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던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 대한 항소심 절차가 지난 12일 마무리됐습니다. 특히 이번 항소심에서 다시 한 번 쟁점으로 떠오른 건, 동양대 강사휴게실을 압수수색했을 당시 발견됐던 PC 2대 중 1대(이하 PC1호)였습니다. 한 때 검찰의 증거조작설로 서초동이 시끄러웠던 것도 바로 이 PC1호 때문이었는데요. 문제의 PC1호에 대해 항소심에서 양 측이 어떤 주장을 펼쳤는지 정리해봤습니다. 

PC 1호에는 표창장 양식을 비롯해 최성해 전 총장의 직인 이미지 파일 등 표창장 위조 범행과 관련된 파일들이 다수 담겨있었습니다. 검찰은 정 교수가 2013년 6월 16일 이 PC를 이용해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직접 딸의 표창장을 위조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반면 변호인단은 당시 이 PC는 방배동 자택이 아닌 경북 영주에 위치한 동양대에 있었으며, 성명불상의 제3자가 표창장을 위조했다고 반박합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적어도 2013년 2월부터 2014년 4월까지는 PC1호가 방배동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관련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정 교수 측 변호인단은 항소심에서 새로운 주장을 펼쳤습니다. 자체 포렌식 결과, PC 1호가 동양대에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는 14건의 사설IP 할당기록을 찾았다는 겁니다. 1심에서 검찰이 제출했던 사설IP기록은 2012년 7월~2014년 4월 사이에 할당된 ‘192.168.123.137’ 형태의 22건이었습니다. 하지만 변호인은 끝 세자리가 137이 아닌 ‘112’로 끝나는 14건의 IP가 2012년 11월~2013년 5월 사이 할당된 기록이 새로 발견됐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계속 PC를 사용했다면 IP주소가 바뀔 리 없으므로, 변경된 IP주소 기록은 PC1호가 방배동 자택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한 흔적이라는 겁니다.

문제는 여기서 언급된 이 IP들이 모두 사설IP라는 점입니다. 공인IP는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직접 관리하는 IP인 반면, 사설IP는 공유기가 IP를 임의로 여러 컴퓨터에 재분배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서로 다른 공유기여도 동일한 IP를 할당할 수 있는 겁니다. 때문에 사설IP주소 하나만으로는 PC가 어느 지역에서 사용됐는지 특정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1심 재판부 역시 이 점을 지적했습니다. 다만 당시 재판부는 동양대 조교, 학생들이 PC를 함께 사용했다는 정 교수 측 주장과 달리 이들이 사용한 파일이 발견되지 않은 점, 또 이들이 교내에 머무를 수 없는 새벽 시간대에 여러 번 IP가 할당된 점 등을 근거로 들며 PC1호의 위치를 방배동으로 특정했습니다. 

이처럼 사설IP만으로 PC1호의 위치를 정확히 특정하지 못하는 만큼, 항소심에선 보충 증거와 주장들이 추가로 등장했습니다. 변호인은 정 교수가 동양대에서 PC1호를 사용한 직후 인근 우체국에서 등기를 발송하고 받은 영수증 캡쳐본 등을 제시하며, 해당 기간에 PC1호는 동양대에 있었음을 주장했습니다. 이에 검찰은 정 교수가 동양대에서 PC 1호를 사용했다고 주장한 날짜에 자택에서 녹음된 것으로 추정되는 음성 파일들을 공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 교수가 자신의 아들을 심하게 꾸짖는 음성 등이 일부 법정에서 재생됐고, 이에 변호인단은 ‘피고인 망신주기’이라고 반발했습니다. 이밖에도 정 교수 측은 동양대에서 컴퓨터를 임의제출 받을 당시, 검찰의 USB가 PC에 삽입돼 증거가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어 증거로 쓰일 수 없다고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항소심 결심공판에서도 양 측은 마지막까지 PC1호에 대한 변론에 열을 올렸습니다. 검찰은 2019년 검찰 수사 당시 방배동 자택에 있던 컴퓨터 2대의 경우에도 서로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IP주소가 달랐다며, 변호인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사설IP는 사실인정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반면 변호인단은 앞서 검찰이 자택에서 녹음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제시한 정 교수와 아들, 정 교수와 증권사 직원의 대화 녹음 파일은 PC1호에서 직접 녹음된 것이 아니므로, 위치 특정에 쓰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정 교수 가족의 사생활이 담긴 PC를 검찰이 어떤 동의도 받지 않고 임의제출 받아 위법하다고도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렇게 6시간에 걸친 양 측의 항소심 최후변론은 마무리됐습니다.

정경심 교수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은 다음 달 11일 오전 10시 30분에 열릴 예정입니다. 남은 시간은 한 달 여 남짓.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PC1호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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