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간 하늘에서 쏟아부은 엄청난 ‘물폭탄’ 세례가 우리의 보금자리와 일상속 공간을 순식간에 집어삼켜버렸다. 짧은 기간에 서울과 중부지방에 쏟아진 집중호우는 기상관측 이래 최고치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서울시내 지하철역 곳곳이 침수돼 운행이 중단되고 주요 도로의 교통이 통제돼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교통대란 속에서 제 시간에 귀가하지 못한 시민들이 물에 흠뻑 젖어 거리에서 발만 동동 굴렀고 일부는 아예 귀가를 포기한채 다시 일터로 돌아가거나 근처 숙박업소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흡사 전쟁터와 같은 나날들이 이어진 셈이다. 지난 8일 이후 집중호우로 인한 사망 실종자는 20명에 이르렀고 주택 침수 등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시민들이 천 5백여명이나 됐다.

특히 지난 8일 밤 서울에는 그야말로 핵폭탄급 폭우가 시내 곳곳을 강타했다.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는 불과 1시간 동안 무려 141mm가 넘는 비를 뿌렸고 8일 하루 동안 신대방동에 내린 강수량은 381.5mm였다. 이는 1907년 우리나라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115년만에 가장 많은 양으로 기록됐다. 앞으로의 기상, 기후 변화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다. 중부지방에 거센 폭우가 쏟아지는 동안 남부지방은 연일 폭염 속에 시달렸다. 제주 지역에는 80년만에 역대 최악의 폭염이 닥쳤고 온열 환자도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경북 울진,삼척 등에서 대규모 산불이 발생해 수많은 주택들과 숲, 나무를 모조리 태워버렸다. 다른 나라들의 상황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유럽은 40도를 넘는 폭염과 가뭄, 산불에 시달리고 있다. 겨울을 맞은 호주는 홍수와 폭설로 벌써 이재민만 3만명이 발생했다.

변화무쌍한 폭우와 이상고온 등 갈수록 빈도가 잦아지고 있는 기상 이변은 화석 연료와 자동차 배출가스 등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나고 이것이 자연 환경 파괴, 지구 온난화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국립기상과학원 자료를 보면 지난 2017년까지 106년동안 여름은 19일 길어지고 겨울은 18일 짧아졌다. 20세기 초에 비해 지난 30년간 강수량은 평균 124mm, 기온은 1.4도가 각각 치솟았다. 지구가 갈수록 더워지면서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북극과 남극, 알프스,알래스카 등의 얼음과 빙하가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다. 북극의 빙하는 30년 안에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올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4계절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봄과 가을이 크게 짧아져 5월부터는 여름, 11월부터는 사실상 겨울로 간주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4계절을 갖춘 대한민국이라는 수식어도 이제는 쓰기 어려워 보인다. 

우리 삶의 터전과 생활 공간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 이제는 먼 미래가 아닌 당장 우리에게 닥친 현실적 위협이자 공포의 대상이 됐다. 기상 전문가는 최근 한 방송에 나와 한국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로드맵이나 청사진은 곧잘 내놓지만 정작 실질적인 실천 행동을 잘 하지 않는 나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에 철저히 대비해야한다는 정부 기관, 지자체의 안내 문자는 쉴새 없이 쏟아지지만 구체적인 재난 대응 매뉴얼이나 행동 요령을 제대로 숙지하고 이행하도록 하는 역할을 당국이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붙고 있는 듯 하다. 반지하 주택과 고시원, 쪽방촌, 비닐하우스 등 재난에 더욱 취약한 주거 공간에 대한 맞춤형 재난 대책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할 때이다. 반지하에 사는 인구는 전국적으로 33만 가구, 이 가운데 20만 가구가 서울에 몰려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기습적인 폭우에 무방비로 당할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기후위기가 가속화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삶의 태도와 방식을 바꿔나가는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동안 물질적인 풍요에만 너무 집착하지는 않았는지,더 많이 누리고 더 편하게 살아보겠다는 욕심 때문에 주위 환경이나 자연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는지 한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질에 대한 소비와 집착보다는 마음의 풍요를 추구하는 생활속의 작은 실천, 베풀고 나누는 삶을 지향하는 태도야말로 기후위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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