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우리 집 꼬마와 함께 서울 남산에 올랐습니다. 때아닌 휴일 ‘한파 특보’ 소식에 저물어가는 가을이 아쉬워 부랴부랴 나섰습니다. 식물원주차장에서 남산을 향해 오르는 등산길. 발밑의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와 푹신한 흙길, 오랜만에 맡는 숲 향이 좋았던지 아이가 선두로 치고 나섭니다.

아침 한때 다녀간 ‘싫어 마녀’는 어느새 사라지고 날렵한 다람쥐 한 마리가 되어 울퉁불퉁 경사진 숲길을 이리저리 빠르게 오릅니다. 행여 다칠 새라 바짝 뒤쫓다가도 오히려 마스크 속 헐떡이는 숨소리가 도드라질까 봐 “잠시 쉬었다 가자”는 말로 감춰봅니다.

마스크를 쓰고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요즘 아이들, 오히려 마스크를 벗는 게 익숙하지 않나 봅니다. 인적 없는 숲길에서 마스크를 내려 물 마시고 신선한 공기를 폐부에 들이는 시간도 못 미더운지 이내 올려 씁니다. 세상에 태어나 삶의 대부분을 마스크를 쓰고 지냈으니 오죽 적응됐을까 싶어 안타까우면서도 대견하고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한편으론 미래 세대들은 이미 코로나와의 공존 시대에 적응할 준비를 마쳤는데, 팬데믹 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어른들은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 채 남의 탓 만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코로나19 긴 터널의 끝이 보이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전염병 확산이 통제되고 있고, 백신 접종률도 높아졌습니다. 정부는 일단 다음 달 1일부터 단계적 일상 회복, 즉 ‘위드(with) 코로나’로의 방역체계 전환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고강도 일상 방역 조치도 내일부터 일부 완화되고, 대기업들은 그간 중단했던 대면 회의와 교육, 출근 비율들을 단계적으로 늘려간다고 합니다.

권고로부터 시작돼 이제는 의무가 된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 1년 8개월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병’이라는 낯선 질병으로부터 그나마 우리를 제일 안전하게 지킨 유일한 재래식 무기였습니다. 코로나19와의 공존 시도인 ‘위드 코로나’가 이전 일상으로의 완전히 복귀는 아니지만, 이젠 기나긴 암흑의 터널에서 벗어날 때가 됐습니다.

남산을 오르며 매년 어김없이 찾아드는 계절의 변화와 점점 더위와 추위에 자리를 내주는 ‘이상 기후’에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진리를 절로 실감하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고,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따르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긴장감을 유지한 채 빈틈없는 ‘위드 코로나’ 로드맵을 세워, 2주 뒤에는 ‘K 방역’을 넘어선 ‘K 위드 코로나’로 미래 세대들에게 덜 미안한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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