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남짓 어렸을적에 할머니가 계시던 시골을 갈때는 늘 시외버스를 탔다. 서울 마장동이나 상봉동에서 어머니 손을 잡고 매캐한 가스를 수시로 내뿜는 낡은 버스에 올라타면 보통 9시간이나 10시간 정도 걸려야 시골에 도착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모는 버스는 지금처럼 잘 포장된 도로가 아니라 울퉁불퉁한 꼬부랑길을 하염없이 달려야했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다보니 차체가 수시로 덜컹거렸고 승객들은 극심한 멀미에 시달려야했다. 그래서 탑승 내내 얼굴이 하얗게 질려 고통에 몸부림치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를때면 부리나케 내려 화장실에서 구토를 하고 찬 물로 세수를 한 뒤 다시 버스에 오르곤 했다. 시골 가는 길 곳곳에는 크고 작은 터널들이 있었다. 짙은 어둠이 드리워진 터널에 들어갈때면 주위가 깜깜해졌고 길게는 몇십분동안 터널 속에 갇히는 경험을 했다. 그래도 터널이 끝나면 다시 밝은 빛과 함께 환한 세상이 우리를 반겼기에 잠시동안 터널속에 갇히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했다.

4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또다시 터널 속에 갇혀있는 내 자신을 본다. 예전 시골길에서 만난 터널과는 달리 이번에는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이다. 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터널, 벌써 1년하고도 9개월이 지났지만 언제쯤 터널의 출구가 모습을 드러낼지, 그 누구도 미루어 짐작하기 힘든 상황이다. 긴 터널 안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모여 있다. 무엇보다 모두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방역의 최전선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이들이 눈에 띈다. 생활치료센터와 보건소, 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들을 보살피고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오는 시민들을 상대해온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들이 바로 그들이다. 많은 이들이 의료진들을 우리들의 영웅이라고 칭하고 이들 덕분에하루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며 칭찬 릴레이를 이어왔지만 정작 이들은 이런 응원만으로 버티기에는 너무나 힘든 나날을 맞고 있다.

특히 감염병 전담병원 간호사들은 코로나19 확진자수 증가와 함께 연일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확진자가 매일 천 5백명, 많게는 2천명이 발생하는 상황이다보니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코로나19 격리 병동에는 의료진 외에는 엄격히 출입이 통제되다보니 이들 간호사가 맡아야할 업무는 더욱 늘어났다. 이들은 방호복으로 철저히 무장한 채 24시간 환자들을 돌보느라 눈코뜰새 없는 하루를 보낸다. 새벽에는 환자들의 맥박과 체온을 재고 수시로 피 검사를 통해 몸 상태를 체크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들을 위해 식사 보조를 해주고 기저귀도 갈아줘야한다. 여기에다 대소변도 받아주고 약 처방도 꼼꼼히 챙겨야 한다.

하지만 환자들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항의하기 일쑤다. 의료진들이 돌봐야할 환자 숫자가 많다보니 세세하게 챙기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를 일일이 해명하기도 쉽지 않은 노릇이다. 급기야 보건의료노조 소속 136개 병원, 간호사 56천여 명은 5년 안에 간호인력 10만 명 확충과 공공병원 증설을 요구하며 총파업까지 예고했다. 결국 파업이 철회돼 이른바 의료대란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일부 병원별로 노조의 파업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최근 보건의료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간호사의 85%인력이 부족하다고 했고, 78%최근 3개월간 이직을 고려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415,000명이 간호사로 등록돼 있고 이 가운데 절반도 되지 않는 22만명만이 활동 중이라고 한다. 간호사를 하려고 자격증을 땄지만 막상 힘들다고 여겨서 그만 두는 사례도 많다. 그만큼 간호사는 3D 업종에 이직률도 높은 직종으로 분류된다.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시간 외 근무도 밥먹듯이 하지만 선배들에게는 야단맞고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원망과 불만의 대상으로 지목돼 늘 시달리는 대상이 된다. 간호사 등 의료진과 배달,택배 노동자 등 코로나19 시대에 너무나 소중해진 우리들의 일상적 삶을 지켜주기 위해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이른바 필수 노동자들의 노고가 아니었다면 우리들 삶의 질은 더욱 떨어졌을지 모른다. 이들에게 감사하고 존중의 마음을 표하는 일은 작은 배려에도 고마워할줄 모르고 미안해하지도 않는 이들이 넘쳐나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고자 하는 작은 몸짓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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