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여성인권상담소'. 일단 연락처를 얻긴 했지만 봐도 봐도 생소한 이름이었다. 불교계 언론사에서 일하면서 웬만한 불교 시민사회계는 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국가에서 주는 지원금을 타기 위해 단체 간판만 바꾸고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는 얘길 들었던 터라 잠시나마 의심도 해봤지만, 오래전부터 꾸준히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불교계 시민사회단체였다. 양성평등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시대적 변화에는 공감하면서도 이전까지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에 대해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김영란 나무여성인권상담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단하게 내 소개를 하고, 본론을 꺼냈다. "불교계 양성평등의 현주소와 과제,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해 몇 가지 묻고자 연락드렸습니다." 김 소장은 한참을 고민 끝에 말문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떤 수준에 와있다고 말하기 민망할 만큼, 수년째 불교계 내에서는 어떠한 움직임도 일어나지 않고 있어요." 예상치 못한 답변에 적잖게 당황했다. 양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우리사회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한편으로는 야박하게 느껴지면서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게 불교계가 처한 현실이었다.

대표적으로 총무원장 선거가 열릴 때 입후보한 비구 스님들에게 양성평등 관련 종책 제안서를 보내면, 공약에 일부 반영되는 경우도 있지만,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진 적은 없었다. 선거 때만 잠시 관심을 보이다가 끝나면 이내 관심을 끊었기 때문이다. 불교계 양성평등이 수년 째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가장 성평등한 종교임에도 실제 현실에서는 종단 내 소임을 맡거나 전법활동을 하는데 있어 비구와 비구니 스님 간의 엄격한 차이가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은 차별은 물론, 종헌·종법에 남성과 여성의 차별을 아예 제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종단 지도자는 반드시 비구 스님 가운데 선출하고, 비구니 스님들의 참종권에 제한을 두는 것 등 수많은 사례들이 존재한다.

김영란 소장은 성평등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종단 내 상설 협의체 구성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불교계도 성평등 문제를 핵심 의제로 종책에 반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현재 불교계에는 성평등 문제의 실태를 조사할 수 있는 기본 단위조차 없다. 기본적인 협의체도 없다 보니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논의할지조차도 정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결국 특정 사건이 터지면 산발적으로 목소리를 내다가도, 정작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때는 한계가 뚜렷했다. 사회적 논란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논의를 올바른 방향으로 점차 확대시켜 나가고 이끌어 나가는 선도적 역할을 불교가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 이웃종교와 비교했을 때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모든 인간을 존중하고 평등하다고 여기는 불교의 근본정신이 양성평등의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 2600여 년 전, 부처님이 모든 인간에게는 불성이 있다며 성별과 신분에 관계없이 출가를 받아들였던 역사적 사실은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 소장은 전화 인터뷰 내내 불교계에도 자신들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언론사가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표했다. 아무도 본인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고 또 익숙해진 듯했다. 자조적이고, 회의적이었다. 현실에서 마주한 벽이 여러모로 불교계 여성인권운동가들의 마음을 다치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성 평등의 중요성에 대한 전 국민적 공감대는 이미 예전부터 우리사회 전반에 형성돼 왔다. 하지만 양성 평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도, 정작 양성 평등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천하자'는 구호만 외치는 것과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더 이상 핑계만 댈 순 없다. 불교는 실천하는 종교이다. 우리 사회는 요 몇 년 새 '양성평등' '젠더 이슈'로 급격한 변화의 시기를 마주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자비와 평등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는 우리 불교계가 우리사회 양성평등의 올바른 정착과 성 평등 문화 확산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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