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8일 서울 조계사에서 만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스리랑카 전 대통령.
2017년 11월 28일 서울 조계사에서 만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스리랑카 전 대통령.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가 침몰하고 있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최악의 경제난에 직면한 것이다. 정권 퇴진 시위가 날로 격해지는 가운데 마힌다 라자팍사 총리가 결국 사임했다. 상점과 학교는 문을 닫았고, 정부기관을 비롯한 공장과 은행 직원들도 시위 행렬에 동참하면서 국가 비상사태까지 내려진 심각한 상황을 겪고 있다. 국민들에게 남은 건 "속옷뿐"이라는 말도 나온다.

불교국가 스리랑카가 국가 부도 위기에 빠진 건 코로나19 등으로 주력 산업인 관광 부문이 붕괴하고 대외 부채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화가 부족한 데다 물가 급등까지 겹치면서 생필품난이 이어지는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유가 상승으로 인한 석유 재고 부족으로 발전소에 충분한 연료를 공급하지 못하면서 하루 최대 13시간 정전도 발생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소위 약한 나라가 소리없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스리랑카는 한반도의 3분의 1 정도 면적에 약 2100만 명이 모여 산다. 경치가 아름답고 차 문화가 발달한 데다 고대 인도 문화의 영향으로 불교 유적이 풍부해 연중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한국 불교와의 인연도 깊다. 지난 2003년 5월 스리랑카에 큰 수해가 발생하자 한국 불자들이 성금을 모아 스리랑카 현지에 '조계종 마을'을 건설해줬다. 주택 100여 채를 비롯해 법당과 설법전, 마을회관, 보건소, 우체국 등을 세워 양국 불교 발전에 밑거름이 될 것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2017년 11월 당시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스리랑카 대통령이 국빈 자격으로 우리나라를 찾아 문재인 전 대통령과 한국불교의 성지, 조계사를 방문하기도 했다. 시리세나 전 대통령은 여법한 예로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렸고, 스리랑카에서 조계사로 이운한 부처님 진신사리탑을 친견했다.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이 국빈을 사찰에서 접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고, 당시 총무원장이었던 설정스님과 대한민국 대통령, 외국 정상이 조계사 창건 이후 처음으로 나란히 법당 앞에 서는 역사적인 장면도 연출됐다.

그런데도 한국 불교는 스리랑카 지원에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아 씁쓸하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전국 사찰에서 우크라이나 평화기도 법회와 함께 난민 구호기금 등이 잇따르고 있고, 불기 2566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조계사 법요식에서는 '우크라이나 평화'를 염원하는 발원도 이어졌지만 정작 경제 파탄을 겪는 불교국가 스리랑카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차례도 없었기 때문이다.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부족한 이때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불 제자'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한국 불교계가 조계종 마을을 건설했던 것처럼 지금이라도 스리랑카를 향한 자비의 손길을 건네길 바라본다. /문화부 정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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