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를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탈북민이 국내에 온 뒤 가장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관문이자 1급 국가보안시설로, 외부인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소위 ‘간첩’과 ‘비탈북민’을 가려내는 조사가 이뤄지죠. 내부를 공개하는 것 역시, 지난 2014년 이후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국정원은 지난 2014년 발생한 이른바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을 계기로 북한이탈주민 조사·보호 전 과정을 인권 보호 중심으로 대폭 개선했다며, 센터 곳곳을 낱낱이 공개했습니다. 센터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토대로, 북한이탈주민이 국내에 들어온 뒤 대한민국 사회에 진출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하려 합니다. 

1. 국내 입국, 센터 입소

 북한이탈주민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건강검진을 받게 됩니다. 이때 검진은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가 아닌, 외부 협력 의료기관에서 진행됩니다. 험난한 탈북 과정에서 전염병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건강검진은 의무적으로 시행된다고 합니다. 

 이후 센터에 입소하는데요. 맨 처음 ‘입소실’에서 간단한 환영행사와 센터 생활에 대한 설명, 그리고 이곳에서 이뤄질 조사의 법적 근거를 안내받습니다. 센터에서 착용할 명찰용 사진을 찍고, 물품 검사도 받죠. 소지품을 제출하고, 금지 물품(칼 등 금속류)을 탐색하는 기계를 통과합니다. 2014년 전까진 탐지 기계가 없어, 맨몸 조사가 이뤄졌다고 하는데요. 직접 손으로 몸을 만지고, 금지 물품을 숨기고 있다고 의심이 될 경우 옷을 전부 벗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인권 침해’ 지적이 있었던 부분입니다. 기계 도입 이후 그런 사례는 없어졌다고 합니다. 

 국정원이 탈북민에게 수거한 물품 1위는 무엇일까요? 바로 의약품입니다. 국내에서 허가되지 않은 북한산, 중국산 약이기 때문인데요. 북한산 우황청심환이나 간 기능 개선제, 여성 호르몬제 등입니다. 지금은 북한 의약품도 많이 발전됐지만, 예전에는 민간치료법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 노루발과 고슴도치 털 등을 소지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외에 칼, 도끼와 같은 도검류도 수거되는데, 주로 해로로 탈북한 이들이 소지하고 있던 겁니다.  

2. 생활실 배정

 이제부턴 남녀로 나눠져 각 생활동으로 분리됩니다. 먼저 남성 생활실부터 볼까요. 구조가 조금 특이합니다. 2인실인데 문도 2개, 화장실도 2개입니다. 예전에 1인실이었던 방 2개의 벽을 터 2인실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2014년 인권 중심으로 조사 방식을 개선하기 전엔 생활실 안에 CCTV가 있었고, 화장실도 안이 들여다보이는 유리벽이었습니다. 센터 측은 과거 탈북민들끼리 생활실에서 입을 맞추는 일을 막기 위해 1인실만 배정했지만, 지금은 인권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 2인실로 확대하고 CCTV도 없앴다고 설명했습니다. 200여 개 채널이 나오는 TV도 배치됐고요. 다만, 침대는 온돌 생활에 더 익숙한 탈북민들을 고려해 넣지 않았다고 합니다. 

북한 고위급 탈북 인사가 주로 사용하는 특별생활실. 과거 '생활조사실'로 사용됐던 곳이다. (사진=공동취재단)

 생활실과 조사실이 한 공간에 존재했던 ‘생활조사실’은 아예 없어졌습니다. ‘독방 감금’ 논란이 불거졌던 곳이죠. 이곳은 현재 북한 외교관 등 고위급 인사가 탈북했을 때 사용하는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침대도 있고 미니 세탁기도 있는, 일반실보단 넓고 쾌적한 방입니다. 비(非)북한이탈주민, 그러니까 화교나 조선족, 조교(중국 거주 북한 국적자) 등도 사용하는데요. ‘위장탈북’이 드러나면, 일반 탈북민들과 생활하길 불편해하는 경우가 있어 특별생활실을 배정한다고 합니다. 
 
 여성 생활실은 4인실부터 시작합니다. 6인실도 있죠. 북한이탈주민 80%가 여성이라, 다인실부터 시작하는 건데요. 북한 여성이 중국에서 구할 수 있는 일자리가 더 많은 데다, 중국 국적 남성과 결혼해 살다 한국으로 넘어오는 사례도 많아 통상 남성보단 여성 탈북민이 많다고 합니다. 2인실이나 1인실보단 훨씬 넓은 공간이었지만, 화장실은 하나뿐이었는데요. 센터 측은 계속해서 불편한 부분들을 개선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3. 조사

 탈북민이 센터에서 지내는 기간은 최장 90일입니다. 2014년 이전 180일에서, 90일로 단축됐습니다. 역시 ‘인권 보호’를 위해서죠. ‘간첩 혐의’ 수사는 아예 분리돼 혐의가 의심될 경우 외부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도록 바뀌었습니다. 센터에서의 수사 착수는 금지됐습니다. 90일 가운데 조사는 5일~10일, 하루 6시간 동안 진행되고, 일과 후와 휴일에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원할 경우, 진술 내용이 전부 녹음, 녹화되는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23일 경기 시흥에 소재한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내 조사실을 기자단과 함께 둘러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인권 중심으로 바뀐 건 좋은데, 아무래도 간첩 적발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국정원이 보유, 확보한 자체 데이터나 각종 정보를 활용해 과학적으로 잘 대처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조사 방식도 아주 살짝 공개됐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먼저 신원과 북한 내 거주 지역을 물어봅니다. 이후 PC와 연결된 화면에 ‘구글 어스’를 띄우죠. 만약 조사 대상자가 양강도에 살았다고 답하면, 구글 어스로 양강도 지역을 같이 보면서, 세부사항을 묻기 시작합니다. 실제 정보와 진술이 다를수록 신빙성은 떨어지는 거죠. 이런 식으로 국정원이 보유한 있는 정보를 토대로 세세하게 조사를 하다 보면, ‘거짓’은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게 국정원 설명입니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센터가 적발한 간첩은 11명, 비북한이탈주민은 180여 명입니다.

 조사실 옆에는 ‘인권보호관’ 상담실이 있습니다. 조사 전후 1회씩,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권보호관은 탈북민 성비와 법률 지식의 필요성을 고려해 여성 변호사가 임명되는데요.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여성변호사회의 위촉을 받아 1명이 1년 단위로 근무한다고 합니다. 상담 내용은 가족법, 한국에서 생활하면 발생할 수 있는 상황들, 또는 탈북 브로커 비용을 실제로 지급해야 하는지 등 다양합니다. 

4. 그외 일과

 조사 시간 외에는 어떤 일을 할까요? 후생동에는 ‘음악실’과 ‘컴퓨터 교육실’, ‘심리 상담실’, ‘도서관’, ‘유아 놀이방’ 등 다양한 공간이 마련돼 있습니다. 음악실과 컴퓨터 교육실에는 재능기부 강사가 있어 원하면 교육을 받을 수 있고요. 도서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도서는 아무래도 취업 관련 책이고, 다음으로 북한 정치에 대한 책도 많이 본다고 합니다. 유아 놀이방은 보호센터에서 가장 웃음이 많고, 활발한 공간이죠. 3~4주간은 국내법과 문화, 언어 교육도 이뤄진다고 합니다. 매일 일과가 끝난 뒤엔, 국내에 거주하는 가족들과의 전화 통화를 할 수 있고, 8촌 이내 친족까지 면회도 가능합니다.

'음악실'  (사진=공동취재단)
유아놀이방. (사진=공동취재단)

 눈이 휘둥그레지는 공간도 있습니다. ‘생활용품 지원실’인데요. 말 그대로 센터에서 생활하는 동안 필요한 물품을 지원해 주는 곳입니다. 체육복과 셔츠, 속옷, 화장품, 칫솔, 치약 등이죠. 남성은 27종 45점, 여성은 29종 52점을 제공받습니다. 옷을 입어볼 수 있는 탈의실도 있습니다. 퇴소 시기엔, 1인당 30만 원 상당의 정장 세트도 받습니다. 이때는 입소한 탈북민 가운데 대표자와 함께 외부로 나가, 미리 취합한 개인별 사이즈나 취향을 고려해 옷을 구입한다고 합니다. 90일 동안 탈북민 1명에게 지원되는 물품은 약 백만 원 상당입니다. 이 곳은 실제 탈북민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공간이기도 한데요. 처음 이 곳에 오면,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복장실 선생님께’로 시작하는 감사의 손 편지도 곳곳에 붙어있었습니다. 

생활지원실. (사진=공동취재단)

마지막으로, 의무실도 살펴보죠. 산부인과, 가정의학과, 치과로 구분돼 있고, 10여 명의 의료진이 근무합니다. 응급 구조사는 24시간 대기하기도 하죠. 치주 질환으로 치과를 찾는 사람이 가장 많습니다. 

의무실.  (사진=공동취재단)

5. 하나원 이동, 사회 진출

 이렇게 90일을 지낸 뒤, ‘탈북 동기’의 진정성이 인정되면 하나원으로 이동합니다. 탈북민 정착 지원금도 받게 되죠. 단, 앞서 언급한 비북한이탈주민과, 비보호 사유에 해당되는 이들에겐 정착지원금이 지원되지 않습니다. 비보호 사유는, 항공기 납치, 마약거래, 살인, 위장 탈출 등입니다. 센터에서 나온 이들은 하나원에서 12주의 사회 적응교육을 받은 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사회에 진출하게 됩니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2014년부터 올해까지 보호센터에서 조사받은 7천6백여 명 가운데 인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등 인권 침해가 확인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고 자신했습니다. 다만, 보호센터를 상대로 진행 중인 세 건의 소송을 언급하며 과거의 일이라고 지금 국정원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라며 다시 한번 사과한다고 밝혔습니다. 세 건의 소송은, 유우성 씨 국가배상청구와 동생 유가려 씨 조사관 대상 형사소송, 지모 씨 부부 제기 국가배상청구 소송입니다.

이 중 유우성, 유가려 씨 관련 사건은 북한이탈주민 대상 조사를 인권 중심으로 바뀌게 한 결정적 계기죠.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지난 3월 진행된 공판에서 “재판 과정에서 옛 시간이 떠올라 힘들다”면서 신속한 재판으로 다시는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박 원장이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 의지를 보인 만큼, 과거 피해자들의 눈물도 하루빨리 닦아줘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변화는, 거기서부터 시작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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