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여당쪽 대선 캠프에서 활동하는 언론인 출신 지인이 ‘언론중재법’에 대한 의견을 물어왔습니다. 전화로 물었으면 평소 친분대로 간단히 답하련만, 문자로 물어온 질문에 선뜻 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문자로 쓰기엔 장황한 변명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이유로든 언론 통제는 있어서는 안된다”는 기본적 생각에 더해 언론이 그런 주장을 할 만큼 “떳떳한가”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기자 정신이라는 지사적 사명감은 둘째치고, 솜털같이 가벼운 세치 혀와 글을 업으로 삼으며, ‘김영란법’을 쉽사리 넘나드는 글쟁이들을 숱하게 봐왔고, 여전히 현업에서 부딪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언론중재법은 고위 공무원이나 대기업 임원 등이 아닌 사람이, 언론사의 허위, 조작 보도에 대해 고의, 중과실이 인정되면 최대 다섯 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입니다. 언론 개혁의 일환인데, 사실 예고된 개혁이었습니다. 검찰 개혁의 목소리와 함께 늘 차순위로 꼽히던 또 다른 개혁 과제였으니까요. 언론 스스로 자정 능력이 없는 것 같으니, 선출 권력들이 나서서 제도적으로 잘못된 언론의 활동에 대해서는 제한하겠다는 겁니다.

기자는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주된 업무로 합니다. 때문에 기자들은 설령 무식하다는 말을 듣더라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권력에게 끊임없이 질문과 의혹을 제기하며 확인하기를 멈추지 않아야합니다. 한때 우리 언론이 이를 멈추고 권력의 노예나 앞잡이 노릇을 한 적도 적지 않지만 그보다는 서슬 푸른 국가 권력의 부패와 비리, 인권 문제에 당당히 맞서 사회의 소금이자 죽비가 되었던 적이 더 많았던 걸로 기억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의 언론 상황이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속보와 단독 경쟁 속에서 막무가내로 쏟아내는 ‘아니면 말고 식의 흠집내기 기사’는 권언, 검언, 경언유착이라는 말까지 잇따라 탄생시켰습니다. 추락한 언론의 신뢰 회복은 이제 국민적 개혁 요구로까지 이어졌고, 결국 그 기로에 섰습니다. 하지만 그 해답이 과연 징벌적 손해배상인지는 딜레마입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가 이제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언론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꾸짖음이 필요한 건 맞습니다. 그러나 징벌적 손해배상을 담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강행 처리보다는 더 많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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