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였던 A는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지국장 사건을 심리하던 B 부장판사를 집무실로 불렀다. 다쓰야는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한 추측성 칼럼을 써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A는 B에게 선고 당일 고지할 내용을 미리 검토 받을 것을 요구했다. 이에 B는 구술본 말미 초안을 작성해 A에게 보냈고, A는 법원행정처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문장을 수정했다. 이후 또 A는 B에게, ‘기사가 허위이고 피해자의 명예 역시 훼손됐다는 점을 먼저 설명하고, 다만 비방의 목적이 인정되지 않아 무죄라는 점을 마지막에 밝히라’며 다시 구술본을 정리해 자신에게 보낼 것을 요청했다. 이에 B는 판결이유를 수정했다.

#2. 집회 현장에서 실랑이를 벌이던 중 남대문경찰서 소속 경비과장을 체포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변호사들에 대한 선고가 열렸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벌금형을 선고하며, ‘피해자(경찰)의 직무집행 역시 적법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러한 내용이 담긴 판결문과 보도 자료를 받아본 A는 즉시 자료 배포 보류를 지시했다. 이후 A는 재판장 C를 불러 “양형 이유에 논란이 있을만한 표현이 있어, 톤을 다운하는 방향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C는 이미 등록됐던 판결문을 취소하고, 수정된 판결문을 최종 등록했다.

#3. 2015년 말, 유명 프로야구 선수들이 도박 논란에 휩싸였다. 수사에 나선 검찰은 이들에 대해 700만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는데, 기록을 검토한 D 판사는 약식명령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이들을 공판에 넘겼다. 법원 직원으로부터 이 사실을 보고받은 A는 급히 D를 호출했다. A는 D에게 “주변 판사들의 의견을 더 들어본 후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며 공판 회부 결정을 다시 검토해보라는 취지의 말을 건넸다. 이에 D는 같은 날 오후, 회부 결정을 번복하고 이들을 벌금 천 만 원에 처하는 약식명령을 발령했다. 

위 세 가지의 사례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A는 바로,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다. 그는 1심에 이어 지난 12일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1,2심 재판부 모두 임 전 부장판사가 후배 판사들의 요청이 없었음에도 그들을 불러 재판 내용이나 절차에 관여한 사실은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가 ‘재판 관여’에 해당하고, 자신의 지위와 개인적 친분을 이용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위헌적 행위’라고 지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임 전 부장판사가 일선 법관들의 재판에 관여할 권한 자체를 갖고 있지 않았고, 직권 자체가 없으면 직권 남용도 존재할 수 없기에 결국 ‘무죄’라는 것이 법원의 결론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여기에 더해 1심 재판부가 썼던 ‘위헌적 행위’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이례적으로 제동을 걸었다.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가 직권남용죄 구성 요건을 충족하는지에 대해 따져보기도 전에 ‘위헌’이라고 단정 짓는 건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헌법 위반’이라고 하면 항상 중대하고 심각한 것으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도 덧붙이며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를 ‘부적절한 행위’로만 규정했다. 특히 1심 재판부가 쓴 ‘위헌적 행위’라는 표현이 임 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 소추안 통과의 도화선이 됐다는 점에서, 항소심 재판부의 이 같은 지적은 ‘제 식구 감싸기’로 비춰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 18일 검찰이 항소심 판결에 불복하며 상고장을 제출해, 임 전 부장판사의 사건은 이제 대법원으로 넘어가게 됐다. 이와 별개로 헌법재판소는 지난 몇 달 동안 임 전 부장판사의 탄핵심판 변론을 진행해 왔으며, 조만간 선고를 앞두고 있다. 임 전 부장판사의 재판 관여 행위를 ‘직권남용죄’로는 처벌 할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나온 법원의 결론이라면, 헌재는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가 법관의 신분을 박탈할 정도로 위헌적 행위였는지를 판단하게 된다. 법원 판결이 헌재의 심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지, 아니면 헌재가 법원의 논리를 깨고 반대의 판결을 내놓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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