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성분이 들어있는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해 사상자를 낸 혐의를 받는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현직 간부들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준비기일이 지난 18일 열렸습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 13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고, 이후 판결에 대한 규탄이 각계에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4개 월 만에 다시 진실을 가리는 항소심 절차가 시작됐습니다. 양 측이 팽팽하게 맞서는 사건인 만큼, 1심 판결문을 면밀히 분석해보고 항소심에서의 쟁점을 살펴봤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원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옥시가 출시한 살균제에 포함된 PHMG/PGH와 SK케미칼·애경이 제조·판매한 살균제에 들어있던 CMIT/MIT가 바로 그것입니다. PHMG/PGH의 유해성은 명확히 입증됐습니다. 때문에 옥시 신현우 전 대표는 원료의 안전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혐의로 대법에서 징역 6년을 최종 확정 받았습니다. 남은 건 CMIT/MIT에 대한 위해성 입증입니다. 애경·SK케미칼 관계자들을 형사 처벌하기 위해서는 CMIT/MIT 성분이 폐에 치명적인 손상을 야기한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CMIT/MIT의 위해성을 밝히기 위한 시험은 여러 번 이뤄졌습니다. 2011년 이 사태가 처음 터졌을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두 가지 성분을 대상으로 동물흡입시험을 시행했습니다. 그 결과 PHMG/PGH의 위해성은 드러났지만, CMIT/MIT와 폐 질환 사이의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시민단체와 피해자들의 요청에 따라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추가 시험이 이어졌지만, 독성학적 영향은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환경부는 국립환경과학원 주관으로 또 다른 추가 연구에 돌입했습니다. 이 연구에선 제품 권장 사용량의 833배까지 시험 농도를 올렸고, 1일 노출 시간 역시 20시간으로 대폭 늘렸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폐 섬유화나 폐 손상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1심 무죄 판결의 중요한 근거가 됐습니다. 항소심 첫 공판준비기일에서도 시작부터 양 측이 연구결과를 둘러싼 논쟁을 벌였을 만큼, 이 연구결과들은 2심에서도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관측됩니다.

피해자들의 제품 사용시기와 인과관계 등도 쟁점입니다. 검찰 공소장에 기재된 피해자는 98명입니다. 이 가운데 94명은 각기 다른 두 성분이 들어간 제품을 함께 사용했고, 4명만이 CMIT/MIT 성분 제품을 단독 사용했습니다. 이미 PHMG의 유해성이 드러난 만큼, 중복 사용한 94명의 경우 PHMG 성분 영향으로 폐 질환을 앓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때문에 CMIT/MIT 제품의 단독 사용자가 매우 중요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단독 사용자 4명의 인과관계에도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특히 천식을 앓은 피해자의 경우, 검찰에서 1999년 또는 2000년 애경 제품을 사용했다고 진술했는데 실제 애경 제품은 2002년 출시돼 그 시기가 맞지 않다는 겁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피고인들이 판매한 제품을 사용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시기가 맞지 않는 것 같다”며 검찰의 명확한 의견을 요구했습니다.

검찰은 “인간과 동물의 특성을 무시한 채 잘못된 전제 하에 연구 결과를 배척했다”며 1심 판결을 비판했습니다. 또 앞서 1심 재판부가 “각 시험을 수행한 전문가 중 어느 누구도 법정에서 ‘CMIT/MIT와 폐질환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지 못했다”고 밝혔는데, 검찰은 이 또한 편파적인 해석이라고 반박했습니다. 피해자 측 변호인단 역시 “과학에서 이야기하는 언어와 법률은 다르다”며 “법에서 말하는 인과관계 판단이 불가능한 증명을 원하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항소심에서도 양 측이 치열한 공방을 예고한 만큼, 재판부는 각 시험 결과와 1심 때 이뤄졌던 전문가들의 법정 증언을 보다 더 면밀하게 살필 것으로 보입니다. ’과학‘과 ’법률‘ 사이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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