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결혼과 함께 자리 잡은 곳이 성북동 길상사와 돈암동 흥천사 사이 동소문동이다. 결혼 전까지 78년도에 준공된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이사 한번 안 가고 30년 넘게 살았기에, 생애 첫 부동산 거래부터 낯선 곳으로의 이사와 결혼까지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여하튼 이곳에 조금 살다가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살던 집을 세를 주고, 아내의 지인이 사는 아파트와 어린이집과 가장 가까운 아파트를 거쳐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다시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동서남북으로 매주 마을 탐방에 나섰다. 집에서 흥천사까지는 1.4km, 길상사까지는 2km, 조계사까지도 4km이어서 시간이 날 때면 각각의 사찰까지 직접 걸어서 즐겨 찾곤 한다. 지난해 상월선원 자비순례 당시 밤을 새워 양평에서 서울까지 30km를 걷고 나니, 4~5km 거리가 가깝게 느껴졌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렇게 사찰을 중심으로 이곳저곳을 직접 걷다 보니 이전부터 있었지만 이제까지 몰랐던 역사 유적과 박물관이 동네 곳곳에 있음을 알게 됐다. 누에를 길러 명주를 생산하기 위해 잠신으로 알려진 서릉씨에게 제사를 지내던 ‘선잠 단지’는 저녁 산책 코스가 됐다. 성북동 꼭대기의 ‘우리옛돌박물관’은 1년 회원으로 등록해서 벌써 몇 차례 다녀왔다. 무엇보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 한양도성 혜화문 옛길은 늘 자주 걷는 최고의 산책로가 되었다. 낡거나 부서진 성벽 돌 위에 다시 쌓아 올린 새 돌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역사의 길을 걷는 느낌이 든다. 

그러던 중 얼마 전 강남권 최대 신도시 위례에 들어설 상월선원 착공식에 다녀왔다. 필자는 지난해 여름 하남 교산 신도시에서 출토 된 세계 최대의 철조 불상 ‘하사창동철조석가여래좌상’를 다룬 BBS 창사30주년 다큐 원고를 직접 썼다. 당시 취재를 위해 회사에서 하남으로 여러 차례 오갔기에, 마포에서 위례까지 낯설지 않은 그 길이 더욱 정겨웠다. 공식 행사에 앞서 다큐 제작 당시 인터뷰를 했던 김상호 하남시장과 다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과분하게도 김 시장이 축사 중에 필자의 이름을 직접 언급해 몸 둘 바를 몰랐고, 하사창동 철불의 환지본처의 필요성과 관심을 조계종에 공식 요청해 더욱 놀라웠다. 김 시장의 발언을 듣자마자 주변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상월결사 당시 자주 왔던 상월선원 주변은 많이도 변했다. 공사가 한창이었던 아파트 단지 곳곳이 이미 완공을 마치고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상월선원의 의미와 가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백제불교의 최초 도읍지에 들어선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가 백제하면 늘 현재의 공주와 부여인 웅진과 사비, 때로는 호남권을 떠올리지만 백제는 한강 유역 일대 위례성에서 500여년 가까이 터를 잡고 지냈다. 백제역사 중 70% 이상이 BC18년에서 AD474년까지 21대 492년 동안 위례에서 이뤄졌다. 웅진시대는 4대 63년, 사비시대는 6대 123년에 불과하다. 특히 백제불교는 대승불교의 거점인 고대인도 간다라지역에서 온 마라난타 스님이 영광 법성포에서 내려 이곳까지 와서 침류왕에게 불교를 전하며 시작됐다. 3국 중 가장 활발하게 해상교류를 하며 국제적이었던 백제는 불교의 수용 역시 원류에서 해상을 통해 받아들인 것이다.

필자의 경우처럼 한 개인이 오래도록 산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역에서 터를 잡고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기 까지 아주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역사의 주체로서의 각 개인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하물며 백제인들이 500여년 살 던 곳을 떠나 공주와 부여로 수도를 이전할 때는 어떠했을까? 서울의 아파트값이 치솟으면서 수도권은 신도시 아파트 건설로 확장되고 있다. 그중 하나인 위례는 백제와 백제불교의 발원지이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까지 텅 빈 땅처럼 보였지만 우리 땅 곳곳에 선조들의 숨결과 발자국이 안 거쳐 간 곳이 어디 있을까? 위례 신도시 주민들과 함께 시작하게 될 상월선원의 역사는 이제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켜켜이 쌓이는 긴 역사의 퇴적 앞에서 개인은 티끌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여겨 질 수도 있지만, 개인마다 쌓아 올린 역사가 진정한 이 땅위의 역사일 것이다. 신도시의 지속가능성과 발전을 언급하면서 늘 강조하는 것이 교통과 일자리이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일상화 된 인터넷과 자율주행 차 등으로 앞으로 변모할 새로운 시대의 시공간을 상상해 본다면, 신도시 역사문화 복원 또한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 첫 걸음과 마지막 걸음을 상월선원과 위례 신도시 주민들이 함께 하면 어떨가 싶다. 물질적 유적을 뛰어넘는 찬란한 정신문명으로서의 불교가 신도시 사찰에서 향유되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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