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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김봉래 BBS 전법후원국장

출연 : 윤창화 민족사 대표

방송 : 2021년 11월 7일(일요일) 저녁 6시20분(BBS 라디오)

 

김봉래 : 우리 사회의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 진행을 맡은 김봉래입니다. 우리 한국불교는 통불교적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선불교 전통이 매우 강한 것도 사실입니다. 선불교는 우리들에게 차별적인 언어 분별을 떠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선불교는 참신한 발상과 언어로서 갖가지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하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불교의 이러한 언어는 일반인들이 전혀 납득할 수가 없기 때문에 초월적인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현실적이었던 선불교의 언어를 사구가 아닌 활구로 살려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몫입니다. 그래서 BBS 뉴스 사람들 오늘은 선불교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분이시죠. 도서출판 민족사의 윤창화 대표님 모시고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김봉래 : 네. 앞서 소개해 드린 대로 도서출판 민족사의 윤창화 대표님을 BBS 불교방송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윤창화 대표님 안녕하세요.

 

윤창화 : 네 안녕하십니까.

 

김봉래 : 최근에 학술발표회에서 선문답과 관련한 논문을 발표하셨는데 오늘은 선수행과 언어의 문제를 집중 조명해보고 싶습니다. 최근에 월정사와 통도사가 공동 주최한 세미나죠.

 

윤창화 : 네 그렇죠.

 

김봉래 : 어떤 세미나였죠.

 

윤창화 : 월정사와 통도사가 공동으로 주최했고 주로 통도사의 고승인 구하 큰스님, 오대산의 고승인 방한암 큰스님의 사상과 행적을 조명하는 그런 학술대회였습니다. 한국불교학회에서 진행을 맡았고 양 문중에서 많은 스님들이 참석했고 열 명의 학자들이 참여해서 각각의 주제를 발표했습니다.

 

김봉래 : 네. 열 분이 발표를 하고 또 토론도 있었는데 우리 윤창화 대표님께서도 특별히 또 발표도 하셨는데, 여러 편의 논문 가운데 이번에 특별히 좀 주목할 만한 내용은 어떤 것이었나요.

 

윤창화 : 구하스님이 통도사에서 굉장한 역할을 하셨어요. 통도사에서 학교도 세우고 축산 보림이라는 잡지도 설립하고 강원 교육 수행에 대단한 많은 역할을 하셨던 고승이고, 또 한암스님 같은 분은 널리 알려져 있죠. 초대 조계종 종정을 역임하고 3대 종정도 역임했던, 아주 근대에 참 유명했던 고승이죠. 이 분들의 역할이 어떻게 본다면 근대불교에서는 그 어느 분들의 역할 못지않은 대단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이런 것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들이 많았습니다.

 

김봉래 : 근현대 한국불교의 초석을 놓았던 분들이라고 보면 되겠는데, 우리 윤 대표님께서도 직접 논문을 발표하셨습니다

 

윤창화 : 그렇습니다.

 

김봉래 : “한암과 경봉의 서간문 법거량”이라고 하는 제목인데요, 소개를 좀 간단히 해주시죠.

 

윤창화 : 한암스님과 경봉스님은 상당히 절친했습니다. 한암스님이 경봉 스님보다 16세 연상이었지만 이 두 분은 근대 선승 가운데서도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그러니까 한문으로 서간을 주고받을 정도로 굉장히 지식층의 선승입니다. 이 두 분은 상당히 그런 어떤 지식을 바탕했던 선승들이기 때문에 서로 의기투합하고 마음이 상통해서 총 24편의 편지를 주고받았고, 많이 주고받았죠. 그 속에 선문답과 관련된 것은 7편 정도가 됩니다. 그리고 기타는 선수행에 소위 깨달음 이후에는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 오후보임에 관한 문제들이 5~6편 되고, 기타 나머지는 일상생활 또는 양쪽 사원의 소식 등등을 물었던 편지입니다. 그런데 제 논문 속에서는 오늘날 얘기하는 법거량, 법거량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말로는 선문답이라고도 하는데, 이 법거량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다음에 선문답의 세계, 또 선문답은 어떤 기능을 하고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런 동문서답 같은 형식의 문답이 전혀 일반인들이 보거나 일반 불자들이 볼 때는 전혀 이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이런 것이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하는가, 왜 이러는가, 이런 문제. 그 다음에 이제 경봉스님과 한암스님의 법거량을 구체적으로 고찰하고 이런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김봉래 : 그렇습니다. 우선 그중에서요, 선문답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선문답의 세계는 과연 어떠한가 하는 부분에서 시작을 하셨습니다.

 

윤창화 : 선문답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얘기하면 선을 주제로 해서 주고받는 대화입니다. 문답, 묻고 답하고 묻고 답하고 하는 대화인데, 이것을 오늘날에 우리나라에서는 법거량이라고 많이 합니다. 선문답 또는 법거량인데, 선문답은 선을 주제로 나누고 주고받는 대화이고, 문답이고. 그래서 선어록에는 문답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선문답이라고 하게 됐던 것은 아마 근대 100년 사이에서 선(禪)자를 붙여서 선문답이라고 하게 되어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고, 그다음에 법거량이라고 하는 것은 법을 높이 드날린다 이런 뜻입니다. 불법을 높이, 선법이죠. 선법을 높이 찬양하고 드날린다.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선문답이라는 용어도 많이 쓰지만 그보다는 법거량이라고 하는 용어를 더 많이 쓰지 않나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김봉래 : 이러한 법거량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하는 그 기능의 이야기거든요.

 

윤창화 : 우선은 선문답이라고 하는 것은 스승과 제자 간에 주고받는 문답이죠. 문답이고. 제자가 묻거나 스승이 물을 수도 있습니다. 스승이 먼저 묻는 경우도 있고 제자가 묻는 경우도 있고, 그 다음에 선승 사이에서도 문답을 하고 이런 문답인데,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어떤 상식적이나 논리적인 대화는 아니고 초논리, 초상식적인 대화입니다. 일반적인 대화가 아니죠. 이런 논리적인 대화가 아니고 상식을 탈한 초상식, 초논리적인 대화인데 그 입장은 이제 불이(不二)의 관점.

 

김봉래 : 불이의 관점.

 

윤창화 : 불이, 둘이 아니다. 일원론의 관점이 불이의 관점, 그 다음에 공(空), 일체는 공이라고 하는 공의 관점, 중도(中道)의 관점. 그 다음에 무집착. 흔히 이제 무집착의 관점. 그다음에 진공묘유(眞空妙有) 등의 관점에서 전개하는 어떻게 보면 반야 지혜의 대화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반야 지혜를 나누는 대화.

 

김봉래 : 그래서 지금 무상, 공, 무아, 중도, 무집착, 다양한 말씀을 해 주셨지만 그러한 것들은 결국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분별 의식 등을 해체하는 그런 기능을 갖는 거죠?

 

윤창화 : 그렇습니다. 그런 기능을 같습니다. 우리는 통속적인 어떤 가치관에 매달려 있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들은.

 

김봉래 : 이게 옳아.

 

윤창화 : 네. 이게 옳아. 이게 최고야. 이게 최고의 가치관이야.

 

김봉래 : 내가 최고야.

 

윤창화 : 이게 최고의 가치관이라고 주장할 때 벌써 내가 최고야가 들어가 있거든요. 그리고 상대방은 좀 무시하고 자기중심적 사고를 갖고 있죠. 그런데 뭐 이런 통속적인 가치관이나 이런 내가 옳다고 하는 것에서 우리는 매여 있습니다. 예컨대 운문선사와 어느 납자와의 대화가 하나 있죠. 무엇이 부처입니까? 간시궐(乾屎橛)이다 이런 대화가 있는데, 우리는 부처하면 대단히 어떤 성스러운 그리고 고원한 진리 이렇게 생각을 해서 거기에 꽉 매여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일반에서는 찾을 수 없고 대단히 어떤 고원한 데서만 찾으려고 하는데, 이런 통속적인 관념이나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한 대답이 간시궐이죠.

 

김봉래 : 그러니까 부처님이 뭐냐고 물었는데, 간시궐, 마른 똥 막대기다 이렇게 얘기를 한 것은 부처님이라는 것은 아주 거룩한 존재고 훌륭하신 존재이고 이렇게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을 해 주신 거지 않습니까.

 

윤창화 : 말하자면 통속적인 관념이나 고정관념을 깨뜨려서 하나에 붙잡혀 있는 사고를 해체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선문답이 그런 역할을 한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또 기타 많은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마는.

 

김봉래 : 그래서 뭐 이사구 절백비(離四句 絶百非)라고 해서 일체를 부정하는 그런 논법을 통해서 고정관념, 분별의식 등의 어떤 결박에서 벗어나도록 그렇게 해서 해탈을 얻게 하는 선불교 특유의 수행 방법이다, 수행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하셨거든요.

 

윤창화 : 네. 수행방법입니다. 중국선의 수행 방법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것은 화두 참구와 좌선인데 이 화두 참구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 선문답 아닙니까. 법거량인데, 이 법거량을 통해서 우리는 그런 고정관념을 제거하고. 고정관념이라고 하는 게 마음의 혹이죠. 정신적인 병이고 어떻게 보면 이런 정신적인 병, 마음의 혹을 제거해서 반야 지혜를 이루게 하는 대화죠. 이것은 선불교 특유의 어떤 깨달음을 이루게 하는 방법이고 동시에 많은 납자들을 제접하는 지도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김봉래 : 그렇죠. 흔히 수행하면 좌선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오래 앉아 있고 화두 참구하는 것만 이야기를 하지만 그 성과를 가지고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윤창화 : 그렇습니다. 이 방장이나 조실이 스승인 셈이죠. 지도자인 셈이고 일반 납자들이나 수행자는 수행자의 입장인데, 자신의 현재 상태를 질문하고 묻고 답하고 또 방장이 조실 스님이 수행자를 직접 점검하는, 당송시대에는 특히 이런 독참제도라고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1대1 대화인데 이것을 통해서 방장 스님이 납자를 점검하는 거죠. 몇 마디 말을 딱 해보면 벌써 이 납자가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죠. 그런 것들이 모두 모아진 것이 법거량, 선문답인 셈이죠. 여러 가지 공안(公案).

 

김봉래 : 대표님께서 이번 논문에서 이런 선문답의 성격과 유형에 근거해서 한암스님과 경봉 스님의 선문답을 분석을 하지 않았습니까. 어떤 유형들이 있나요.

 

윤창화 : 선문답에는 모두 18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이것은 분양 선사가 이렇게 구분했다고 해서 분양 선사의 분양 18문이라고 합니다. 선문답도 우리가 보기에는 단순히 한 가지 같지만 선문답을 묻는 데 납자가 묻는 데 있어서 구분해 보면 18가지가 된다는 것이죠.

 

김봉래 : 아. 어떤 것들이죠?

 

윤창화 : 그 중에서 가장 많이 하는 것이 탐발문(探拔問)이라는 게 있어요. 탐발문이라는 것은 탐색해보기 위한 질문입니다. 탐색 해보기 위한 질문, 이것을 험주문(驗主問)이라고도 합니다. 다른 말로는 방장이나 조실을 테스트한 질문이다 이렇게 되기도 합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험주문.

 

윤창화 : 네. 험주문. 우선 탐발문이라는 용어부터 한다면 우리가 서로 상대방이 만나서 저 상대방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간파해야 하는데, 그 간파하려는 방법이 말을 걸어보는 것이죠. 선승 간에 먼저 말을 탁 거는 거죠. 무엇이 부처냐 그러면 저 쪽의 대답이 어떻게 나오는지.

 

김봉래 : 일상생활에서도 사실 그래요. 물어봐서 상대방의 반응을 봐서 그 다음 질문 또 나가고 하거든요.

 

윤창화 : 일상생활에서도 우리가 뭐 친한 사람도 그렇지만 별로 그렇게 안 친해도 진짜 대화를 해봐야 단계적으로 해봐야 저 분 어떤 분이고 어느 정도인지 이렇게 파악할 수가 있죠. 이것이 탐발문입니다. 탐발문이고 탐색 하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죠. 때로는 험주문이라고도 하는데 바꿔 이야기하면 험주문이라는 것은 바꿔 이야기하면 납자가 수행자가 방장이나 조실을 테스트하는 질문입니다. 조실이나 방장이 납자를 테스트하는 질문이 아니고 거꾸로 수행자가 조실이나 방장을 테스트하는 질문인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느 방장 스님이 유명하다고 해도 진짜 유명한지는 알 수 없지 않습니까.

 

김봉래 : 그럼요. 테스트 해봐야죠.

 

윤창화 : 테스트 해봐야죠. 뭐 오늘 우리나라는 방장 스님이 5~6분이 계시지만 중국에는 많거든요.

 

김봉래 : 어떻게 보면 굉장히 민주적인 대화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윤창화 : 굉장히 그럼요. 그런데 자기가 가서 그 분의 가르침을 받고 수행을 하자면 그 분이 정말 안목을 갖고 있는지, 지도 능력이 있는지, 이런 선의 안목을 갖고 있는지를 테스트를 하기 위해서는 하는 수 없이 납자가 가서 먼저 말을 거는 겁니다. 말을 걸어서 하는데 시원치 않은 분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방장을 테스트하고 납자가 방장을 테스트하는 것은 납자의 실력이 수행자의 실력이 상당해야죠. 어느 정도. 그래서 테스트에서 배우기도 하지만 또 한 수를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거에 소위 수행자들은 보통 한 10년 이상 운수 객승으로 이 곳 저 곳을 다니면서 살아요. 그런데 사실 그 목적은 천하의 방장들을 유명하다는 방장들을 만나서 한 수를 배우는 것이 목적입니다. 단순히 만행이 아니고 그것이 목적인데, 시원치 않은 방장이나 조실들한테는 가서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이런 납자들은 정말 고참 납자고 안목이 대단한 이런 분들이죠.

 

김봉래 : 또 어떤 선문답이 있죠.

 

윤창화 : 그 외에는 또 정해문(呈解問)이라고 해서 다시 자신의 견해를, 저의 견해는 이렇습니다, 그런데 방정스님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이렇게 하는 정해문이 있고, 찰변문(察辨問)이라고 하는 것은 내 생각에는 이것이 옳을 것 같은데 그래도 좀 미진해서 좀 더 알고 싶다, 이것을 좀 구별해 주세요라고 하는 것이 찰변문이고. 투기문(投機問)이라해서 자기의 투기와 방장의 의지가 투합하는지 투기문, 격담문(擊擔問) 등 해서 18가지가 있습니다마는 주로 탐발문이 한 80%이고.

 

김봉래 : 자 그렇다면 한암스님과 경봉 스님의 서간문을 이렇게 법거량 부분을 분석을 하는데 간단히 좀 말씀을 해 주실까요.

 

윤창화 : 한암스님과 경봉 스님의 법거량은 제가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6~7편이 되는데 다 소개할 수는 없죠. 그 중에 한 편만 또는 시간이 있으면 두 편만 소개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한암스님 64세 때 그리고 경봉스님 48세 때 나눈 법거량입니다. 1939년도에 나눈 법거량인데, 경봉 스님이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오대산은 첩첩산중이라서 산운과 해월의 정취, 산의 구름 그 다음에 달의 정취가 매우 아름다울 것 같은데, 달의 정취가 더 아름다운지 산의 정취가 더 아름다운지 말해 주십시오.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말씀해 주시는데 답장을 해주시는데, 언어 문자는 사용하지 말고 답장을 해 달라. 편지로 답장을 하자면 언어 문자로 써야 할 거 아니겠습니까. 만나서 답을 한다면 말을 해야 할 것이고. 그러니까 언어 문자 아닌 침묵을 통해서 답을 해 달라는 것은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어떻게 침묵을 통해서 어떻게 답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물론 만나서 직접 한다면 눈을 깜빡깜빡 한다든가 이럴 수도 있죠.

 

김봉래 : 그러면 이것도 탐발문의 성격이겠습니다.

 

윤창화 : 네. 탐발문입니다. 탐발문의 성격, 탐색해 보는 질문이 벌써 그렇지 않습니까. 달과 산의 정취가 아름다운데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말씀해 주시는데 언어 문자는 떠나서 얘기해 주십시오, 이런 얘기죠. 근데 언어 문자를 무슨 재주로 이야기 하겠습니까 아무 하실 수 있는 이야기가 없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에 대해서 한암스님은 일일이 일은 언이요, 이는 어고, 삼은 문이오, 사는 자, 언어 문자를 낱낱이 열거해서 답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역설적인 답이죠. 이런 것이 상식을 초월한 답이라고 할 수가 있겠죠.

 

김봉래 : 일이삼사오가 어떤 것들입니까.

 

윤창화 : 일이삼사오가 우리는 어떤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냐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아니고 언어 문자나 성색동정을 떠나서 답을 해달라고 하니까 역설적으로 일일이 일은 언이고, 이는 어고, 삼은 문이고, 사는 자다 해서 역설적으로 일일이 하나하나 열거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은 대단히 어떤 상식과 논리적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죠. 언어 문자를 떠나서 말해달라고 하는데 일일이 언어 문자를 거론하고 있으니까. 이런 것이 어떤 선문답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경봉 스님께서 편지를 받아볼 때 역시 참 대단하시다 이렇게 볼 수 있죠. 왜냐하면 다른 얘기를 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그것을 갖고서 바로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이런 어떤 스타일이 대단히 선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어떤 언어 문자에서 일일이 거론한다면 안 되겠죠. 그리고 경봉스님은 봄날은 가고 여름날은 깁니다, 이런 말씀도 쓰십니다. 봄날은 가고 여름은 길다는 말은 봄은 짧고 여름은 길다는 이런 뜻인데, 당연한 거죠. 그래서 선에 본다면 주로 꽃이 많이 등장하고 또 이런 산시수 수시수(山是山 水是水), 이런 예전에 성철 큰스님께서도 법문 가운데 산은 산, 물은 물, 산시산 수시수 하셨고 이런 것은 늘상 어떤지 당연한 이치, 당연한 논리라고 하는 모든 법은 자연 그대로다 하는 이런 뜻에서 하고 있는 그런 법문이죠. 그런데 선어록에 보면 특히 꽃이 많이 등장합니다. 매화가 만발했다. 무슨 영운 스님은 복사꽃을 보고 깨달았다. 꽃이 많이 등장하는데, 사실 선어록에서 꽃이 등장하는 것은 화엄경의 영향입니다. 화엄경이 꽃으로 된 경전이다 이런 뜻이 아닙니까. 그런데 물론 일반 꽃이 아니고 비로자나불 법신의 꽃이죠. 진리의 세계가 활짝 피어 있는 이런 꽃인데. 이런 꽃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화엄경 선어록에서 선시나 이런 데서 꽃이 등장하는 것은 화엄경의 영향.

 

김봉래 : 제가 논문을 보니까 경봉 스님이 세 가지를 여쭈었는데 한암스님이 한 자도 답하지 않고 봉투 속에 백지 한 장을 넣어서 보냈다 그런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백지 한 장의 의미 어떤 건가요?.

 

윤창화: 경봉 스님께서 세 가지를 질문했어요. 세존께서는 설산에서 6년 동안 고행하신 후에 설산을 떠나셨는데 화상은 왜 오대산에 남아 있습니까. 또 백용성 스님이 입적하셨는데 지금은 어느 곳에 있습니까. 화상은 열반하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뭐 이런 것 세 가지를 질문하셨는데, 여기에 백지 한 장을 보내셨는데. 백지라고 하는 것은 뭘까. 뭐 우리 과거에도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마는 사실은 공을 뜻하죠. 백지라고 하는 게. 이런 세 가지 질문 다 하나의 공으로 처리하는 무언의 의미, 공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또는 뭐 달리 얘기하면 그대 자신이 한 번 여기다 답을 써보시오, 이런 의미라고도 할 수가 있겠죠.

 

김봉래 : 아. 백지를 내어주셨군요. 스스로 답해보라.

 

윤창화 : 스스로 답해보라 뭐 이런 얘기일 수도 있죠.

 

김봉래 : 네. 알겠습니다.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도서출판 민족사의 윤창화 대표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 윤창화 대표님께서는 사실은 불교 전문 출판사죠. 대표로 일하고 계신데, 늘 이렇게 선불교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으시고, 논문도 많이 쓰시고, 또 책도 내시고. 제가 읽어본 책 중에 <당송 시대 선종 사원의 생활과 철학> 이라는 책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거든요. 왜 당송 시대 선종사가 중요한 겁니까.

 

윤창화 : 오늘날의 한국선을 알자면 당송 시대의 선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죠. 우선 당송 시대 선은 선이 가장 르네상스를 이루었던 시대입니다.

 

김봉래 : 아. 선의 르네상스요.

 

윤창화 : 선이 가장 부흥했던 당송 시대, 당 중기부터 송대, 많으면 남송까지 근 5~6백년 동안 중국 종교계의 90%는 선이 거의 싹쓸이했다. 불교의 90%는 선이고 오로지 중국 천하를 통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봉래 : 그 이유가 뭡니까.

 

윤창화 : 그것은 이들의 뛰어난 안목과 그리고 당송 시대 선승들은 대단히 박학다식했습니다. 시문학이 뛰어나죠. 그런데 설두중현 선사의 공안집이라든지 혜홍각범 선사의 시집 같은 거 보면 중국 일반 시인들이 깜짝깜짝 놀라는 이런 훌륭한 시들입니다. 문학적으로 대단합니다

 

김봉래 : 궁금한 게요. 선수행을 할 때는 말을 하지 마라, 생각을 하지 마라 이렇게 일단 교육을 시키는데, 어떻게 그많은 시와 문학들이 말이 한량없이 쏟아져 나올 수가 있습니까.

 

윤창화 : 네. 선수행할 때는 말을 하지 마라. 언어 문자를 사용하지 마라 이런 얘기가 많아서

사실 그들이 언어 문자나 학문을 안 한 것처럼 오해되지만 그거는 착각이고, 잘못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거고, 당송 시대 선승들은 굉장히 박학다식하다. 예컨데 우리가 간화선을 만드신 대혜종고 선사 같은 분 굉장히 박학다식합니다. 그 어록이 30권입니다. 자그마치 30권. 현대에 번역해서 무려 10권이 나가는데 굉장히 말씀을 많이 하신 거죠. 근데 그 말씀을 본다면 많은 경전의 말씀, 경전의 문구가 쏟아져 나오고, 중국 고전의 문구도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그럼 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고 어떻게 그런 박학다식을 유지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부를 하지 않고 언어 문자적인 공부를 하지 않고는 절대 박학다식할 수가 없습니다. 말이 유창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부처님께서 깨달았다고 하는 진리도 우리가 언어 문자를 통해서 말을 통해서 전달하지 침묵을 통해서는 불가능할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전달할 것이냐. 그건 정말 뛰어난 언변으로 전달해야겠죠. 그래서 중국 선승들은 유명했다고 하는 선승들은 다 박학다식합니다. 임제 선사도 그렇지만 백장회해, 마조도일, 운문문언 선사, 동안상찰 선사, 묵조선의 굉지정각 선사, 대혜종고 선사 이런 분들은 뭐 중국의 지식층들과 못지않은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무(無)자니 간시궐이니 마삼근 이런 것도 다 언어 문자죠. 이 언어 문자를 사색하는 것이지 언어 문자가 없으면 사색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김봉래 : 우리 한국불교는 통불교적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또 선종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우리 한국불교가 발전하기 위해서 한국의 선원 문화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여론도 있습니다. 대표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윤창화 : 한국은 통불교인데, 그래도 성격은 선종 중심이죠. 이유는 염불문이나 천수경 본다면 전부 다 선구 중심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통불교인데 천수경이 통불교의 하나의 대표적인데 그 속의 80%는 선문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통불교이지만 선이 중심이고 조계종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선을 뜻하는 말이죠. 간접적으로. 조계 육조 혜능의 가르침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선종 중심이기는 해도 오늘날에는 이렇게 선 일색으로 가서는 이 시대에 적응할 수가 없죠. 그래서 선 말고도 교학도 해야 하고, 현대 문물도 해야 하고, 또는 사회와의 대응, 대화 대응도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는 선 일색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선을 좀 더 체계화하고 현대화하고 구체적으로 해서 선수행도 앞으로는 체계를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산속에서 좌선하는 분들만 사용하는 수행법이 될 가능성이 크죠.

 

김봉래 : 네. 선수행이 체계를 잡아야 한다 이렇게 간단히 말씀을 주셨지만 대표님께서도 나름 그런 어떤 대안 같은 거를 가지고 계신가요.

 

윤창화 : 가장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면 문제점이라기보다는 좀 더 보완했으면 하는 문제는 너무 좌선 일변도로 가고 있다, 한국 선이. 이렇게 저는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선이 너무 좌선 일변도, 앉아 있기만 한다. 그래서 하루에 보통 8시간 최하. 보통은 10시간 많으면 12시간씩 앉아 있는데 사실 선이 아주 부흥했던 훌륭한 고승들이 많이 나타났던 당송 시대 중국 선종 사원에서는 하루에 5시간 이상을 앉아있지 않습니다. 5시간 그 이상은 앉아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도적으로 그렇게 앉아 있지 않고 그런데도 많은 훌륭한 고승들이 나왔거든요. 그런데 예컨대 지금 오늘날 10시간, 12시간 앉는다면 그 당송시대보다 배에 가까운 깨달은 선승들이 나타나야 하지 않을 거 아니겠습니까. 시간적으로 보면. 사실은 꼭 그러냐는 할 수는 없겠지만 이 좌선 일변도에서 벗어나서 선어록도 보고, 특히 임제어록 같은 것은 반드시 봐야 합니다. 선 수행자로서 임제어록을 보고나면안목을 적립하게 됩니다. 무문관 또 육조 단경 이런 한 세네 가지는 반드시 봐야 합니다.

 

김봉래 : 우리 대표님께서도 평소에 이제 수행을 하시면서 또 이렇게 어록도 보시고 그러고 있으신 거죠.

 

윤창화 : 네네.

 

김봉래 : 그러시구나. 그런 면에서 혹시 우리 불교 종단에 이렇게 좀 당부하고 싶은 말씀도 계실 것 같아요.

 

윤창화 : 뭐 종단보다는 선원이라고 할까요. 선수행으로 하는 분들한테 너무 좌선 일변도로 가지 마시고 시간 나는 대로 선으로 그걸 좀 보시라. 그 중에서도 아까 말씀드린 임제어록, 육조단경, 무문관 이 세 가지 정도는 좀 반드시 보셨으면 좋겠다. 우리가 훌륭한 선어록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 선승들이 자기가 깨달았던 방식을 설명해 놓고 깨달았던 세계를 설명해 놓은 것이 선어록 아닙니까. 어떻게 본다면 지침이 되는 선의 지침이 되는 책인데 이런 책들을 하나도 보지 않고 어떻게 수행한다는 것입니까. 사실상 잘못된 길을 갈 가능성이 크죠. 당사자인 자신은 내가 대단히 올바르게 수행하고 있다고 하지만 훌륭한 고승들이 볼 때는 엉뚱한 길을 가고 있는 거죠.

 

김봉래 : 그러니까 그런 분들의 말씀에 비추어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거니까요.

 

윤창화 : 네. 그 점검할 수 있는 방법이 과거 훌륭했던 선승들의 어록 그분들의 말씀을 기록한 어록을 봐야죠. 그렇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김봉래 : 자. 그러면 오늘날에는 소통을 잘해야 되는 그런 시대이고 온라인으로도 소통이 되는 그런 시대가 됐는데, 우리 사회가 보면 갈등도 심하고 서로 대화가 잘 안 되는 이런 부분이 많은데, 우리 모두가 이런 선공부의 어떤 기초가 되는 공부를 해서 정말 이렇게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좀 잘했으면 좋겠는데, 혹시 그런 면에서 BBS 불교방송 같은 매체에도 이렇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계실까요.

 

윤창화 : 네. 워낙 뭐 BBS 불교 방송은 부처님 말씀을 잘 전하고 있고 또 제 주변에도 불자들이 보면 늘상 불교방송을 켜놓고 있는 불자들을 많이 볼 수가 있어요.

 

김봉래 : 아 감사합니다.

 

윤창화 : 아. 참 불교방송의 역할이 참 크구나. 저 분들은 하루 종일 켜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우 좋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불교방송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은 뭐 신문이 아니고 방송으로 전국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좋은 것이죠. 또 하나는 뭐 우리가 너무 개인적인 주장이 강한 것은 그다지 오늘날 사회에 바람직하지 못하죠. 공이라고 하는 입장도 자기 자신의 생각을 비우라는 뜻 아닙니까. 나는 옳다는 생각을 비우면 되는데 안 비우니까 갈등이 심하고 트러블이 생기는 것입니다. 특히 화엄경 같은 경우가 화엄경에 유심 사상이라는 게 고정된 마음에서 탈피하라 이런 거 아닙니까. 일체는 유심조다. 그래서 그런 것, 너무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좀 벗어난다면 갈등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김봉래 : 불교방송이 그러한 화합 또 화쟁의 중심체로서 역할을 좀 다 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말씀으로 이해를 하겠고요.

 

윤창화 : 잘 하고 있으시니까.

 

김봉래 : 시간이 다 되어가지만 그래도 우리 윤창화 대표님의 앞으로의 원력과 계획, 이게 궁금해요. 불교 전문서적도 지금 40주년이 넘었지 않습니까.

 

윤창화 : 민족사는 올해로 41년 되었습니다

 

김봉래 : 그러니까. 41주년, 지난해 40주년 때 제가 인터뷰를 했는데. 그 동안의 성과도 있으시고 또 앞으로 계획도 있으실 것 같아요.

 

윤창화 : 네. 뭐 민족사라고 하는 출판사 차원에서는 불자들이 어떻게 좀 더 불교를 알기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어야겠다 이렇게 좀 고심하고 있고, 저 개인적으로는 선을 어떻게 좀 더 체계화시키는, 좀 더 현대에 맞게 체계화시키고 한국의 선승들이 한국의 모든 사회에 답답한 마음을 해소시켜줄 수 있고 고민을 해소시켜 줄 수 있고 또 번뇌를 제거해 줄 수 있는 이런 좋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이런 데 좀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불교 그러면 항상 보면 너무 어렵다 하는 게 고정관념이거든요. 한자를 비롯해서 또 전문용어가 있기 때문에 사실 그 단계만 조금 학습이 되면 불교도 정말 쉽고 친절한 종교라는 걸 알 수가 있는데, 처음 도입이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윤창화 : 네. 언어 문자 때문에 그런데 이걸 어떻게 좀 더 쉽게 전달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되죠.

 

김봉래 : 그래서 정말 선의 언어가 조금 더 교과서나 어록에 있는 언어만이 아니라 실제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언어로 해서 사구가 아닌 활구로 거듭나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좀 해보거든요. 그런데 사실 보면 요즘에 젊은 아이들 소통하는 언어를 보면 대화가 안 돼요. 저희 기성세대하고요. 이런 부분도 우리가 좀 터놓고 쉽게 서로 통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도 좀 들어요.

 

윤창화 : 그런 관점 하에서 방송이나 언론, 신문에서 자주 이런 프로그램 만드시고 한다면 점진적으로 어려운 언어들이 좀 쉬운 언어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김봉래 : 네.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윤창화 : 네 감사합니다.

 

김봉래 : 지금까지 민족사 윤창화 대표님과 함께했습니다.

 

김봉래 : 여러분 윤창화 대표님과 함께한 오늘 이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선수행이요 실참 실수와 더불어서 법거량이 함께 있어야만 균형을 이룰 수 있다, 그런 말씀 되새겨 봅니다. 우리 모두 선수행하는 선공부하는 마음으로 서로 소통을 잘 해서 활발발한 세상,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불교방송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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