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9월 30일 동해 공해상에서 기동훈련을 하고있는 한미일 함정들.사진 오른쪽 선두부터 미 원자력추진 잠수함 아나폴리스함, 원자력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 한 구축함 문무대왕함, 일 구축함 아사히함, 미 이지스구축함 벤폴드함, 미 순양함 첸슬러스빌함(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9월 30일 동해 공해상에서 기동훈련을 하고있는 한미일 함정들.사진 오른쪽 선두부터 미 원자력추진 잠수함 아나폴리스함, 원자력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 한 구축함 문무대왕함, 일 구축함 아사히함, 미 이지스구축함 벤폴드함, 미 순양함 첸슬러스빌함(

 

관객 700만을 넘긴 영화 '한산'은 용맹하고 올곧은 장군 이순신을 인상깊게 그렸는데, 그래도 눈에 띄는 건 거북선이었습니다. 거북선 없는 이순신 영화는 극적인 재미와 감동을 주지 못했을테니까요. 조선시대 주력 함정은 판옥선이었습니다. 장방형에 돛을 달고 지휘관이 탑승하는 망루를 갖춘 평범한 전투선입니다. 하지만 판옥선 위에 창검을 두른 덮개를 얹어 수군의 노출을 막고 앞에는 용머리를 붙여 돌격전에 용이하도록 개량된 함선이 바로 거북선입니다. 백병전을 목적으로 설계된 일본의 전투함정 안택선과는 비교할 수 없이 시대를 뛰어넘은 전투 함정인 겁니다. 

영국 해군사관학교 교재에서 '세계 4대 해전' 중 하나로 '한산대첩'을 소개할 만큼 이순신 장군의 전략과 지형을 이용한 작전이 뛰어나지만 거북선의 활약은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요인이었습니다. 뛰어난 선조들의 조선술은 오늘날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지스구축함과 중형잠수함, 대형상륙함 등 대양해군으로 거듭나기위한 요건을 차근차근 갖출 만큼 우리 함정의 발전은 시나브로 이뤄졌습니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항공모함입니다. 바다를 접한 나라라면 제해권을 장악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공인되고 있습니다. 중국이 소련으로부터 항공모함을 사들여 기를 쓰고 개조해 랴오닝함을 취역시킨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 국가경제의 절대적인 부분을 해양에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자유롭고 안전한 해상교통로를 확보하는 것은 국가 존립이 걸린 문제입니다. 이렇다보니 원해 작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항공전력까지 필요한 만큼 항공모함의 존재감이 뚜렷해집니다.

항모 사업은 문재인 정부때 비로소 본격 추진됩니다. 그나마 체급도 작은 경항모로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디디려 했습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뀐 이후 내년도 국방 예산이 편성되는 과정에서 경항모 사업 관련 예산은 사라졌습니다. 항모 반대론자들의 설득이 먹힌 것으로 보입니다. 국방부를 이른바 '육방부'라 부를 정도로 육군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것도 한 몫 했으리라 짐작됩니다. 건조비용은 둘째치고 막대한 유지비용이 부담스러운데다, 미사일 시대에 항공모함은 '큰 먹잇감'에 불과하다는 논리에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흑해함대 기함인 '모스크바함'은 육지에서 날아온 우크라이나 미사일에 격침됐습니다. 해군이 없다시피한 우크라이나의 미사일 두 방에 만천여 톤의 대형함정이 고철덩어리로 변한 겁니다. 경항공모함에 준하는 엄청난 규모의 함정이 속절없이 무너진 것은 장비의 문제가 아니라 러시아 해군의 무능함에 기인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계란을 한 판에 담지마라"는 주식 격언처럼 전력의 집중은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항공모함의 효용성은 의문입니다. 한반도 유사시를 제외하고 과연 유지비용을 감당해도 부담없을 정도로 감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을지 염려스런 대목입니다. 월남전 파병 이후로 전투병 파병이 이뤄지고 있지 않은데, 전투 목적에 투입되지 않는다면 군함으로서의 가치가 없는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소말리아 아덴만의 청해부대도 구축함 한 척이면 충분한 상황입니다. 이렇다보니 유사시 고작 물자수송이나 교민탈출용으로 이용되는 값비싼 수송함 신세가 아닐까 점쳐집니다.

설령 한반도 유사시여도 우리 해군에서 항공모함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을 것으로 감히 내다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더라도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세계 여러나라들은 인력 투입을 자제한 채 무기 지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자국 국민의 피를 흘리면서까지 애써 돕지는 않는 것입니다. 국방부의 2020 국방백서를 보면 유사시 대한민국에 투입되는 미 증원 전력은 병력 69만여 명입니다. 이 수치를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요. 미국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신뢰하지 않는게 아니라 미국내 반전여론이나 세계대전 확전우려 등의 변수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다보면 미군의 증원 전력은 해·공군 위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우리 항공모함이 나름의 역할을 하지 못할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항공모함을 만들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 판옥선에 지붕을 씌우듯 항공모함을 잠수함으로 둔갑시키자는 겁니다. 미사일과 드론 등이 활약하는 전장의 변화에 발 맞춰 항공모함을 진화시켜 생존성과 공격성을 높인 '21세기의 거북선'을 탄생시켜야 합니다. 잠수항공모함은 이미 2차 세계대전때 등장했습니다. 전투기 3대를 탑재할 수 있는 잠수항공모함으로 일본은 파나마 운하를 공격할 계획이었지만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21세기 잠수항공모함은 드론을 탑재하면 규모면에서도 대형 잠수함보다 크지 않을 지 모릅니다.

우리는 잠수함의 위협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최근 미국·일본과 함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장착한 북한 잠수함을 잡기위한 연합대잠훈련을 펼쳤습니다. 문재인 정부때 중단한 훈련을 5년만에 재개하면서 그것도 독도인근 공해에서 국내 일부 부정적 여론을 무릅쓰고 실시했습니다. 잠수함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북선' 같은 잠수함을 확보하는 데도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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