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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우리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널리 알린 3.1독립운동이 일어난 지 올해로 102주년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일제 잔제 청산은 여전히 남은 숙제이고, 민족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분들의 뜻을 기리고 계승하려는 노력 또한 더딘 상황인데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으로 옥고를 치렀고, 서울 종로구 대각사를 거점으로 항일독립과 불교혁신 운동을 펼쳤던 용성스님의 활약상과 후손들의 선양 노력을 통해 3.1절의 의미를 되돌아봤습니다. 

최선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터 >

서울 종로구 봉익동,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조계종 사찰, 대각사. 

1911년 일제의 폭압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 민족대표 33인으로 역사적인 3.1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용성스님이 창건한 사찰입니다. 

지난 1986년 다시 세워져 35년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있지만, 경내 대웅전에 있는 용성스님 진영에선 일제에 끝까지 굽히지 않았던 서릿발 같은 항일정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종원스님 / 서울 대각사 주지(뉴스파노라마 3.1절 특집 녹음방송중에서)
“스님께서 살아가신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내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한 것이 있다면 끝까지 관철해나가는 강인한 정신, 불굴의 의지를 상기해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만이 중생을 구제하는 길이고 그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라고 여겼던 용성스님.  

스님은 민족대표 33인으로서 역사적인 3.1운동을 주도했고, 그 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기꺼이 3년여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스님은 옥고를 치른 뒤에도 ‘삼장역회’를 조직해 한글 경전을 펴냈고, 불교 잡지 ‘불일’ 발간과 어린이 찬불가 작사 작곡 등으로 불교혁신운동을 항일운동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종원스님 / 서울 대각사 주지(뉴스파노라마 3.1절 특집 녹음방송중에서)
“스님께서 감옥에 계실 때 성경을 비롯한 타종교의 서적들이 모두 한글로 번역된 것을 보고 역경에 대한 원력을 세우셨고. 삼장역회는 첫 한글판 금강경을 출간하고, 수많은 한글 경전을 펴냈습니다.”

1927년부터는 대각사에서 본격적으로 불교대중화 운동인 ‘대각교 운동’을 펼쳤고, 선농불교를 주창해 자립경제와 자주독립정신을 고취시켰습니다.  

스님의 다양한 항일독립운동과 불교혁신 운동은 세월이 지나서도 대각사를 근간으로 하는 후손들의 선양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종원스님 / 서울 대각사 주지(뉴스파노라마 3.1절 특집 녹음방송중에서)
“용성조사님의 교육관을 기회가 된다면 대각사 근처에 만들어 가지고 용성스님의 독립운동정신을 교육할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서 활용하고 싶습니다.”

또 스님이 일제 당시 손수 봉안했던 아미타삼존불상을 문화재로 지정해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보존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종원스님 / 서울 대각사 주지(뉴스파노라마 3.1절 특집 녹음방송중에서)
“본존 아미타불상은 15세기 후반기의 불상이므로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스탠딩>
'33인 민족대표'로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용성스님의 발자취가 스며 있는 대각사. 

단순한 종교의 의미를 뛰어 넘어, 3.1운동이 갖는 교훈과 민족적 자긍심을 후세에 전하기 위한 관리와 보존이 필요해보입니다.

서울 대각사에서 BBS뉴스 최선호입니다. 

(영상=허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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