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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김봉래 BBS 전법후원국장

출연 : 김진무 남경대 철학박사

방송 : 2021년 4월 18일(일요일) 저녁 6시20분(BBS 라디오)

 

김봉래 : 우리 사회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 진행을 맡은 김봉래입니다. 동아시아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 한국과 중국, 일본 이 세 나라 간의 문화는 당대 동아시아 문화를 선도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활발했고 선진적이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지구촌 시대가 되면서 그 위상이 달라졌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지구촌 전체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할 때도 동아시아 3국의 위상과 역할은 적지 않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한자문화권 또 불교문화권에 속해왔기 때문에 비슷한 문화 기반을 갖고 있는 중국과의 문화 교류의 중요성,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그 가능성 모색을 위해서 중국불교 전공자이시죠, 남경대 철학박사이신 김진무 박사님과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김봉래 : 네. 앞서 소개해드린 대로 중국불교 전문가이시죠. 중국 남경대 철학박사이신 김진무 박사님 전화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김진무 박사님 안녕하세요.

 

김진무 : 네. 안녕하십니까.

 

김봉래 : 네. 박사님 반갑습니다. 박사님께서는 중 불교 사상사에 관한 책도 쓰시고 또 여러 가지 번역서도 많이 내셨습니다. 어떤 분야에 주로 관심이 있으신지요. 중국불교 중에서도요.

 

김진무 : 제가 중국 유학을 하게 된 이유가 석사학위 논문으로 ‘동산법문과 그 선사상 연구’를 썼는데 공부하다보니 중국선에는 순수한, 그러니까 인도로부터 발원된 그런 순수한 불교와는 다른 여러 가지 사상적 요소가 심층적으로 배어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문제를 명확하게 보이지만 그에 대한 해명이 결코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원래는 석사학위를 마치고 제가 교토학파에 관심이 많아서 일본 쪽으로 유학을 할까 했는데, 그 때 당시 중국 유학이 쉽지가 않았을 때라 그런대요. 그래서 차라리 중국 본토에서 공부를 하는 게 조금 더 이해하는 데 쉽겠다 싶어서, 원래 유학 갈 목적은 초기 중국선의 발생과정을 연구하려고 갔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까 중국불교는 특히 중국선은 그 발생과정에서 철저하게 불교 반야학 하고 유가와 도가의 결합으로 나타난 여러 가지의 사상적 변용을 통해서 이루어졌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것을 특히 중국불교는 불교만 공부해서는 안되고 유가와 도가, 유불도(儒佛道) 삼교 관계를 고찰해서 그것을 통해서만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겠구나 해서, 특히 유불도 삼교관계 사상사를 박사학위 논문으로 쓰게 되었고 그것을 지금까지 공부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유불도 삼교의 관계를 주로 연구하고 계시다 이런 말씀이신데요.

 

김진무 : 네. 불교를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불도 삼교 관계를 연구하는 데 유가 입장에서도 볼 수도 있고 도교 입장에서 볼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순수하게 불교 입장에서 유가와 도가를 어떤 관계로 어떻게 사상적 변용을 이루었는가 하는 부분들을, 특히 한 부분을 연구하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중국의 불교 전래부터 현대 근대 인간불교, 현대 생활선까지 그것을 전체적으로 전부 포함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불교적 입장에서 불교와 유교, 도교의 사상적 변용을 집중 연구하고 있다 이런 말씀을 주셨는데요.

 

김진무 : 네. 맞습니다.

 

김봉래 : 오늘 박사님을 모신 것은 한국과 중국의 불교문화 교류의 가능성을 좀 진단해보고 싶어서거든요. 그래서 동아시아에서 한중일 삼국의 교류 특히 불교교류의 역사가 굉장히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조박초 전 중국불교협회회장 같은 경우에 그것을 ‘황금유대’다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소의경전이기도 하고 많은 해설서들도 나왔는데, 박사님도 얼마 전에 <도해 금강경>이라는 책을 사모님하고 같이 번역해서 주목받기도 했지 않았습니까. 그 반응이 좀 어떻던가요.

 

김진무 : <도해 금강경>은 금강경 자체가 워낙 내용이 깊어요. 반야 경전들이 전부 상당히 난해한데요. 특히 그 가운데 금강경은 가장 부처님 원음이라고 저는 보고 있고요. 부처님의 직설, 직접 설법하신 경전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상당히 많습니다. 가장 초기 석존께서 직접 설하신 경전에 틀림없으며, 또 여러 가지 사상적으로 굉장히 복잡해요. 뭐 경전이라는 게 항상 그렇거든요. 자기의 알음에 따라서 깊이가 보이는데, 금강경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더 천에 천의 세계가 나타나요. 상당히 난해한데, 이 도해금강경을 번역한 이유는 이 금강경이 다양한 도해, 다양한 삽화와 그림 이런 것들을 통해서 일반인들을 좀 더 깊게 이해시키고자 하는 그런 의도에서 나온 책이에요. 그렇지만 아무리 도해라도 금강경 자체가 내용이 어려워서 저는 도해금강경이라고 해도 한 서너 번 반복해서 읽기를 권하고 있어요.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 보다 쉽게, 도해금강경은 구성상 상당히 그나마 쉽게 접근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요. 그리고 도해금강경의 부록에, 금강경이 역대로 한역본이 5종이 있거든요. 그 도해금강경의 뒷부분에 부록으로 그 5종을 다 실어놓고 있는데요, 그 가운데 수대 급다삼장(笈多三藏)이 번역한 역본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번역본이에요. 그래서 상당히 반응이 좋아요.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불교학자들이라 굉장히 열독하고 질문도 많이 받았는데, 글쎄 일반인들의 반응은 잘 모르겠어요.

 

김봉래 : 네. 저는 일반인들을 예상하고 여쭤본 건데, 어쨌든 그림으로 도해를 하다보면 핵심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아닌가 해서 여쭤봤는데요. 중국에서 이런 도해 양식의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런 이야기를 좀 들어서요.

 

김진무 : 네. 맞습니다.

 

김봉래 : 하여튼 오늘 중국과 한국, 한국과 중국의 문화교류에 관한 가능성, 발전의 가능성 이런 것을 타진을 해보는 건데, 요새 또 인도 고대어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에 산스크리트 빨리어 원전에서 한글 번역본도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하지만 역시 선불교를 비롯해서 수많은 전적들이 한문 원전으로 태산처럼 남아 있어서 한문 원전에 대한 중요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죠?

 

김진무 : 굉장히 사람들이 많이 착각을 많이 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남방불교 팔리어 원전은 오리지널리티, 정통성을 인정을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범본은 사실상 부처님 시대로부터 전해진 게 아니라 모두 산실된 거를 16세기 정도에 다시 복원을 한 것이거든요. 그것도 거꾸로 티벳본하고, 티베트어로 된 번역본하고 한역 원전을 가지고 역으로 범본을 만들었던 것이 대부분이고, 실제로 남회근 선생, 돌아가셨지만 남회근 선생은 이 범본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남회근 선생이요.

 

김진무 : 돌아가셨죠. 상당히 많은 책을 내시고 했는데. 어쨌거나 특히 사람들이 반야심경의 범본이 있잖아요. 그 반야심경의 범본 자체가 중국 찬술이라는 것을 잘 모르더라고요. 실제로 반야심경의 수대나 당대 혹은 남북조 시기 그 정도에 중국에서 범본으로 만들어진 거거든요. 그래서 지금 저는 사상사를 공부하다보면 중국이 서역이나 인도로부터 계속 받아들였다고만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요,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거꾸로 중국에서 제작된 저술된 그런 불교 전집들이 서역이나 인도로 역번역 되어서 나가요. 그런 경우가 상당히 많고. 그 다음에 후기 대승경전들 중에 상당 부분은 중국으로부터 거꾸로 간 경우도 상당히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팔리본은 모르겠고 남전불교는 제가 깊이 연구를 안 해봐서 감히 말씀드릴 수가 없고요. 북전 특히 범본이나 이런 것은 오히려 번역된 한문 원전이 더 오히려 중요성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해보거든요. 실질적으로 제가 사상사를 공부하다보면 여래장 사상이나 이런 것들은 상당히 중국 사상, 뭐랄까 중국에서 만들어졌다는, 그리고 중국에서 만들어지고 거꾸로 역으로 수출되었다고, 서역으로 오히려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여집니다.

 

김봉래 : 한국과 중국이 학문적인 교류 이런 데서 서로 윈윈 할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여쭤본 거거든요.

 

김진무 : 윈윈 할 게 너무 많죠. 그리고 실질적으로 저는 거의 1년에 2,3일 씩 중국학회에서 논문 발표를 해왔어요. 왜냐하면 중국에서 계속 국제학술대회를 개최를 하는데, 항상 발표비도 상당히 후하게 주고, 왕복 비행기 티켓도 제공을 하고 해서 1년에 두 세 차례 계속 갔는데, 그게 사드 때문에, 사드부터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들이 양국 간에 있었잖아요. 그거로부터 조금 중단되었다가 사드가 조금 풀리고 한 번 중국학회 참가를 해서 발표를 했어요. 그런데 그 뒤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완전히 지금 중단된 상태인데요. 초청장까지 받아놓고도 작년에 못 갔어요. 코로나 때문에. 지금도 사실은 중국에서는 상당히 지속적으로 한국하고 일본학자들을 초청해서 불교교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그런데 말씀하셨듯이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학술적인, 문화적인 교류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는데, 실제로 중국불교는 국가의 지원도 받지만 그만큼 국가의 통제도 심한 거 아니겠습니까?

 

김진무 :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는다기보다 오히려 중국의 불교신도들이 통계로는 1억 5천 정도라고 하는데, 그것은 중국 사회상으로 볼 때 자기가 불교신도라는 것을 안 밝히는 것이 대부분이거든요.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4,5억 되지 않나 뭐 그렇게 추정을 하는데. 그 중국인들은 상당히 불전함에 보시를 하는 액수가 우리나라의 불전함에 보시하는 것하고 너무 달라요. 제가 중국 가서 놀란 게 중국의 특히 제가 중국스님들하고 상당히 많은 분들하고 친분이 있거든요. 제가 남경대 선후배 관계가 있어 가지고 사찰에 머문 적이 많은데, 그 사찰에서 도대체 그 사찰 운영, 저기 재시(財施)는 어떻게 하느냐 했더니, 전부 대부분을 불전함 수입에 의존을 한데요. 그런데 그 불전함이 우리나라 불전함에 보시금을 넣는 거랑은 조금 차원이 달라요. 중국 돈 100원이 우리나라 돈 만 6천, 만 7천 원 정도 되는데 절대로 한 장으로 넣지 않고 어떤 경우에는 거의 50~60장 씩 이렇게 보시함에 넣는 것을 많이 봤거든요.

 

김봉래 : 그러니까 중국 사찰들이 국가 보조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신도들의 보시에 의존한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김진무 : 예. 그러고도 남죠.

 

김봉래 :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중국불교협회에서 모든 것을 관리하기 때문에 철저히 국가통제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승려 양성부터 시작을 해서 사찰 운영이 그런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재정적인 의지를 당이나 국가가 아닌 신도들의 보시에 의존한다는 이야기는 저는 처음 듣거든요.

 

김진무 : 제가 알기로는 국가에서 재정 지원을 그렇게 물론 뭐 도로나 여러 가지 사회적 인프라는 지원을 받겠죠. 하지만 그런데 제가 아는 한 모든 재정은 거의 신도들의 재시에 의존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봉래 :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종교적인, 문화적인 활동이 위축될 수 있는 가능성 그런 것은 언제든지 있는 거죠?

 

김진무 : 중국에서는 중국불교는 철저하게 중국불교협회의 지시에 따라야만 돼요. 그리고 예를 들어서 사찰에서는 신도들한테 우편을 보내면 그게 크게 걸려요. 우편물도 발송을 못합니다.

 

김봉래 : 왜 그렇습니까.

 

김진무 : 사찰 내의 경내에서는 어떠한 종교행위를 해도 전혀 저촉이 안 되는데, 그것이 사찰 영역의 밖으로 넘어가려면 중국불교협회의 허락을 받아야만 돼요. 그러니까 신도들한테 우편을 보낸다는 것은 사찰을 벗어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도 제재 대상이고요, 거의 우편 발송을 안 합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요즘 인터넷 때문에 상당히 중국 불교사찰이 상당히 활기를 오히려 띠게 됐는데요. 왜냐하면 인터넷에 전부 공지를 해버리면 훨씬 더 많은 신도들이 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중국의 대부분 사찰들이 인터넷이 굉장히 잘 되어 있어요. 홈페이지 이런 관리가 상당히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김봉래 : 제가 여쭤봤던 것은 어쨌든 그런 사회통제 시스템 속에 있다 보니까 그런 자율성이 저해되지 않는가. 그런 것을 여쭤봤던 거거든요.

 

김진무 : 저해됩니다. 그런데 그게 이제 뭐 중국은 항상 그렇잖아요. 정부가 별 정책을 내놓으면 항상 민간에서는 대책을 세운다고. 그만큼 정부의 통제에 따르면서도 중국 사찰들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보하려고 상당히 노력들을 많이 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김봉래 : 네. 그런 점에서 한국과 중국 간의 불교 교류라고 하는 것이 가능성도 있지만 또 한편에서는 한계성도 우리가 또 미리 내다볼 수도 있겠어요.

 

김진무 : 예. 맞습니다. 특히 사찰에서 주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가 없는 구조예요. 예를 들어서 중국하고 한국하고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그것을 주제로 학술활동을 하고 싶다고 하면 거의 허락이 안 나올 거예요. 대신에 20여 가지의 정부 시책에 따른 그러한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거기에 스무 개 주제 중에 하나의 주제로 슬쩍 집어넣습니다. 이러면 이게 통과가 되죠.

 

김봉래 : 아까 한국과 중국불교계 간의 문화교류가 굉장히 분야가 많을 거다 이렇게 이야기하셨는데요, 실례를 들어주신다면 어떤 게 될까요.

 

김진무 : 제 전공 자체가 중국불교이기 때문에 그것은 한국불교를 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봐야 할 텐데, 그것 말고 사실상 여러 가지로 한국불교하고 중국불교하고 같이 다양한 학술대회를 이미 여러 차례 개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저는 참여를 안했지만. 제 전공 자체가 중국불교에요. 그래서 저는 중국에 가서도 주로 중국불교의 내용이나 혹은 중한의, 한국에서 중국으로 가서 유학한 인물들 중심으로 주로 발표를 하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은 제가 답변하기가 조금 어렵네요.

 

김봉래 : 제가 듣기로는 한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한국이나 일본 학자들에 비해 좀 뒤진다 이런 일반적인 평가를 받았다면 요즘에는 굉장히 그 수준이 올라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김진무 : 맞습니다.

 

김봉래 : 그렇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을지요?

 

김진무 : 제가 1996년에 중국유학을 갔어요. 그 때 중국유학을 갔을 때 실질적으로 불교 관련된 책들을 서점에서 상당히 드물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문화혁명을 거치고 사상통제 때문에 감히 뭐 불교에 대해서 연구를 제대로 불교 연구를 하다가 내가 당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때 당시 문화혁명을 거친 불교학자들도 실질적으로 그 때 저술들을 보면 전부 유물주의, 유물사관에 입각해서 글을 써야만 했어요. 그러니까 어쨌거나 문화혁명이라고 하는 그 살벌한 과정을 거치면서 상당히 조심스러웠던 것도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글을 한 번 잘못 쓰면 그대로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심지어는 자살을 강요받기까지 하니까요. 생명과 관련이 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그게 제가 80년도 후반부터 조금 서서히 풀어지다가 90년 넘어가서는 상당히 거의 뭐 정상적으로 돌아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제가 2001년도에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1996년에 갔을 때랑 2001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입국할 때랑 서점에 가면 불교책이 몇 십 배가 늘어났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만큼 조금 사상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했던 것이고 또 하나의 원인은 그 사이에 점차적으로 제가 유학시절에 박사과정 때도 중국에서 책 구하기가 상당히 쉽지가 않았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유학파들이 하는 이야기가 눈에 보이면 무조건 책을 사야 된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까, 그런 이야기들을 했는데, 그런 것들이 중국에서도 책 구하기 쉽지 않았는데.

 

김봉래 : 쉬워졌다 이런 말씀이시네요.

 

김진무 : 인터넷이 발전되고 하다보니까 오히려 저자들이 자기 책을 스캔해서 인터넷에 올려버리더라고요. 왜냐하면 중국 땅이 넓고 여러 가지 유통이 복잡하니까 인터넷에 자료를 올리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보니까.

 

김봉래 : 그러면 무료로 볼 수 있게 올린다는 말인가요.

 

김진무 : 네. 옛날에는 그런 게 엄청 많았는데요. 요즘은 저작권 인식들이 굉장히 강해졌어요. 그래서 사실은 2,3년 전만 해도 검색만하면 무조건 무료로 다 다운을 받았는데 요즘은 유료화가 되었더라고요. 참 아쉬운 점도 있어요. 왜냐하면 유료화가 되어도 돈을 내면 되는데 돈을 낼 방법이 없어요. 우리나라에서 지급할 방법이 없어요. 전부 핸드폰으로 인증을 해서 핸드폰으로 결제를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핸드폰으로는 결제가 안돼요. 어쩔 수 없이 중국 친구한테 항상 메일을 보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요. 이것 좀 다운받아서 보내 달라 그러면 친구가 도와주고 하는데. 그런 점은 조금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뭐 거의 요즘은 집에서 가만히 앉아서도 거의 모든 자료를 다 볼 수 있잖아요. 저 같은 경우 옛날에 공부할 때는 항상 논문 쓰거나 자료를 찾으려면 도서관에 가야 했거든요. 도서관에 가서 자료도 쉽게 찾지 못해서 막 여러 가지 경로로 하루 종일 도서관에 있어야지 겨우 찾아내고.

 

김봉래 : 어쨌든 그렇게 해서 중국불교의 연구수준이 높아졌다 그런 말씀을 해주신 거죠. 혹시 뭐 종단적인 차원에서요 한중 불교교류를 위해서 뭔가 가능성 있는 일은 없을까요?

 

김진무 : 많죠. 사실은 할 일이 상당히 많은데, 문제는 여러 가지 정치적인 상황들, 경제적인 상황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사회적 상황들 때문에 이런 것들이 상당히 조심스러워요. 제안을 하기도 조심스럽고. 왜냐하면 저도 중국유학파이고 중국불교를 전공으로 하고 있지만 중국에 대해서 사실은 심정적으로는 그렇게 좋지는 않거든요. 왜냐하면 여러 가지 보도를 통해서 동북공정이라든가 문화 왜곡 이런 것을 접하다보면 자기네들 좋은 것도 많은데 왜 그래야 되는가 싶은 생각도 많이 들고 또 그리고 지나치게 보수, 어떤 민족 그런 쪽으로 흘러가버리니까 조금 우려되는 점이 많고요. 예를 들어서 여러 가지 지금 특히 한국 조계종은 조사선을 중심으로 하는데 그런 방향에 있어서 중국불교의 선사상 발전과정들, 그런 것들 특히 현대에서는 중국에서 지금 최대 관심으로 잡고 있는 게 생활선입니다.

 

김봉래 : 생활선이요.

 

김진무 : 네. 그러니까 근대에서는 태화법사의 인간불교가 주된 테마였다고 한다면 얼마 전에 입적하신 정혜법사가 생활선을 제창했거든요. 그래서 지금 거의 중국불교의 학술 주제는 거의 생활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생활선이 이제 우리 조계종에서 하고 있는 템플스테이 이런 거랑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거든요. 그러한 부분에 있어서 종단 차원에서 조금 중국과 협력해서 어떤 공통 컨소시엄을 개최한다든지 그런 것들은 현대에 있어서 중요한 사업 같아요.

 

김봉래 : 네. 혹시 저희 불교방송과 같은 매체에 바라는 바가 있으실까요.

 

김진무 : 워낙에 잘 하고 계시니까요. 여러 가지로. 저는 이제 너무 신도들, 청취자들 수준에 맞추는 게 아니라 청취자들의 불교에 대한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그러한 기획을 해서 쉽지 않은, 들으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그런 방송,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많이 듭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스님들의 법문이나 이런 것보다는 차라리 어떤 과정을 정해놓고 차분차분 불교의 깊은 교리와 수행 체계를 차분히 이끌어 줄 수 있는 그러한 프로그램도 일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운영하면 어떨까 싶은 그런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봉래 : 박사님 오늘 인터뷰 거의 마칠 시간인데요 혹시 앞으로 연구 분야, 활동 분야 계획은 어떻습니까?

 

김진무 : 저도 가끔 깜짝 놀라는데요, 내년에 제가 환갑이 되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평생 불교를 공부한 학자로서 불교인으로서 활동하기가 최대한 뭐 20년이 채 남지 않은 것 같은데, 그래서 저는 가능한 한 계획을 어떻게 잡았냐 하면 제가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전부 종합해서 회향의 차원에서 한 20여 권의 책으로 정리를 해서 출판을 할까, 그래서 일단 책 쓰기에 앞서서 계속 녹음을 하고 있어요.

 

김봉래 : 녹음을 하고 계시다고요.

 

김진무 : 네. 왜냐하면 요즘은 녹음 파일이 그대로 문서화되는 프로그램도 있고 해서 전체적으로 일단 녹음을 해놓고 차분차분 그것을 저술로 전향을 시켜야겠다. 가능한 시간 날 때마다 다양하게 녹음을 하고 있고 그것이 제가 마지막 회향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박사님 인생의 비전하고도 연관이 될 것 같아요.

 

김진무 : 그렇죠.

 

김봉래 : 끝까지 불교 연구에 평생을 바치시겠다 이런 말씀으로 이해가 됩니다. 오늘 김진무 박사님 인터뷰 대단히 감사합니다.

 

김진무 : 감사합니다.

 

김봉래 : 지금까지 남경대 철학박사이신 김진무 박사님과 함께했습니다.

 

김봉래 : 네. 여러분 김진무 박사님과 함께한 오늘 이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구동존이라고 하는 말이 있죠. 다른 부분은 두고 같은 부분에 집중하자 이런 말로 이해를 해봅니다. 한중 불교계가 지혜를 모아서 함께 해나갈 과제들이 매우 많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북아와 세계 평화를 위해서 집단지성을 발휘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불교방송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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