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주스님, 스님의 입적 소식을 듣고 황망함을 금할 수가 없네요. 달변에 쾌활하고 위트가 넘치는 스님의 목소리와 제스처가 눈 감으면 생생하게 들리고 떠올라 더욱 그러합니다. 불교기자로 일하면서 통도사 월하스님을 시작으로 백양사 서옹스님과 용주사 정대스님, 수덕사 법장스님 등 수 많은 큰 스님들의 입적과 다비를 현장에서 취재 했습니다. 하지만 스님의 입적은 첫 종단 출입 당시 총무원장으로 입적 전 까지 종단출입을 했던 법장스님의 원적만큼이나 가슴이 저려 옵니다. 절대적 시간이야 법장스님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아마도 코로나 이전 2019년과 2020년 두 해 동안 겨울마다 일주일 남짓 캄보디아에서 스님과 머물며 많은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나눴기 때문일 겁니다.

스님을 직접 뵙기 전에는 스님께서 종단종치의 한 획을 그으신 만큼, 기자로서 좋은 이야기만큼이나 그렇지 않은 이야기도 많이 들어 사실 선입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첫 해 캄보디아에서 가는 곳 마다 인터뷰를 해달라고 청해도 싫은 내색 없으셨고, 따로 1시간 이상 시간을 내어 주셔서 스님에 대한 많은 것을 직접 듣게 됐습니다. 또 그보다 두 세배 많은 시간동안 공식 인터뷰에서 했던 발언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어 주셔서 사실 좀 놀랐습니다. 이전에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인터뷰를 했던 하버드 출신 현각스님 이후 인터뷰를 그렇게 꼼꼼하게 곱씹으며 검토한 경우는 승속을 넘어 없었습니다. 오랜 세월 종단정치의 정점에서 지내 오셨기에 언론을 통해 나가는 글 하나와 말 한마디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아셨기에 그러하셨을 거라 짐작만 할 뿐입니다. 무엇 보다 지구촌공생회의 젊은 매니저들과도 격의 없이 소통하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캄보디아의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새로 온 매니저를 불러 어디 사는지, 캄보디아 생활은 어떠한지 꼼꼼하게 물으며 대화를 하시는 것을 보며 스님의 남다름을 실감했습니다.

지난해 캄보디아에서 귀국 한 후, 제가 지구촌공생회 관련 다큐형식의 프로그램을 제작한 것도, 순전히 스님의 이러한 덕화에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 이야기해서, 개인적으로 이틀 연차를 받아 정말로 화두를 들 듯이 고민해서 방송 원고를 썼습니다. 스님께는 말씀 드리지 않았고, 스님도 별다른 언급은 안 하셨지만, 사실 지난해 겨울 캄보디아 출장은 다른 기자가 가는 걸로 내정 돼 있었습니다. 로터스월드 성관스님 때부터 이미 3~4차례 캄보디아에 다녀왔고, 취재와 촬영, 편집까지 만만치 않은 작업이 남아 있기에 캄보디아 행을 주저 했지만, 스님이 다시 한 번 권하셨기에 바로 짐을 꾸렸습니다. 돌이켜 보니 그러한 인연이 프로그램 제작으로 이어졌네요. 다큐가 나가고 스님께서는 직접 전화를 주셔서 잘 만들었다 고생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밤 새워 글을 쓰고 편집했던 수고가 스님의 말 한마디에 녹아 내렸습니다.

스님을 마지막으로 직접 뵈었던 건 나눔의 집 관련해 세간에 설왕설래가 극에 달했을 때였습니다. 아차산 영화사에서 스님을 뵈니, 주먹 인사를 건네며 나눔의 집 초창기 아무도 관심이 없고 돕는 이조차 없을 때, 쾌척 했던 전세금부터 자잘한 경비까지 관련 계약서와 영수증 등이 빼곡한 파일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가 보도를 하겠다고 하니 스님은 그럴 필요 없노라 단호히 막았습니다. 종단 정치의 한 복판에서 늘 치열하게 살아 왔기에, 지나 온 길을 꼼꼼히 기록하는 것은 아마 스님에게는 일상이었을 겁니다. 지금의 환호가 비난으로 바뀌는 순간도 여러 번 경험하셨을 겁니다. 무엇보다 해명을 하면 할수록 언론과 세간의 오해가 쌓여만 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셨을 겁니다.

지구촌공생회는 1억 이상을 기부해 캄보디아에 학교를 지은 기부자에게도 해외 준공식 참가 경비를 따로 받았습니다. 기부 받은 돈은 전액 어려운 이들을 위해 쓰고, 사업비는 최소화 한다는 스님의 원칙에 따른 조치였습니다. 스님 또한 해외일정 경비를 스스로 부담하셨기에 기부자들도 그 뜻에 따랐던 겁니다. 돈과 공과 사에 있어서 스스로 원칙을 지키고 행하셨기에, 나눔의 집과 지구촌공생회, 대북민간교류 사업 등을 잡음 없이 이끄셨을 겁니다. 그러하기에 말년, 나눔의 집 사태에 마음의 짐은 더욱 컸을 거라 짐작만 할 뿐입니다.

스님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도 문안 한 번 못 갔습니다. 두서없는 글을 스님의 영단에 받칩니다. 스님의 속환사바를 발원하며 영결식에서 뵙겠습니다.

저작권자 © BB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