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이 백만 대군을 이끌고 오스트리아와의 전투를 시작했다.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험준한 알프스 산맥의 주요 거점을 점령하는 게 필수다. 눈보라와 추위에 맞서 싸우며 천신만고 끝에 산 하나를 점령한 나폴레옹. 백만 대군이 기진맥진해 있는 가운데,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 산이 아닌가벼!" 그 말을 듣고 절반 정도인 50만명이 지쳐서 죽었다. 전열을 가다듬은 나폴레옹은 또 다른 산을 간신히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이 때 나폴레옹이 더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까 그 산이 맞는가벼!" 이 말을 들은 나머지 50만명도 기가 막혀서 죽었다나.

1980년대에서 90년대 쯤 유행하던, 철지난 유머를 왜 꺼내냐고? 지금의 검찰 모습을 보니 이 썰렁한 유머가 새삼 떠올랐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바람이 잦아들고, 서초동에 벚꽃이 피어나던 무렵. 그 때만 해도 서초동 검찰청의 분위기는 '파이팅'이 넘쳤다. 아무래도 문재인 정권이 '검수완박' 법안 등으로 검찰의 손발을 묶어놓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상황에서, 헌정 사상 첫 검찰 출신 대통령이 당선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당시 검찰 사정에 정통한 내.외부의 여러 인사들을 만나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 중, 공통된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검수완박은 검찰의 최대 위기다. 이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무언가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만 여론을 뒤집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당연히 문재인이든 이재명이든 정치권을 겨누어야 한다. 다만, 정치권을 향하는게 너무 대놓고 보이면 반발 여론에 부딪히기 쉽다. 그렇기에 정치 권력 뿐 아니라 경제 자본을 향해서도 칼을 겨누어야 한다"

각 기업과 금융권의 대관 업무 담당자들이 행여나 그 칼 끝이 자신의 회사를 향할까 염려한 건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검찰이 중점적으로 겨누던 곳은 삼성, 그 중에서도 단체급식과 식자재유통 등을 담당하는 계열사, 삼성웰스토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정리된다. 첫째, 삼성이라는 국내 최고 기업집단 내부의 불공정거래 관련 의혹이라는 점에서 이목을 끌기 좋다. 둘째, 국민들이 민감해 하는 이슈인 '먹거리'와 '급식'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공정위의 고발 내용을 바탕으로 삼성 경영권 부당 승계 의혹과 엮을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검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검찰이 삼성웰스토리 사건을 '대장동 사건'과 동급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공정거래조사부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토록 '파이팅'이 넘쳤건만, 벚꽃이 지고 무더위가 서초동을 덮치게 되니 검찰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기존 13명에 파견 2명 등 모두 15명으로 구성돼있던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인원은 7명으로 대폭 줄었다. 공조부가 확대·개편한 지 불과 3개월여 만의 조치다. 3석이었던 부부장검사 직책이 두 자리로 줄였고, 9명이었던 평검사 인원도 4명으로 감소됐다.

아무래도 그동안의 수사 성과가 부진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검찰 안팎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사실, 삼성웰스토리를 향해 '돌격'하는 검찰의 모습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처음부터 웰스토리 사건을 삼성 경영권 부당 승계 의혹과 연결지을만한 구체적 증거나 증언을 검찰이 공정위로부터 거의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기초 자료가 부족한데 막무가내 식 돌격에만 집중했으니, 예상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소식을 접하고 나니, 어린 시절 들었던 '나폴레옹 유머'가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경제 자본을 향해 막무가내로 돌격하던 검찰이 주춤하더니 "이 산이 아닌가벼!"를 외치던 상황이랄까. 인원이 절반으로 팍 줄고, 전열 재정비에 나선 게 이야기 속 나폴레옹의 부대를 닮았다.

여기서 계절 하나가 더 바뀌면, 그리고 '검수완박법'에 대한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검수완박'은 현실이 될 것이다. 검찰의 다급한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일단 찌르고 보자'식 수사와 기소는 지양해야 한다. 또 다시 "이 산이 아닌가벼!"를 외칠 것인가? 신중하지 못한 수사로 오히려 여론이 등을 돌리게 만들 것인가?

하나 더. 사건 수사를 맡고 있는 검사들은 인사에 불만을 품은 채 조직을 떠난 옛 동료들을 앞으로는 상대편의 '방패'로서 만나게 될 것이다. 전직 법무부 장관의 보좌관 출신 검사가 잘나가는 핀테크 업체의 임원으로 영입되는 등, 전 정권과 친밀했던 옛 칼잡이들이 벌써 방패를 들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막무가내 식 돌격으로 과연 이들과 대등하게 맞붙을 수 있을 것인가도 생각해 볼 문제다. 아무튼 급할수록 신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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