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조선왕실 원찰 돈암동 흥천사 대방 중수 과정을 담은 BBS 다큐 사진 캡처 
첫 조선왕실 원찰 돈암동 흥천사 대방 중수 과정을 담은 BBS 다큐 사진 캡처 

1995년 우리나라의 첫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된 석굴암은 세계가 감탄해 마지않는 한국의 건축물로 첫 손에 꼽힙니다. 일제강점기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보수 했지만 이끼가 심하게 끼었고, 이후에도 이를 공학적으로 바로 잡을 수 없어 현재도 에어컨으로 이끼를 막아야만 합니다. 선조들의 과학적 설계를 현대과학으로도 따라 잡지 못하는 겁니다.

일본의 저명한 예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는 석불사의 조각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탁월한 위치와 굴의 구조, 완벽한 비례, 조각상 마다 부여된 의미와 역할을 극찬 했습니다. 특히 조각상의 시선이 모이는 다섯 군데의 위치를 거론하며, 그 시선에 따라 석굴암을 둘러보도록 한 설계는 인간의 심리까지 꿰뚫으며 통일된 계획에 따라 갈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적 작품이라고 평했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최영도 전 국가인권위원장은 유신정권 시절 사법파동으로 법관 재임명에 탈락하고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원래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해 서양미술과 클래식에 탁월한 식견을 갖췄던 고인은 이후 가톨릭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잔타와 엘로라, 바간, 앙코르, 티베트, 둔황 막고굴, 용문석굴, 중국 시안과 뤼앙, 일본 교토, 실크로드 등을 답사했습니다. 예술적 안목에서 시작했고 본인은 아시아 고대문화유산에 대한 탐구심에서 시작 한 것이지만, 동양은 정신문명의 기반은 불교이기에 자연스럽게 불교유적을 탐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고인이 말년에 낸 책이 아잔타에서 석불사까지입니다. 앞서 밝힌 야나기 무네요시를 거론하며 우리가 우리문화에 참 어둡고, 세상을 다 돌아다녀 보아도 본인이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석굴암이 세계 최고의 유적이었기에 책을 내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고인은 석굴암 이전과 이후에 어느 누가 단단한 화강암으로 어떻게 이렇게 섬세한 조각을 만들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습니다. 고인의 이같은 물음과 감탄이 최근 다시 떠올랐습니다. 송광사와 봉정사, 흥천사 대방 등을 중수 복원하고, 잠실 불광사, 뉴욕 원각사 등을 지은 이광복 도편수가 던진 질문이 화두가 됐기 때문입니다. 의식주를 기반으로 한 우리문화와 불교를 조명하는 기획기사 취재 중 이 도편수는 석굴암을 만들 정도로 탁월한 석조건축기술을 가진 선조들이 왜 집과 사찰은 나무로만 지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이같은 물음은 사실 건축학자 사이에서도 화두입니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과 교수는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인 동양에서는 지반이 약해서 무거운 돌 대신에 가벼운 목조를 선호했다고 설명합니다.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리면 벽은 상대적으로 가볍고 다양한 형태의 창을 낼 수가 있어서 자연과의 교감이 가능했다고 설명합니다. 나무는 동서양 모두 사용한 대표적인 건축자재 이며, 이 같은 분석 또한 맞는 말이지만 이 도편수의 설명은 사뭇 달랐습니다. 그는 나무가 사람과 가장 잘 공명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극양의 소나무로 사찰을 지어보면 나무의 생명력은 놀라울 정도로 지속된다고 말합니다. 나무는 그 자체가 생명력을 지니며 인간과 교감한다며 선조들은 이를 간파하고 유독 나무로 집과 궁궐, 사찰을 지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왜, 철근과 콘크리트 등 다양한 재료와 건축공법이 있는 현대에도 아직도 많은 사찰들이 막대한 비용이 드는 목조건축을 고집하는지도 되새겨 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목조 대웅전에서 염불을 하면 3~40분 만에 몰입을 할 수 있다며, 고차원적인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불교에서 목조는 가장 적합한 건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잠실 불광사가 현대식으로 건물을 지어도, 빌딩사찰의 제일 위 기도처는 목조로 지었는지를 떠올려 보라고도 말했습니다. 정말로 자본의 논리로만 따진다면 사찰이 몇 배의 건축비용이 드는 목조를 고집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뉴욕 원각사의 경우 내부의 기둥이 없이 80평대의 법당을 지었는데, 이를 위해서 하중을 지탱해 줄 원목을 구하려고 세계 각지를 다녔다고 합니다. 서초동 구룡사 등 여러 사찰을 지은 회주 정우스님이 안목과 결단이 대형 목조 건축물을 탄생시킨 원동력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은 당연히 사찰입니다. 안동 봉정사 극락암으로 800년 이상 되었습니다. 봉정사 극락암 보수작업에도 참여한 이광복 도편수는 조선시대에는 궁궐에 소속된 장인들이 사찰을 지었다면, 그 이전에는 스님들이 직접 사찰을 지었다며, 세계 유네스코에 등재된 천년사찰들은 스님들이 얼과 혼이 담겼기에 천년의 세월을 이겨낸 것 같다는 밝혔습니다. 그는 봉정사 극락암을 보수하면서 역순으로 도면을 그려보았다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어진 800년 목조는 도면 없이는 절대 지을 수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현재 서구에서는 10층 이상의 빌딩도 나무로 짓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나무가 가장 친 환경적인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10여 년 도 훨씬 전에 어느 지방에 취재를 갔다가 모르는 스님의 초청으로 사찰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해외에서 나무를 직접 구해지었다는 법당은 나무 향기로 가득했습니다. 어느 사찰 주지스님은 법당 불사를 하다가 제재소가 부도가 나자 제재소를 인수해서 법당 건립을 마무리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광복 도편수는 요즘 사람들은 땅값이 올라서 그런지 하늘은 쳐다보지도 않고 땅만 바라보고 산다고 한탄했습니다. 목조 건물에 살지는 못해도 집에 나무를 두고 가까이 하라는 조언이 하루 종일 귓가에 맴 돌았습니다.

명리학에서는 사람의 정신은 양이고 육체는 음이라고 합니다. 하늘은 양이고, 땅은 음입니다. 사람이 무한한 하늘의 기를 받기 위해서는 몸 안에 적당한 음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도시인들이 캠핑에 열광하는 것은 자연에, 땅에 보다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생존본능이라는 어느 명리학자의 말 또한 되뇌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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