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연 :  김선권 여행작가
□ 진행 : 이호상 기자

▷이호상 : 전국 곳곳의 여행지를 소개하는 코너, ‘주말여행 스케치’ 오늘도 여행전문가 김선권 작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작가님, 나와 계시죠? 안녕하세요.

▶김선권 : 안녕하세요. ‘여행 그려주는 남자, 김선권’입니다.

▷이호상 : 작가님 오늘은 어디를 소개해 주실 건가요?

▶김선권 : 지난 월요일이 삼일절이었잖아요. 애국지사님들의 한과 독립에 대한 염원이 서려 있는 곳,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현장,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다녀왔습니다.

▷이호상 : 삼일절에 의미 있는 곳에 다녀오셨네요. 그런데 요즘 박물관들이 문을 닫은 곳이 많던데 이곳은 그래도 문을 열었나보네요?

▶김선권 : 요즘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나라나 기관에서 운영하는 비영리 박물관은 온라인 사전예약이 필수입니다. 사전예약 없이 당일 방문 입장 불가합니다. 당일 예약도 안되고요. 최소 하루 전에 예약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간 별로 100명으로 입장인원제한이 있습니다. 

▷이호상 : 그렇군요. 사전예약을 하고 시간당 100명에 당일 예약을 해야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김선권 : 당일예약은 안 되고, 하루 전에 예약해야합니다. 

▷이호상 : 하루 전에요? 아 이게 상당한 정성이 있어야 갈 수 있는 현재로서는 그런 곳이군요. 사실 작가님, 저는 서대문형무소가보지는 못했습니다만, TV를 통해서 자세히 본 기억이 나는데, 가보지 않으신 분들도 대충 어떤 곳인지 짐작은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입니다. 어떤 곳인지 좀 설명을 해주시죠?

▶김선권 :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1908년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개소된 이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고난을 치른 역사의 현장입니다. 특히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에는 민족대표 33인을 포함한 수천 명의 애국지사들이 수감되었고, 유관순 열사님께서 순국하신 곳이기도 합니다. 독립이후에는 인혁당재건위사건부터 1987년 민주항쟁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수감되고 희생되었던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전장이기도합니다. 이곳은 한국의 근대사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면서 슬픔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옥사나 형장을 보기에 앞서, 역사전시관을 먼저 둘러보게 되는데, 이곳에서 애국지사들을 만나게 됩니다. 방 안 가득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했던 애국지사들이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아치형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너무 예뻐서 아이러니가 느껴지는 그래서 눈물이 핑 도는 그런 공간입니다. 이 건물 지하에는 고문을 받았던 장소가 있습니다. 다양한 고문을 받던 모습이 묘사되고 있는데요. 무섭다기보다는 화가 나는 그리고 그 고통을 이겨내고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셨던 그분들을 생각하면 가슴 뭉클해지는 장소입니다.

▷이호상 : 그렇죠. 우리 역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이다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야말로 안타까운 것은 무자비한 고문이 자행되었던 곳 아니겠습니까? 안타깝게도.

▶김선권 : 네, 그렇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고문도구들이 전시되어있습니다. 차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 중에서 하나 벽 고문실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관을 세워놓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좁고 높이 낮다는 것입니다. 실제 들어가서 체험할 수 있는데 키가 크지 않은 분들도 똑바로 서있지 못할 정도입니다. 물론 앉을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고문을 받던 현장을 벗어나면 옥사가 나옵니다. 옥사 역시 비좁고 차갑습니다. 그 작은 옥사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는 김구 선생님, 여운형선생님, 한용운 선생님 등 많은 애국지사들께서 남긴 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김구 선생님의 백범일지에 나와있는 내용을 한 번 읽어드리겠습니다. ‘많은 죄수가 앉아있을 때에는 마치 콩나물 대가리 나오듯이 되어있다가 잘 때에는 한 사람은 머리를 동쪽, 한 사람은 서쪽으로 해서 모로 눕는다. 그러고도 더 누울 자리가 없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일어서고 좌우로 한 사람씩 힘이 센 사람이 판자벽에 등을 붙이고 두발로 먼저 누운 자의 가슴을 힘껏민다. 그러면 누운 자들은 “아이고 가슴 뼈 부러진다고 야단이다” 하지만 미는 쪽에 또 누울 자리가 생기니 서 있던 자가 그 사이에 드러눕고 몇 명이든 그 방에 있는 자가 누운 뒤에야 밀어주던 자까지 다 눕는다. 모말과 같이 네 귀퉁이를 물려 짜서 지은 방이 아니면 방이 파괴될 터였다. 힘써 밀때는 사람의 뼈가 상하는 소리인지 벽판이 부러지는 것인지 우두둑 소리에 소름이 돋는다.

▷이호상 : 이게 아침부터 정말 일제강점기 말이죠.. 잔인했던 시간이 아니었다 이렇게 생각이 드는데요. 우리가 역사의 아픔을 다시 한 번 곱씹고 되새기면서 절대로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안 될 텐데 말이죠. 상상하기도 싫은 처참한 광경이네요. 그분들께서는 이런 고통을 어떻게 이겨내셨을지…. 정말 숙연해지는군요. 아침부터.

▶김선권 : 혹시 먹방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것이 생각이 나시는지요?

▷이호상 : 먹방이요? 유명인이나 유튜버가 많은 음식을 먹는 것이 떠오르죠.

▶김선권 :  네 그것도 그런데요. 거기서는 먹방을, 징벌을 위한 독방을 말합니다. 

▷이호상 : 아 서대문 형무소에 먹방이라는 곳이 있군요. 

▶김선권 : 네. "먹처럼 깜깜하다"해서 먹방이라고 했다네요. 실제로 방의 구조상 문을 닫아버리면 먹과 같은 어두움만 남는 그런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겨우 한 명이 누울 수 있는 먹방 세 개가 나란히 있는데 두 곳은 완벽한 어둠이고 한 곳은 좁은 틈으로 빛이 스며드는 정도였습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사형장과 일제가 독립 운동가를 사형시킨 후에 그 사실을 은폐하고자 시신을 바깥으로 몰래 반출하기 위해 뚫어놓았던 비밀통로 시구문을 마주했을 때는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화가 많이 났던 곳은 격벽장이었습니다.

▷이호상 : 격벽장이요? 거긴 어떤 장소죠?

▶김선권 : 수감자들의 운동시설입니다. 

▷이호상 : 운동시설이요? 그나마 나름 그 당시에는 작지만 배려했던 시설 아닌가요?

▶김선권 : 복지시설을 가장하고 있죠. 그런데 그 형태에 문제가 있습니다. 운동 중 수감자 상호간의 대화를 방지하고 감시를 쉽게 하기 위하여 여러 개의 칸막이벽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운동장에 담을 쌓아서 좁고 짧은 복도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전체적으로는 부채꼴 모양을 하고 있는데 부채꼴의 중심을 높게 만들어서 간수 한 명이 수감자 전체의 움직임을 한 눈에 감시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역사상 가장 비인도적인 복지시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의 건물들은 빨간 벽돌 건물입니다. 파란 하늘에 대비되는 빨간 벽돌 건물…. 밖에서 보면 더없이 예쁜 건물인데 이게 모두 감옥입니다. 그것도 독립군들에게 가장 가혹했다는 무서운 서대문형무소가 이곳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유관순 열사께서 수감되었던 여옥사8번방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습니다. “당신의 희생이 우리의 현재이자, 미래입니다.” Your sacrifice is our present and future. 100여 년 전 그 참담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이어나간 애국지사들의 3.1운동 정신이 지금의 우리에게 희망의 기운으로 전해지길 기원합니다.

▷이호상 : 이게 정말 말씀하신대로 비인도적 복지시설. 이게 복지시설이라는 단어 자체도 쓰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정말 처참한 시설입니다. 정말 일제 정말 나쁘네요. 나빴죠. 정말 안타까운 시설이 아닐 수가 없는데. 작가님 서대문 형무소 소개를 쭉 해주셨는데 말이죠. 원래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질문이었는데 그 질문은 제가 좀 빼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이 너무 처참한 현실이어서. 아이들과 함께 교육 현장으로써 우리 역사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곳으로 같이 한 번 가서, 역사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것도 좋을 듯싶은 역사의 산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역사의 산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님 오늘 말씀 고맙고요 다음 주에 더 좋은 곳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선권 : 네 고맙습니다.

▷이호상 : 네 ‘여행스케치’ 시간이었는데 오늘은 좀 처참한 곳이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곳이었는데 서울의 서대문형무소를 자세히 소개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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