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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김봉래 BBS 전법후원국장

출연 : 허길량 불교미술 일섭문도회 이사장

방송 : 2022년 8월 14일(일요일) 저녁 6시20분(BBS 라디오)

 

 

김봉래 : 우리 사회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입니다. 역사가 발전하느냐 순환하느냐 뭐 이런 데 대한 이론이 있습니다마는 아무튼 우리 인류가 삶의 양식들을 유지하고 시공간에 펼쳐 나아가는 데서 변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대립과 갈등보다는 화합과 포용으로 함께 행복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겠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무형문화재 단청장이셨던 금용일섭스님의 제자들이 회화와 조각, 단청, 공예 등 불교미술 전반에 걸친 1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회가 열립니다. 제4회 일섭문도전인데요, 지난해 열릴 예정이었다가 코로나 상황 때문에 1년 뒤로 미뤄져서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불교미술 일섭문도회의 허길량 이사장님 모시고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김봉래 : 네. 말씀드린 대로 불교미술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일섭문도회가 주최하는 제4회 일섭문도전 불모들의 향연이 오는 17일부터 진행이 됩니다. 그래서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불교미술 일섭문도회 이사장이신 허길량 이사장님을 전화로 연결해서 만나보겠습니다. 허길량 이사장님 나와계신가요.

 

허길량 : 네네. 안녕하세요.

 

김봉래 : 지금 전시회 준비 때문에 땀을 쏟고 계실 것 같습니다. 청취자들께 먼저 인사 말씀 주실까요.

 

허길량 : 저희 불교미술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게 참으로 어려운 일인데요, 저희들 일섭문도회원들이 다 같이 좋은 작품을 하려고 애쓰는 중에 코로나 때문에 현장 작업도 줄어들고 그러니까 틈틈이 각자의 작업실에서 더위를 이기며 많은 작품을 내주신 우리 문도 회원님께 먼저 고맙다는 인사 말씀을 드리고요. 라디오를 듣는 청취자님께도 불교미술은 이렇게 조성되는구나 하는 걸 보여드리게 되어 굉장히 기쁩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지금 거리에 계시기 때문에 일부 소음이 들린다는 점 청취자분들께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자 일섭문도회가 주최하는 일섭문도전 이렇게 소개를 해드렸는데요, 일섭문도회 어떤 단체인지 먼저 좀 소개를 해주실까요.

 

허길량 : 일섭 스님은 조선시대 때 불교미술 계보를 쭉 이어오신 분 중에 아주 당대에 훌륭하신 분이었는데요, 그 계보는 계룡산파 마곡사 금호약효스님을 이어서 보응스님, 일섭스님, 우일스님으로 이어지는 국내 최대의 불교미술단체입니다. 그 단체에 우리 금용일섭스님은 엄청난 작업을 많이 하신 그 분을 기해서 그 이름을 빌려 이 단체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그러면 일섭문도전이라는 것은 언제부터 어떤 취지로 열려온 전시회인가요.

 

허길량 : 우리 일섭스님이 열반 30주년을 맞은 2012년에 첫 번째 전시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김봉래 : 그래서 스님의 제자들이 스님의 불화, 이런 전통을 계속 계승 발전시켜 나가자 그런 취지였던 것 같아요.

 

허길량 : 네. 그렇습니다.

 

김봉래 : 말씀하셨듯이 일섭스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그런 금호약효스님, 보응문성스님, 이런 전통을 계승해서 근대 불교미술을 중흥시킨 불모(佛母)로 일컬어지는 스님이신데요, 어떤 스님이셨는지 소개를 좀 자세히 해주셔야 될 것 같아요.

 

허길량 : 스님은 송광사에서 출발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거기에 불교미술이 상당히 발달해서 실질적으로 저희 조선시대 불교미술이 쭉 이루어진 계보는 계룡산파의 마곡사입니다. 마곡사에 결국은 금호약효스님이 일단은 최고 선두 주자입니다. 그 분을 이어서 쭉 이어져 왔지만 일섭스님 당대에 와서 굉장히 활발했었죠. 그래서 일섭스님은 화승으로 그림을 그리는 스님이자 조각승이었습니다. 엄청난 것들을 일일이 다 말씀드리기가 어렵지만 많은 사찰에 불사를 하고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제자도 많이 길러서 그 분 일섭스님의 제자가 21명이나 배출됐는데, 지금 대한민국 시대에 제일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김봉래 : 네. 그렇군요. 그렇다고 한다면 일섭스님의 작품들을 좀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요, 불화라든가 단청, 조각, 다양한 분야에 이렇게 능통하셨다고요.

 

허길량 : 그렇습니다. 실질적으로 우리 일섭스님은 물론 금호약효스님, 보응스님 이렇게 뒤를 이어서 일섭스님이신데, 일섭스님 당대에 결국은 굉장한 작품을 많이 하셨어요. 실질적으로 화승이지만 조각승, 물론 많은 작품을 남긴 중에서도 우리 일섭스님은 해인사의 사천왕상이라든가 이런 기타 등등으로 심지어는 기록에 의하면 옛날에 금산사 미륵전에 부처님께서 화재로 인해서 손실이 됐을 때 그 조각을 하기 위해서 거기에 관여했다는 기록도 나와 있을 만큼 그렇게 큰 활약을 했던 분입니다.

 

김봉래 : 예. 뭐 조계사 후불탱화도 있다고 들었고요.

 

허길량 : 네. 그렇습니다.

 

김봉래 : 송광사 시왕가부탱화, 백양사 사천왕 소조상, 대원사 삼존불 목조상, 이런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렇게 들었고, 그래서 불교미술 최초로 1970년에 중요무형문화재 48호 단청장에 지정됐다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허길량 : 그렇습니다. 네.

 

김봉래 : 일섭스님의 작품의 어떤 특징 같은 거를 좀 잡을 수 있을까요.

 

허길량 : 특징이라는 건 특별하게 말씀드리기가 어렵겠지만요, 특히 부처님을 이렇게 불화를 그릴 때는 도상을 배치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히 탁월한, 아주 탁월한 그런 도상 배치가 지금에 와서 저희들이 봤을 때 정말 너무 잘 됐다는 것을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저희들이 봤을 때 그 시대의 도상을, 부처님은 우리가 후불탱화를 예를 들어서 한다고 했을 때 가운데 석가모니불을 두시면 문수, 보현 또 좌우로 10대 제자, 사천왕상 이렇게 되는데, 그 배열이 정말 우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배치가 잘 돼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김봉래 : 일섭스님이 1900년에 나서 1975년에 입적을 하셨으니까 근대 시기에 활동을 하셨지만 그 전통은 조선 후기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이렇게 봐도 되는 건가요.

 

허길량 : 그렇습니다. 유일한 일이죠.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불교미술을 하시는 분들이 저희 일섭스님 제자들이 21명인데, 21명이 배출한 분들이 한 300여 명 돼요. 현재 300여 명 중에서 무형문화재가 23명이나 탄생했다는 것은 감히 짐작이 가실 것 같습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그렇다고 한다면 이 문도들이 일섭스님의 그런 화풍, 이런 불교미술의 전통을 잘 계승해 오고 있다 이런 말씀이신 거죠.

 

허길량 : 그렇습니다. 네.

 

김봉래 :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한 3년마다 한 번씩 일섭문도전을 여는 건데, 올해는 오는 17일부터 열린다고요.

 

허길량 : 17일부터 23일까지 인사동 마루아트라는 데에서 열리게 되겠습니다.

 

김봉래 : 그리고 2차로 9월 1일부터 또 송광사에서 열리죠.

 

허길량 : 그렇습니다.

 

김봉래 : 뭐 이번에 일섭스님의 작품도 같이 전시된다면서요.

 

허길량 : 네. 일섭스님 작품이 아무래도 일섭스님이라는 이름을 우리가 사단법인체를 만들었고 그로 인해서 많은 제자들이 활동하니까 어떻게 해보면 일섭스님 열반하신 지가 37주년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작품을, 현재 참 어렵죠. 그런데 절에 모셔져 있는 후불탱화를 이번에 말씀을 드려서 대원사 스님께서 허락을 하셨기 때문에 모시고 있는 부처님상을 내려모셔서 우리가 전시장까지 오는 데에는 상당히 어려움이 많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원사에 있는 주지스님께서 이렇게 동의를 해 주셔서 정말 새로운 이런 도시에 나오셔서 전시를 우리가 하게 되는데 참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특별하게 그런 작품을 한번 전시하게 됐죠.

 

김봉래 : 칠곡 대원사 석가모니 후불탱화가 첫 선을 보인다 이런 말씀이고요. 그 밖에 문도들 작품 이래저래 한 100여 점이 전시된다고 들었는데요.

 

허길량 : 그렇습니다.

 

김봉래 : 뭐 좀. 소개를 해 주실까요.

 

허길량 : 사실 이번에 작품을 보면 93세의 우리 국가무형문화재 전기만 선생님 작품으로 하여금 지금 20대 젊은 우리 문도들까지 단청, 불화, 조각, 공예 아주 다양하게 작품을 선보이게 되겠습니다.

 

김봉래 : 우리 허길량 이사장님도 출품을 하셨죠.

 

허길량 : 그렇죠. 당연히 지금 그건 당연히 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목조각장이니까 관음보살을 전시하게 됐습니다.

 

김봉래 : 아. 한 점만 하시나요.

 

허길량 : 네. 다들 너무 사람 숫자가 많다 보니까 두 점을 못 해요.

 

김봉래 : 와. 대표작이네요.

 

허길량 : 네 그렇습니다.

 

김봉래 : 우리 이사장님도 목조각 분야에서 장인을 하셨고 했기 때문에 최고 수준이다 이렇게 보는 건데, 이번에 관세음보살님을 출품하게 된 어떤 인연이나 사연이 있을까요.

 

허길량 : 뭐 사연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요 제가 쭉 작품을 이렇게 해오면서 오래전에 해놓은 작품이었는데요, 크기가 한 2m 20cm 정도 되니까 큽니다. 크고 그 재료 자체가 우리 느티나무, 궤목이라고 그러는데 아주 단단한 나무예요. 그런 나무로 해서 조각을 했던 것이 몇 년 됐는데 그래도 이사장이라는 그런 명칭 때문에 그래도 내가 출품을 해야 되지 않겠나 그렇게 마음을 먹고 이번에 그 작품을 출품하게 되었습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관세음보살 조성하실 때 좋은 가피, 이런 것도 받으신 것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허길량 : 그런데 벌써 조각을 오십 몇 년째 하다 보니까 항상 똑같은 일이겠죠. 똑같은 일이지만 그래도 부처님을 조각한다는 그 마음은 항상 생각 자체가 우리가 속세에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같이 다 생활하는 속에서 살잖아요. 특별히 우리가 절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부처님 모습을 손을 댈 때는 정말 마음이 정리된 그 상태에서 조각칼을 붙들고 나무를 깎는 그런 자세로 조각을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김봉래 : 네. 그렇군요.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사단법인 불교미술 일섭문도회 이사장이신 허길량 이사장님 모시고 말씀 나누고 있습니다. 허길량 이사장님, 그러면 이사장님께서는 언제 어떤 인연으로 이렇게 불교미술과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요.

 

허길량 : 저는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입을 벌기 위해서 아마 저를 손을 붙들고 순천 선암사라는데 7살 때 선암사에 맡겨졌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한 2년 동안 동자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불교와 인연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절에서 동자 생활을 2년 하시면서 불교와의 인연이 시작이 되었고, 그러면서 불교미술과도 인연을 맺게 되셨다 이런 말씀이시네요.

 

허길량 : 그렇게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김봉래 : 어떻게 스승의 인연을 잘 맺으셨나 봅니다.

 

허길량 : 그렇죠. 그 뒤로 불교미술하고 인연이 맺어진 것은 좀 사연이 있겠지만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자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선암사라는 그 절이 아주 고찰인데, 흙으로 이렇게 불상을 빚고 이렇게 하는 것을 제가 어린 시절에 그걸 보고 있었던 것이 조그만 애가 가서 뭔가 옆에서 장난을 치고 하는 것이 스님들 눈에는 참 어린 게 이게 손재주가 있나 보다 하는 말을 우리 어머님이 절에 왔을 때 그런 말을 해줬답니다. 그래서 그 말을 제가 이제 초등학교를 늦게 들어갔지만 다니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어머니께서. "너는 절에서 살아야 되는데" 하시면서 "스님들이 너를 칭찬을 많이 한다" 그 말이 항상 뱅뱅 돌아서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먹고 살기 힘드니까 뭔가 기술이나 배워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이왕에 내가 조각에 소질이 있는 것 같은데 조각을 배워야 되겠다는 그런 생각으로 정말 그야말로 완행열차를 타고 순천에서 서울을 왔었죠. 그래서 조각을 배우기 위해서 을지로에 있는 공예사를 많이 구경을 하다 보니까 먹고 재우고 할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까 어느 곳을 찾았어요. 거기에서 목조각의 기법을 배우다 보니까 제가 남달리 손재주가 있었다는 게 보여서 그 때 큰 인연을 맺는 것이 인도 이인호 선생님이라고 지금은 작고하셨습니다마는 대단한 어르신을 인연을 맺어서 그 분에게 불화 초본을 이수하고 더욱 더 발전하기 위해서 조선시대 불교미술을 이어오신 우일스님하고 연이 됐습니다.

 

김봉래 : 아. 우일스님이요.

 

허길량 : 거기서부터 제대로 불교미술의 도상이라든가 의식이라든가 그 분한테 직접 무슨 조각을 배운 건 아닙니다. 불교미술은 기법과 의식과 교리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교리에 맞지 않는 조각은 아무 소용 없습니다. 나무 조각에 불과하거든요. 그 분에게 배운 것 같습니다.

 

김봉래 : 아 그러니까 단순한 기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한 교리가 중요하고 의식이 중요하다 이런 말씀이신 거네요.

 

허길량 : 그럼요. 이 목조각으로 부처님을 조성하는 것은 처음부터 끝날 때가 다 의식이에요. 의식. 대단해요. 예를 들어 한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만약에 우리가 저 많은 산중에 있는 나무가 부처님 몸으로 바꿔진다는 것이 딱 선정이 되면 그 때부터 그 나무에 잡귀가 붙지 말라고 사방으로 황토를 뿌리고 동거울, 옛날에는 동거울이죠. 동거울을 걸고 번을 걸고 그리고 산신제와 목신제를 거쳐서 그 나무를 자르게 됩니다.

 

김봉래 : 아. 나무를 자르는 데만 해도 그만한 정성이 들어간다 그런 얘기네요.

 

허길량 : 그렇습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그런데 그렇게 하는 과정에 여러 가지 어려움도 계셨을 것 같은데 어떤 부분들이 좀 어려움이 있으셨는지.

 

허길량 : 네 그렇습니다. 이 목조각은 쉽게 습득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림은 단면이겠지만 조각은 사면이다 보니까 특히 이 목조각은 물론 흙조각도 있고 여러 가지 있습니다마는 목조각은 한 번 칼날이 지나가면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까 조각을 하기 전에 그 통나무를 앞에 놓고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합니다. 정말 이 통나무가 어떻게 어떻게 해서 이렇게 잘라지고 이렇게 잘라내면 모양이 어떻게 되고 하는 것을 머릿속으로 어느 정도 조각이 되었을 때 이제 조각칼을 붙들고 하는 거지 바로 조각을 들어갈 수가 없어요.

 

김봉래 : 그러니까 이미지 훈련을 하는 거죠. 먼저.

 

허길량 : 그렇습니다.

 

김봉래 : 운동선수들도 이렇게 높이뛰기 넘는다고 할 때 스스로 넘는 그 모습들을 스스로 이미지화해서 되새긴다고 그러죠. 그렇게 어려운 과정에서 혹시 그만두고 싶거나 이렇게 포기할 뻔 한 그런 위기 상황 뭐 그런 것들도 있었나요.

 

허길량 : 많았죠. 더구나 어린 나이에 배우니까 뭘 알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잊을 수 있는 것은 계속 조각을 하다 보니까 통나무가 이렇게 멋진 어떤 형상으로 바뀌는 것이 엄청나게 좋은 거예요. 그러니까 힘들고 선배들이 스승들이 이렇게 마구잡이로 많은 것을 저한테 커다란 일을 엄청나게 시키죠. 사실은 조각칼을 잡을 시간이 없습니다. 사실은. 그런데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나한테 주어진 시간에 거기서 자고 먹고 하니까 밤에 조각을 밤새워 합니다. 그러면 모양이 달라지니까 낮에 있었던 일은 다 잊어버려요. 그런 과정을 지냈죠.

 

김봉래 : 네. 어쨌든 자연의 한 나무 조각이 예배의 대상이 되는 그런 존재로 되는 그 과정에 굉장히 신심이 났다 이런 얘기가 되겠네요.

 

허길량 : 그렇습니다.

 

김봉래 : 그러면 이제는 50여 년을 해오셨기 때문에 후학들을 어떻게 양성하고 계신지 그게 궁금합니다.

 

허길량 : 진짜 저는 그 말씀할 때가 제일 답변하기 좋습니다. 저의 제자 중에 제가 무형문화재를 2명이나 탄생을 시켰거든요.

 

김봉래 : 아 그렇군요.

 

허길량 : 대단합니다. 경기도의 목조각당 한봉석이라는 친구가 있고요. 전라북도의 임성한이라는 친구, 이 두 친구가 무형문화재 목조각장으로 지정받았습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허길량 : 정말 엄청 기쁘죠. 참 뭐랄까 자기가 엄청 스승을 사랑하는 거죠. 그리고 스승이 하는 말에 무조건 복종하고 배워왔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물을 가져오지 않았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사제지간의 신뢰, 믿음 그런 것들이 바탕에 깔려 있었겠죠.

 

허길량 : 그렇습니다.

 

김봉래 :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도 이런 일에 관심이 있습니까. 어떻습니까. 요즘에.

 

허길량 : 어려워요. 이제 걱정되는 게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그래도 불화 같은 경우는 사실은 대학에서 많은 젊은 친구들이 나오고 있고, 또 사찰에서 불화 교실이라는 게 생겨서 많이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조각은 참으로 어려워요. 하는 데도 없고 배우는 친구들이 없습니다. 걱정입니다. 사실.

 

김봉래 : 그러면 잘못하면 그 훌륭한 전통이 끊어질 수도 있는 건데.

 

허길량 : 예. 정말 그건 말씀 그대로입니다. 정말 걱정돼요. 전통이 끊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지금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실. 배우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김봉래 : 그래도 지금 한류가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뭔가 새로운 기운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허길량 : 네. 참. 걱정입니다. 왜냐하면 더구나 전통적인 목조각, 특히 불교미술, 불교미술은 불교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 불교를 알아야 하고 부처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부분이 조각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부처님 수인(手印), 손이죠. 손. 그 수인이 상품상생을 하는데 손가락을 이상하게 하고 있다든가 이건 안 되죠. 아무리 잘 만들어놔도 이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부처님 공부가 좀 되여야 되고, 그리고 나서 조각을 배워야 되고. 그런데 요즘 젊은 친구들 어렵습니다. 정말 너무 많은 시간을 요구해요. 이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못 견뎌요. 젊은 친구들이.

 

김봉래 : 그렇군요. 지금 출가자 수도 줄어든다고 하고요 또 불교 신도수도 줄어든다고 하는데 불교미술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이렇게 볼 수 있군요.

 

허길량 : 그렇습니다. 네네.

 

김봉래 : 그렇군요. 그런 면에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이런 데서 할 수 있는 일이 좀 없을까요. 지원을 대폭 한다든가 조건을 조금 더 좋게 만들어준다든가 환경을.

 

허길량 : 그러니까 지금 우리 진행자분께서 말씀을 참 잘하셨는데요, 지금 우리가 한번 보자고요. 국보나 보물이 거의 불교문화재가 아마, 제가 잘은 모릅니다만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고 있거든요. 그러면 오늘날에 지금 국보나 보물, 예를 들어 미륵반가사유상 이런 작품이 몇 천 년 갈 수 있나요. 아니잖아요. 사라지거든요. 그러면 오늘날의 작품이 또 100년, 200년 후에 문화재가 될 수 있는데. 자. 그렇다고 하면 이런 것들이 단숨에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데, 국가나 지자체의 뭐랄까요 높으신 분들이 이런 데 관심을 갖고 좀 걱정을 해야 되지 않겠나. 단순하게 1~2년에 일이 끝나는 일이 아니거든요. 이건 정말 체계가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정부나 지자체에서 정말 관심을 많이 가져줘야 하지 않나 하는 그런 바람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걱정도 되고.

 

김봉래 :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렇게 말씀을 주셨는데, 현재 상황에서 볼 때 어떤 문제점이 좀 있을까요. 현장에서 보실 때.

 

허길량 : 글쎄요. 또 이게 다 모든 게 돈하고 연관이 되잖아요. 돈하고 연관되다 보니까.

 

김봉래 : 예산.

 

허길량 : 그렇죠. 뭔가 예산을 잘 세워서 좋은 작품을 할 수 있게끔. 예를 들어서 공원에다가 어떤 작품을 하고 있는데, 불교 소재로 꼭 부처님이 아니거든요. 불교 소재를 가진 작품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 작품들을 구상해서 작품을 할 수가 있는데, 그런 작품을 할 수 있는 어떤 그런 뭐랄까요 길을 열어줘야지 되지 않나. 그러면 결국 그게 다 돈하고 연관되는 일이기 때문에 개인이 할 수가 없잖아요. 정부나 지자체에서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그런 대안을 자꾸 세워주시면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김봉래 : 그래요. 지금 한류가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또 문화대국으로 도약하고 있다 이런 희망찬 전망이 있지만 사실은 그것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그만한 노력을 하고 대처를 해나가야 하는 그런 숙제를 해결해 나가는 그런 측면이 있다, 이렇게 볼 수가 있는 건데 말이죠. 일섭문도회 차원에서 어떤 계획 같은 게 좀 있을까요.

 

허길량 : 뭐 특별한. 개인 단체니까요. 물론 사단법인 단체라고 해서 크게 국가에서 무슨 보조해 주고 그런 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저희들이 전시를 하는 데는 십시일반 걷어서 정말 많은 분들이 와서 관람할 수 있도록 홍보도 하고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마는 그런 것들을 이건 개인 단체니까 국가나 지자체에서 도와줄 일 이유가 없어요. 기대하지도 않지만 우리 각자, 우리 저희가 이제 꼭 작가라는 개념도 아니고 예술이라는 개념도 아니고 우리 장인이라는 개념이 더 아마 바람직하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 장인들이 정말 좋은 작품을 할 수 있게끔 문도회 차원에서도 항상 서로 소통하고 정보 교환하고 우리 후배들에게 어떤 아이템도 주고 좀 이렇게 끌어주고, 이런 역할을 일섭문도회에서 해야 하지 않나. 그런 측면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아까 말씀을 주신 부분인데요, 단순히 불교 소재가 한정적인 것이 아니라 다양한 소재가 나올 수 있다 이런 말씀을 해주셨거든요. 그런 면에서 전통이라고 하는 것도 계승이라는 측면이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발전시키는, 현대화시키는 그런 측면도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혹시 현대화 측면에서 말씀 주실 부분이 없을까요.

 

허길량 : 요즘에 상당히 발전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대학에서 불교미술을 전공하는 젊은 친구들이, 저희같이 이렇게 오랜 도제식 제도에서 배운 큰 어른 밑에 와서 배우기도 했지만, 그 친구들은 젊은 친구들이 젊은 아이디어와 디자인, 이런 것을 우리 전통하고 이 친구들이 접목을 해서 현대화시키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아주 우리가, 우리 나이 든 제 스승들이 봤을 때 이거 참 생각지 못하는 그런 아이디어가 나와요. 그래서 그래도 희망은 있다 정말. 예를 들어서 저 같은 경우도 저도 나이가 70이에요. 그런데 저한테 배운 홍석하라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친구가 대학에 다니면서 참 열심히 공장에 들어와서 같이 그냥 뒹굴고 라면 끓여 먹고 이렇게 토요일 일요일 아침에 또 월요일에는 학교 가고 방학이 되면 토요일 날 아니 방학 첫날 딱 와서 두 달 동안 공장에서 살고 이러더니 이 친구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대학원을 가고 전국 조각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고 내 제자 중에 하나 홍석하라는 친구인데 그런 친구를 보니까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걸 제가 보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전시회 아주 풍성하게 소기의 성과를 거두시기를 바라겠고요, 끝으로 이사장님 개인적으로 향후 계획이라든가 원력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는 것으로 오늘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허길량 : 개인적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제가 개인전을 11월 22일쯤 돼서 인사동에서 지금 동자상전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던 건데, 그건 특히 소재가 동자지만 재료가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이 쓰던 다듬이목, 다듬잇돌 있잖아요. 그걸로 동자상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며느리하고 시어머니가 다툼이 있으면 며느리는 그 다듬이에 자기 한을 풀었다 해서 이야기가 있는 동자전을 구상해서 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봉래 : 예 그래요. 앞으로도 꾸준히 활동 해 주시고 특히 후배들 많이 길러주시기 바랍니다.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전화라도 연결이 돼서 너무 감사합니다.

 

허길량 :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봉래 : 지금까지 불교미술 일섭문도회 허길량 이사장님과 말씀 나눴습니다.

 

김봉래 : 여러분 허길량 이사장님과 함께한 오늘 이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힘들고 어려운 불교미술 분야에 젊은이들의 관심과 참여가 적어서 걱정이다 하는 말씀 주셨고요.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희망도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전통 미술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하는 말씀도 주셨습니다. 정부, 지자체 그리고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많은 지원을 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불교방송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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