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 : 안지예기자

진행 : 이병철 방송부장

20211129(월) 제주BBS ‘아침저널 제주

(제주FM 94.9MHz 서귀포FM 100.5MHz)

방송시간 : 아침 830~ 9

코너명 : 교계뉴스

 

[앵커멘트]

네 매주 월요일은 도내 불교계 소식을 전하는 시간입니다. 지난 한 주 불교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 안지예 기자가 짚어줍니다. 안지예 기자?

[안지예] 안녕하세요.

[이병철] 매년 인기를 끌며, 수강생이 넘쳐나는 제용스님과 함께하는 사찰음식 체험. 지난 27일 취재를 다녀오셨잖아요. 취재 이야기 부탁드려요?

[안지예] 금룡사 사찰음식 체험이 지난 27일 토요일 금룡사에서 열렸습니다.

제용스님을 비롯한 참석한 스무명의 사부대중은 들뜬 마음으로 금룡사로 향했는데요.

(우) 오등선원, 금룡사 주지 제용스님
(우) 오등선원, 금룡사 주지 제용스님

이 날 사찰음식은 지금이 김장철 아니겠습니까. 채소의 왕이라 불리는 무와 배추를 이용한 식단이 주로 선보였는데요.

보이차 영양밥, 배추 된장찜, 파래 연근전, 무 배추 떡볶이 이렇게 네가지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보통 보이차는 음료로서 많이 먹잖아요~ 그런데 쌀을 불릴 때 물대신 보이차로 헹궈낸다는게 참 새로웠어요,

그런가하면 무, 배추 떡볶이가 참 인기였는데, 스님께서는 늘 김장철마다 항상 해먹는 음식이었다~ 특히 노스님들께서 좋아하시는 음식이라면서 소개하셨습니다.

또한 제용스님은 사찰음식이 절에서 스님들이 먹는 음식~이라고만 생각할 것 이 아니라 건강한 자연의 재료를 담은 식재료로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가져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만들고 맛보고 마지막으로는 템플스테이관에서 차 명상까지 이루어졌습니다.

[이병철] 금룡사에서 진행된 사찰음식, 이번을 시작으로 모두 4회에 걸쳐 진행이 된다면서요?

[안지예] 네, 굉장히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이다보니 4회에 걸쳐 진행이 되고요, 일찌감치 정원이 마감되어서 현재 나머지 3차례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금룡사는 직접 텃밭에서 싱싱한 자연의 재료들을 가꾸어 사찰음식으로 내고 있는데요 , 또 내년에는 제미재 라는 이름으로 사찰음식 전용관까지 완공될 예정이어서 더욱 더 기대가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병철] 내일과 모레 정관 스님의 사찰음식 강연이 관음사 아미헌에서 열리죠?

[안지예] 네 맞습니다. 지난 7월 21일과 22일 관음사 아미헌에서 스님의 강연이 있을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강연을 미룰 수밖에 없었는데요.

내일과 모레 관음사 아미헌에서 강연이 열리는데요. 이번에 스님은 사찰 음식을 하기 전에 식재료가 온 곳이 어디인지, 그것을 비춰보면 나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려주십니다.

나는 어디서 왔는지, 나는 누구인지, 이렇게 해서 식재료가 온 곳을 알아서 어떻게 손질하고, 어떤 영양이 있고, 어떤 맛을 평가해서 만드는 방법과 먹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과의 인연을 지어줘서 공덕을 만들어주는 식재료를 지향하는 강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찰음식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전망입니다.

[이병철] 그렇군요. 우리가 지지난주 제주읍성의 돌하르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봤잖아요. 이번에는 대정현성과 정의현성의 돌하르방에 대해 다뤄본다면서요?

[안지예] 네, 맞습니다. 우선 제주읍성의 돌하르방과 대정현성, 정의현성의 돌하르방의 모양이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조성시기가 다르다고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성권 단국대학교 교수는 대정현성과 정의현성 돌하르방이 제주읍성 비슷한 시기에 돌하르방이 어려운 점을 동자복과 서자복을 예로 들었습니다.

이형상 목사가 1702년 기록한 ‘남한박물’ 기록에 따르면 “제주도 도착했을 때 복신미륵은 동자복과 서자복 미륵이 있었던 제주읍성 동쪽의 만수사와 서쪽의 해륜사는 머무는 승려가 없었으며 사찰은 쇄락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형상이 제주도와 왔던 1702년 복신미륵이 있었던 사찰은 이미 쇄락한 상태였습니다. 이를 통해 보면 복신미륵은 1702년 보다 한 참 이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신미륵에는 대정현성과 정의현성 돌하르방의 형식적 특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근래의 연구성과에 따르면 복신미륵의 조성시기는 15세기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병철] 그러니까. 제주읍성 돌하르방의 조성시기 문헌기록을 보면 1754년에 건립된 것을 알 수가 있으니까. 대정과 정의현성의 돌하르방이 한 참 이전에 조성됐다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겠네요.

[안지예] 네 맞습니다. 성문 앞에서 세워져 있었던 제주도 돌하르방의 기본적인 성격은 성을 지키는 파수꾼이자 수호신 역할입니다.

대정과 정의현성 돌하르방의 조성시기를 봤을 때 대정현성의 축성시기가 1418년, 정의현성은 1424년에 축조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정의, 대정현성은 15세기 전반이며, 복신미륵은 15세기 후반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신미륵은 15세기 후반경에 잠시 유행한 원정모형 보개를 착용하고 있다는 점과 다른 불상과 비교했을 때 15세기 후반에 조성된 불상임을 할 수 있습니다.

[이병철] 그럼 정의현성과 대정현성의 돌하르방 기원은 어디에서 왔다고 정성권 교수는 보고 있나요?

[안지예] 네 정성권 교수는 그 부분을 외래적인 요소에서 찾고 있는데요.

첫 번째는 평평한 평면적인 얼굴입니다. 대정현성 돌하르방의 얼굴표현의 특징인데요. 대정현성 돌하르방은 얼굴을 평평하게 만든 후 눈과 코를 돌출되게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 외래적 요소로는 이중동심원을 이용한 돌출된 눈 표현 방법입니다. 대정현성 돌하르방의 눈 표현 방법은 이중동심원을 타원형으로 만들어 평평한 얼굴에서 돌출되게 만들었습니다.

세 번째는 목 주변의 복장 표현입니다. 복장 표현은 목둘레가 띠 형태의 음각으로 파여 있습니다.

네 번째는 허리띠 표현입니다. 대정현성 돌하르방은 다른 돌하르방이나 육지의 석장승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허리띠가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병철] 그럼, 이렇게 대정현성에서 외래요소를 이렇게 4가지로 요약을 했는데 정확한 문헌 기록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내력을 파악할 수 없는 것 같은데요?

[안지예] 네 맞습니다. 정 교수는 대정현성 돌하르방에 제기된 문제를 풀 수 있는 단초를 제주도에 전래되는 구비전승 중에 실마리를 찾습니다.

‘녹핀 하르방’이라는 전설은 노인이 바람 부는 동산에 서 있었고, 노인이 말하기를 “나는 바람 부는 곳 밖에는 서 있지 못하는 사람이요”라는 내용으로 즉, 언덕위에 서있는 노인을 퍼렇게 이끼 낀 석인상으로 해석하면 전설이 만들어 질 수 있다고 정 교수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언덕위에 등신대 크기의 석상이 존재를 살펴보면 돌하르방이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보는 것이죠.

대정현성의 돌하르방은 돌궐이나 몽골의 석인상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정현성 돌하르방은 대정현성이 축성된 후 만들어진 돌하르방이 아니라 그 이전에 조성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돌궐 석인상의 특징과 몽골유풍이 남아있는 돌하르방은 몽골의 탐라지배기와 관련이 높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 시도와 몽골세력의 탐라 지배를 생각한다면 대정현성 돌하르방 중 외래적 요소가 나타나는 돌하르방은 13세기와 14세기 전반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정리하면 제주도의 돌하르방은 돌궐계 석인상의 영향을 받아 몽골인들이 바람 부는 언덕에 조성한 대정현성의 석상이 그 기원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병철]오늘 불교계 소식 준비한 안지예 기자였습니다.

[안지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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