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나마스떼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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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하도겸 나마스떼코리아 대표 

■진행: 신두식 BBS 경제산업부장 

 

신두식 : 앞서 소개해드린 대로 오늘은 하도겸 나마스떼코리아 대표님 모셨습니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하도겸 : 네, 안녕하세요?

신두식 : 나마스떼코리아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나마스떼가 걸어온 길에 대해서 청취자들에게 설명해주시죠.

하도겸 : 나마스떼코리아 단체 이름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저희가 인도나 네팔에 가면 사람들이 다 나마스떼라고 인사를 합니다. 영어로 나마스떼라고 쓰고요. Na라고 쓰고 읽을 때는 너모스떼라고 합니다. 아를 어로 발음하시더라고요. 한국 사람들이 가면 나마스떼 코리아, 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걸로 이름을 짓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원래 나마스떼를 좀 찾아보니까 불교에서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하잖아요? 나무, 귀의하다 이런 뜻이잖아요? 아스떼가 존경하다의 뜻이랍니다. 나의 존경을 다 바친다, 이런 뜻으로 나의 신이 너의 신에게 경배드린다. 좋은 말을 갖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마스떼코리아가 인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그런 인사를 받을 수 있고 우리도 그들에게 구호나 인류애를 공헌하는데 기여하고 싶어서 나마스떼코리아라고 지었습니다. 주요 사업으로는 외국에 나가서, 특히 네팔 많이 나갑니다, 네팔 나가서 안나푸르나 산간오지에 있는 마을 아이들한테 꿈을 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고요. 또 국내 사업으로는 여성 쉼터 이런 것을 운영하고 있고요. 다양한 문화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연극도 지원하고 영화제작도 지원하고. 가장 큰 행사로는 히말라야 사진전이라고 해서 10월 31일 토요일 4시에 하는데, 성북구에서 합니다. 다섯 번째 하고 있는데, 요새 좋은 사진들이 많이 들어오는데요. 사진 공모전을 하고 1등 상금은 200만 원이나 주고 있습니다. 좋은 작품들이 많이 들어와서 놀랐고요. 이 사진전을 하는 이유는 히말라야 지역에 대한 인류애적인 자연환경 이런 데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한 것도 있지만 저희가 자료를 만들려고 하는데 좋은 사진들이 없어요. 영상도 없고. 그래서 부득이하게 저작권 관련으로 해서 공모를 시작했고요. 벌써 다섯 번 되어서 이번에 특집으로 이때까지 사진들을 모아서 네팔인들의 삶과 문화, 이런 제목으로 도록을 낼 생각입니다. 그런 작업들을 계속 해오고 있고요. 그 전에 한 사업들은 굉장히 많은데요. 차차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두식 : 대표님께서는 나마스떼코리아와 어떻게 함께하게 되셨습니까?

하도겸 : 나마스떼코리아를 직접 저와 친구들 몇명이서 만들었습니다. 저희가 NGO나 이런 데 돈을 많이 주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만 원, 이만 원씩 여기저기 주고 있는데 그게 어떻게 쓰이는지 모르고 주고 있다가 제가 그런 일을 좀 하다 보니까 큰 단체는 7%, 작은 단체도 30%밖에 현지에 전달이 안 돼요. TV에서 이 아이가 아픕니다, 이래서 돈을 만 원 내면 현지에 700원 밖에 안 가는 그 시스템을 보게 됐어요. 그리고 엉뚱한 사람들이 다 TV나 이런 쪽에서 같이 촬영하면 VIP 대접을 받고 그런 분들 홍보비, 직원들 인건비 당연히 나가곘지만, 건물 유지비, 적립금까지 해서 그 돈이 70%에서 93%까지 되는 것에 사실 많이 놀라서. 그것도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끼리 모여서 직접 전달하는 식으로 만들자고 해서 티베트를 간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저희 어머니께서 2010년에 돌아가셨는데, 뜻하지 않게 보험금이나 이런 것이 저에게 많이 왔어요. 그래서 이참에 이 돈으로 법인을 한 번 해보자. 왜냐하면 기부금 내시는 분들은 좋은 뜻으로 내기는 하지만 기부금 영수증 발행도 안 되고. 그리고 저희가 하다 보니까 대학 동기나 고등학교 동기나 동네 아는 분들 중심으로 하다 보니까 이 분들이 다 직장이 있어요. 그래서 기부금 영수증도 필요하고 이왕이면 체계적으로 하고 단 조건은 우리가 다 직장이 있으니까 여기서 10원도 안 가져가자. 그래서 네팔 가면 보통 한 250만 원 들거든요? 저도 내요. 저는 매년 한 1,000만 원 정도 내는데, 보통 그렇게 모두가 돈을 내서 시제적으로 남들 돕는데 쓰자, 그리고 돈이 안 되는 사람들은 재능기부를 해 달라. 특히 공무원 친구들은 다 와서 외교부에 있는 친구들은 네팔 학교 같은 것을 하면 공짜로 와서 강의해드리고 재능기부들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석이나 설 때 같은 경우 선물이 많이 들어오잖아요? 어차피 다 못 먹을 정도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거든요. 비누, 치약 이런 것들 많이 들어오잖아요? 그런 것들을 나눔한다고 해서 가지고 오면 저희가 네팔 쉼터에도 주고 그동안 봉사했던 자원봉사자에도 나눠주고 이런 식으로 활동을 자그맣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신두식 : 그러면 나마스떼코리아라는 단체에 계시는 분들에게는 임금이나 급여가 없어요?

하도겸 : 저희가 보조금 사업을 운 좋게 한 5년 연속으로 했었어요. 저희가 언론인이나 공무원들이 많다 보니까 기획서를 잘 써요. 저도 기획서 심사를 많이 했지만. 그래서 냈는데 우연찮게 몇 천만 원 짜리가 계속 돼서 하는데 이게 매번 영수증 처리하고 하는데 직원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돈, 보조금에서는 인건비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한 명 쓰게 되면 자원봉사로는 해결이 안 되겠다, 해서 그만하기로 했어요. 보조금 받지 말고 대신 자원봉사 하시는 분도 지금 쉬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러면 그런 분들이 교대로 사무실 지켜주시면서 저희가 식대나 교통비는 드립니다. 그 정도로 하고 대신 거기서 뭐 하고 싶은 사무 보셔도 되고 개인적으로 사무실 쓰셔도 되고. 지금은 지유명차 성북점이라고 해서 한 분이 그걸 운영하세요. 그러면 거기서 경비를 다 대주시고 저희는 가서 차 팔아드리고. 그리고 손님 없을 때는 사무 봐 드리고 이런 식으로 서로 윈-윈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성공해서 인건비는 1원도 나가지 않습니다. 가끔 오해하는 분들이 오세요. 그런 것은 거의 없어졌지만 기자 분들이나 어떤 분들이 와서 좀 도와달라, 협찬해달라 하면 저희는 그런 것 안 한다고. 그래서 굉장히 곤욕스러워 하시더라고요. 이런 데 처음 봤다고. 예전에 한 번 법륜사, 태고종 사찰에서 큰 스님들 모시고 법회도 했었어요. 그런데 법회 참가비를 1만 원을 받는데 스님들이랑 언론에서 취재하러 왔는데. 우리는 취재하러 왔는데 그냥 들어가게 해 달라, 취재 안 하셔도 되니까 돈 내고 들어가시라고. 그래서 더 유명해졌어요. 저도 거기서 만 원 내고 들어갔거든요. 우리 그냥 평등하게 하자, 좀 일한다고 공짜로 하고 이런 것 안 된다. 단,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일을 할 때는 먹는 것은 주자. 온 사람이 자기 돈 내고 먹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와서 며칠 일해주고 하는데 밥값은 아끼지 말자, 한국 사람인데. 그래서 계산을 해보니까 만 원을 내면 한 8,300원에서 8,400원이 전달되더라고요? 왜냐하면 전기세, 수도세, 밥값은 있더라고요. 컴퓨터도 고장나면 고쳐야 되고. 그래서 그렇게 하니까 요즘 몇 군데서 저희를 따라하는 것 같아요. 좀 깨끗하게 해보자고 해서. 그런 측면에서 타의 모범이 된다는 측면에서 기쁜 일이기도 합니다.

 

신두식 : 경상경비를 최대한 줄이고 자원봉사를 많이 하시고 서로 기부하시고 보시 문화를 실천하고 계신데요. 어머니가 남겨주신 그런 걸로 창립을 하셨다고 하니까 어머님도 많이 고마워하실 것 같기도 하네요.

하도겸 : 어머니께서 제가 어렸을 때 외할머니와 같이 조계사 데리고 다니셨거든요. 그때 청산동에 잠시 살았었는데 88번 타면 조계사 앞에 종로에 내려서 걸어 올라가면 그때 법사 스님께서 동산 큰스님이라고 계셨어요. 그 분 처음 뵙고. 조계사 구석에 가면 팥죽 팔고 그랬거든요? 그게 또 너무 맛있어서 다니고. 돈을 받았는데 저는 어차피 직장이 있으니까 굳이 더 욕심낼 필요 없고 마침 그때 2007년부터 이 사업을 친구들끼리 같이하고 있었는데, 돈이 있으면 법인화시켜서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가장 좋은데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두식 : 네팔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은데요.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이 인도 북부하고 네팔 접경지역 근처잖아요? 네팔을 자주 방문하셨을 텐데, 방문하셨을 때마다 어떤 느낌을 받으세요?

하도겸 : 제가 룸비니에 딱 두 번 간 것 같습니다. 저는 오천축국, 왕오천축국의 천축국이 인도니까, 중인도 북인도 해서 저도 창피하지만 룸비니가 인도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네팔에 갔는데 룸비니가 아래에 있대요. 인도 아니야? 그랬다가 네팔 사람들이 되게 싫어하더라고요. 룸비니가 인도 것이라 하면. 잘못했다고 했는데. 가보니까 참 좋아요. 거기가 또 아시다시피 날씨가 더워서 매우 무덥고요. 40도도 가고 길가에 코브라도 있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많이 놀랐어요. 가서 종교적으로 환희심을 느낀 적도 있지만 그보다도 관광지화 됐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고요. 그보다 사르나트나 다른 8대 성지, 또는 네팔의 파드마삼바바와 같은 성지들이 있거든요? 거기 가면 굉장히 성스럽고 한데, 룸비니에 가서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부 쪽은 불심이 없어서 그런가요? 네팔 불교 인구가 18% 정도 되는데 그 분들이 다 안나푸르나 산 속에 계세요. 히말라야 지역에. 오히려 룸비니 쪽은 불교가 없기 때문에 그런지 저는 북쪽의 성지에 가면 기분이 좋은데요. 그래서 부처님이 태어났다는 뜻도 중요하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거기 사는 사람들의 신심이 그 장소를 더 성스럽게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특히 카트만두에 보다나트나 스와얌부 이런 곳은 유네스코 유적이거든요? 연등불 시대의 유적지인데, 거기 가면 숙연해지고요. 거기 가면 탑 돌이도 하지만 앉아서 참선도 하고 명상도 하고 많은 분들이 가서. 저희 NGO는 불교 중심이기는 하지만 기독교나 천주교 분들도 같이 하시거든요? 그런 분들조차도 거기 가면 참 편안하고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역시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신두식 : 룸비니는 네팔 안에 있고요. 그리고 8대 성지라고 해야 하나요? 인도 북부하고 네팔 지역에 퍼져 있는데. 그런 곳하고 또 그 외에도 소개해주실 곳이 있으신가요?

하도겸 : 제가 8대 성지에 갔을 때는 사르나트부터 해서 바라나시로 해서 여기저기 돌지 않습니까? 금강경이 나오는 기원정사 앞에 흐르는 갠지스 강 원천으로 해서 네팔로 이어지고 티베트 수비산까지 이어지는데요. 그쪽도 참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달라이 라마가 계시는 라다크 쪽이 맥그로드 간지나 그 위의 레 지역이나 이런 쪽, 인도 땅이라고 보기 어려운 지역, 옛날에 티베트 영향도 받았고 지금도 국경에서 인도군이랑 중공군이랑 많이 싸우지 않습니까? 그런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쪽에 가면 오래된 미래라는 책에 나오는 것처럼 옛 사찰, 곰파라고 하는 사찰들이 남아있어서 거기서 의례를 드리고 하는 것들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저런 것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최근에 기독교에서 이탈하신 많은 분들이 천주교로 가고 있는데, 왜 가냐 그랬더니 천주교의 장엄한 의례가 굉장히 마음에 든대요. 그런 의례가 우리도 있는데 그게 엄숙하게 남아있는 데가 역시 인도 안에 있습니다. 북부에 있는데요. 그런 지역의 것들은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 않은가, 밀교라고 하고 이런 것이 아니라 거기서 드리는 것은 전부 다 경전에 같이 있고, 같이 노래하고 찬트라하고 이런 것들이 참 좋더라고요. 같이 기도하는 시간도 갖고. 설법하는 것도 거의 비슷해요. 그런데 우리에게 사물이 있듯이 거기에다가 사람들의 목소리가 껴서 참 좋은 것 같아요. 부처님을 저렇게 찬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여하는 사람들을 엄숙하게 만들고 온 몸 전체를 짜릿하게 느끼는 감동을 줘요. 그런 것들이 천주교에서는 주는데 우리에서는 못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런 것들을 좀 더 받아들이는 것은, 왜나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면 따라갈 필요도 있잖아요? 그래서 로마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교황이 집전하는 이런 데 가면 굉장히 엄숙하고 좋더라고요. 몇 번 가봤는데. 그런 식의 분위기를 우리도 하면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교회들이 대형화되고 천주교에 사람들이 많이 가나 했더니 그런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쪽에 관심이 있어서 가보거든요? 얘네들은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신두식 : 불교계도 배울 것은 배우고 더 불교계가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을 더 해야겠네요. 히말라야도 가보셨어요? 히말라야에 가시면 느낌이 어때요?

하도겸 : 벌써 15~16번을 갔는데요. 많은 분들이 왜 네팔이냐,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저희가 티베트도 도와주러 갔거든요? 컴퓨터랑 이것저것 모아서 드렸는데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식도 거행하고 그랬는데, 그 다음 날 사람들이 감동 받아서 더 주자고 해서 돈도 모으고 해서 다시 한 사찰을 찾아갔는데 아무도 없는 거예요. 그때는 학생도 20~30명 있었고 스님도 다 있었거든요? 가니까 스님 한 분, 나이 젊은 학생 하나 있고 아무도 없는 거예요. 아이들도 네다섯 명. 우리한테 받는 날이니까 모였다는 생각이 들게 하더라고요. 직접 지원해야 되겠고 또 네팔, 티베트는 중공군의 간섭도 심하고 그래서 안 되겠다고 해서 간 데가 티베트 망명민들 있는 곳으로 간 거예요. TVC로 갔었는데요. 그게 네팔에 있습니다. 네팔에 가니까 티베트 사람들이 의외로 달라이 라마 존자님 덕택인지 잘 살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카페트도 비싸게 팔고 있고. 그래서 우리까지 도와줄 필요가 있는가, 하다가 안나푸르나에 간 거예요. 이왕 왔으니까 보고 가자고 해서. 갔더니 우리와 똑같이 생겼고 마을에 사찰도 있고 불교 신자들이 있는데 너무 못 사는 거예요. 벼 베다가 손 다치잖아요? 약이 없어서 손을 나중에 잘라요. 그래서 저희가 갖고있는 마데카솔 하나 발라주니까 낫고. 저희가 종합비타민 센 거 있잖아요? 1,000mg 이런 거 줬더니 아이들이 병이 나아요. 약을 한 번도 접하지 않은 오지가 있어요. 차가 안 들어가니까 저희가 트레킹으로 가지만 너무 불쌍한 거예요. 우리 여기 도와주자가 되어서 간 것이 하나고요. 또 하나는 좀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마차푸차레나 안나푸르나를 보고 있잖아요? 그러면 금강경에 나오는 수미산 왕이라고 하거든요? 신을 보는 것 같아요.

 

신두식 : 산 자체가 부처님의 기가 느껴지는?

하도겸 : 위엄이 있어요. 옛날 성철 스님이나 이런 큰스님을 보면 위엄이 있잖아요? 그런 게 가서 턱, 와요. 말할 수 없는 느낌이. 그걸 보게 되면 또 보고 싶은 거예요. 거기에 있는 어린애들도 상처나면 아물지가 않아요. 왜 아물지 않고 고름이 나오냐고 전화를 했어요. 한국불교연구원에 김종인 원장님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면 그게 비타민 부족일 수 있다, 비타민을 한 번 먹여봐라. 3일 만에 아물기 시작해요. 정말 너무 불쌍하더라고요. 그래서 비타민 회사에 전화해서 비타민 공수해주고 이러면서 사업들이 커져가기 시작했습니다.

 

신두식 : 그런데 요즘 코로나 19로 인해서 국제 교류가 어려워졌잖아요? 이전과는 활동에 제약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해가고 계세요?

하도겸 : 적절하지 않은 말인데, 복지 쇼핑이라는 말이 있어요. 부나 돈이나 여러 단체에서 하도 돕다 보니까 북한 이탈 주민도 그렇고 장애인도 그렇고 불우이웃도 그렇고 어려운 분이 많아요. 그런데 가끔씩 그런 혜택을 선택해서 누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느 구청에 가면 뭘 준다, 거기다가 오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그런 것만 쫓아다니고 진짜 힘든 사람들은 굶어죽을 수도 있는데. 받으러 가야지 주는 것이거든요? 그런 것들이 많아서 그런지 네팔도 여러 단체들이 카트만두 주변에서 많이 돕기 때문에 첫 마디가 이래요. 우리가 이렇게 이렇게 도와주고 싶다고 하면 니네 얼마까지 줄 수 있어? 이래요.

 

신두식 : 그런 것도 물어봐요?

하도겸 : 황당해요. 그런 개발도상국들의 대사들도 그래요. 어려워서 여기 도와주고 싶다고 하면, 이런 좋은 행사 한다고 오라고 하면 얼마 줄 거냐고. 물론 교통비 달라는 뜻일 수도 있는데요. 뭔가 이상하게 됐어요. 그래서 어느 나라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런 나라들이 있는 것이 확실하고요. 거기 가서도 한 마을을 도와주면 3년 이상 도와주기가 어려워요. 첫 해에 도와주면 엄청 고마워해요. 두 번째 가면 그냥 고맙다고 해요. 세 번째 가면 좀 더 줘야 되지 않냐고 해요.

 

신두식 : 당연하게 생각할수도 있겠네요.

하도겸 : 아까 말씀드린 복지 쇼핑 식으로 같은 사람이 돕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시기에 여러 군데서 해서 받으러 가는 것은 아니지만 매년 세네 번 하다 보면 결국 왜 더 안 해주냐, 그리고 엉뚱한 것을 요구하고 결국은 자기 가족 중심으로. 네팔 같은 경우는 지역 학교에 7:3, 6:4 구조로 정부에서 여섯 명이나 일곱 명 선생님을 보내주시고 지역에서 세 명을 쓰세요. 지역에 돈이 없으니까 저희가 선생님들이 지원했거든요? 다섯 시간이 있으면 두 시간 놀고 있는 거예요. 선생님이 안 계셔서. 결국 나중에 지원해서 고맙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좋은 사람을 썼다가 어느 순간에 그 사람 그만뒀다고 하고 자기 가족을 채워요. 교장이나 마을 촌장이나 하는 사람들이. 최근에 저희 일은 아니지만 연락을 해보니까 교육을 안 하지 않습니까? 코로나 때문에? 그러면 저희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경비가 지급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학기 초에 다 보냈다고. 그럴 수 있으니까 그것도 이해하겠다. 그래서 준 사람들 영수증 달랬더니 한참 있다가 영수증이 왔는데 못 보던 선생님 이름인데 다 보낸 사람과 성이 같더라고요. 이 사람은 누구냐고 했더니 자기 와이프고 자기 조카인데 영어 잘하고 수학 잘한다. 옛날에 뽑았던 사람은 뭐냐고 했더니 그 분은 일이 있어서 그만뒀다. 그러면 저희는 아이들한테 선생님을 선물하는 건데, 귀중한 공부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는데 이게 누구한테는 축재의 수단이 되는구나. 저희끼리 회의해서 당분간 다 중지하겠다. 그래서 지금 여기저기 구담 스님께서 만다라라는 좋은 영화 만든다고 해서 거기도 100만 원 지원하겠다고 하고. 불교방송도 와서 오늘 지원하겠다고, 다문화나 이런 것 잘 하니까 지원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저희가 꼭 써야 되는 돈이 있거든요? 기부금을 받으면 몇 % 써야 하는데 저희가 인건비가 안 나가잖아요? 쓸 데가 없는 거예요. 써야 되는데. 그래서 어려운 데를 찾고 있어요. 저희 주변 추천받아서 단 100만 원이라도 돕는 그런 작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신두식 : 기부받은, 또는 보시받은 돈들을 의미있는 곳에 쓰도록 하는 것도 참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잠시 쉬어가겠습니다. 이 시간에는 출연하신 분이 좋아하는 노래나 음악을 들려드리는 시간이 있는데요. 바로 명사의 음악시간입니다. 하도겸 대표님께서는 어떤 음악 듣고 싶으십니까?

하도겸 : 비뮤티의 <부처님 오신 날>이라는 노래가 있는데요. 처음에 들으면 어려운 부분이 많았거든요? 어색하기도 하고. 그런데 이 노래는 너무 좋아서 제가 차 운전할 때 항상 틀고 듣고 있습니다. 듣고 있다 보면 법열 같은 것이 느껴져요. 직접 찾아 뵙고 인사도 드리고 지금은 되게 친해졌는데요. 노래 듣고 그분 보고 싶고 이런 노래가 많지 않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굉장히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신두식 : 비뮤티님이 부르신 찬불가, <부처님 오신 날> 듣고 계속하겠습니다.

 

대표님 찬불가 잘 들었습니다. 대표님께서 불심이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하도겸 : 저는 불자냐고 하면 불자는 맞는데 종교는 불교라고 안 합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신자라고 해서 절을 잘 안 가거든요. 답사가고 일하러 가면 꼭 부처님 전에 참배하고 오지만 날을 정해서 제일이나 일요일에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데. 명상교실도 하고 법회도 하고 그랬어요. 일요법회 법사도 했었어요. 스님들 대신. 그렇게 했었는데 그것보다는 제 내실을 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요즘도 참선하고 명상하고 그러고 있거든요. 그런데 신심있는 불자냐고 하면 잘 모르겠습니다. 어렸을 때 동산 큰스님한테서 처음 불법을 전해들은 것이 처음이고요. 잘 몰랐습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나이 들어서는 봉선사의 월운 큰스님께도 많이 배웠고요. 그 다음에 잠깐잠깐 배운 스님께서도 많은 대화를 해주셨어요. 그래서 예전에 성운큰스님부터 시작해서 선지식들 찾아뵈면 몇 시간씩 할애해서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많은 이야기도 깨치고 해서 한발짝 더 나아가게 되기도 하고 제가 알았던 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 그런 큰 분들이 참 많으셨는데요. 지금도 큰스님들 만나보면 좋은 분도 참 많으신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사는 것뿐이지 신심이 있고 불심이 있는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제 스스로도.

 

신두식 : 차에도 관심이 많으시다고?

 

하도겸 : 네, 차는 어렸을 때부터 커피를 못 먹었어요. 안 먹었고.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커피를 좋아하셨는데 저는 녹차나 이런 것을 좋아하고 요즘은 보이차 너무 좋아해서 한 번에 5리터, 사람의 피가 4리터에서 5리터가 안 된대요. 그런데 5리터는 매일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물이 보이차여서 보이차에 깊이 빠져서 지금도 하루에 1리터, 2리터씩 꼭 먹습니다. 한 번 몸무게가 104kg까지 늘었거든요? 그때는 보이차 잘 안 먹고 하다가 다시 보이차먹고 살을 뺐어요. 지금 80kg대로 줄였는데요. 왜냐하면 보이차를 먹으면 굉장히 배가 고파요. 그런데 저녁 먹고 8시 쯤에 차 마시면 9시 쯤에 배고파서 꼬르륵 소리가 나고요. 장 소리가 나요. 그때 안 먹고 참선하다 자면 살이 쭉쭉 빠지더라고요. 다른 분들 물어보니까 보이차의 효능 중에 하나가 나이 70 정도 드신 분이 기력 없는데 식욕 떨어지신 분들 있잖아요? 보이차 진한 것, 오래된 차 먹이면 바로 식욕돋아서 식사를 하게 되시더라고요. 살은 참 많이 빠지는데 너무 식욕이 돋으니까 좀 불편하더라고요. 가장 안전하고 부작용이 없는 다이어트법이긴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쪽에서 먹고요. 요즘 사람들이 다례나 다도나 이런 것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좀 잘못 알고 계신 것이 우리나라에서 다도라는 것이 귀족이나 양반 일부분의 예였고 중국이나 이런 데서 가끔 하사품으로 오고 그러면 먹을 수 있는 아주 진귀한 것이었거든요? 최근에 추사나 초의선사께서 드셨다는데 거기가 만덕산이지 않습니까? 강진의 다산. 거기니까 지금도 야생 차밭이 많으니까 옛날에 여연 스님 하실 때부터 가서 사서 먹고 그랬거든요. 차 좋죠. 그런데 그런 풍습이 일부 귀양 간 양반이나 어떻게 보면 근처 사찰의 주지스님이나 가능하지 서민들이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차를 어떻게 먹습니까? 숭늉이나 보리차만 먹어도 성공한 거죠. 다만 그때는 떡차라고 해서 단추차 또는 조그맣게 기납을 해서 눌러서 약 대신 썼을 거라고 봅니다. 한약에서도 차를 쓰고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제가 요즘 한약을 조사해서 한약방 책을 낼 건데요. 한약방에서는 옛날부터 차를 소화제, 위장 고치는데 사용했다 하더라고요. 차는 약이 아닌가, 처음부터. 우리가 지금와서 어떻게 보면 우리가 일본한테 영향을 줬겠지만 일본의 다도도 귀족 다도이지 않습니까? 그런 것이 역수입돼서 마치 우리 것처럼 하고 계시는데 제가 일본에 몇 년 공부하고 있을 때 보니까 유명한 집들, 가풍있는 데 초대되어서 보면 그것이나 우리나라나 별 차이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나라 무형문화재로 전수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참 위험한 부분이 많다는 생각을 해요. 다도가 좀 그렇고요. 다례 같은 경우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의 마음으로 소원을 담아서 부처님 전에 올리면 다도인 것이지 요새 한복입으시고 한 트럭으로 오셔서 분주하게 뭘 하시더라고요. 그 분들은 다 향수뿌리고 오셔서 차의 향은 느낄 수 없는 이런 분위기가 좀 불편했거든요. 다례나 다도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차를 맛있게 하는 법이라면 알고 있어요. 여러 가지 행다법들을 가르쳐드릴 수 있는데 다도나 다례는 21세기에는 맞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도 조심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생각이고 제가 맞다는 것은 아닙니다.

 

신두식 : 나마스떼코리아를 이끌고 계신데요.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말씀해주시죠.

 

하도겸 : 코로나 19가 와서 저희가 네팔에 직접 지원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에요. 예전에는 2014년 네팔 대지진 때는 송금을 하면 나라에서 송금을 차압하기도 했어요. 네팔 정부에서. 그렇고 제가 2014년 네팔 대지진 때 가 있었거든요? 그때 성금 들어온 것이랑 관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 대사관에 있는 부유층 지역이 있거든요? 카트만두 안에? 거기 도로부터 깔더라고요. 복구작업을 시작하면서. 그때는 도로가 원래 없던 땅이었거든요? 이 나라도 투명하지 않은 부분이 아직도 많은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해서 직접 혜택받을 수 있는 수도나 이런 데를 떠나서 산골오지만을 지원헀거든요. 그쪽을 찾기도 어렵고 찾아도 3년 이상 지원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계속 생겨서 그런 것보다는 국내에 와 있는 유학생들이나 다문화 가족들을 집중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해서 올해는 저희가 성북구에 사무실이 있어서 근처에 있는 대학 중에 고려대학교라고 있습니다. 저희 정관 사업에 우리문화역사 바로알리기가 있어서 다문화와 맞아서 문과대학에다 의뢰를 했어요. 매년 한 명씩 장학금을 주고 싶다. 그 사업을 시범적으로 실시해서 좋으면 성신여대, 한성대, 국민대 이런 식으로 성북구 중심으로 넓혀갈 생각이 있고요. 두 번째는 다문화나 우리 역사와 관련된 문화예술활동을 지원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구담 스님이라고 법련사 미술관의 부관장 하셨던 분인데요. 그 분이 영화를 많이 만들고 계세요. 크리스마스 제사도 그렇고 이번에도 만다라를 가지고 영화를 만드시는데 그런 데 지원을 하고요. 또 하나는 네팔에서 한국인으로서 열심히 살아온 분들이 계세요. 송광사에 계시고 지금은 임실에서 토굴에 계시는데, 잠시 코로나 때문에, 거기서 국위선양도 많이 하시고 좋은 일 많이 하셔서 그런 분들 찾아서 지원하는 것으로, 약간 간접적으로 사람들 지원하고 더 가치있게 이 돈이, 만 원 내신 분이 굉장히 큰 돈이거든요? 더 잘 쓰여지는 방향을 찾고 있습니다. 보다 많은 고민을 해서 해결책을 내려고 하고 있고요. 일단은 올해는 문화예술 쪽으로, 장학금 쪽으로 많이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두식 : 청취자 여러분들께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한 말씀 해주시죠.

 

하도겸 : 주변에 어려운 사람 돕는 사람들이 분명 있어요. 어려운 사람도 보이고요. 그 분들을 직접 도우시고 절도 큰 절만 가지 마시고 주변에 암자들 좋은 절 많거든요? 그런 데 가서 같이 일도 해주시고, 돈만 주지 마시고요. 그렇게 몸으로 육보시를 하시는 것이 정말 좋은 보시가 아닌가. 돈은 많이 내시고 여유가 되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위나 주변에 우리 주변부터 많은 관심을 갖는 그런 불자가 되셨으면, 저부터 그렇게 노력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신두식 : 마칠 시간인데요. 앞으로도 히말라야, 그리고 불교 문화를 알리는 데 더욱 힘써주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하도겸 :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두식 : 지금까지 나마스떼코리아 하도겸 대표님과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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