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당시 수험생이었던 기자
2005년 당시 수험생이었던 기자

2005년 11월 23일.

수험생으로 수능 시험을 마치고 고사장 밖으로 나오는 길에 지역 방송사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기분이 홀가분하고, 이제 앞으로 즐겁게 놀아야 겠습니다"라는 제 멘트가 저녁 뉴스에 나갔습니다. 사실 시험 결과는 평소보다 훨씬 좋지 않았지만, 시험장 문 밖을 나서던 순간만큼은 정말 홀가분했습니다. 

지난 3일, 이른 아침. 15년 만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수험생이 아닌 기자로 현장 취재를 위해 여의도고등학교로 향했습니다. 코로나19는 시험장 풍경도 바꿔놓았지요. 후배들의 응원전은 없고, 취재진만 교문 앞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문 앞에서 수험생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부모들은 웃고 있었지만, 그 미소에 애써 감춘 긴장감은 고사장을 에워쌌습니다. 

수능 당일, 여의도고등학교 시험장
수능 당일, 여의도고등학교 시험장

올해는 발열체크 등으로 입실 시간이 예년보다 30분 빨라졌습니다. 입실시간을 10분도 채 남기지 않은 8시 1분쯤 경찰 사이렌 소리가 울렸습니다. 모든 취재진의 눈이 사이렌 소리 쪽으로 쏠렸습니다. 수험생이 탄 경찰차와 오토바이인 ‘사이카’ 두 대가 함께 도착했습니다. 기자가 한 경찰에게 어디서 학생을 태워 왔는지 묻자 “은평구 구산역”이라고 했습니다. 경찰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여의도까지는 제 시간에 오지 못했을 겁니다. 

“아이가 신분증을 놔두고 갔는데, 나를 들여보내줄지 모르겠다”
시험장 정문이 닫히자 안타까운 사연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의 신분증을 들고 있던 어머니는 경찰의 팔을 붙들고 무작정 뛰기 시작했습니다. 장소를 옮기려던 기자도 그 뒤를 따라 같이 뛰었습니다. 아이가 수험표를 두고 갔다며 발을 동동 구르던 학부형도 있었습니다. 모두들 무사히 시험을 치렀길 바랍니다. 

조계사에서 기도를 올리는 학부형
조계사에서 기도를 올리는 학부형

애끓는 부정과 모정은 장소를 옮긴 조계사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년같으면 대웅전 안에만 500명이 가득찼었지만, 조계사 측은 법당 내 인원이 40명으로 철저히 제한하고 앞 마당에도 거리두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무릎 위에 아들의 사진을 올려두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한 어머니의 모습을 가만히 보면서 먹먹함을 느꼈습니다. 아이를 수험장에 내려주고 조계사로 바로 왔다던 한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수능이 다가오면서 집안에서도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식사도 두명씩 나눠서 했다고 했습니다. 

수능은 끝났지만, 이제는 각 대학의 입시 전형이 이어집니다. 지난 일요일 오후에는 논술 시험이 있던 서강대학교 앞을 나가봤습니다. 수험생들만 교내 진입이 허용돼 부모님들은 학교 주변을 삥 둘러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역시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없던 풍경입니다. 

기자가 수험장을 나오던 그 느낌이 1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니, 수험생들이 얼마나 기분이 좋을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밖에 나가 마음껏 놀라는 이야기를 못하는 상황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들뜬 마음 조금만 참고, 백신 없는 마지막 겨울을 함께 보냅시다. 초유의 감염병 사태 속에 시험을 치른 모든 수험생과 가족들에게 마지막까지 좋은 결과가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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