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는 현실 세계를 ‘삼계화택(三界火宅)’이라고 표현합니다. 일상을 사는 것이 마치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집 안에 사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법화경 비유품>에 나오는 말인데, 온갖 번뇌로 괴로움이 생겨 현실 세계를 사는 게 녹록지 않으니, 지혜로운 깨달음으로 이를 빨리 알아차려 대처하라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사실, 세상이 삼계화택의 위기에 처하지 않았던 때가 없었지만, 짧은 생을 사는 삼계의 중생 처지에서는 지금의 현실이 가장 극심한 삼계화택의 시기로 여겨지는 건 어쩌면 당연합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각종 기후위기와 전염병의 창궐, 그리고 요즘 우리 사회 각계에서 벌어지는 분열과 갈등은 더 심각한 삼계화택의 상황을 만드는 불쏘시개들입니다. 하지만 불타는 집에 사는 이들은 여전히 ‘미혹(迷惑)’과 ‘무명(無明)’에 빠져 대자연의 귀뜸(?)을 건성으로만 듣고 놀이에만 정신이 팔려있습니다.
 
중국 고대 사상가 노자가 쓴 <도덕경>에는 ‘약팽소선(若烹小鮮)’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꽤 오래전 한 신문이 선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알려졌던 말인데, ‘치대국 약팽소선(治大國 若烹小鮮)’의 줄임말입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작은 생선을 굽기 위해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뒤집다 보면 끝내는 부서져서 그나마 붙어있던 살이 다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오랫동안 가만히 지켜보다가 때를 기다려서 뒤집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합니다. 

20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일이 보름 조금 넘게 남았습니다. 며칠 전부터 동네 벽 곳곳에 후보 얼굴이 담긴 홍보물들이 나붙더니, 오늘은 색색의 유니폼을 입은 운동원들이 곳곳에서 웃음 띤 얼굴로 주민들에게 눈인사를 건넵니다. 언론에서는 매일 초박빙의 후보 지지도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져 나오고, 지인들은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지를 제게 물어옵니다. 하지만 비호감, 차악(次惡)의 선거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듯, 저 또한 쉽게 답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먹물 근성 탓일까요, 내뱉은 궁색한 대답은 저 두 단어를 조합한 ‘삼계화택’과 ‘약팽소선’입니다. 

선거를 흔히 ‘민주주의 꽃’이라고 합니다. 국민을 대표해서 나랏일을 도맡을 사람을 직접 선거로 뽑고, 국가의 주인이 거듭 국민임을 상기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각종 번뇌와 고난이 활개치는 삼계화택의 시대, 어려운 상황을 함께 이겨나갈 새 지도자를 뽑는 ‘민주주의의 꽃’ 선거에, 어느 때보다 마지막까지 약팽소선의 자세로 신중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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