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인도철학과를 다녔지만 대학시절 불교만큼 다른 공부에도 관심이 많았다. 정치외교학을 복수 전공했고, 영화와 사진, 드로잉 등 자유선택 과목도 참 열심히 수강했다. 전공은 필수과목 정도만 수강했는데, 우연하게 듣게 된 중국 선종사는 불교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놀라웠고, 흥미로운 것은 물론, 무협지 만큼이나 재미도 있어서 수업시간이 기다려졌다. 무엇보다 인도에서 온 달마스님을 초조로, 혜가-승찬-도신-홍인-6조 혜능에게 법이 이어지는 과정은 우리의 불교와 불법을 어떻게 내가 만나게 됐는지를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글자조차 모르는 혜능이 당대에 이미 명망 높았던 신수를 제치고 선종의 6대 조사가 되는 것은 선종사의 절정이었고, 선이 중국땅 전체로 퍼지는 계기가 됐다. 우리의 조계종과 조계산 또한 6조 혜능이 직접 지어 머물었던 중국 조계산에서 유래하듯, 이후 선은 우리나라와 일본은 물론, 훗날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로 뻗어나가게 됐다.

우리시대의 대표적 선승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고우스님이 지난달 29일 원적에 들었다. 한국 불교의 수행가풍을 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고, 수좌스님들의 고향과도 같은 문경 봉암사 태고선원 재건과 전국선원수좌회 창립에도 앞장섰다. 입적당일 조계종 봉암사 세계명상마을 선원장 각산스님과 전화 통화를 했다. 각산스님은 고우스님이야말로 이 시대 진정한 선지식이며, 무엇보다 누구나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고 깨우칠 수 있다며, 선을 통해 세계인들의 마음을 밝히겠다는 간화선 세계화의 원력이 컸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고우스님은 한국 선방을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선방에 있는 스님들한테 과감히 중도를 논리적으로 이해를 하고, 그 논리를 바탕으로 해서 화두도 들고 일상생활도 하라고 일갈했다.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화두 드는데 도움이 되고, 수행이 또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일석이조라 했다. 이러한 쓴 소리에 고우스님을 참선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비판도 나왔다. 이에 대해 고우스님은 대중 법문에서 “참선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나는 좋다”며 일부의 비판에 개의치 않았다. 고우스님과는 생전에 딱 한번, 너무나 오래전에 여러 일간지 기자들과 취재를 위해 찾아갔던 것이 전부였다. 기사를 쓰기 위해 뒤늦게 스님의 대중법문을 찾아서 열심히 보았는데, 가장 인상에 남는 법문은 중국 선종사찰을 답사하면서 버스에서 선의 목적을 밝힌 인터뷰였다.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선불교의 목적은 불교를 체질화 하고 생활화 하는 거예요. 다른 불교가 지식을 주입해 깨닫게 하는 과정이라면 선불교는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질화 하고 생활화하는 것이 선의 특징이죠.”

선이 선방에 머물지 않고 승속과 인종을 넘어, 선을 통해 우리들 일상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활화하기를 스님은 간절히 염원했다. 여러 법문을 찾아보니 일괄되게 이를 강조하는 스님의 진심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서재 한 쪽에 방석을 놓고 하루 10분 만이라도 참선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불교인재원 박희승 교수와 유철주 작가 등 생전 스님과 가까웠던 이들이 지인이었음에도 생전 스님을 찾아뵙고 법을 구할 생각조차 못했다는 게 뒤늦은 후회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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