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월 1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월 1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고 있다.

 

미국은 북미(미국·캐나다·멕시코)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 구매자에게만 최대 7500달러(1천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포함된 인플레 감축법을 시행하고 있다. 지난 16부터다.

미국이 국내산과 수입산의 차별을 금지하는 세계무역기구와 한-미 에프티에이를 위반하면서까지 이 법을 시행한 것은 첨단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겠다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미국 내 제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인기가 바닥을 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가 자국민 보호를 표로 연결시키겠다는 정치적 구상도 한 축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전기자동차, 반도체, 광섬유, 다른 중요한 부품들을 미국에서 만들 것이고, 중산층과 하층민부터 살리는 경제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가 다른 나라(동맹국)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국 경제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결국 한국산 전기차 차별 해소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북미(미국·캐나다·멕시코)에서 조립된 전기차에만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것은 한국에서 생산한 전기차를 미국으로 수출할 때 이 보조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 13조원을 투자하기로 한 현대자동차그룹도 이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투자의 의미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한국 정부는 미국 측에 우리 입장을 말하고 있지만 이는 이미 시행에 들어간 법을 바꿔야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미국은 한··일 안보실장 회동에서 자유주의 국가들 간의 공급망 재구축이라며 오히려 한국에 이해를 당부했다. 뒤통수를 쳐 놓고 어쩔 수 없었으니 한국이 좀 참아달라는 어이없는 압박으로 들린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정부가 법이 발효된 이후에야 합동대표단을 미국에 보내는 등 실질적 해결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캐나다는 법률 통과 전에 로비를 펼쳐 보조금 지급 대상을 '미국산'에서 '북미산'으로 확대하는 것을 관철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합동대표단은 법이 시행에 들어간 이후 최근에야 미국에 보내 이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이는 것처럼 하고 있다. 안덕근 통상본부장이 미국을 방문해 캐서린 타이 미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났고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채널을 가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본부장은 "타이 대표도 사안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본다""이를 잘 설명하고 향후 한미 간 경제통상 관계를 발전·유지하는 데 이 사안이 잘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얘기하고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본부장은 다각적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지만 이를 관철시키는 것은 요원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우리 정부의 요구는 조지아주에 지을 현대차의 전기차 공장이 완공되는 2025년까지 한국산 전기차에 대한 차별 조치를 유예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미국 입장에서 보면 그동안 뭐 하다가 이제와서 황당한 요구에 응해달라는 응석으로 보일 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을 한미경제동맹으로 격상시킨 바 있다. 그렇다면 안보보다 경제를 우선시하는 한미동맹을 역설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출범하자마자 경제동맹에 금이 간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오는 8~9일 한국·일본 등 14개국 통상장관이 참석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장관급 첫 대면회의를 연다. 미국은 내년 말까지 무역, 공급망, 에너지·인프라, 세금·반부패 분야로 이뤄진 IPEF 협정을 타결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는 중국 배제를 염두에 둔 국제통상 규범을 새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도 이 회의에 참석한다. 지금은 참석이 중요한 게 아니다. 전기차 차별 같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 입장에서 이런 협정은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자국민의 경제적 안위도 지키지 못하면서 미-중이 싸우는 한복판에서 미국 손이나 들어준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최선을 다 한다는 게 정부든 개인이든 자기가 가진 능력의 한도 내에서 열심히 한다는 의미일 뿐 반드시 원하는 바를 관철시킨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더라도 윤석열 정부는 총력전을 펼쳐 이를 해결해야 한다. 현대자동차그룹만 나서서 될 일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미국에 뺨을 세차게 맞은 꼴이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에 이어 바이든 정부도 미국 우선주의로 가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한국 우선주의로 가야 한다. 무역국가인 한국이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과연 미국만 졸졸 따라 다니면서 미국이 서명하라는 협정에 서명이나 한다고 자국민의 경제적 안위를 보호한다고 볼 수만은 없다.

무역 1, 2위 국가인 미국과 중국이 죽기살기로 싸우는 틈바구니에서 힘든 것은 현실이지만 적절한 등거리 외교를 통해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위정자의 이념이나 철학만으로 국민을 구렁텅이로 빠지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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