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나이 서른셋, 서울대 법대 졸업, 서울남부지검 형사부 소속 2년차 초임 검사, 이름 김홍영.

이게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지난해부터 법조를 출입하게 되면서 자주 접했던 김홍영 검사.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검찰 조직문화를 비판하는 대목에선 그의 이름이 항상 등장했다. 심지어 검찰개혁 같은 거대 담론을 다룰 때도 종종 그의 이름 석 자가 눈에 띄었다. 이럴수록, 하나의 상징처럼 변해버린 그가 생전 어떤 청년이었을지 궁금해졌다.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그의 나이가 지금의 나와 같은 나이라는 동질감에 이유 모를 연민도 더해졌다. 그래서 고 김홍영 검사가 남긴 삶의 흔적들을 따라가 보았다.

고 김홍영 검사의 자취방 내부는 언론을 통해 공개된 적 있다. 먹다 남은 맥주 캔, 널브러진 옷가지, 흰색 화이트보드에 적힌 '음주 NO, 담배 NO'. 사진만 봐서는 2~30대 평범한 남성의 자취방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눈길을 끈 건 벽에 붙어있는 'NOT MY FAULT' 문구였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출근해서 온종일 상사에게 깨지고 나면 오롯이 자신만의 공간인 이곳에 와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애를 썼던 것으로 보인다. 한없이 낮아진 자존감과 패배감을 이겨내기 위해서 혼자 발버둥 친 흔적으로 보인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자신의 꿈을 이룬 초임 검사에게 현실은 너무 가혹했던 것일까. '푸시업 100개, 스쿼드 100개' 문구에서는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흔적도 엿볼 수 있다.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의 노력을 게을리했던 이는 아니라는 걸 짐작케 한다.

고 김홍영 검사의 사법연수원 동기들은 김 검사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이고, 쾌활하고, 명랑하고, 책임감이 강한 성격"이라고 말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심과 희생정신이 강했다"고도 기억한다. 김 검사의 극단적인 선택이 주변 지인들에게는 도무지 납득되지 않던 이유였다. 김 검사의 죽음 직후,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유족들은 항의했고, 연수원 동기들은 탄원서를 제출했다. 결국 사건 발생 2달여 만에 대검찰청 차원의 진상조사가 이뤄졌고, 업무과다에만 초점을 맞췄던 그의 죽음의 원인은 상사의 폭언과 폭행으로 옮겨졌다.

김홍영 검사가 세상을 떠난 후 공개된 문자메시지와 주변의 증언은 가히 엄청난 충격이었다. 김 검사에게 폭언과 폭행, 부당한 대우는 일상이었다. 술자리에서 상사의 술시중을 드는 것도 잦은 일이었다. 부서의 단합을 다지는 회식은 김 검사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됐고, 회식이 끝나면 주변 지인들에게 '자살 충동이 든다'고 호소한 것도 이미 여러 차례였다. 이 모든 징조들은 검사동일체 원칙과 상명하복 문화에서 묵살되고 말았다. 초임 검사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생각, 조폭 사회에서나 있을법한 상사의 비위행위마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김 검사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 것이다.

지난해 10월, '고 김홍영 검사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열린 지 8개월 만에 김 검사 유족 법률대리인인 최정규 변호사와 다시 전화인터뷰를 할 기회가 생겼다. 최근, 김 검사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법원의 조정으로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최 변호사에 따르면, 검찰은 지금껏 만든 재발 방지 대책 외에도 추가적으로 조직 문화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김 검사의 추모 공간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검찰의 진심 어린 사죄에 유족들도 조정안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했다. 최 변호사는 "유족들의 주장이 조정결정문에 많이 반영돼, 조금이나마 이들에게 위로가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최 변호사는 김 검사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상사의 잘못, 그리고 관리감독하지 못한 검찰의 책임을 명확하게 선언했다는 데서 의미를 찾았다.

김오수 신임 검찰총장도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가기에 앞서 고 김홍영 검사의 아버지에게 전화해 검찰 조직문화 개선을 약속했다. 어제 발표한 '국민중심 검찰추진단' 운영 계획에도 산하에 조직 문화 개선 분과를 따로 둬 관습처럼 내려오던 그릇된 검찰 문화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다만, 아직 고 김홍영 검사의 상관이었던 김대현 전 부장검사에 대한 재판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앞서 검찰은 김 전 부장검사에게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구형했고, 김 전 부장검사는 다음 달 6일 1심 선고를 받게 된다. 피해자 유족들에게 지금까지 어떠한 사과도 없이 5년을 끌어오다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된 김 전 부장검사의 모습을 김 검사가 본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이미 고인이 된 김 검사와 언젠가 술 한잔 기울일 날이 온다면, 친구가 돼 하염없이 그의 마음 속 얘기를 들어주고 싶다. 비슷한 시가를 경험한 청춘으로서 고생했다는 위로를 꼭 전하고 싶다. 검찰 조직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고, 김 검사의 후배들은 훨씬 나은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얘기를 그에게 전할 날이 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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