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는 일반인과는 거리가 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화면을 통해 본 모습은 늘 단아한 외모와 똑부러진 언행, 해박한 상식을 갖췄기 때문이었습니다. 빈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이미지에 도무지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연예인과는 또다른 차원의 종류였습니다.

하지만 15년전 모 방송의 <인간극장> '마이크의 전사'편에서 본 한 신입 아나운서로부터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 아나운서가 우리집 이웃일 수 있겠다는 친근감이 들었던 겁니다. 먼저 눈에 띈 건 고르지 않은 치아였습니다. 소박한 그녀의 방도 너무 뜻밖이었습니다. 화려한 공주의 방을 상상했던 건 저만의 착각이었을까요. 그녀의 말에는 진심이 묻어나온 듯 했습니다. "명품들도 많고 화려한 물건들이 많은데 그런 물건이기보다는 동네 슈퍼마켓에 있는 과자나 동네 문방구에 있는 공깃돌같이 편안한, 눈높이가 맞는 서민들과 힘들어하시는 분들의 눈높이에 맞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

같이 출연했던 아나운서들 중 유독 인상깊었던 그녀는 바로 고민정 아나운서였습니다. 특히 그녀의 순애보는 그녀를 더욱 응원하게 만들었습니다. 인생의 반려자로 의사나 법조인, 사업가 등 거절하기 힘든 유혹을 뿌리치고 사랑을 택한 것은 감동이었습니다. 일정한 수입없는 시인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감당하기 쉽지 않았겠죠. 무엇보다 남편이 희귀병을 앓고 있음에도 사랑을 믿은 그녀의 결정은 아름다웠습니다. 

이런 그녀가 어느날 문득 정치판에 뛰어들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2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시절 영입했습니다. 대학시절 '민중가요 노래패'라는 운동권 동아리에 가입했을 만큼 사회 참여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믿었지만 순백의 천이 진흙탕 속에 던져지는 것처럼 못마땅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청와대에 입성한 이후 아나운서 출신답게 청와대 관련 행사 진행을 도맡아 말끔한 진행 실력을 뽐내면서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문 대통령으로부터 상당한 신임을 얻고 있다지요. 

문재인 정부는 지금 고비를 맞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에 대한 부정평가는 취임초보다 훨씬 늘은데다 긍정평가를 넘어섰습니다. 직무를 잘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없이 임명을 강행한 장관급 인사는 15명에 이릅니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17명, 박근혜 정부에서는 10명이었던 점과 비교됩니다. 부동산 투기와 불법 주식거래 의혹 등으로 발목잡힌 강남 좌파의 민낯을 드러낸 겁니다. 자본주의를 공격하면서 스스로 자본가가 돼버린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문제는 서민과는 동떨어진 청와대의 감수성이라는 지적입니다. 위법은 아니어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행위를 저지른 공직자에게 청와대는 관대하다는 겁니다. '제 식구 감싸기'란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부동산 투기 논란으로 사퇴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도 물러나는 날까지 억울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부인이 상의없이 결정한 일"이란 한마디가 그 심정을 대변합니다. 이미선 헌법재판관은 또 어떻습니까. "주식 투자는 남편이 했다"며 모른다고 했습니다.

김의겸 전 대변인의 빈자리를 메운 고민정 대변인은 문 대통령의 신의 한수입니다. 현 정부 첫 여성대변인, 만 40세, 선임행정관에서 대변인까지 초고속 승진 등 다채로운 기록을 뿜어냈습니다. "내 생각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라는 문 대통령의 말에는 기대감이 얼마나 큰 지를 나타내줍니다. 이렇듯 문 대통령의 두터운 신뢰도 선임배경이지만 특히 고 대변인의 살아온 이력도 한 몫한 것으로 보입니다. 서민답게 살아왔고 서민지향적인 고 대변인이야말로 국민 눈높이에 딱 맞춤형인 셈입니다. 청와대의 서민감수성을 한층 끌어올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고 대변인이야말로 잘못을 저질러도 배우자 탓을 하지는 못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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