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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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금요일 늦은 오후. 서울행정법원 지하 법정에서는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금융감독원을 대상으로 "DLF 관련 중징계는 부당하다"며 제기한 행정소송이 열리고 있었다.

사실 이미 지난해 12월에 열렸어야 하는 두 번째 변론기일이다. 찬바람이 사라지고 따뜻해지더니, 벚꽃마저 떨어져버린 4월 중순. 여러 차례 연기된 변론기일은 비로소 진행되고 있었다.

2시간 넘게 이어진 공방을 요약하면 이렇다. 금감원 측은 "신한·하나 등 다른 은행들과 비교할 때 우리은행의 내부통제는 너무나도 미흡했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손 회장 측은 "우리은행이 법에 규정된 수준 이상으로 이미 내부통제를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몇몇 직원들이 일탈행위를 했을 뿐이다. 그걸 가지고 금감원이 '제도 미비'라고 몰아붙이며 손 회장을 중징계하려고 명분 을 만들고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재판장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변호사들의 목소리가 유난히 쩌렁쩌렁해 개인적으로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법정 바깥 복도에서도 들릴 정도였으니. 경제부 기자와 사회부 법조 출입 기자로서 수많은 재판들을 취재해봤지만, 변호사의 목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4개월 넘게 걸린 프리젠테이션 준비 기간, 자신감인지 절박함인지 모를 쩌렁쩌렁한 목소리의 손 회장 측 변호사. 그리고 법정 안을 가득 채운 우리금융지주·우리은행 임직원들, 법정에 들어가지 못해 복도에서 대기하던 우리금융·우리은행 관계자들. 공통적인 굳은 결의가 보였다. "손태승 회장을 지켜야 한다"

 

#2

그러고보니, 지난 2월에 발생했던 '사건' 하나도 기억났다. 

한 주간지가 '검경관계자'를 인용해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임박했다"고 보도했다.

뭔가 이상했다. 구속영장을 청구하려면 그 전에 경찰이든 검찰이든 일단 수사라는 걸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기자는 최근 몇개월 동안 손 회장이 수사기관에 출석했다는 소식을 들은 사실이 없다. 수사 시작도 안 한 수사기관이 느닷없이 영장부터 청구하고 본다고? 

동료 기자들도 이상하다는 반응이었다. 중앙지검 측에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알려왔다. 이 사실을 알려준 중앙지검 관계자는 "금시초문이고, 기사 내용이 밑도 끝도 없다"며 황당해 했다.

이런 경우, 기업 홍보담당 부서에서는 보통 "사실과 다르다"는 취지의 해명자료를 낸다. 우리금융 역시 그랬다. 그런데 당시 우리금융이 기자들에게 보낸 해명자료에는 한 마디가 더 추가됐다. "이와 관련 우리금융은 법적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며,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강력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보도에는 항상 책임이 따르기에, 해당 오보를 낸 매체나 기자를 옹호하고자 하는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놀랍긴 했다. 잘못된 보도 때문에 언론과 기업이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 언론중재위까지 가는 사례 등은 많이 봐왔지만, 법적 대응을 검토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오너 회사'가 아닌 은행권에서는 더욱 드문 사례다.

 

#3

'우리금융지주'라는 회사가 처음 출범한 건 지난 2001년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공적자금이 투입됐던 한빛은행과 평화은행(두 은행이 합쳐서 '우리은행'이 됐다), 경남은행, 광주은행 등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은, 우리나라 최초의 금융지주회사였다. 그 후, 우리투자증권, 우리아비바생명보험 등을 인수하면서, '금융그룹'으로서의 위상은 더욱 높아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2014년 11월, '우리금융지주'는 해체된다.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던 예금보험공사가 공적자금을 회수하겠다며 계열사를 하나하나 팔았고, 결국 사실상 '그룹사'로서의 의미가 없어지는 지경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은행 내부에서는 다른 회사에 매각되는 대신 독자적인 생존을 강하게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시 금융지주사 체제 전환을 원했다. 우리은행의 뿌리는 IMF 이전까지 존재했던 오랜 전통의 거대 은행,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다.

마침 '차라리 지분 가치가 상승하면 공적자금 회수가 더 쉬워질 수 있겠다'고 생각한 금융당국의 이해관계와도 일치하면서, 우리은행은 '우리금융지주'를 재출범하게 된다. 그리고 내부인들의 입장에서 '어렵게 되찾은' 우리금융지주의 첫 회장에 손태승 회장이 선출된다. 1987년 한일은행에 입사해, 30년 만에 우리은행장의 자리까지 오른, 내부 승진 인사다.

그러다보니 손태승 회장은 재출범한 우리금융지주의 '자존심'과도 같은 존재가 됐다. 조직 내부에서 "금융당국이 멋대로 손 회장을 끌어내리게 두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높아져 있다.

이렇게 되니 손 회장은 물러나고 싶어도 마음대로 물러날 수조차 없는 처지가 됐다. 어쩌다 보니 '호랑이 등에 올라탄' 손 회장. 앞으로의 행정소송이 어떻게 이어질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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