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를 원하겠지. 자신을 둘러싼 법적 논란을 완전 깨끗하게 털고 싶겠지. 그러니까 1심에서 집행유예 나왔는데 굳이 항소까지 한 거 아니겠어? 하지만, 쉽지 않을텐데"

기자가 동료 기자들, 은행권 관계자들, 법조인들을 만나는 자리마다 한 번 쯤은 거론되는 재판이 있었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채용비리 의혹' 관련 재판이었다. 지난 22일 오후, 2심에서 조 회장에 대한 무죄 선고가 나자, 모두들 입을 모았다. "이게 진짜 되네?"

법원이 밝힌 무죄 사유 중 하나는 "당시 신한은행장이었던 조 회장이 인사 부서에 '특정 지원자가 지원했다'는 사실을 알리긴 했지만, 그게 '그를 채용시키라'는 의미는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실제로 해당 지원자는 최종 합격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게 말이 되느냐고? 하지만 조용병 회장이 그동안 보여준 행보를 보면 말이 안 되는 결과만은 아니다. 1984년 평사원으로 입사해 은행장과 회장에 올랐고, 형사재판에 넘겨진 금융권 수장 가운데 드물게 무죄 판결을 받은 조 회장. 어쩌면 그의 행적에서 '리스크 없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비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 "예스맨을 경계하라"...'딴지 당번제' 도입했던 행장

신한은행장이 된 조용병. 임원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무작위의 두 명이 '레드팀'으로 지정됐다.

"네? 그러니까 지금부터 나오는 말마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란 말씀이세요?"

그랬다. 쉽게 표현하면 '딴지 당번' 역할을 하라는 주문이었다. 조 행장이 무슨 말을 하든, 다른 임원이 어떤 발언을 하든, 무조건 '딴지'를 걸고 넘어져야 했다. 그게 매 회의마다 '레드팀'으로 지정되는 임의의 두 사람이 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거수기 노릇'만 하는 임원들을 막고, 듣기 좋은 말만 반복되는 실속 없는 회의가 이어지는 걸 막기 위한 방편이라고 했다. "척 하면 몰라?", "알아서 새겨들어라" 따위의 표현은 사라졌다.

이 같은 행보는 결국, 훗날 조 회장의 법률 리스크를 없애는 데 큰 역할을 한 듯 하다. 한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인사 부서에 특정 지원자의 지원 사실을 알리는 경우, 보통은 "그 사람을 채용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이 때 나오는 표현이 "척 하면 몰라?", "알아서 새겨들어라" 등인 셈이다. 하지만 결국 해당 지원자는 채용되지 않았다. '예스맨'들만 가득한 조직이었다면, 가능한 결과였을까.


■ '라인 타기' 멀리하고, 내 일만 묵묵히

지금이야 '비교적 평온하다(?)'는 평가를 기자들로 부터 받고 있는 신한금융이지만, 2010년대 초반에는 시끄러웠다. 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라응찬 당시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신상훈 당시 신한금융지주 사장, 이백순 당시 신한은행장이 고소고발전을 벌이는 등 극단적인 갈등으로 치달은 사태, 이른바 '신한 사태' 때문이었다.

평소 사내 정치에 관심이 없는 직장인이라도, 조직 내에서 이토록 극단적인 편가르기가 발생하면 누군가의 '라인'을 타지 않겠다고 결심하기란 쉽지 않을 터.

하지만 당시 경영지원그룹 전무였던 조 회장은 어느 '라인'도 타지 않는 중립적인 처신을 했다.

'줄서기'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자기 일만 묵묵히 처리한 덕분일까. 그는 훗날 은행장에 이어 회장 자리에 올랐다.

회장이 된 그는 '줄서기'에 앞장섰던 계열사 대표들을 모두 정리하고, '신한 사태' 이후 지급보류 조치됐던 신상훈 전 사장의 주식매수선택권을 모두 풀어줬다. '신한 사태'가 매듭지어지는 순간이었다. 그가 '라인타기'에 열중했더라면, 회장의 자리에 올랐다 하더라도 '신한 사태'를 매듭짓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여기 저기 눈치보기 바빴을테니... 고소고발전은 계속됐을 것이고, 결국 검찰 소환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법률 리스크' 사라진 조용병號...'리딩뱅크' 탈환만 남았다

최고경영자가 '법률 리스크'를 겪는다면, '리딩 뱅크'로의 도약을 노리기란 쉽지 않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바쁜 상황에서, 더 멀리 더 높이 뛸 겨를이 없는 건 당연하다.

법률 리스크를 떨쳐내고 '조용병 체제'를 더욱 견고히 하게 된 신한금융. 연간 순이익 4조원 돌파가 확실시되면서, 이제는 '리딩뱅크' 자리를 탈환하는 일만 남았다.

남아있는 2번째 임기를 순조롭게 이어나갈 게 확실시 된 조용병 회장. 경쟁사 회장들처럼 3연임을 이뤄내, '정상에 오르고도 리스크 없이, 3연임 할 수 있는 비결'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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