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이 다 자신의 감각적 만족을 추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종교지도자, 특히 그 중에서도 성직자(聖職者)임을 부정(?)하고 수행자(修行者)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불교의 스님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스님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또한 자신과 자신의 삶이 우주 자연의 이치에 걸맞게 자연스러운 삶이고자 하는 희구가 넘쳐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가능한 한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살다가 자연 속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러한 모습의 윤리적 삶이 자신의 것을 갖지 않은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좋아하게 하는 것입니다.




  수필집 “무소유”로 더 유명해진 이 말은 본디 ‘존재가 없다’는 뜻과 존재가 없기 때문에 ‘가질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존재가 없다는 말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가질 것이 없다는 말은 이해도 쉽고 느낌도 좋아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콜라병 하나가 세계를 웃긴다'던 '부시맨'이라는 영화를 보면 무소유의 해탈과 소유의 속박을 즐겁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비행기)에서 떨어진 콜라병의 쓰임새가 다양해지자 부시맨들은 소유의 냄새를 맡게 되고, 소유의 잔재미를 알게 된 그들이 콜라병을 서로 갖고자 욕심을 내고 다투는 일까지 생기게 됩니다. 다행히 '이럴 수는 없다!'고 판단한 그들이 마을 회의를 거쳐 콜라병이 없던 시절엔 다툼이 없었으므로 다툼의 원인이 된 콜라병을 본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높은 곳 즉 하늘에 돌려주기 위해 가면서 갖가지 재미있는 일을 겪게 되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부시맨들은 그래도 순진하고 슬기롭기 때문에 악으로 번질 수 있는 소유의 대명사랄 수 있는 콜라병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내 주장, 내 권력, 내 재물, 내 명예가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바로 소유의식입니다. 그 뿌리는 어리석음 즉 무명(無明)에 닿아있습니다. 부처님이 강조하신 무소유의 정신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나의 부분이요, 전체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저절로 더 가지려는 마음이 사라지고, 있는 동안 사용하다가 돌려주는 것이 물질이요 명예라는 것을 깨닫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출신과 지역, 학력과 성별, 종교와 종단 차별의 고통스런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 가지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가 반성해봅니다. 감사합니다.



법현스님(열린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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