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가 없을 때 불륜 상대의 집에 들어간 남성을 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선뜻 대답이 망설여진다. 만약 내가 당사자라면 고민 없이 강력한 처벌을 주장했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법적으로 처벌이 가능한 지를 따지기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얼마 전 이와 관련해 주거침입죄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내연 관계인 불륜 상대의 승낙을 받아 집에 들어갔기 때문에 불륜 상대 배우자의 주거 평온 상태를 깼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37년 전, 이와 동일한 사건에 대해 당시 대법원은 주거침입죄를 인정했었다. 형법 319조에 따라,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구성원 가운데 한 사람이 승낙이 있었더라도 다른 거주자 의사에 반하면 주거의 평온을 해친다고 본 것이다.

이번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아내는 남편이 집을 비운 틈을 타 내연남을 집으로 세 차례 불렀고, 부부가 공동으로 생활하는 집에서 두 사람은 불륜을 저질렀다. 나중에 이 사실을 남편이 알게 됐고, 아내의 내연남을 주거침입죄로 고소했다.

사건의 핵심 쟁점은 공동거주자 가운데 한 사람의 동의만을 받고 집에 들어갔을 경우, 주거침입죄가 성립되는지였다. 1심은 주거침입죄를 인정해 내연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2심에서는 판결이 뒤집혀 무죄가 선고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결국 무죄 판결을 내렸는데, 불륜을 저지른 배우자 남편의 주거 평온을 해친 것보다 '침입' 행위 자체를 주목했다. 통상적인 출입 방법에 따라 집에 들어간 경우, 그 행위를 '침입'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내연남이 불륜을 저지른 아내가 들어오라 해서 정상적으로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간 경우에는 침입이라고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남편은 내연남이 창문을 통해 넘어갔거나 문을 뜯고 강제로 들어간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내연남을 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 없게 됐다.

또 이번 판결에는 공동거주자 사이의 의견 대립은 공동체 내부에서 해결돼야 하고, 부정행위에 대해선 국가 권력의 행사가 최소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반영됐다는 해석이다. 간통죄가 폐지될 당시에도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있고, 국가 권력은 부정행위에 대해 개입해선 안 된다는 게 이유였던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주거침입죄 적용에 대한 기준은 더욱 명확해졌다. 하지만 간통죄가 폐지된 마당에 불륜 상대방이 집에 들어간 것을 알았음에도 주거침입죄마저 피해 간다면 국민 법 감정에 반하는 것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심지어 부정행위를 알게 된 배우자가 불륜 상대의 집에 항의 목적으로 찾아갈 경우, 주거침입죄가 적용된다는 것에 대해선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자신의 집에 버젓이 들어왔던 불륜 상대를 찾아가 계단만 올라갔음에도 주거의 평온을 해친다는 이유로 주거침입이 적용된다면 어느 누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제 배우자 몰래 집에 들어와 불륜을 저지른 이에게 도덕적 책임은 물을 수 있을지언정, 법적 처벌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다만, 배우자의 부정행위로 인해 정신·육체적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해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상간자 위자료 청구소송'으로 민사상 처벌은 남아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금도 간통죄 부활 관련 청원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를 통해 불륜을 저지르고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이들에 대한 고발과 강도 높은 처벌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는 이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륜을 저지른 배우자를 뒀다는 이유로, 집에서 느껴야 할 평온함을 빼앗기고 법에 의지할 수조차 없게 된 이들의 억울함은 어디에 호소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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