 죽음을 위한 우리가 해야 될 방향성은 좀 어떤 건가요?

[정현채] 그게 돌아가신 법정 스님 수필에 많이 나오는 책이 월든이죠. 미국의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쓴 월든이 많이 등장하는데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월든에서 뭐라고 했냐 하면 사람들 대부분은 조용한 절망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 얘기를 했거든요. 근데 그 150년 전인데 150년 지난 지금도 뭐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요. 주중에 생업을 위해서 일하고, 주말에 술 마시고, 영화 보고, 운동 경기 보고, 또 일하고, 결국은 왜 사는지, 삶의 이유, 목적이 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이런 근원적인 궁금증이나 질문을 하지 않고 질문을 하더라도 대답을 얻지 못하니까 그런 조용한 절망 속에서 사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윌리엄 제임스는 근대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데 100년 전 인물이죠. 윌리엄 제임스가 이제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이라는 책에서 어떤 얘기를 하냐 하면 사람이 어떤 내적인 공허함을 넘어서기 위해서, 또 극복하기 위해서는 육체적으로 한 번만 태어나서는 안 되고 정신적이나 영적으로 한 번 더 태어나야 한다, 두 번 태어나야 한다, 그런 얘기를 했는데 이런 죽음에 대한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아까 얘기드렸던 그런 근원적인 궁금증과 더불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또 죽음에 대한 여러 문제들을 직시하고 매일매일 생각함으로써 저는 그런 내적인 공허함을 극복할 수가 있고 또 그런 조용한 절망 속에서 사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갑자기 또 생각이 나는 게 이제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시갈이 있죠. 갈매기의 꿈이라고 해서 번역된 리츠 버크의 소설이 아마 작년인가 재작년에 나온 지 50주년이 돼서 새로운 개정판이 나온 것도 있는데 문장이 아주 인상적이죠. 이게 다른 갈매기들은 다 어선 뒤 쫓아다니면서 던져주는 생선 대가리 하나라도 더 먹으라고 쫓아다니는데 이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은 그게 아니죠. 높이 나는 법을 연구를 합니다. 높이 날고, 빠른 속도로 하강하고, 그래서 결국 저기 그런 눈앞에 던져지는 어떤 이익, 또 권력, 다툼, 이런 걸 벗어나서 정말 인간으로서의 어떤 삶을 살아갈 건지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하고 그런 삶을 조나단 리빙스턴 갈매기와 같이 살아가는 게 결국 우리가 인간이 추구해야 될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하죠.

[이병철] 앞에 있는 나무만 볼 게 아니라 이 숲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 그러니까 결국은 우리의 끝이라고 흔히들 말하는 죽음에 대해서 잘 살기 위해서 지금의 소소한 행복을 쭉 이어나갈 수 있는 그런 자기만의 어떤 개발이라든지 그런 게 분명 필요하다, 그게 가장 좋은 죽음, 이라고 결론을 내려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귀한 시간에 이렇게 좋은 가르침 이렇게 해 주신 선생님 너무 감사하고요. 끝으로 선생님과 인연을 계기로 죽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진 분들에게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이 좀 있으시다면

[정현채] 죽음은 제가 유튜브 강의 중에 댓글 하나가 신흥 사이비 종교 교주다, 저 보고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 신흥 사이비 종교 교주 하려면 건물 하나 있어야 되고 신도들 모아서 돈을 긁어야지 저는 전혀 그런 걸 전혀 안 하니까 교주 일리도 없고. 그래서 죽음학 하는 것도 뭐 혼자 공부하면 됩니다.

네이버 죽음학 카페에도 그런 죽음학 공부에 도움되는 책이라든가 영화, 이런 목록 같은 게 있으니까 그거 와서 보고 책 구해서 매일 조금씩이라도 그런 공부를 해나가고 또 가족들과 이런 죽음에 관한 대화를 계속하고 이런 게 중요한 거죠. 요즘 웰다잉법 2018년에 발표됐습니다.

그래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서 나는 내가 말기 암이고 임종이 얼마 안 남았을 때 심폐소생술이라든가 또 인공호흡기 장착, 또 항암 화학요법 또 이런 것들을 안 하겠다고 밝혀 놓는 게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인데 그것도 그냥 작성해놓고 안심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가족들한테 끝없이 얘기를 해줘야 돼요. 정말 그런 상황이 되면 본인은 의식 불명이고 말을 못하니까 가족들 의지대로 또 끌려가거든요. 본인은 난 절대 안 받겠다, 했는데도 가족들이 끝까지 중환자실로 모시게 한다든가 이런 일이 아직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가족들한테 틈 날 때마다 나는 절대 안 한다, 절대 안 한다를 세뇌시키듯이 가족들한테 해야지 그 자기가 건강할 때 쓴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제대로 효력을 발휘할 수가 있는 거죠.

[이병철] 진정한 효도는 그런 데서 올 것 같은데요. 알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도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저자이시죠. 죽음학 연구가이신 정현채 선생님 모시고 이야기 좀 나눠봤습니다.

선생님의 책 제목처럼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는요. 죽음을 인생의 마무리 과정에서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 모두는 어떤 고민을 해야 할지,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지 그런 시간 좀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삶의 가장 좋은 날, 바로 이 시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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