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8일, 김정곤 부장판사가 이끌던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는 고(故) 배춘희 할머니를 포함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자들에게 각 1억 원 씩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위안부’와 같이 계획적‧조직적으로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는 국가 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국가면제론이 배상과 보상을 회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도 지적했습니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측에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무된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월 법원 정기 인사에서 민사합의34부의 새로운 재판장이 된 김양호 부장판사는 소송비용 추심부터 제동을 걸었습니다. 옛 재판부(김정곤 부장판사)는 선고 당시 ‘소송비용은 일본이 부담해야 한다’고 했지만, 두 달 후 새 재판부가 ‘일본 정부가 부담할 비용은 없다’며 결정을 뒤집은 겁니다. 특히 김양호 부장판사는 결정문에서 “소송비용을 강제집행 할 경우 국제법 위반과 사법부 신뢰 저해 등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본안 판결에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확정 판결의 집행 방식을 놓고 상반된 결론이 나오기는 매우 이례적이었습니다.

이후 이용수 할머니 등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이 낸 두 번째 손해배상소송에서도 법원은 첫 소송과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두 번째 소송 심리를 담당한 민사합의15부(민성철 부장판사)는 국가면제론 예외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않는 것을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보긴 아직 이르다는 겁니다. 이에 더해 재판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로 피해자들의 권리구제수단이 마련됐고, 전체 피해자 중 41% 가량이 실제 현금을 수령하며 구제를 받았다고도 판단했습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 법원이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리면서 피해자들은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달에도 김양호‧민성철 부장판사의 결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결정이 또 한 번 같은 법원에서 나왔습니다. 앞서 첫 소송의 원고인 고 배춘희 할머니 등은 판결이 확정된 후, 일본이 국내에 보유한 재산목록을 확인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습니다. 관련 심리를 맡은 민사51단독 남성우 판사는 피해자들의 신청을 받아들이며, 첫 재판부와 같이 ‘위안부’는 국가면제 예외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남 판사는 “강제집행 후 발생 가능한 국가 간 긴장 발생 문제는 행정부의 고유 영역이고 사법부는 법리적 판단만 해야 한다”며, ‘국가적 위신’, ‘국제 질서’ 등을 이유로 피해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은 두 재판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이처럼 다섯 달 사이 법원에서는 ‘국가면제론’을 둘러싼 판결이 세 번이나 뒤집혔습니다. 일부 재판부는 국가 간 외교적 해결이 우선이라고 했지만, 국내 법원에서마저 의견이 서로 엇갈리며 외교적 해결은 더 어려워진 상황입니다. 피해자들의 가슴은 타들어갑니다. 고령의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빠른’ 해결은 무엇보다 절실합니다.

올해 6월 기준,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는 14명뿐입니다. 올해에만 두 명의 피해 할머니가 일본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등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용수 할머니 등이 원고로 이름을 올린 두 번째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이 오는 11월부터 시작될 예정입니다. 1심과 마찬가지로 지난한 싸움이 예상됩니다.

현재 해석이 극명히 엇갈리고 있는 ‘국가면제론’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어떤 판결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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