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대학원 박사 과정에 ‘쓰레기학’을 공부하는 선배가 계셨습니다. 늘 말쑥한 정장 차림에 지적 호기심도 강했던 인기 많은 선배였습니다. 하지만 학문 세계만큼은 다들 뜨악하다 여겼습니다. 응용사회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때이기는 했어도 ‘쓰레기학’은 생경해도 너무 생경했기 때문입니다.

‘쓰레기학’은 사회학의 한 분야입니다. 쓰레기의 양과 질을 연구해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실태를 파악하는 학문입니다. 늘어나는 도시의 쓰레기 문제를 지역민들의 생활실태로 풀어보려는 실천적 의미도 담고 있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하다못해 집안 쓰레기통을 뒤져봐도 그 사람의 성향과 취미, 사회적 관계와 계급 등을 파악할 수 있듯이, 지역과 나라의 쓰레기장을 보면 지역의 특성과 이슈, 정치와 사회, 환경문제까지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일상에 파묻혀 까맣게 잊고 지내던 그 선배가 제 기억에 소환된 건, 매주 두 차례씩 찾는 아파트 재활용 분리 쓰레기장에서였습니다. 늦은 저녁을 먹고 모 방송 환경스페셜을 설핏 보다 찾은 재활용 분리 쓰레기장에서 불현듯 그 선배의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사회조사차 지역 쓰레기장을 찾기 전이면, 늘 밥을 사며 “앞으로 내 밥벌이는 쓰레기가 될꺼야”라고 말하던 그 선배, 어떻게 지내실까요?    

‘쓰레기학’.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경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왜일까요? 쓰레기 문제는 아직도 요샛말로 모든 문제의 ‘본캐’가 아닌 ‘부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학생이 정치를 하고, 교수가 유명 유튜버가 되는 ‘부캐의 전성시대’를 보며, 곧 주류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뜬금없는 생각도 해봅니다.
 
쓰레기 문제는 수차례 수거 대란을 겪고, 특히 코로나19 시대에 늘어난 일회용품이 화두가 되면서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요즘 대기업 경영자들 사이에서 ‘ESG 경영’은 이미 ‘핫한 아이템’이 됐습니다. ESG는 ‘Environment’ ‘Social’ ‘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건데, 기업 활동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을 고려해야 지속 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는 경영 철학입니다. 특히 플라스틱 쓰레기로 옷과 가방, 신발을 만들고, 재고 의류를 다시 ‘새활용’하는가 하면, 벽돌과 건축 자재를 만드는 것도 모두 이런 ESG 경영의 일환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배달음식 수요가 늘면서 골칫거리가 된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 처리 문제는 ESG 경영의 단골 메뉴가 됐습니다.

기업을 넘어 정부 정책에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에는 뉴질랜드 정부가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오는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재작년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 금지에 이은 2번째 금지선언입니다.

최근, 델타 변이 바이러스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인류의 삶은 코로나19와 함께 살아야 하는 ‘위드 코로나 시대’를 거듭 예고하고 있습니다. 질병 극복을 위한 노력과 함께 늘어만 가는 ‘코로나 쓰레기’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한때는 뜨악하게 여겨졌지만 누구보다 앞서서 미래를 내다봤던 그 선배의 쓰레기학 사랑이 새삼 간절하고 그립습니다. ‘코로나 쓰레기’가 내밀 혹독한 청구서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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